신불기20, 불기2561년 정유년 음력11.21(2018. 1. 7. 일) VI-122, 337회 큰스님 부산 법문
자성무소유 즉견노사나(自性無所有 卽見盧舍那)-(4) - 부처님은 계시며, 부처님을 뵐 수 있다. -
한 달 만에 여러분을 뵙습니다. 오늘 1,400명~1,500명의 청법대중이 모였다고 합니다.(박수~) 저기 제주도에 오늘 나오신 우리 신도분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일본 분원의 우리 현지사 신도분들 대단히 고맙습니다.
◯ 부처님은 계시며 부처님을 뵐 수 있다
오늘의 법문 주제는 다른 것을 생각했는데 갑자기 바꿨습니다. 전번에 이 주제로 세 번 정도 했나요?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입니다. 줄여서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하면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부처님을 뵙는다 하는 게송입니다. 너무도 중요해서 앞으로도 이 주제를 가지고 설법을 할 겁니다.
항상 ‘부처님은 실존하신다. 그분의 위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다. 위신력은 만능자재하시다. 큰 능력을 지니고 계신다.’하는 말씀을 사실이기 때문에 가끔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대반열반하신 후(부처님께서 돌아가심을 대반열반이라고 합니다.)저 위대하고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은 이제 영원히 공(空) ‧ 무(無)로 끝나버렸느냐 아니면 어디로 가셨느냐? 어디로 가셨으면 어떤 모습으로 계시느냐? 이런 문제를 가지고 부처님 대반열반하신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학승들 큰스님들이 사유하고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큰스님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가신지 약100년 후부터 교단이 분열되어서 약500년~1000년 동안 부파불교시대가 열립니다. 그 20개 부파의 큰스님들 학승들이 나오고 그 후 기원전후로 해서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일어납니다. 대승불교도 모든 것은 공(空)하다. 인연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공하다. 개공(皆空)을 이야기하는 용수(龍樹), 그 후 그분을 정점으로 해서 중관학파(Madhyamika, 中觀學派)라고 하는 큰 학파가 불교를 상징하는 학파로 성장했어요. 거기를 이어서 무착(無着) 세친(世親) 호법(護法)등으로 해서 한 학파가 조성되는 것이 유식유가행학파(唯識瑜伽行學派)입니다. 좀 어렵습니다. 오늘 새로 오신 분들도 많으신데 스님이 대단히 소중한 게송을 가지고 네 번째 합니다. 이건 너무도 중요한 게송입니다. 오늘날 너무도 중요해요. 그래서 이걸 또 다시 이야기하는데 처음 오신 분들은 다른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들어보십시오. 되도록 쉽게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유식학파 다음에 여래장계(如來藏系)가 있어요. 학파로까지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당나라 때까지만 해도 13종인데 그 많은 종파가 생깁니다. 어쨌든 수많은 큰스님들 학승들이 부처님의 불신(佛身)에 대해서 알려고 했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어려워요. 유식에서 삼신설(三身說)을 정립했지만 내가 볼 때는 충분치 않아요. 아니어요. 아주 멀었어요. 밀교에서도 역시 그렇고요. 밀교는 사신설(四身說)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삼신설을 조금 자세히 이야기한 건데 거기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쨌든 부처님을 확실히 본 사람도 없고 불신에 대해서는 아리송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붓다관(불타관)을 정립했다지만 아주 부족합니다.
2,500년이 흐른 이때에 영산불교가 탄생됩니다. 현지사가 탄생됩니다. 태사부님에 의해서 탄생됩니다. 오늘 오신분들 스님 법문 잘 들으세요. 여기 이 법문은 값어치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어렵더라도 들으시면 감은 잡을 겁니다. 태사부님께서는 의해서 확실히 불신을 보셨고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의 빛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대적정삼매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데 《화엄경》을 보니까 이런 게송이 있더라 그겁니다. 게송의 뜻은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계신다는 겁니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거예요.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이게 방법입니다.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겁니다. 이게 문수보살님께서 자장율사에게 가르쳐준 게송인데 당태종 당시니까 지금부터 약1,400년 전이어요. 그 당시 자장율사는 신라왕족 출신의 스님이었습니다. 자장율사가 문수보살님을 친견한다는 각오로 중국 당나라에 가셨어요. 그래서 태화지라고 하는 못 옆에 돌로 문수보살님을 조각한 석상(소상)앞에서 문수보살님을 친견하려고 1주일 동안을 기도합니다. 꿈에 어떤 낯선 스님이 나타나서 이 게송을 줍니다.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라고 하는 게송를 주어요. 자장율사가 꿈을 깼는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게송의 뜻을 모르겠어요. 전번에 이야기했지요. 그래서 고민고민을 하는데 어느 낯선 스님이 오셔서 ‘아! 스님,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습니까? 나한테 좀 이야기해 보시오.’ 하니까 자장율사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낯선 스님이 ‘그 게송은 이 세상 어떤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은 경전이나 게송보다도 정말로 소중하고 위대한 게송이오.’ 하면서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모든 법을 알고 보면 또는 모든 세상의 이치를 알고 보면, 그 말이어요. 요(了), 확실히. 지(知), 알다. 깨닫다.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자성은 무소유라.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이 경지를 깨치면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우리 부처님의 인격적인 불신, 32상을 갖춘 인격적인 불신을 뵈올 것이다.
이렇게 해석해 주면서 부처님의 진신사리 5과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진신사라인데 당신나라에 가서 탑을 조성할 때 쓰라고 진신사리 5과(다섯과)를 주었답니다. 그래서 지장스님이 귀국해서 그 다섯과의 진신사리를 ①오대산 상원사 ②설악산 봉정암 ③양산 통도사 ④사자산 법흥사 ⑤태백산 정암사를 세우고 거기에 모신 거예요. 그리고 한국 역사상 맨 처음 《화엄경》을 강설한 분이 자장율사입니다. 자, 이 게송, 우리 문수보살님은 지금까지 내가 공부해 본 결과 그분의 머릿속에는 오직 석가모니부처님 밖에 없어요. 석가모니부처님의 좌보처이지요. 우리 부처님(석가모니부처님)은 실존하신다 하는 것을 많은 중생(사람)에게 알리는 것을 첫째 책무(責務)로 알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뛰신 분이어요. 중생을 생사윤회에서 건지는 데는 이 게송 이상 없다 그겁니다. 부처님이 계시니까 부처님을 뵈려고 하는 그런 공부, 즉 보살행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문수보살님을 내가 존경하는 것은 바로 이겁니다.
인연 있는 내지 인연 없는 중생을 구하려면 부처님밖에 없어요. 부처님께서 키(key)를 쥐고 계셔요. 보살 만드는데도 그렇고 붓다 만드는데도 그렇고 키(key)를 쥐고 계셔요. 어떠한 수행법도 안 돼요. 물론 앞에서 내가 이야기했던 중관학파의 용수도 수행법이 있고, 또 유식도 오중 유식관과 같은 수행법이 있지요. 《화엄경》은 《화엄경》대로 일심법계관이라고 하는 수행법이 있지요. 《법화경》은 《법화경》대로 일심삼관이 있고, 선(禪)은 선(禪)대로 참선하는 법이 있는 등 다 수행법이 있어요. 불교의 모든 종파는 다 수행법을 지니고 있어요. 그러한 수행법으로 수행을 한다고 해도 안 된다 그겁니다. 부처님을 뵈올 수 없어요. 이건 확실히 이야기합니다. 절대로 뵈올 수 없어요. 부처님을 만나야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거예요.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면 부처님의 교단을 만나지 못하면, 부처님보다 못하긴 하지만 대단히 큰스님 등의 스승을 만나야 아라한이라고 하는 성과(聖果)를 얻습니다. 스승이 중요한 겁니다. 아라한부터는 자력으로 할 수 있지만 보살과는 불가능해요. 부처님을 만나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학파(교파) 다른 종단의 수행법 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왜 보살이 안 되느냐? 여러분 알지요? 스님이 여러 번 이야기했지요. 5가지 10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자, 보살이 되려면 정토에(정토라면 현대물리학에서 볼 때 초끈 이론으로 말하자면, 9차원의 세계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3차원이죠.), 여기에서 그 정토에 가려면 이 몸속의 주인공(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영혼체), 부처님 가신 이후로 지금까지 이 영혼체를 몰라요. 그 어떤 종단도 그 어떤 큰스님도 이 실체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이게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이게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우리의 주인공 영혼체가 없으면 우리 인간은 태어날 수도 없어요. 우주만물도 있을 수가 없어요. 아예 모든 것은 태어날 수 없습니다. 또 윤회할 수가 없어요. 육도에 윤회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이걸 없다고 해요. 영혼을 부인해 왔어요. 우리 영산불교가 이 세상에 출세하면서 영혼체설을 내놓은 거예요. 윤회의 주체가 없이는 윤회가 안 된다.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고 해도 이것이 없으면 안 된다. 이게 기둥입니다. 안 된다하는 것이 우리 영산불교의 영혼체설(4영체설)입니다. 인간생명의 비밀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붓다도 될 수 없어요.
이 게송을 해석해드리겠습니다.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세상이치 알고 보면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 자성무소유라. 이건 무아(無我)의 완성을 이야기합니다. 자성(自性)은 무슨 말이냐? 이게 대단히 어려운 용어입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돼요. 박사학위 받은 사람, 지금까지 그 어떤 학승이나 큰스님들도 이걸 완벽히 몰라요. 자, 이렇게 까지는 자성(自性)을 알아요. 본래로 청정하고 가없는(한량없는) 공덕을 갖추고 있고, 팔정도 육바라밀 등 여러 수행법으로 공부할 때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공덕이 다 갖춰져 있단 말이어요. 일찍이 난 것도 없고(나지도 않았고) 또한 죽을 수도 없습니다. 이거 중요한 거예요. 자성이 그렇습니다. 난 것도 아니고 죽을 수도 없어요. 불생불멸(不生不滅)이어요. 선(善)도 없고 악(惡)도 없고 나(我)도 없고 너도 없고 허공같이 텅 비어 있고 언어도단(言語道斷)이고 생각이 끊어져요. 심행처멸(心行處滅)한, 그러면서 있다 없다를 초월해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마음자리를 자성이라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압니다. 거기까지는 아는데 그 이상 자성에도 체(體)가 있다는 것은 몰라요. 영혼체이지요. 자성에도 체가 있다는 것은 몰라요.
그래서 이런 자성은 무소유라. 그 자성은 무소유라.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무소유(無所有), 여러분 그 어느 큰스님의 한평생을 들어보니까 무소유로 살았더군요. 그러지요? 많이 들어왔지요? 무소유로 사신 분이다. 가진 것이 없어. 무소유, 소유한 것이 없어. 가진 것이라고는 기껏 누더기 옷 한 벌하고 두루마기하고 발우하고 수저 등 그것밖에 없더라. 무소유로 살았더라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보다도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무소유는 어떻게 해석해야 되느냐? 세상 법(諸法)을 공(空)으로 봐야 돼요. 다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공(空)으로 보는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집착함이 없어요. 착(着)이 없다 그겁니다. 여자를 봐도 착이 없고 돈 뭉치를 봐도 착이 없어요. 권력 명예 지위 등에 착이 없어요. 대통령이 ‘당신 내일부터 총리해주시오.’하고 전화해서 간곡히 청하면 이 귀로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해서 물에 가서 씻어버릴 정도예요. 알겠습니까? 명예 권력 지위에 대해서 조금도 욕심 내지 착이 없어요. 착이 없으려면 욕심이 없어야 되는 거요. 이 육신에 대한 착도 없어요. 중생은 이 육신에 대한 애착이 제일 강합니다. 이 육신에 대한 애착도 없어요. 산적이 ‘돈 없으면 네 목이라도 내놓으라.’고 하면 ‘나 돈 없으니 내 목을 가져가시오.’라고 해요. 어린 아이처럼 착이 없어요. 등등. 이 세상 모든 것에 착이 없어요. 이게 무소유예요. 그러니까 아! 그 큰스님 방에 갔더니 라디오도 있고 TV도 있고 핸드폰도 있고… 뭐 없는 것 없이 살던데 뭐. 그러나 그런 가운데 착이 없는 거예요. 일체에 착이 없으면 그게 진짜 무소유라. 자성은 무소유라. 우리의 마음자리는 그래요. 그렇다 그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시해법성(如是解法性) 여기서 자성과 법성은 같은 의미입니다. 그 정도로 가서 깨치면(그 정도로 가면, 그 정도의 법위에 가면)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부처님을 직접 본다 그 말이어요. 그때 이제 진짜 부처님을 본다 그 말이어요. 이 마음은 허공같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지닌 것이 없다. 이 마음, 성자의 마음 붓다의 마음에는 그 어떤 곳에도 착이 없어요. 그러니까 불과를 증한 붓다는 마음이 항상 허공과 같습니다. 청정하고 허공 같은 거예요. 붓다는 그래야 돼요. 이 거짓 몸뚱이의 행복, 여러분 돈을 하루에 그냥 일확천금을 얻었단 말이어요. 기막힌 세상의 미인을 부인으로 맞이했단 말이어요. 또 평양감사를 하루아침에 임명 받았단 말이에요. 그 행복은 다 오래가지 않아요. 왜냐? 실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갈 수 없어요. 그래서 수행을 많이 한 분들은 일체 법을 공(空)하게 봅니다. 집착이 없어요. 그런 의미입니다. 이걸 무아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자성무소유의 경계를 무아의 완성이라고 봅니다. 무아의 완성이라고 해서 무아의 체(體)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32상 80종호로 거룩하고 장엄한 몸으로 계셔요. 그걸 꼭 알아야 돼요. 앞에서 말씀드린 자성의 체, 부처님의 그 거룩하고 단엄한 상이 있습니다. 불신(佛身)입니다. 자, 용수(龍樹)는 그것까지 없다고 했어요. 전부 개공(皆空)이니까. 아직 멀었지요. 무착(無着) 세친(世親)은 삼신설까지 정립했어요. 보신(報身)이라는 것을 알았단 말이어요. 자, 다겁생으로 보살행을 하고 다겁생으로 지혜를 증장하는 공부를 했고, 이걸 유식학에서는 전이(轉移)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수행한 보답으로 붓다의 몸이 생긴다는 것까지 알았어요. 그것까지는 말을 해요. 말을 하지만 세친은 어떤 분입니까? 구사론의〈파집아품(破執我品)〉에서 절대로 우리 인간은 실체가 없다고 그러잖아요. 인간은 실체가 없고 모든 법도 체(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대승불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해요. 제법 무자성 ‧ 공(空) 그럽니다. 그러나 유식에서는 불신까지 이야기를 했으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아는 그 불신하고 다릅니다. 유식철학엔 정토도 없어요. 자성의 체, 영혼체도 없어요.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불신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몰라. 논리적 이론적으로는 보살행을 하고, 공부를 해서 이 팔식 ‧ 허망한 식 ‧ 제8아뢰야식이 완전히 단절되는 것을 전이라고 해요. 그렇게 되면 불신이 생긴다고만 이야기하지 구체적으로 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식학파에서 삼신설을 정립했지만 우리 현지사 같이 투철하게는 몰랐습니다. 불신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40점도 안 주지요.
왜 불신과 붓다에 대한 부분이 그렇게도 중요하느냐? 불교의 최종목표는 성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행목표는 성불에 있습니다. 붓다가 되는 것이어요. 왜? 붓다는 우주자체이니까요. 우주와 하나로 계합이 되어버린 거예요. 무아의 완성이 되면 우주와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런 몸을 인격적 불신이라고 합니다. 32상의 거룩한 몸매를 지닌 불신입니다. 우주의 완전한 주인이 되어버린 것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히 극락의 극락이라고 하는 저 11차원의 청정 환희의 세계에서 살려면 영원히 죽지 않고, 환희의 세계에 있으려면 우주와 하나 된 몸 즉 불신을 가져야 되는 거예요. 성불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 최초로 불신을 일궈내신 분이거든요. 그지없고 한량 없는 나유타겁 하고도 아승기겁 전에 부처님께서 맨 처음 불과를 이루신 거예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내고 원만보신 노사나불을 내신 분이어요. 그 이후로 한 사람도 스스로 붓다가 된 사람이 없어요. 그건 불가능한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에게 키(key)가 있다 하는 거예요. 윤회를 벗어나는 것도 그렇고 삼계를 탈출하는데 있어서도 그렇고 붓다가 되는데 있어서도 부처님의 낙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부처님이 크신 가피가 있어야 됩니다.
보살이 되려면 절대 자력으로는 못 돼요. 부처님을 만나거나 부처님 교단을 만나야 돼요. 그렇지 않고서는 될 수가 없어요. 부처님 교단을 만난 우리 스님들 우리 선남자 선여인들 중에 80여 명의 보살이 나왔어요.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야 되니까 부처님을 믿어야 되고 간절히 부처님을 불러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에 의해서 업장소멸 되는 것입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우리 문수보살님은 그걸 잘 아시고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을 역설하신 거예요. 부처님의 실존을 많은 사람들에게 선전하고 다니시는 분이 문수보살입니다. 머릿속엔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나는 그래서 우리 법의 아버지도 되지만 이 점에 있어서 나도 똑같이 희유하신 거룩하신 부처님은 계시니까 궁극적으로 부처님같은 대성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까지 그 많은 세월을 걸어왔습니다. 여러분 그런 서원을 세워야 돼요. 보살이 되고 결국에는 붓다가 되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법화경》사상이어요. 결국은 성불하는 것, 불(佛)이 되는 것, 그게 일불승입니다. 그걸 목표로 해야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 염불을 지극정성으로 해야 됩니다. 그런데 염불하는 데는 착한사람이 되어가지고 해야 됩니다. 계율을 지켜라. 착한 사람이 되어가지고 해야 돼. 나는 그럽니다. 참 이 세상에 스님들도 많지요. 그런데 우리 부처님께서 이걸 지켜라 하는 것을 지금 지키지 않고 있어요. 스님들 거의 절대다수가 그래요. 가장 무서운 계율이 음계(婬戒, 여자)입니다. 중이 여자를 보면 죽으면 곧 무간지옥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다. 사실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계율을 안 지켜요. 불법을 모르고 부처님을 모르니까 그러는 거예요. 이 우주이법을 모르니까 그래요. 파계(破戒)했으면 양심적으로 그 절을 놔두고 속퇴 해야 돼요. 나는 그렇게 권하고 싶어요. 속퇴 해서 피땀 흘려서 자기가 노력해서 먹고 살아야 돼요. 그렇게 해야지 그 착한 신도분들이 갖다 바친 시주 곡물(재물)을 가지고 살 수가 없어요. 이건 양심상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승려들은 마땅히 부처님을 믿어야 되고 반드시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야 돼요. 그래야 살아요. 다음세상이 있고 지옥이 있으니까요. 다음세상이 있고 지옥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곳은 여기 현지사뿐이어요.
어떤 신도가 자기 남편이 사업하다가 망한 20억 가까운 거금을 20년간 약국경영을 해서 다 갚았다고 해요. 얼마나 고마운 분입니까? 지금 스님들 국가에서 소득신고를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럽니다. 어느 스님을 보니까 보증을 해준 돈이 5천만원이어요. 그런데 들어와서 하나도 갚지 않았어. 그건 나는 양심이 있다고 안 봐. 적어도 윤회를 벗어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양심이 살아있어야 돼. 양심이 죽어버린 사람은 구제불능입니다. 구제하기 어려워요. 한번 약속했으면 반드시 지켜야 됩니다. 어떤 약속이든지 상대방하고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돼. 이게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더라고요. 여러분 여기 1,400여 명의 우리 신도분들 참 보통 인연이 아니지요. 전생을 보면 많은 복을(공덕을) 쌓은 분들이어요. 그래서 현지사를 만난 거예요. 현지사가 보통 교단이 아니어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태사부님 광명만덕님은 부처님을 뵈온, 부처님과 법담을 하는, 부처님이 가장 아끼시는 불과를 증한 붓다이십니다.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습니다. 나는《반야경》이나《법화경》이나《화엄경》이 정말로 위대한 경전이라는 걸 알아요. 완벽하게 적혀있진 않습니다. 《반야경》이나《법화경》이나《화엄경》에 쓰여 있지 않은 부분을 우리가 알아요. 무량광이라든지 그 불신에 대한 비밀 등을 광명만덕님과 나는 알아요. 이 세상에 기독교만 해도 2~3만개의 교단이 있고 미국 내에만 사교집단(邪敎集團)이 5천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세계의 종교가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에 각 파가 있고 그래요. 또 수많은 민족종교가 있고요. 이렇듯 수 만개의 종교단체 중 하나에 속하는 우리 영산불교의 교단창립이 10년밖에 안 돼요. 이 수 많은 종교 집단 중에 우리 현지사만이 부처님의 계심을 알고 있어요. 거룩하고 희유하신 절대자 부처님의 실존을 알고 있단 말입니다. 여기의 큰스님이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과 대화하고 부처님의 그 큰 위신력을 알고 부처님이 한없이 예뻐하시는 큰스님이 ‘누구누구 누구가 참 사람이 착하고 공부를 잘하고 부처님 믿는 마음이 정말로 남달리 독실해서 보살인가 해주세요.’하게 되면 부처님께서 보시고 “그 애가 이정도 수준에 이르면 보살을 만들어 주는데, 봐라! 이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어쩔 것이냐?” 가령 그릇 같으면 물이 철철 넘어야 되는데 80%가 차 있단 말이어요. 80% 밖에 되지 않는데 이건 안 되는 거다. 인가를 해주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가끔 나오더라고요. 보니까 물이 철철 넘는 사람도 있어요. 부처님의 지혜를 경전에 잘 그려놨습니다. 《금강경》만 봐도 부처님의 능력(위신력)수준이 나와 있잖아요. 삼천대천세계 중생들의 마음을 그냥 읽습니다. 어떤 사람이 대단히 칭찬할 만한 수준에 이르는지 그냥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현지사 신도분들 천 몇 백 명 딱 아십니다. 누가 지금 물이 찼다 해가지고 전번에도 한 사람 보살인가 해준 거예요. 《아함경》은 부처님의 친설이 확실한 거요. 내가 가끔 부처님의 인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그래요. 선종(禪宗)에서는 부처님은 계신다고 역설하는 우리를 보고 천마를 보고 그런다고 하거든요. 이 천마하고 부처님하고 비교한다면 그건 큰일 납니다. 그건 부처님을 능멸한 거예요. 천마하고 하늘 외도수장하고도 그래요. 외도하늘 수장은 우리 부처님하고 어느 정도 차이냐? 이런 비유가 있습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혹은 부처님의 삼밀(三密)을 부처님의 불신을 저 하늘 외도신 수장들이 미래겁이 다하도록 사유한다고 하더라도 알 수 없으리라 그겁니다. 경전을 봐도 나와요. 붓다 되기 전, 사리불의 지혜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사리불과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하다고 합시다. 그 사리불과 같은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서 무량겁을 사유한다고 해도 부처님의 지혜를, 신구의 삼밀을, 불신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알 수 없어요.
그러니까 용수나 마명이나 무착이나 세친이나 천태나 일본의 일연이나 한국의 원효 등 이런 분들이 세상에 널려있다고 하더라도, 다 한곳에 모여서 이들이부처님의 삼신(불신)을 사유한다고 하더라도 알지 못하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현지사 태사부님께서 부처님을 확실히 뵙고 그 희유하심과 그 위상을 증명하신 거에요.
◯ 마음이 부처라고 보는 선종의 불신관
지난시간에 선종에서는 어떻게 불신을 보는가? 마음이 부처라고 한다. 이 정도로만 이야기했지요. 앞에서 스님이 여러 학파(교파)를 이야기하고 현교 밀교를 다 이야기하고 실로 역사 이후 그 어떤 학승도 큰스님도 불신을 확실히 모른다. 붓다에 대한 정의를 확실히 모른다. 이렇게 말했는데 우선 선종(禪宗)에서는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겁니다. 선종에서는 부처 없다고 합니다. 《법화경》〈비유품〉에 확실히 나오지요. 사리불존자 말씀입니다. ‘나는 들어와서 지금까지 공부를 했는데… 깨달았지요. 그리고 증득했지요. 해서 나는 이제 완전히 멸도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고 생각을 하는데 오늘 나한테 너는 다음 어느 생에 나와서 보살도를 성만(盛滿)하여 불과를 증하리라. 붓다가 되리라.’ 하는 수기를 주십니다. 그래서 그 사리불존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이 있어요. “하! 불신을 얻어야 붓다구나. 32상 거룩한 빛의 몸(인격적인 불신)을 얻어야 붓다구나.” 하는 고백을 합니다. 왜? 불신을 얻어야 부처님도 상대방을 볼 수 있잖아요. 천(天) 인(人) 아수라 내지 팔부중 내지 귀신도 다 볼 수 있잖아요. 저 유정들이 불신이 있어야 부처님을 뵐 수 있잖아요. 아무것도 없으면 봅니까? 아무것도 없다는데 뭘 봅니까? 아무 형상도 없고, 말씀을 들을 수도 없다면 어떻게 상대를 교화합니까? “아! 불신을 갖춰야 부처가 되는구나.” 하는 것을 고백한 것이 있어요. 불신을 갖춰야 되거든요. 그런데 선종에서는 끝끝내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자, 조금 자세하게 말하고 결론으로 내려갑니다. 선종에서는 앞에서 내가 말했던 자성 인간성품 마음자리를 부처라고 본 거예요. 이걸 법신(법신불)이라고 그래요. 또 다시 말하면 본래로 청정해서 만법이 갖추어져 있는 자리, 마음자리를 법신불로 봐요. 선도 악도 없는 자리, 나도 없고 너도 없는 그 자리를 법신부처라고 봐요. 모습이 없어요. 법신은 이렇고
그 다음에 화신불은 성품이라고 하는 법신자리에서 일어나는 착한 한 생각을 화신불로 봐요. 다시 말하면 법신자리 성품자리 마음자리에서 일어나는 착한 한 생각을 화신불이라고 봐요. 이 화신과 법신을 깨치지 못한 중생들은 악한 것을 생각하면 업을 지으니까 결국 지옥을 만들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착한 행을 하니까천당이 되고 그런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 양변, 악한 생각 착한 생각의 이 양변을 뛰어넘어 실체가 없는 무아라는 것을 깨달아 작용하는 것을 보신이라고 봅니다. 곧 계속 절대 선으로 가는 것 그것을 보신이라고 한다, 그럽니다. 그래서 법신 화신 보신은 결국 마음이어요. 마음 하나입니다. 마음이 곧 삼신불이오 자성불이라고 합니다. 선에서는 결국 마음이 부처라는 거요. 따로 부처가 없다고 주장한단 말이어요. 임제와 같은 중국 선종의 큰스님, 그분은 달마 혜능과 같은 큰스님이어요. 임제는 머무름이 없는 마음, 머무름이 있다는 것이 집착(착)이어요. 머무름이 없는 마음 또 물들어 있지 않은 마음(무념)이 삼신이다 그래요. 결국 마음이 부처다 그겁니다. 마음이 부처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절대 아니다. 그것은 유치원 수준밖에 안 된다. 부처가 없어버리니까 나는 심교(心敎)라고 했지. 마음이 부처라고 떠드니까 심교라고 때려버린 거요. 1,300년 정도 조계종 선불교가 한국 불교계를 완전히 장악한 거요. 이 불교계를 향해서 ‘그건 심교다! 그건 아니다!’ 라고 이 자재만현스님은 지적했습니다. 선불교의 상징적인 큰 인물 곧 중국 선종의 임제스님은 법신 보신 화신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란 마음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마음자리(마음)가 곧 부처다 하는 것이 선종의 주장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현지사는 그 주장은 절대 아니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고 나는 조계종을 뛰쳐나온 거예요. 나는 뛰쳐나오기 전에 일찍이 벌써 선종의 모든 교학이(교리가)아니라고 본 거예요. 이건 아니다. 들어와서 참선을 오래도록 해서 견성을 하고 깨달았다고 한 그런 사람들은 절대 다수가 부처님이 없다고 한다고요. 마음이 부처다. 불 ‧ 보살 없다. 지옥 극락도 마음이지 따로 극락이 있고 지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귀신? ‘좋아하네! 없어!’ 선종 이야기입니다. 나는 그걸 단호히 반대하는 거요. 아니다! 지옥도 극무간 무간 중지옥 하지옥 대기지옥 등으로 나누어서 보는 데는 우리 현지사 뿐이어요. 저 인도의 힌두교에서도 이렇게까지 못 봤어요. 육도윤회를 벗어나는 세계도 힌두교에서는 잘 몰라요. 윤회를 벗어난다는 세계는 있는 줄 알아요. 그러나 우리는 아라한의 세계 더 올라가서 무루대아라한의 세계 더 가서 정토보살의 세계 더 나아가서 약사정토세계 더 나아가서 붓다의 세계, 이렇게 자세히 보는 데가 현지사예요. 그리고 중생들, 이 세상 사람들은 뭘 모르거든요. 이치를 몰라요. 다음생이 있는 것도 몰라요. 확실히 아는 스님으로서 중생들을 인도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중생들을 보니까 마음이 탐진치로 꽉 차 있어. 욕심으로 가득해. 그래가지고 그냥 오욕락을 좇아 그렇게 분주하게 사는데 그러다 보면 집착해서 결국 업을 지으니까 삼악도로 가는 거요. 삼악도가 있다는 것이 현지사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
앞에서 내가 양심을 이야기했는데 불자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그 정도 되어야 돼요. 불자가 되려면 그 정도로 되어야 되는 거요. 착한 사람 되어서 경전 읽고 염불하십시오. 염불하되 석가모니부처님의 성호를 부르는 것이 기본이어요. 그분은 붓다의 붓다이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큰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모든 붓다들은 우리 부처님의 명령과 뜻을 받들게 되어 있어요. 철두철미합니다. 능력에 있어서도 모든 붓다들은 우리 부처님을 따라갈 수 없어요. 그런 줄 아십시오. 이 선종은 마음을 부처라고 봤는데,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견성한 사람들이 오히려 지옥 갈 업을 짓더라 그겁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한국의 불교가, 종단이 좀 바뀌어 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염불로 들어와야 되는데, 염불로 들어오십시오. 당신들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하는 것이 내 생각입니다. 여기의 모든 분들은 우리 형제니까 여기에 와서 종종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 이 나라의 백성들이고 이 나라의 동포들이니까 인연이 가깝잖아요. 그래서 부디부디 공부해보시고 모든 종교 다 해보라는 겁니다. 연구하고 공부해봐라. 저 세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귀신도 볼 수 있고 귀신을 부릴 수도 있고요. 귀신을 부리는 정도는 상당한 정도예요. 지금까지 귀신을 부리는 정도의 성자는 별로 없어요. 나아가서 젊은 사람이 죽었단 말이어요. 젊은 사람이 죽었어. 천도재를 한단 말이어요. 이때 현지사 천도재로 다행히 명부에 든다하더라도 그 젊은이의 4번 영체는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에 남겨지지 않아요. 그걸 유령이라 하는데 사실 이 유령은 진짜 생명체가 아니기에 2-3년 있으면 스스로 분해·산화되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부모 형제들에게 현신하는 경우를 미리 막아 주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까지 해결해 주십니다. 천도재는 부처님이 주관하는 현지사 천도재가 아니면, 지은 죄업으로 3악도에 떨어질 사람을 좋은 곳으로 천도시켜 줄 수 없는 거요. 역사이후 그 어떤 성자·도인들도, 지옥에 떨어질 사람을 하늘로 천도해 줄만한 법력을 지닌 성인은 일찍이 없나 봅니다. 어떻게 진짜 천도재를 해 줄 수 있답니까? 이미 죽어서 그 영가가 지옥에 있는데 어떻게 모시고 오느냐 그 말이어요. 그 누가 모시고 옵니까? 지옥도 귀신도 없다고 하는데 어디에 가서 어떻게 그분을 데리고 오느냐 그 말이어요. 그걸 수배라고 하지요. 현지사밖에 없어요.
그래서 정법문중으로 오늘도 한300명 정도 신규 신도가 오셨다는데 내가 좀 어려운 주제로 법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부처님은 살아계신다 하는 것을 역설한 거예요. 부처님은 계신다는 거예요. 이 법계에 계신다. 열심히 부처님을 찾으면 감응하신다. 부처님을 찾되 착한 사람 되어가지고 찾아라 그거예요. 불교에서 말하는 계율을 지킬 줄 알아라. 최소한도 오계는 지켜라. 오계 중에서도 중요한 계(戒)하나도 못 지키는데 그러면 아니다는 겁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 죄를 짓지 말라. 죄(업)를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온다.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반드시 과보가 있다. 그러니 그렇게 살지 마시오 하는 것을 역설하는 데가 현지사입니다.
오늘의 법문 주제가 되는 이 게송은 워낙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을 내용으로 해서 가끔 법문을 할 겁니다. 부처님은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 믿어요. 아무리 말을 해도 부처님이 계시고, 사후세계가 엄연히 있다는 것을 법문해도안 믿어요. 그래도 붙들어 잡고 이야기해야지요. 한 사람이라도 구해야지요. 삼악도에 안 가도록 막아야지요. 모두 다음 세상에 최소한 하늘에 태어나고 인간으로 와야지요. 그때 아마 또 큰스님 회상이 열릴 거예요. 붓다든지 보살이든지 그 정법회상을 만나야 됩니다. 그래야 진짜 법문을 들을 수 있거든요. 진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방향이 잡혀질 거예요.
앞에서 스님이 이야기했지요. 《법화경》〈비유품〉에 “사리불 같은 이가 이 세상에 가득하여 함께 생각하여도 부처님의 지혜를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몸에 머무른 지혜로운 벽지불 (아라한 위의 벽지불, 무루대아라한 정도이지요.)이 대나무 숲과 같이 시방세계에 가득해서 함께 한 마음으로 한량없는 억겁동안을 부처님의 지혜 알려고 해도 조금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위상은 이렇듯 어마어마한 거예요. 이런 부처님을 없다고 하거든요. 그러므로 부처님이 없다고 하는 세상을 우리가 만났단 말이어요. 그래서 우리 문수보살님이 자장율사에게 게송을 주신 거예요. 문수보살님은 오직 부처님 생각만 해요. 부처님이 실존하시는 것을 어떻게 하면 중생들에게 알리려고 노력하시는 분이 문수보살님이어요. 문수보살님은 과거에 일곱 번이나 불과를 증하신 분이어요. 세존의 좌보처예요. 지혜라고 하면 모든 붓다 중에서 제일이어요. 그래서 문수보살님은 부처님 다음으로 법계의 제2인자로 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모르니까 우리 문수보살님 기도를 통 안 부쳐요.
“초지(환희지)보살들이 많은 부처 공양하고 모든 이치 통달해서 설법 또한 잘한 이가 볏짚이나 갈대처럼 시방세계에 들어차서 이 사람들이 항하사 같은 겁을 함께 생각하여도 부처의 지혜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의 위상을 읽을 수 있는 법화경의 말씀입니다.
“불퇴전 보살(보살8지, 상상품보살)들이 항하사 모래수와 같이 많아도 그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여서 일심으로 생각하여도 역시 부처님의 지혜를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부처님이 없다고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부처님을 한 생각 한 마음으로 공경 귀의 참회하면서 부르는 공덕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을 부르는 공덕이 어마어마해요. 여러분 이제 ‘석가모니불’을 찾아요. 그러려면 반드시 《금강경》을 읽어야 돼요.《금강경》 읽고 부처님다라니가 있어요. 그 다라니는 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면 더 좋습니다. 다라니를 세 번 정도 하시고 참회하고 발원하고 자기의 주소 성명과 나이를 고하고 부처님이 앞에 계신다 치고 그리고 석가모니불을 찾으세요.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래야 여러분 부처님의 한량없는 가피가 내려서 여러분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죄(죄업장)가 씻어져요.
앞에서 ‘자성무소유하면 즉견노사나’했는데요. 자성무소유, 무아의 완성 단계에 가려면 수행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 아니어요. 다겁생래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씻어지고 씻어져 완전히 소멸되어야 ‘즉견노사나’하는 거요. 부처님을 보는 거예요. 업장만 그럽니까? 탐진치 삼독 번뇌 망상심 뿌리가 뽑혀져야 돼요. 그것만 되면 됩니까? 지금 큰스님들의 대부분은 자기에게 빙의된 조상님들 무주고혼도 보지 못해요. 슬픈 일이지요. 조상 중에서 누구 한 사람 낭떠러지에서 자살해 죽었다? 빙의하거든요. 어떤 사람도 그 집안에 한 30명 안팎의 조상님 무주고혼들이 있더라고요. 그 집안에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그걸 아는 사람이 지금까지 거의 없었어요. 그 부모 조상님들을 천도해 줘야 돼요. 하늘로 올려 보내 줘야 돼요. 그 사람들이 지옥에 있는 한 성과 얻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런 줄 아세요. 또 큰 사업을 하려고 하거나 크게 되려면 자기만 잘살려고 하지 말고 반드시 조상의 천도재를 해줘야 됩니다. 이게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불교가 이걸 몰랐어요. 그리고 천마(天魔)를 알지요? 용신 사신 지네신 악어신 등 많은 신(神)들이 있는데 그런 신들, 이매망량 신들이 공부인들(수도인들)에게 잘 붙어요. 그것들이 잘 붙어요. 그거 아십시오. 틈이 있으면 비집고 들어와요. 그 틈이 무슨 말이냐? 틈, 파계하게 될 때, 즉 탐·진·치 번뇌 망상에 빠져 있을 때 그래서 생각이 법답지 못할 때를 말해요. 그들은 자기 권속 만들려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한번 들어와 버리면 안 떨어져요. 천마 용신 그것들은 떨어지질 않아요. 구렁이나 뱀신을 사신이라고 해요. 구렁이나 뱀의 명이 남았는데도 사고사 당하여 도중에 죽었단 말이어요. 비명에 죽은 이것들의 중음 영가를 사신이라 해요. 용신은 주로 열대 나라의 큰 구렁이가 몇 백 년 살아 신통이 있어서 자기 몸에서 유체이탈 할 정도입니다. 그 용신은 신통이 대단해요. 그런 것들이 들어와요. 왜? 자기의 권속을 만들려고 들어와요. 권속 확장에 관심이 대단합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민주당은 자기당원 확장에 혈안이 되어있지요?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국민의 당은 국민의 당대로 그러지요? 똑 같아요. 자기권속을 만들려고 그래요. 그것들이 들어와 버리면 자, 지네가 들어왔다고 합시다. 남방지네는 커요. 거기는 영체가 들어갑니다. 지네가 들어간 사람이 많더라고요. 놔두면 지네권속이 되는 거예요. 죽어서 지네가 되는 거예요. 지옥가면 지네지옥으로 가고요. 이것은 확실해요. 그래서 이런 외마를 떼어야 됩니다. 이걸 뗄 사람은 현지사밖에 없어요. 부처님밖에 없어요.
스님이 이렇게 법좌에서 진실을 말합니다. 나는 방편을 쓰지 않아요. 알아주고 믿어줘야 되는데 날 넘어서 안 믿어요. 믿어주세요. 그런데 믿음을 가졌으면 뿌리를 내려요. 튼튼한 뿌리를 내리면 그 사람은 살아요. 그런데 흔들흔들해요. 뿌리가 약하면 흔들흔들합니다. 흔들흔들할 정도가 되면 부처님의 가피가 안 와요. 올 수 없는 거예요. 앞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삼천대천세계 중생들의 마음을 다 살필 수 있다고. 저 일신교에서는 하나님 그러면 머리가 천 개 달렸다고 합니다. 천의 머리를 가졌다고 하거든요. 부처님은 천 개가 문제아니라 1,000의 1,000승의 화신을 이 우주에 가득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석가모니불을 찾으면 다 화신이 나가요. 그런 분이어요. 그래서 나는 부처님을 하나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하나님이지요. 기독교 저 일신교에서는 하나님이 현상세계를 주재한다 해요. 아예 그런 창조주 하나님은 없어요. 부처님은 현상세계뿐만 아니라 6차원을 넘어서 11차원의 해탈 열반의 세계까지 총 포괄 주재하시는 분이어요. 정법을 믿어주시기 바라고 큰스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말씀을 진실로 받아주시고 현지사를 택했으면 한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흔들흔들 마세요. 흔들흔들 하지마세요. 모든 붓다는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으로 상속되어 있습니다. 한 몸입니다. 모든 붓다는 한 몸이어요. 이걸 알아 두십시오. 처음에 불과를 이룬 붓다는 건강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붓다되기 전엔 가끔 실수 할 때도 있습니다. 육신을 지니고 있으니까 사소한 잘못도 있는 거요. 처음에 불과를 이룬 분은 특히 그럽니다. 마지막 생이기 때문에 과거생에 다하지 못한 악연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또한 불과를 증하지 못하도록 마구니나 천마들이 백방으로 방해해요. 어마어마하게 방해하는 거예요. 불과를 이룰 사람은 마왕 파순이 급이 빙의해요. 절대 불과를 못 이루도록 들락날락해요. 그래서 처음 불과를 이룬 우리 영산불교 교단의 두 분 큰스님들에게는 마지막 부처님이나 문수보살님이 그것들과 목숨을 걸고 대적(대결)한 거예요. 붓다는 마왕 파순이 급들이 반드시 와서 빙의해 있습니다. 그놈을 잡아서 절복항마 해야 돼요. 다 그 과정을 거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불과를 이룬 분들에게는 흠점이 없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겁에 하나 붓다를 내시는데 삼천대천세계 중생들 특히 남섬부주 인간들 중에서 천만생 가운데 한번 하나를 고르는 거예요. 한 사람 딱 골랐을 때 얼마만큼 그 사람이 과거생에 백천만 생을 잘살았으면 낙점했겠소? 그 사람의 흉허물을 보지마세요. 무간지옥 갑니다. 극무간 지옥 갑니다. 한 몸이고 상속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붓다를 흉허물 보는 것과 같습니다.
◯ 서울분원의 재건축
서울분원을 고심 끝에 발전적으로 해체하기로 했습니다. 왜냐? 지금 300여 명이 넘어가는데 위태로워요. 안전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진단을 통해서 알았어요. 그래서 이것을 빨리 처분해야 되겠다. 그 대신 새로운 포교당을 좋게 짓든가 빌딩을 살 계획입니다. 지금 날마다 나와서 공부를 하시는 분들 재일에 나오시는 분들에 대해서 본사에서 무료로 버스대절을 책임진다. 그러니까 본사에 와서 해라. 확실한 서울분원이 생길 때까지 그것이 한 달 걸릴는지 6개월 1년이 걸릴는지 몰라도 그동안 서울분원에 다니시면서 공부하고 기도하고 하시는 분들, 본사를 택하든 대전을 택하든 우리가 차를 내줄 계획입니다. 그 2층집이 지금 50년 넘었습니다. 몇 년 전에 보수를 했어요. 그러나 충분치 않았어요. 300명 넘어 가게 되면 큰일 납니다. 너무 협소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서울분원을 지금 거기서 접고 공부는 우리가 차 대절을 보장해 줄 테니까 여러분이 양해해 주십시오. 아셨지요?
◯ 윤회 벗어나기는 어렵다
자, 우리 신도분들, 스님은 문수보살님처럼 생각해요. 여러분 다음에도 반드시 와야 돼요. 여러분 절대로 삼악도 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세상 사람들 절대다수가 온갖 나쁜 업을 짓기 때문에 가요. 나는 할 수 있는 한 삼악도에 안 가도록 막고 싶어요. 정말 그래요. 이게 소원이고 미래제가 다하도록 문수보살님과 같이 자재 만현도 중생구원(구제)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여러분 남은 생 잘살아야 됩니다. 잘살아야 되지요. 남편이 잘되고 하는 일이 잘되고 자식 건강하고 공부 잘하고 성공하고 나도 건강하고 병 없이 오래살고 우리 가정이 화평해야 합니다. 자, 그러려면 염불해야 돼요. 이게 키(key)입니다. 부처님 같은 분은 없으니까 우리는 부처님을 닮아가야 되는 거요. 부처님 길을 따라가야 돼요. 그래야 사는 거예요. 그래야 금생 잘살고 돌아가실 때 나쁜 병 안 걸리고 살아요. 바람같이 죽어요. 그러면 곧 그 사람은 정말로 저 하늘에 가요. 저 하늘도 욕계만 해도 54하늘이 있어요. 높은 하늘로 올라갈수록 복락과 영광이 수승해요. 그 하늘에 태어나요. 하늘 복이 다하면 사람으로 오고요. 사람으로 올 때 혹시 그때 어떤 붓다가 출세할 때가 되었거든 꼭 거기에 와야 돼요. 그래야 여러분 다음생 윤회를 벗어납니다.
윤회를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자력으로는 안 됩니다. 자력으로는 안 되지요. 반드시 부처님 회상을 만나야 돼요. 부처님 교단을 만나야 돼요. 영산불교는 부처님 교단이어요. 그것을 아세요. 그것만 아세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적어도 그 위대하고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이 와계시는데 최선을 다해서 전각을 지어드리는 거예요. 김해 상동에다가 지금 대작불사를 하는 거예요. 사실 우리 힘에 부쳐요. 온갖 방편을 다 써가지고 하는 거요. 너무도 거룩하신 부처님들이 와 계시는데 계실 곳을 마련해 주는 거예요. 너무너무도 좋아 하셔요.
할 말이 많지만 오늘 법문은 여기서 끝내고 부디 오늘 처음오신 우리 신도분들 어떤 인연으로 해서 지금 여기 오셨습니다. 오셨는데 부처님과의 인연을 단단히 해야 돼요. 그래야 살아요. 부처님 계셔요. 이걸 스님은 역설하는 거예요. 양심 있게 살아야 되고 하루에 죽 한 끼 먹고 살더라도 담 넘어가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은 철칙이어요. 그런데 이러한 도덕률이 망가져버렸어요. 통탄할 일이어요. 여러분들이 이 혼탁한 세상을 여러분들이 정화해야 돼요. 뛰어줘야 돼요. 현지사 신도들이 되어가지고 뛰어줘야 돼요. 구해야 돼요. 다음에도 오십시오. 오늘 270명 오셨다든가?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 손들어 봐주세요.
오늘은 ‘자성무소유하면 즉견노사나’하는 게송을 중심으로 해서 또 1시간 말씀드렸습니다. 너무도 소중한 게송이기 때문에 언젠가 또 이야기할 거예요. 이걸 중심으로 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많은 말을 해줘야 됩니다. 불신관(붓다관)을 이야기해 줘야 되고 여러분들이 들어야할 소중한 법문이 많이 있어요. 꼭 나와 주셔야 돼요. 다른 데서는 들을 수 없습니다. 절대 모릅니다. 그러니까 스님말씀 꼭 유념하시고 다음에 뵙기를 바랍니다. 제 법문 도중에 부처님께서 여러분의 업장을 가끔 혹은 자주 많이 씻어주십니다. 오늘 많이 씻어주셨을 거예요. 여러분 돌아가시면서 증험해보세요.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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