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 일요일

선불교의 실체 신불기 16년 불기 2557년 음력 9.1.(2013.10.5.토) 불교대학 특별 소참 법문(춘천본사 여래전)

 


    선불교의 실체


     

    신불기 16년

     

    불기 2557년 음력 9.1.(2013.10.5.토)

     

    불교대학 특별 소참 법문(춘천본사 여래전)

     

    Ⅵ-4, 219회



    모두 앉으세요.

    잘 모르는 우리 선남자 선여인들이 많네. 내가 영산불교가 개원 후로 230번 정도 법문을 하고 있는데 모두 일반 신도분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깊이 법문을 못했습니다.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 영산불교대학을 졸업하는 분들이니까 좀 깊이 법문을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오늘은 한국불교 선불교(禪佛敎), 1000년 동안 내려온 우리 한국불교 선불교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따지고 보면 중국 당나라 소급(遡及)해보면 1500년 정도, 1500년의 선불교를 해부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산불교에서 오늘 설법하는 내용은 1500년 이후로 그 누구도 하지도 못했고 들을 수도 없는 법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불교를 알아야 됩니다. 선불교를 알아야 됩니다. 조계종(曹溪宗)을 알아야 됩니다. 조계종을요. 조계종이 선불교의 본산입니다. 한국불교를 알아야 됩니다.


    선불교는 인도의 불교, 특히 유식(唯識) 그리고 여래장사상이 중국의 도교(道敎)와 만나 중국 선사들에 의해 태어난 불교 종파입니다. 중국 도교와 융합되어 태어난 것이 선불교예요. 불교의 한 종파예요. 그렇지만 문제가 아주 많습니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다른 종파불교에 대해 헐뜯고자 하는 생각은 추호(秋毫)도 없습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서서 높은 붓다 회상에서 선불교를 파헤쳐보는 거예요.

     

    내가 7년 전 불교TV에 나갔었습니다. 그 불교TV 사장이 내가 잘 알고 있는 석성우 스님입니다. ‘큰스님! 그냥 하고 싶은 말 다하십시오. 하고 싶은 말 다하십시오.’ 자꾸 그렇게 말하거든. 그러나 해보니까 1000년의 벽이 너무도 두꺼워요. 선불교의 약점을, 결정적인 흠점을 지적할 수가 어요.


     조심스럽게 해갔지요. 그래도 아니나 다를까 대단한 압력이 들어오고 우리를 매도하고 우리를 능멸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우리가 아무 힘이 없었지요. 가건물이 하나에 스님들이 몇 명밖에 없었지. 대항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도중에 그만두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일반인을 상대로 해서 하는 법문이기 때문에 깊은 법문을 할 수 없고, 조금씩 조금씩 선불교 이야기도 하고, 위빠사나나 티베트 밀교에 대해서도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하고, 일신교 기독교의 허구에 대해서는 남의 종교이기 때문에 그저 말하는 것이 좀 부덕(不德)한 것 같았어요.


     이때까지 그래왔습니다. 그래도 이제 대학을 졸업한다고 하는 우리 선남자 선여인에게는 할 수 있는 거예요. 말할 수 있어요. 이런 기회가 나한테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선불교에 대해서 1시간 하고, 다음에는 일신교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 또 논리정연하게 1시간 하고, 힌두교에 대해서도 해주고,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부처님의 정법은 이렇습니다 하는 것을 말씀해주고 싶습니다.

    오늘 첫째 시간으로 선불교의 실체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선불교의 실체. 여러분들은 몰라요. 선불교에 대해서 몰라요. 조계종을 아십니까? 그분들의 종지와 사상을 압니까? 모르지요? 몰라요.

     

    저 많은 성직자가 1만 명 넘습니다. 따르는 신도들이 1,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그 신도들이 안타깝고 불쌍하지요. 대단히 안타깝고 불쌍하지요. 선불교의 흠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영산불교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결론을 말하자면 ‘선불교는 아닙니다. 선불교는 아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선불교는 외도(外道)라고 봅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 2년 전에 선문화(禪文化), 선문화사라는 잡지사가 있지요? 그 사장이 최00일 것입니다. 나하고 잘 아는 사람이고 학문도 깊습니다. 그 사람이 거사이지만 선지(禪旨)가 있는 사람인데다가 한 소식했다고 하는 사람이어요. 선(禪)에 아주 폭 빠진 사람입니다. 나한테 가끔 놀러 오기에 ‘당신! 선(禪)을 버리시오! 외도입니다!’


    외도라고 하니까 이 사람 얼굴이 좋지 않지요. 외도라고 내가 때려버리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감히 나한테 뭐가 외도냐고 말을 못하더라고. 그 후로 오지 않아. 안 와요. 선(禪)은 외도입니다 여러분. 우리 스님들이 안타깝고 불쌍합니다. 신도들도 안타깝고 불쌍하고요. 그래서 큰스님들이 죽으면, 저 언제 언제 죽은 사람들이 어디에 갔나 하고 추적을 하고 부처님께 정중하게 여쭤보면,

    “이러이러해서 여기에 있느니라!”


    하고 보여줘요. 큰~스님, 아주 한국에서 내로라고 하는 스님들이 안 좋은 데 있다고요 여러분. 안 좋은 데 있다고요. 내가 안 좋은 데라고만 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곤란하지요. 안 좋은 데 있다고요. 그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 정~말 우리 영산불교에 귀의 잘한 거예요.


     자, 대단하고 정말 큰~ 주제를 가지고 1시간을 이야기합니다. ‘1500년 동양 정신문화의 정화’라고 하는 선불교, 감히 누가 입을 열 수가 없어요. 이 선불교에 대한 권위에 대해서요. 감히 1500년 이후 그 어떤 사람도 입을 못 연 거예요. 그런데 오늘 우리 영산불교 부처님 회상에서 오늘 한번 이야기해 보는 거예요. 선불교의 종지(宗旨)는 이러합니다.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입니다.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고 그래요. ‘마음자리를 향해서, 사람의 누구라도 다 지니고 있는 마음이라고 하는 그 마음자리를 향해서 그것을 보려고 참구(參究)를 해서 마침내 성품을 깨닫는다. 성품을 깨달으면 그 자리가 붓다다’ 그래요. 부처다 그래요. 이게 선불교의 종지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자유인이 되어서 대~자유인이 되어서 붓다가 되고 또 해탈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것을 하나하나 따져 들어가야 되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요. 우리 법장 거사님이 비교종교학을 많이 연구했지요. 내가 시킨 거예요. 비교종교학을 하라고 말입니다. 우리 영산불교가 이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알리려면 비교를 해야 되요. 모든 세계종교를 공부하도록 해야 돼요. 


    그래서 ‘아!~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부처님 교단이구나’ 하는 것을 알리려고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도록 했는데 정말 잘했어요. 5년 동안 정말로 각고(刻苦) 정진을 해서 비교종교학(-<붓다의 가르침에서 바라본 세계종교>)이 나왔잖아요. 그 책이 좋습니다. 조금만 손대면 정말로 보물이어요. 어쨌든 지금 탄생한 것이 참 좋아요.


    자성(自性)을 보는 것, 견성(見性). 성품 자리를 보는 것, 그 견성이 곧 붓다인가? 부처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아니어요. 그것은 아니어요. 절대로 아니어. 이것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거예요. 많이 이야기를 했어요. 사상으로 들어가 봐요. 마음이 부처, 심즉시불(心卽是佛)이라고 그래요. 그러니까 마음을 깨치면 부처다 그거요. 자, 이것을 조금 풀이하겠습니다.

     

    마음, 앞에서 말한 인도불교의 유식(唯識)-아뢰야식을 말하는 유식, 그리고 여래장 사상-모든 사람들은 불성 ‧ 여래장을 지니고 있다 하는 여래장 사상, 마음, 그 마음,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도(道), 이 모두는 같은 거예요. 자, 그것을 깨치면 붓다다 그거예요. 그것을 깨치면 해탈할 수 있다 그거라. 쉽게 말하면 ‘윤회에서 벗어난다.’

    자, 이것을 가지고 봅니다.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도는 힌두교에서 이야기하는 범(梵)과 같은 개념입니다. 단, 범(梵)을 비인격으로 볼 때. 또 선불교에서는 지금 마음 마음 하는데 마음이라는 것을 이 스님들이 지금 자세히 모르고 있습니다. 불성이라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은 우주 본체인 공(空) ‧ 범(梵) ‧ 도(道)와 플러스(+) 나 주인공 당체(當體)올시다. 이것이 불성이어요. 이것이 마음이어요.

     

    쨌든 우주 삼라만상,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 가끔 내가 이야기했지요. 항하사 수같이 많은 저 천체들 ‧ 별들, 이 우주안의 천체들이 갠지스강의 모래수와 같이 많다고요. 사람을 포함해서 이것들이 어디에서 나왔느냐 그거라. 어디에서 나왔느냐 그거야. 어디서 왔느냐 그거요. 어떻게 어떻게 계속 나왔느냐 그거라. 그래가지고 났는데, 났으면 어떻게 됩니까? 이것이 해가 가면 갈수록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결국에는 이것들이 없어진다고요. 모습을 감춰버린다고요.


     사람 같으면 죽어버린다 그거예요. 죽은 후에는, 없어져 버리면 이것이 또 어디로 갔느냐 그거야. 어디로 갔느냐?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갔느냐 그거야. 이것을 알려면 나온 곳 ‧ 본체 ‧ 공(空) ‧ 도(道)를 통해야 되는 거예요. 


    본체를 봐버려야 되는 거예요. 본체의 속성을 속속들이 알아버려야 되는 거예요. 일단 공성(空性)을 증득(證得)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야!~ 마음자리를 깨쳐야 되겠다’ 하는 거예요. 마음자리를 깨쳐야 되겠다. 선각자들이, 선사들이 마음을 깨치고 보니까 ‘햐!~정말 이 자리구나!’ 근심·걱정도 없고 감옥에서 막 나온 사람같이 정말 행복감을 느끼고,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온 사람이 거리를 활보할 때의 개운함, 여러분 얼마나 개운합니까?


     그런 감정이란 말이어요. 그런 느낌을 얻더라 그거예요. ‘하!~ 이 자리가 일체의 고(苦)를 여읜 붓다의 경지구나. 이 자리가 소중하다.’ 보림을 10년 20년 해보니까, 보림을 잘해보니까 더~ 더~ 진지한 맛을 경험할 수 있겠더라 그거예요. 그래서 후학(後學)을 기릅니다. ‘야! 깨치려면 마음자리를 깨치려면 공(空)의 자리를 깨치려면 도(道)를 깨치려면 직지인심해라’ 바로 마음자리를 향해서 들어가라 그거예요. 회광반조(回光返照) 해가지고 들어가라 그거라.


     그 마음자리가 드러나도록까지 공부해라 그거라. 그러면 대자유인이 된다 그거예요. 호호탕탕 대자유인이 된다 그거라. 저세상이 있건 말건, 있다 하면 그대로 가니까. 어쩌면 그 자리가 영원히 해탈이다 그거예요. 이게 부처 아니냐 그거요. 그래서 공부법이 나온 것이 화두(話頭)예요. 화두.


    화두라는 것은 뭐냐? 여러분 조계종에 다닌 분들이 많을 거예요. 선방(禪房)도 많이 구경했을 것이고 참선하는 스님들도 많이 접촉했을 거예요. 참선하는 스님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봤을 거예요.


    자네! 화두 뭣 드는가? 나, ‘무(無)’자 화두네. 어떤 사람은 나는 ‘시심마(是甚麽)’네. 시심마를 경상도말로 ‘이뭐꼬?’ 그래요. ‘이뭐꼬?’ 이 화두를 한국 선방의 스님들 80%가 듭니다. 나도 ‘이뭐꼬?’를 들었으니까. 그런데 거기에 의심이 딱딱 걸려있어요. 의심이 있어요. 의심이 없으면 화두가 아니어요. 의심이 있으니까 하!~ 참 이거… 의심을 파고들려고 할 것 아닙니까. 들어가다가 보면 마음자리로 들어간다 그거예요. 터진다 그거요. 그래서 이 화두라는 것은 1700화두가 있는데 다 의심이 있어요. 다 의심이 걸려있어요.

    자, 이야기합니다.

     

    조주 스님 회상에서 어느 신참 승려가 조주 스님을 배알(拜謁)했어요. 그때 개가 지나갔습니다. 조주 스님이라고 하면 120살까지 생존한 분이어요. 크~게 깨친 분이어요. 그래서 고불(古佛)이라는 말까지 들어요. 부처라고까지 말을 듣는 큰스님 회상에서 조주 스님한테 물어본 거예요.


    ‘큰스님! 저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요.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까 조주 스님이 뭐라고 한 줄 알아요? ‘무(無)~’ 그런다고요. 무라는 것은 없다 그거요. 가만히  스님이 생각해보니까 아! 나는 승려생활을 하면서 교학도 해봤는데 ‘준동함령(蠢動含靈)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고 했는데, 꼬물꼬물한 미물에서 고등동물인 우리 사람에 이르기까지 동물들은 다 그 속에(-몸속에) 불성이라는 것을 지니고 있다 하는데 왜 이 부처라고 하는 그렇게 칭송받는 큰스님이 무(無)라고 했을까?


     왜 무(無)라고 했을까? ‘없다’ 그거요. 여러분 이제 의심이 나지요. 그것입니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무’자 화두를 든 사람들은 벽을 향해서 하루에 8시간~10시간 하거든요. 8시간~10시간을 참구해요. 화두를 든다는 거예요. 화두를 든다 그래요. 참구한다 그래요. 그것을 간화(看話)라 그래요. 간화. 볼 간(看)자. 간화라고 해요. 그렇게 공부하거든요.

     

    자, ‘왜 조주 스님은 없다고 했을까?’ 이렇게도 하지 않아요. ‘무~’ 그래요. ‘무~’ 하면서 그 생각을 또 하거든요. 이것을 하루에 8시간 1년 10년 30년 한다고요. 그러면 깨칠 날이 있다고 하거든. 빠른 사람은 아흐레에도 깨치고, 영가 현각같은 사람은 하룻밤에도 깨치고. 그래서 일숙각(一宿覺)이라고 했어. 하루만에도 깨치고, 어떤 사람은 10년만에도 깨치고, 어떤 사람은 30년 만에도 깨치고, 어떤 사람은 한세월 다 가도 깨치지 못한단 말이에요. 자, 이렇습니다.


    이 선불교에서, 간화선(看話禪)에서, 선가(禪家)에서는 깨치려면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삼대 요소가 있다. 그 삼대 요소를 신(信)ㆍ분(憤)ㆍ의(疑)라고 그래요. 믿음ㆍ분한 마음ㆍ의심하는 것. 신ㆍ분ㆍ의를 삼대 요소라고 그래요. 신ㆍ분ㆍ의가 받쳐주지 않으면 100년을 가도 깨칠 수가 없다 그거예요. 신ㆍ분ㆍ의를 알아야 되요.


    신(信)은 뭐냐? 믿음이어요. 믿음. 우리 영산불교에서 주장하는 믿음과 다릅니다. 성질이 달라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우리 부처님이 계심을 믿고 부처님의 위대함을 믿고 부처님의 능력을 믿고 부처님께서 업장을 씻어주심을 믿고 업장뿐만 아니라 탐진치 삼독의 뿌리를 뽑아주심을 믿고 그러잖아요? 우리는 부처님에 대한 인격을 부처님에 대한 모두를 믿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은 그게 아니어요. 부처님은 없어요. 마음이어요. 마음이 부처라고 그래요. 심즉시불이라고 그래요. 심즉시불이어. 마음이 부처예요.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라고 그래요.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어요. 그렇기 때문에 선가에서 도를 이루려면 꼭 갖춰야할 필수 삼요소 중에서의 신(信)은 그 믿음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고 ‘화두타파하면 곧 부처가 된다. 부처가 되면 대자유인이 된다. 곧 해탈을 한다. 곧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믿음이 철석같아야 됩니다. 그래야 공부를 하지요.

     

    둘째는 분심(憤心)이 있어야 된다 그래요. 분심이라는 것은 뭐냐? 분심이 없으면 공부가 계속 안 되어요. 분심이 없으면 정진 못 해요. 분심이 뭐냐? 독한 마음을 말해요. 독한 마음이어요. 쉽게 말하자면, 여러분의 사랑하는 아드님이 죽었다 남편이 죽었다 할 때 감정(-생각)이 어떻게 되지요? 절망감이 들겠지요. 절망감. 그런데요 그때 딱~ 앉아가지고 1시간 2시간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경험 그런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요.


    참선하는 사람은 분심이 있어야 되요. 분심이 없으면 못 밀고 가요. 옛날 사람들은 기한에 발도심(飢寒 發道心-주리고 배고플 때 비로소 도심을 일으킨다)한다고 해요. 사람들이 춥고 배고픔을 밥으로 삼고 사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 인생을 생각하는 거예요. 인생을 생각해요. 비로소 도를ㆍ진리를 생각하는 거예요. 사려 깊은 사람은 그래요. 멍청한 지옥 중생은 그런 생각 안 해요. 먹을 것만 생각하지. 생각이 있는 사람은 발심한다 그거라. ‘기한(飢寒)에 발도심(發道心)한다’ 그래. 배가 고프고 춥고 여기서 도를 생각하는 거예요. 이건 맞는 말인 거예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이 얼마나 잘삽니까? 잘살아요.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기한이 아니어요. 배가 불러버렸어. 등이 춥습니까? 그렇게 되면 진리를 구하려고 하지 않는 거예요. 여러분 저기 이병철 같은 사람, 정주영 아들들이 중이 됩디까? 안 되는 거예요.


     안 되어요. 영산불교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웃기네 그래. 웃어요 웃어. 이 세상이 최고인데 뭐. 지금 극락에서 살고 있는데. 뭐 가까이 오려고 하지 않아. 들으려 하지도 않아. 그렇지만 하루아침에 그냥 곤두박질했다고 합시다. 또 꼬부랑 할아버지가 죽을 때가 되었다고 합시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거예요. 죽으면 어떻게 되나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럴 때에는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우리한테 기울려요.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이 재벌 하나 꼭 잡아야 되는데 안 되어요. 안 되어요. 아무리 가자고 해도 안 와. 너나 잘하라고 안 와. 그 집에 가령 아들딸이 있는데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든지, 그 재벌이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든지, 이럴 때 탁 말하면 좀 들어요. 그럴 때 좀 듣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안 들어요.


    자,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그 어려운 도를 어떻게 닦습니까? 중 되라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절대 될 수가 없어. 그런데 지금의 우리 선방, 중국이나 일본의 국민들이 얼마나 잘삽니까? 잘살아요. 선방에 가보세요. 최고의 문화 시설을 갖추고 있어요. 겨울에는 따뜻~하게 때주고요, 하루에도 세 끼 이상을 먹어요. 참이라고 해서 참, 참이 나온다.


     배가 막 불러요. 먹고 먹고 먹습니다. 떡도 먹고 과일도 먹고 먹을 게 많아. 거기서는 우리 집 같잖게 영단(靈壇) 음식을 막 먹습니다. 우리 집은 못 먹지요. 귀신이 먹은 것이니까 못 먹어요. ‘하! 이거 먹으면 견성 못한다고 그러더라만’ 하면서도 개의치 않고 막 먹거든요. 그래가지고 배가 부르니까 하루에 한 번 가야 하는 화장실을 두세 번 간다고.

     

    자, 이러니 선방에 앉아서 어떻게 분심을 가지고 화두를 참구합니까? 탁~ 앉으면 졸아요 졸아. 한번 가보세요. 여름에 가봐. 발(簾) 딱 걷어놓고 공부하니까 보면 죽으라고 졸거든. 무슨 화두가 있어? 도망가버렸어. 저리 가버렸어. 화두 생각은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생각 생각에 번뇌가 꼬리를 물고 들어온다고. 어렸을 때 엄마 젖 먹던 때부터 온갖 생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녀. 이것을 마슬 간다고 그래요. 마슬 갑니다.


     화두 일념 된 사람이 없어. 될 수가 없어. 지금 21세기 한국이나 중국이나 일본 같은 데에서 화두 참구를 어떻게 해? 누가 해? 지금 모두 그런데요. 화두 없데요. 나 있을 때에도 그랬어요. 좌선할 때는 딱 1시간 후 돌아서거든. 죽비를 딱 치면 돌아섭니다. 돌아서면 그냥 온갖 잡담에 음담패설을 다하거든. 다하면서 ‘스님! 화두 얼마나 들리오?’ ‘하~ 화두 뭐 그 어떻게 5초나 들릴까? 4, 5초…?’ 이런다고. 이게 뭐 공부입니까? 이건 하세월 가도 안 되는 거예요. 하세월 가도 안 되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되나? 암탉이 병아리를 까려고 알을 품고 있잖아요. 저 구멍 속으로 방금 쥐가 딱 들어갔단 말이에요. 고양이가 쥐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 보세요. 다른 생각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요? 고양이가 그러잖아요. 또 궁사(弓師)가 활을 딱~ 조준해서 과녁을 겨냥할 때 다른 생각 하는 줄 압니까? 다른 생각 하면 과녁 못 맞혀. 그렇지요? 그와 같이 화두 일념이 되라 그래요. 그래야 깨치니까. 그렇지 않으면 100년을 가도 안 되는 거예요.


     그 하나가 안 되면 안 되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하거든요. 그런데 자, 방금도 이야기했듯이 배가 부르고 등이 따뜻하니까 화두 생각을 하지 않아요. 화두 생각을 안 해. 그저 ‘한철 3개월 공부하면 여기 선방에서는 150만 원 준다고 하더라.

     

    저기 불국사는 300만 원 준다네.’ 그러거든요. 방 붙인다고 그래요. 방부(房付-승려가 절에 가서 그곳에서 머물며 수행할 수 있기를 부탁하는 일) 들인다고 그래요. 이렇게 돈만 생각하고 갔거든. 돈만 생각하고 갔습니다. 딱~ 가부좌하고 앉았는데 생각이 화두? 화두가 들리겠습니까? 화두 딱 받으면 그 직후 하루 이틀은 들려요. 하루 이틀은 들립니다. 이거 참 기가 막히는데… 이것을 깨치면 생사해탈 한다? 생사해탈 한다고도 안 해. 이걸 깨달으면 대자유인이 된다? 지혜를 얻는다? 해탈한다?

    또 이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궁사가 과녁을 맞히듯, 암탉이 알을 까듯, 고양이가 쥐구멍을 노려보듯 해야 되는데 그것이 안 되어요. 안 됩니다. 되려면 독심(毒心)이 있어야 된다니까요. 분심(憤心)이 있어야 의심을 끌고 가는 거예요. 의심을 밀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의심은 화두마다 있는데 이 의심이 별것 아니어요. 분심이 없으면 하룻밤 의심해버리면 그 이튿날 의심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아. 그렇습니다. 분심을 일으키는 것이 어려워요.

     

    차라리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은 하나의 논제를 가지고 꾸준히 사유해 들어가요. 몰입하는 거예요. 그러나 이 화두법에는 그런 의심이 없으면, 그런 의심이 없는 화두를 1년 아니라 10년 100년을 들어도 하세월이어요. 그러니까 신(信)‧분(憤)‧의(疑) 다 갖추어져야 됩니다. 하나라도 없으면 잘 안되게 되어 있어요. 화두에는 이런 모순이 있습니다. 앞으로 간화선(看話禪)하는 조계종에는 견성하는 분이 거의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안 나오는 거예요. 석성우가 나한테 물어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고. 안 나오지. 화두타파하는 사람이 나올 수 없지. 두고 봐라 나오는가? 안 나와. 나올 수 없어.


    8세기, 1200년 전에 신라 도의(道義) 국사로 해서 도의 국사가 입당(唐)해가지고 중국의 큰스님한테 법을 받아와 강원도 진전사(陳田寺)에서 40년간 포교를 했는데, 그때부터 이제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열립니다. 거기서 가지산문(迦智山門 -통일신라시대에 전남 장흥군 가지산 보림사(寶林寺:迦智寺)를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선종(禪宗) 9산문(山門)의 한 파)이 열렸지요. 자기의 법제자가 염거(廉居)이지. 그 다음에 체징(體澄)이지. 그 체징이 가지산문을 선포한 거예요.


     그래서 어디 실상사(實相寺)도 있고, 저 어디에도 많지요? 아홉 본산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중국의 선불교의 큰 맥이 간화불교입니다. 조사선, 간화불교입니다. 묵조선(黙照禪)이 아니어요. 우리나라에 간화선 맥이 들어온 거예요.

    그래가지고 거물이 보조 국사, 고려 말의 태고 보우(太古 普愚)로 해서 근대의 경허 ‧ 만공 ‧ 성철로 이어지는 한국 선불교의 맥이 형성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 정도로 아십시오.


    그런데 참선하는 선불교, 계율을 우습게 압니다. 계율을 우습게 알아.

    계율을 우습게 알면 선정에 들 수 없는 거예요. 선정에 들 수 없으면 지혜가 나올 수 없어요. 계(戒)‧정(定)‧혜(慧) 알지요? 선정에 들 수 없으면 지혜가 나올 수 없어요. 계를 소홀히 하면 절대로 깨달음에 못 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한국의 조계종 승려들이 계를 우습게 압니다. ‘율사나 계를 지키지, 아! 우리들이야 선(禪)을 하는 사람들인데 따분하게 무슨 계율이여? 고기도 먹지 말라 하고 담배 술을 하지 말라 하느냐? 계집… 적당 적당하게 하는 거요.’ 이렇게 나갑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절대 바른 선정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화두 공부도 일념이 되어야 되거든요. 화두 일념이 되어야 되요. 의심이 쌓이고 쌓이고… 그걸 의단(疑團)이라고 해. 의단이 형성되어야 터지는 것인데, 의단이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되어요. 그러니까 화두 일념도 하나의 삼매이지요. 몰입을 해야 되니까. 정신이 탁 뭉쳐져야 되니까. 그렇지 않으면 절대 깨칠 수가 없어요. 정신이 뭉쳐지려면 기본적으로 계율을 엄정히 지켜야 된다. 조계종 승려들은 계율을 몰라요. 계율을 몰라요. 스님이 험담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 아니어. 내가 조계종 본부에 있었고 내가 상임포교사를 지냈고 내가 지도급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알아요 여러분.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너무도 잘 알거든요. 참선하는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 잘 알거든요. 내가 언제 민정당(-민주정의당, 5, 6공화국 시절의 집권당의원을 지낸 권익현, 그 사람하고 잘 아는데, 그 사람의 부인이 이야기하더만. ‘스님! 나는요 불교를 좋아합니다만, 한국불교요? 나는 삼귀의(三歸依)가 아니라 이귀의(二歸依)예요. 이귀의. 부처님하고 그 법은 내가 믿어요. 2귀의는 했어도 나는 스님은 아니어요. 나는 스님한테는 귀의 안해요.’라고 말한단 말이어요. 저 노태우 다음이 권익현이라고요. 저기 경상도 사람입니다. 그것이 한국 승려의 단면이올시다.


    저기 대만의 불교 신도들이 ‘20세기 파계승을 보려면 한국으로 가라.’라고 말한답니다. 이게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그러니까 이거 한국 불교가 망한 거예요. 조계종은 앞날이 없어요. 앞날이 없어요. 화두타파 하는 사람도 없어요.

    자, 그런데 화두타파를 했다고 합시다. 화두타파 한 도인이 났다고 합시다. 깨달음이 전부인가? 아니어요. 이제 공부의 시작이더라고. 공부의 시작이어요. ‘공부의 시작이다’라고 세상에 떠든 사람은 나 혼자예요 여러분. 앞에서 내가 말씀드렸잖아요.


     화두타파를 해보니까 엉덩이춤은 나와요. 하!~ 참 이런 세상이 있나! 여러분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와 보세요. 얼마나 개운한가. 그렇지요? 감옥살이를 한 사람이 감옥살이에서 풀려날 때의 그 기분, 여러분 상상 못 한다 그래요. 화두타파가 그 기분입니다. 대단해요. 부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요. 이게 부처의 경지다. 모르니까. 부처님을 모르니까. 그래가지고 어떻게 하는 줄 압니까? 화두타파를 했으니까 스님들이나 신도들이 여불대접(如佛對接)을 하네. 부처님같이 대접한다 그 말이어요. 그러면 이런 법상에 터~억 앉아가지고 ‘내가 화두를 타파했는데…’

     

    법문을 주~욱 하면서 지옥? 극락? 누가 물어보면 ‘그건 마음속 이야기야. 있는 것이 아니어. 지옥이 있고 극락이 있는 것이 아니다. 윤회? 윤회도 마찬가지다. 불보살? 그것도 그래. 마음을 부처라고 그래.’ 주장자를 탕! 치고 이런 법문을 합니다. 그런 법문을 해요. 이 법문은 중생을 오도한다고 해가지고 굉장히 죄가 무섭습니다 여러분. 이건 대~망어예요 여러분. 대망어예요. 이건 무간지옥에 갑니다. 사람으로 나오더라도 삼중고 사중고를 받는 거예요. 오역죄보다도 더 무서운 거예요, 이런 법문이요. 이런다고.


    그러니까 이럴 바에는 차라리 화두타파? 아예 안 해야 돼. 그렇잖습니까? 화두타파를 아예 하지 않아야 된다니까요.


    그 다음,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됩니다. 선방마다 조실(祖室-사찰에서 최고 어른을 이르는 말)이 있고, 입승(立繩-사찰의 규율과 질서를 책임지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승려)이 있습니다. 입승과 조실이 다 눈이 어두운데요.

     

    어떻게 스승 노릇 합니까? 내 말이 무슨 말이냐? 공부인들한테는 마(魔)가 많이 가거든요. 마(魔)가 침범합니다. 주로 하늘마나 용신들이 많이 붙습니다. 하늘마(天魔)와 용신은 안 보입니다. 조실이 못 보는데요. 스승 자격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선하던 공부 잘하는 내 상좌를 보니까 미쳐버렸어. 혜명이라고 하지. 미쳤어. 아~주 공부 잘했어요. 미쳐버렸어. 


    천마가 들어서 미쳤어. ‘스님! 오늘 닉슨을 만나기로 했어요.’ 이렇게 미쳐버렸다고. 이것을 막아줄 수도 없고 떼어 줄 수도 없어요. 지금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 소위 스승이라고 하는 선사들이 그런 급에 올라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위험해. 이건 안 되는 거예요. 거기는 스승이 없어. 지도할 사람이 없어.


    그리고 참선 공부하는 사람들, 많이 한 사람들이 무주고혼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무주고혼이 되는 경우, 이 무주고혼이 붙어서 이제 무주고혼이 붙은 공부인은 한 소식했다고 또 떠드네. 그 무주고혼의 힘으로 자성 자리가 아닌 비슷한 밝은 빛을 보게 해줘요. 


    아뢰야식 말고 아뢰야식의 근본 성품 ‧ 자성광을 봐야 되는 것인데, 그런 공부인들에게 아뢰야식 정도의 빛을 발해준단 말이어. 자신의 을요. 마(魔)들은 아주~ 높은  수준의 그 빛을 보여줄 수 있거든요. 그러면 그냥 그것이 도가 터진 줄 아네. 그래가지고 선서(禪書)를 봐서 이제는 거량도 잘하고 누가 보면 도인 같지. 그렇게 행세하는 사람이 있어요.


    지금 내가 누구라고 지적하고 싶은데, 그 사람의 이름을 거명할 수가 없지. 사신(蛇神)의 왕하고 통하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견성했다고 법을 받았어요. 또 그 사람은 자기는 그래요. 자기가 칠십 몇 대 조사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눈 먼 신도분들, 돈 많은 신도분들이 그 스님한테 한 달에 1,000만원씩 갖다 주는 신도들이 있더라고요. 10년 전 이야기구먼.


     최고의 붓다인 줄 알고 말입니다. 사실은 사신의 수장급 대장급이 빙의되었는데요. 대단하지요. 그러니까 신통도 나와요. 신통도 잘 써요. 그 사람이 아마 사람을 많이 죽였을 거예요. 많이 죽였어. 신통으로도 죽일 수 있어요. 사신한테 명하면 죽여요. 많~은 여자들을 간음했고요. 사신의 신통이 들어오면 그 사특한 힘을 주체 못 합니다. 어쨌든 그렇습니다.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 줄 압니까? 진정한 자유는 탐진과 공포에서 자유로워야 되요. 이게 자유예요. 탐욕의 경계 ‧ 성나는 경계 ‧ 공포의 경계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말아야 되요. 이게 진정한 자유인 거예요. 그래서 화두타파를 했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계율을 스승으로 삼고 목숨처럼 삼아서 두타행으로 나가야 되요. 나를 죽이는 공부로 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탐진 공포에서 자유로운 경계로 올라가요. 이제 여기가 아라한이에요. 자력으로 했을 때 그렇습니다. 여기가 아라한이어요. 그런데 선(禪)에서는 아라한의 경계에 갈 수가 없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더욱 더 높은 데로 가려면 어마어마한 마장이 들어와요. 마장을 막아줄 스승이 없어요. 자기는 힘이 없어요. 마장이 들어온 줄도 몰라요.


     마를 볼 수가 없으니까, 용신 ‧ 이매망량 ‧ 하늘마를 볼 수 없으니까 자기는 들어온 것인지 나간 것인지도 몰라요. 이 마장을 막아줄 수 없기 때문에 마장에 걸려가지고 아라한의 성과를 얻을 수가 없어요. 말하자면 화두타파로 그치는 것이지요. 대부분이 나락(奈落)으로 떨어지는 것이지요. 또 무간지옥을 갈 구업을 짓는 거지요. 잘~ 한다고 해야 잘한다고 해야…


    자, 정맥을 이은 저기 달마가 28조잖아요. 자기들이 짜 맞추는 것인데 29, 30…, 33조 혜능입니다. 정맥을 이은 조사(祖師)라고 해요. 정맥을 이은 조사라고 하는데, 그 후로도 주~욱 많이 나왔잖아요. 선(禪)이 오종칠가(五宗七家)라고 합니다. 오종칠가. 많은 분파가 생겨서 많은 선사가 나왔는데, 크~게 깨쳤다고 하는 분이 인가를 받게 되면 조사라고 합니다.


     선불교에서는 조사를 부처님과 동급으로 봅니다. 선불교에서는 부처님을 견성한 정도로 봐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위대함을 정확히 보잖습니까? 지존(至尊)… 내일 법회 때 그 이야기를 할 거예요.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깨달은 사람으로 봐요. 그래서 글자도 깨달을 각(覺)자로 써주는 거예요. 붓다를 각자(覺者)로 봅니다.


    화두타파 했으면 저나 나나 뭐… 이런 식이라. 심지어는 우리 부처님을 갖다가 형편없이 폄하하고 그냥 악담하고, 심지어는 대 조사라고 하는 하나의 분파 수장, 누구입니까? 운문 법안입니까? 이런 사람들은 법상에 터~억 앉아서 법문하는데, 우리 부처님을 갖다가 - 3000년 전에 싯다르타가… 부처님이라고도 하지 않아.


     태어나 가지고 사방으로 일곱 발씩 옮기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했다고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몽둥이로 그냥 쳐 죽여가지고 주린 개에게나 주었을 거다!’ 라는 악담을, 심지어 임제라든지 덕산 같은 이들을 비롯해서 아주 심한 험구험담(險口險談)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런 사람들은 우리 부처님을 갖다가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폄하합니다. ‘똥치는 막대기’ 라든지 사기꾼이라든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한다고요.

     

    그래서 선불교에서는 조사를 부처님보다 한 수 위에 놔줘요. 불조(佛祖)라 그래요. 사실을 말하면 자기네들이 말하는 조사 백천만 명을 보태어도 어디 부처님의 그림자를 따라갈 수 있습니까? 이게 정확해요. 아라한 백천만 명을 합해도 그 가치가 보살 1명만 못합니다. 보살 1,000만 명을 합해도 붓다 하나보다 못하거든요. 그 말은 맞는 거예요. 감히 이제 화두타파해놓고 부처님을 그렇게 능멸한다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그 사람들을 추적해보니까 무간지옥에 있더라고.


    여러분! 무간지옥 ‧ 극무간지옥 말이 쉽지요. 말이 쉽지요. 중지옥부터는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까? 얼마나 무서운지 압니까? 이 열 손가락 열 발가락 사이에다가 대꼬챙이 같은 바늘로 찌른다고 합시다. 여러분 한 번만이라도 그런 형벌을 법원으로부터 선고를 받았다면 살겠습니까? 한 6개월 내에 집행한다면 아마 말라 죽을 거예요. 


    한 번에 찔러 죽인다고 해도... 그런데 지옥은 그렇지 않거든요. 지옥은 수명이 한두 시간이 아니어요. 1, 2년이 아니어요. 일생 이생이 아니라고요. 거기는 오랜 세월을 산다고요. 그런데 이 영체는 죽지를 않아요. 죽을 복도 없어요. 죽으면 또 살아나요. 살아나면 또 집행해요. 자동 집행해요. 형벌은 옥졸이 집행을 하는 것이 아니어요. 자동 집행하게 되어 있다고요. 그런 지옥으로 간다고요.


    그런데 이 선(禪)에서는 깨달은 사람이 깨달아보니까 아무것도 없다 그래요. 안 보여요. 깨달아 가지고는 안 보여요. 지옥 안 보여요. 사람이 죽어서 어떻게 되는지를 전혀 몰라요. 윤회도 몰라요. 하늘세계도 모른다고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무아~’ 했다고 해가지고 그냥 전부 무아로 해석해가지고 불 ‧ 보살도 없고 지옥도 없고 천상도 없고 극락도 없고 귀신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는. 그러면서 왜 신도들 돈은… 돈 없으면 생활할 수 없으니까 부처님한테 불공해라, 천도재 해라 하거든요. 이건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되지.


    지금 보름 후에는 우리가 지신재를 한다고 했잖아요? 지신들이 다~ 있어요. 하늘에서 내려온 분들이어요. 인간 세상은 대단히 중요해요. 화엄성중 104위가 다 있어요. 엄연히 있어요. 지신들은 대단한 힘을 지니고 있어요. 신통을요. 우리 부처님 교단에서는 행사마다 그럽니다 여러분. 꼭 그럽니다. 어떤 행사를 하는 데 있어서 그 행사만 하는 것 아니어요. 행사 시작 전에 불 ‧ 보살님들이 전~부 내려오셔서 여러분들 500명이 신청했다면 일단 500명의 업장을 씻어줘요. 일단 깨끗이 씻어주고 시작해요. 그러니까 업장을 씻어줘서 좋고, 또 하나의 소망을 써내라고 할 거예요. 그래서 소망을 들어주니 좋고 그런 거예요. 우리는 덤으로 그렇게 업장을 씻어 주지요.


    자, 저세상 사후세계를 모르고, 불‧보살님을 모르고, 윤회 안도 모르고 윤회 밖도 모르기 때문에 분심이 안 나와요. 앞에서 내가 말했잖아요. 분심이 일어날 수가 없어요. 배는 부르고 등은 따뜻하고, 저세상은 없고, 앉아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해? 이래가지고 공부하겠어요? 도를 통해도 좋고 안 통해도 좋고. 이건 뭐 분심이라는 것이 없는 거예요. 


    그저… ‘내 이 인생 한 3개월만 죽어라고 앉아 있으면 한 300만 원 나오니까. 요즘 한 철 정진하고 나면 절에서 2, 3백만 원 준다고 합디다.’ 이거요 이거, 이거 가지고 사니까 이거 이거 한심한 일이지요 여러분. 거듭 이야기합니다. 스님이요 흉보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어요. 이건 실상이어요. 지금 조계종이 이거예요. 이게 죽은 종단이지 산 종단입니까? 정신이 죽어버렸지. 이래가지고는 사부대중이나 국민이 지지하지 않아요.


    리 현지사 보세요. 전번에 대전 법회 할 때 조계종 스님들이 네다섯 명 왔어요. 그 사람들이 그러더래요. 저들끼리 그러더래요. ‘아! 여기 스님들은 다 향 맑아야!’ 얼굴이 향 맑다고 그러더래요. ‘여기는 이렇게 깨끗해야.’ 조계종같이 음침하지 않아요. 귀신들을 모아 놓으면 음침하거든요. 계율을 파해보세요. 얼굴이 시커멓습니다. 딱 알 수 있어요.


    절~대로 조사는 아라한 이상은 아닙니다. 자기들이 이야기하는 조사는 절대 아라한 이상은 아닙니다. 아라한 이상은 보살인데 보살이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절~대 될 수가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스님이 가끔 이야기했을 거예요.

     

    ‣용신이라든지 천마라든지 이매망량 등의 마장 문제를 해결 못 합니다.

    아라한이 보살되려면 엄청난 마장이 와요. 또 수행자가 깨달으려고 할 때 나름대로의 마장이 와요. 색마도 오고 마장이 와요. 아라한 정도 가가지고 더 갈려면 갈 수가 없어요. 천마 ‧ 외도가 완전히 막고 있어요. 천마는 파순의 권속(眷屬)이어요. 그리고 여러 외도들의 졸개도 있어요. 


    비명(非命) 해가지고 올라간 그것들이 정말로 맹목적으로 자기 교단을 위해서 몸을 바친 애들이지요. 그래가지고 그냥 인간 세상에 내려와 빙의 해가지고 공부한 사람한테는 특별히 막는다니까요. 자기들보다 더 무서운 도인이 나오면 자기가 이로울 것이 하나도 없거든. 도인이 나오면 자기들이 죽거든. 그들은 방해를 하기 위해서 있거든요. 


    방해. 그래서요 아라한까지는 할 수 있어요. 자기 개인의 힘으로 아라한까지는 가요. 전생에 선근공덕이 많으면 아라한까지는 가요. 그러나 그 이상 보살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어요. 부처님 회상밖에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 회상을 만나야 되는 거예요. 우리 지금 한 40명이 나왔잖아요. 그래서 보살이 나오는 거예요. 이건 부처님의 타력으로 해주는 거예요.


    ‣그 다음에 보살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사중죄 소멸이 안 되어요. 사중죄 소멸은 문수보살님이 해줘요. 적어도 사중죄 소멸이 되어야 극락갈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사중죄를 어떻게 자기가 수행 한다고 됩니까? 절대로 될 수가 없어요.

     

    ‣그 다음에 보살 정도는 네 개의 영체가 분리되어야 되요. 그 누가 해줍니까?

    ‣변녀성남(變女成男)을 해야 되요. 여자가 극락 가려면 남자가 되어야 되요. 남자를 어떻게 만들어 줍니까? 자기가 어떻게 만듭니까? 안 되는 거예요.

    ‣ 극락세계에 자기의 해탈신을 가져야 되요. 아기 보살을요. 이거 이거 어려운 거예요. 이건 불‧보살의 힘으로 되는 거예요. 그건 할 수도 없고.


    ‣다음 생에 원력수생(願力受生) 할 때를 위해서 ‘한삶정리’를 해줘야 되요. 한삶정리가 뭐냐? 원결(怨結)을 끊어줘야 되요. 원결이나 나쁜 인연이 있으면 공부를 못해요. 이 다음에 사람 몸 받아왔을 때 빠져버려요. 윤회로 빠집니다. 공부 못 합니다. 그렇잖습니까? 원결 혹은 나쁜 인연이 만나게 되면 공부 못 해요. 중노릇 못 합니다. 그래서 중들이 여자들한테 많이 잡혀가요. 과부들한테 많이 잡혀간다고. 안 되는 거예요.


    ‣지장보살님으로부터 삼계 탈출 증서를 받게 되어요. 보살은요.

    ‣미타부처님으로부터는 영락(瓔珞)이라든지 극락세계 자기 옷이 나와요.

    ‣부처님께서 빛으로 작업을 해주셔야 되요. 그래가지고 인가를 해줘야 되요.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님들이 삼악도에 있으면 안 되어요. 보살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천도재 해줘야 되요. 부처님께서 주관하시는 천도재는 현지사 천도재뿐이어요. 이런 천도재는 불교 역사에도 없었고, 이 세상에도 없어요. 오직 현지사에 와서 천도재해야 되요. 그렇지 않으면 백 번을 해도 소용없어요.


    《법화경》〈비유품〉에 있어요. “공성(空性)을 증득해서 나아가서 더불어 32상의 자기 색신을 두어야 붓다다”라는 말이 있어요. 사리불 존자가 한 말이어요. 이게 정~말 진짜 이야기예요. 마음자리 깨쳤다고 부처다? 아니어요. 마음자리 깨친 것을 공체험이라고 그래요. 


    공체험 했다고 해서 붓다라고 하는 것 아니어요. 이제 거기서 더~ 공부해야 아라한이라고 했잖아요. 붓다 회상 부처님 회상 만나가지고 더~ 공부하고 선근공덕을 쌓아가지고 보살인가를 받잖아요. 그래서 이제 또 보현행원을 해가지고 붓다가 되는 것인데, 공성 증득으로만이 붓다가 다 된 양으로 생각하는 것이 선불교예요. 티베트 불교에서도 알았어요. 쌈예의 논쟁에서 알았어요. 인도의 스님 ‘까말라 실라(연화계)’죠. 벌써 알았어요.


    “대승의 멸도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성불은 공성의 증득과 더불어 32상의 자기 색신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 야차와 인간과 천상과 용신이 부처님 몸을 보고 그들은 공경하고…. 절대계에 자기 불신을 두어야, 그 부처님은 눈·코가 다 있으니까 천상 사람을 보고 그리고 용신을 보고 야차를 보고 교화를 하고, 또 그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고 아주 거룩하니까 공경하고…. 이런 불신을 두어야 부처다”

     

    하는 구절이 《법화경》에 있어요. 아주 소중한 구절이어요. 그래서 티베트 밀교에서는 ‘공성의 증득만으로는 부처라고 할 수 없다’ 하는 거예요. 공성의 증득, 깨달음만 가지고 부처가 되었다고 하는 말은 ‘아니다’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법화경》〈비유품〉을 들이대잖습니까? 그건 맞는 거예요. 우리는 그 말을 아주 잘 본 것이라고 요. 티베트 밀교에서 까말라 실라가 잘 본 거예요. 까말라 실라, 인도 사람입니다. 교학적으로는 중관학파 계통이지요. 잘 본 거예요.


    그런데 밀교에서는 그 보신을 만드는 연구를 기가 막히게 한 거예요. 밀교의 성불 원리를 보면 사람 죽은 것 가지고 법신으로 승화시키고, 바르도(중음계)의 의생신(意生身)이라는 것은 영체를 말하거든요. 그것을 갖다가 정광명(淨光明)을 쬐여가지고 보신이라고 하고, 태어난 것을 화신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정말 웃기는 이야기죠. 


    이 다음에 티베트 밀교를 설명할 때 이야기하겠지만, 그 부분은 정말로 엉터리이고 말도 아닙니다. 저 보신을 만들 때 유가녀(瑜伽女)와 성적(性的) 결합이 있잖습니까? 그건 몇 년 전에 영산(靈山)’이라고 하는 잡지에서 때렸는데 그건 말도 아니어. 티베트 밀교의 그건 말도 아닙니다.

     

    그러나 ‘공성의 증득과 더불어서 32상의 색신을 두어야 붓다이다’ 라는 말은 맞는 말이어. 공성의 증득과 더불어, 공성을 증득하면 아라한이거든요. 더 나아가라 그거라. 더~ 나아가서 절대계에 자기 불신을 얻어라. 법‧보‧화 삼신(三身)을 갖추어야 붓다다. 그게 맞지, 깨달음만으로는 절대 붓다라고 할 수 없다.

    다겁생의 죄업장이 소멸되어야 되고

    ‣오역죄가 소멸되어야 되고

    ‣탐진치가 소멸되어야 되고

    ‣악과 습의 탁한 기가 소멸되어야 되고

    천만생을 살아오는 도중에 지은 악연과 원결이 해소되어야 되고

    ‣은혜와 빚이 정리가 되어야 돼.


    그래야 마음이 무소유가 되는 거예요. 진짜 내 영체가 모두 무소유가 되면서 즉견노사나(卽見盧舍那) 하는 거예요. 곧 부처를 보는 거예요. 이것은《화엄경》의 골수(骨髓)이고, 모든 경전의 골수입니다. 자성(自性)이 무소유임을 알면 즉견노사나 하는 거예요. 부처님을 보는 거예요. 부처님을 볼 정도가 되어야 모든 불‧보살님의 위신력으로 절대계에 자기 색신이 생깁니다.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라는 말을 내가 강조를 더 하고 싶고, 백천삼매를 다 자재할 수 있어야 되고, 대적정삼매를 통과해야 되고, 무량광을 봐야 되고, 그래서 불신(佛身)을 얻습니다. 불신을요. 이렇게 볼 때에 선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견성은 공부의 시작에 불과하지. 


    이제 공부의 시작에 불과하지. 이후부터는 반드시 목숨과 같이 음계를 지키고 두타행으로 나가서 나 없는 공부 무아행을 하고 보살행을 해야 보살이 되는 거예요.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다겁생으로 무량겁을 보살행 해야 붓다가 된다는 것. 견성 후에 음계를 파하거나 대망어를 하면 무간지옥 간다는 것. 그러므로 선불교는 아니라는 것. 아니라는 것.


    선불교가 꼭 고쳐야할 점을 내가 지적해줍니다.

    ▸철저한 지계(持戒)를 해라. 특히 음계를.

    ▸불ㆍ보살 없다 하고, 사후세계 천상 지옥 극락세계를 부인(否認)하는 말은 중생을 오도하는 대망어이니까 이런 말을 하지 말아라.

    ▸부처님을 모독하고 능멸하지 마라. 그런 업을 짓지 말고 철저하게 부처님을 공경해라.


    ▸경전을 소홀히 하지마라. 선불교에서는 경전을 안 봐요.《화엄경》《법화경》《열반경》을 보면 자기들은 이해할 수 없지. 이해할 수가 없지. 그러니까 이건 방편설이라 하고 소설(小說)이라고 하는 거예요.《화엄경》에 그 어마어마한 부처님의 일거수 일투족이 나옵니다. 부처가 없는데 그것만 그려놨으니 방편설이라고 하지요. 경이 아니라는 거요. 이거 이거 큰~ 구업을 짓는 거예요.


    ▸염불해야지요. 기본적으로 염불해야지요.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따라가야 되는데 염불하면 외도라고 하네. 부처가 없는데 무슨 쓸데없는 짓 하느냐 그거요.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생각하는 그네들이  바로 외도에요.


    ▸그리고 산중의 스님들, 참선하는 스님들 보세요. 보살행 하는가. 사회복지 합디까? 사회복지 합디까? 그저~ 견성한다고 화두타파 한다고 선방에서 10년 20년 공부한 사람들이 200만 원, 300만 원, 500만 원 주면 받아가지고 산에 가서 토굴 하나 만들어가지고 공부하거든요. 천마ㆍ이매망량만 빙의되지요. 천마만 빙의되지요. 공부가 됩니까?

     

    ▸그리고 반드시 깨달으려면 반드시 보살이 되려면 붓다가 되려면, 마음 공부를 함으로서 지혜를 증장시켜야 되지만, 또 공덕을 지어야 됩니다. 이것을 방편이라고 해요. 지혜와 방편. 새의 양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처럼 한 날개만 있으면 못 날아요. 양 날개가 있어야 되거든요. 지혜와 방편, 그러니까 공부와 선근공덕 보살행이 같이 나가야 되는 거예요. 선불교에서는 보살행이 없어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하는 말이 ‘일자 출가하면 9족이 생천 한다(一子出家 九族生天)’ 그러거든요. 하나만 스님 되어도 스님 된 공덕으로 그 집안의 9족이 하늘에 난다 그래요. 그건 말이 아니어요. 절대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요. 대선사가 극무간지옥에 갈 판인데, 이것은 아니어요. 그러나 진정으로 보살이 되면 그렇습니다. 보살과를 얻게 되면 부모들은 다 하늘을 갑니다.


    ▸부처님이 새벽별을 보고 깨쳤다고 한단 말이에요. 그렇잖습니다. 선불교에서 조작한 거예요.

     

    ▸수행승들의 깨달음하고 부처님들의 깨달음은 확연히 다릅니다. 언젠가 스님이 이야기했을 거예요. 수행승들의 깨달음은 환~한 허공, 완전히 끝까지 확~ 경계가 허공과 같이 비어 버려요. 청정한 경계 밝은 경계가요. 그것이 본체거든요. 수행승들의 깨달음은 그거예요. 그것밖에 없어요. 청정하고 환~한 것이 온통 경계가 없어져버리고 뒤집히더니 그것이 벌어져 버리니까. 그런데 이거 목욕하고 나서의 개운함이라든지, 구속된 상태에서 풀려난 느낌을 얻거든요. 아주 즐겁습니다. 이게 수행승들의 깨달음입니다.


    그런데 우리 부처님의 깨달음은《화엄경》에 딱 나와 있어요. 부처님은 나유타겁 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잖아요. 도중 도중에 또 오셔서 불과를 많이 이루셨거든요.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은요 깨달으면서 자기와 자기 청정법신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과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하나가 되면서 삼매에 들어 가버려요. 대적정삼매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버려요. 대적정삼매에 들어 깨어나오면서 방광을 하거든요. 깨이면서 방광을 해. 몸뚱이가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우주적인 빛이거든요. 무량광 빛이거든요. 그러면서 빛을 방광해요. 방광을 하니까 천인들이 알고요,

     

    성중들이 보살들이 달려오거든요. 한~없이 달려와서 부처님을 찬탄하거든요. 그러면서 땅은 육종진동(六種振動)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늘세계 정토세계에서는 꽃비가 막 흩날리고, 당신이 앉아계시는 이 세계는 완전히《화엄경》〈서품〉을 보세요.〈세주묘엄품〉에 어떻게 되는가? 그렇게 되어버려요.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이라고. 

    그러면서 법안이 열리면서 일체종지(一切種智)가 다 갖춰지는 거예요. 법안이 열린다고요. 지옥ㆍ아귀ㆍ축생 등 육도를 보고, 상적광세계를 비롯해서 모든 상락아정의 니르바나 세계를 다 본다고요. 거기의 세주(世主)들이 전부 와서 공경하잖아요. 꽃다발을 증정하고… 그렇게 되는 거예요. 부처님의 깨달음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수행자들의 깨달음하고 천지 차이지요. 붓다의 깨달음은 그래요. 그런데 새벽별을 보고 깨쳤다 그러거든요.

    ▸선불교는 너무 오만방자하고 독선적이어요. 한국의 선불교가 아주 악성이어요. 어째 한국은 모두 그래. 한국은 기독교가 악성입니다. 한국은 기독교가 또 악성입니다.

     

    계율을 지키고 염불하는 것을 외도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게 말이 됩니까? 경전을 몇 백 년 읽고 계율을 몇 천 년 몇 백 생을 닦은 것보다도 그 한 생각 그~ 청정하고 고요한 이 한 생각이 더 소중하다고 한국의 큰 도인이라고 하는 어느 스님, 내가 이름을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한 열 군데 대망어를 하고 있던데 법문하면 몇 개씩을 하더라고. 그것이 왜 그렇습니까? 그렇게 소중합니까? 물론 청정한 마음이 소중하지요. 거기서 나아가야 견성이어요. 계율을 몇 생에 걸쳐 깨끗하게 지켰다? 얼~마나 훌륭한 줄 압니까? 계율 지키기 어려운 거예요. 견성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백 배 더 어려워요.


    ▸경전을 또 왜 그렇게 무시해요? 부처님의 말씀이 쓰여 있는 경전을 말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법문을 대원 스님하고 범행 스님한테 따놓으라고 했는데 법문한 것을 따 놓았을까? 녹취했지? (예!)

    한번 보라고. 참~ 중생을 오도해도 너무 한다고요. 그렇게 하면 안 되어요. 그렇게 하면 극무간지옥에 가거든요.

    ▸선불교는 경전이나 논장의 증거가 없어요. 근거가 없어요. 경론의 전거(典據)가 없어요. 이게 선불교예요.

     

    ▸선종에서는 삼신(三身)을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삼신과 영 달라요. 전부 마음속에 있다고 해버려요. 삼보(三寶)도 마음속에 있고, 청정법신도 보신도 화신도 마음속의 한 상태로 이야기해요. 그들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본래 청정한 마음 성품을 청정법신이라고 해요. 


    보신불은 뭐라고 하느냐? 내 마음속의 자성을 보는 지혜를 보신불이라고 해요. 화신불은 한 생각, 여러분 한 생각 탁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 생각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도 되요. 그 한 생각을 화신이라고 해요. 전부 마음으로 해석 해버리거든요. 선종의 삼신설은 그래요. 이건 아니어요. 여기서 더 나아가야지. 더~ 나아가서 보살도 되고 붓다가 되면 삼신이 확 나오는 데요. 선종의 삼신설은 아니어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요. 자기가 부처라고 하니까요. 여러분은 미완성된 부처. 부부가 불화하면 여자 신도를 보고 남편이 부처니까 내일 아침부터 100일간 삼배하라 그거요. 삼배하는 사람이 많을 걸요. 성철 스님 때 그랬습니까?

    ▸영혼체설을 몰라요. 내 주인공을 전혀 몰라요. 역시 기존 불교는 몰라요. 이런 거예요.

     

    ▸따라서 생사관이 없어요. 생ㆍ사를 알아야 되요. 났으면 죽었다? 죽으면 어디로 갔나? 또 어디로 갔나? 아주 그냥 통째로 알아버리는 것이 생사관이어요. 없어요. 그 사람들은 생사관이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무엇을 모르면서 마음이 부처라며 지옥ㆍ극락ㆍ부처 없다고 한다. 눈 먼 중생을 오도하는 것은 대망어 업으로서 무간지옥을 간다. 혹 인신(人身)을 받아난다고 해도 삼중고 사중고를 받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부처님 말씀이어요. 무엇을 모르면 말하지 말고 차라리 생활 법문해야 되요. 마음이 부처라고 하고, 마음 밖에 부처가 없다고 하고, 부처님 이야기를 하면 외도라고 하고, 그거 큰일 날 종단이라. 이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 이거 이거….


    지금 시각이 어떻게 되었어? 1시간 15분?

    이 자리를 빌려서 거듭 선불교에게 고언(苦言)을 드립니다. 스님이 의도적으로 흠잡기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정법으로 회귀할 것을 간절히 바라서 이렇게 법설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졸업반 선남자 선여인 여러분! 정법을 포교해야 되거든요. 그래야 공덕이 됩니다. 외도로 가면 안 됩니다. 외도는 미래가 없습니다. 사마외도는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 미래가 없습니다. 부처님 정법이 온 법계에 70%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십시오.


     스님이 방금 한 말을 이해하지요? 우리는 정법 문중으로 귀의해야 됩니다. 그러면 부처님의 가피로 위신력으로 업장이 씻어지고, 탐진치 삼독이 뿌리 뽑혀지고, 습과 기도 뿌리 뽑혀지고, 또 악연이나 원결을 만나지 않게 해주는 한삶정리도 해줄 날이 있습니다. 


    항상 부처님을 생각해서 염불을 하고 발원을 하고 참회하는 삶을 살면 반드시 윤회를 벗어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계 인구가 70억이라고 하지요. 70억 중에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 300명, 정말로 선택된 사람들이지요. 정말로 선택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법회 때 한 1,500명 이상 왔으면 좋겠어요. 전번 대전 법회 때 1,600명 왔습니다. 그 정도로 왔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로 와버리면 이제 조계종에서 욕할 수 없는 거예요.


     뭐가 있다 그거지. 뭐가 있으니까 가는 것이지. 진리는 그렇습니다. 보편타당성과 사유필연성을 갖추어야 된다고 했잖아요. 그 말이 맞는 거예요. 상식과 이치에 맞고 합리적이라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가 아닌 거예요. 이건 맞는 거예요.

     

    기독교 보세요. 얼~마나 모순이고 당착(撞着)인지. 여러분! 상식으로 봐서 고개가 끄덕여집디까? 기독교? 그래서 그건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그건 저… 평가할 가치도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한번 기독교를 좀 정연~하게 1시간 정도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힌두교도 그렇고. 지금 일신교인 기독교라든지 힌두교하고 이슬람교도들이 한 30억이어요.


     절반이어요. 불교는 한 3억이라고 해요. 많게는 한 4억5천만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불교 인구가 다 거품이어요. 다른 종교와 다를 것 없어요. 깨달음으로 그쳐버립니다. 깨달음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다른 종교도 다 그래요. 힌두교도 그렇잖습니까? 범아일여(梵我一如)? 불교와 다 같아요. 이슬람 수피, 저기 유대 카발라, 얼마나 대단합니까? 초기 기독교의 그노시즘이라든지, 대단하지요. 보니까 똑 같아. 그러니까 그럽니다. 종교는 다 같아. 원래 다 같은 것이었구나. 다 같아.


    우리 영산불교는 그렇지 않아요.

    깨달음을 넘어서 윤회를 넘어서 상락아정의 니르바나 세계를 넘어서 상적광세계의 부처님 세계까지를 뚫어버린 부처님 교단에서는 이렇게 다~ 점수를 매길 수 있어요. 같지 않아요. 불교는, 이 만자불교(滿字佛敎)는 위대해요. 우리 현지사는 만자불교예요.

    선불교는 오늘 이 정도로 합니다.


    참선하는 사람들, 참~ 안타깝고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내 조카도 지금 참선을 수 십 년 하고 있는데, 나한테 안 와요. 왜 안 오는지 압니까? 안 와요. 우리 외삼촌은 외도요! 염불로 빠져가지고 외도라는 거예요. 오늘 시간을 이렇게 많이 할애해도 됩니까? (박수)


    그놈이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17세 때인 고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있는 절로 도망왔어. 아주 신심이 있어요. 전생에 닦음이 많아요. 아주 신심이 있어. 자기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가 찾아다니면 숨어버려. 있는 줄 알고 전화하면 자기도 모르게 받은 것이 아버지여. 그러면 목소리를 바꿔, 아버지한테. 그러다가 출가를 했어. 그래서 지금 한 20년~30년 되었는데 이제는 선방에서 아주 고참이라. 고참인데 논리는 없어. 


    선방의 애들이 교학이 없으니까 무식합니다, 무식해요. 참선이 최고인 줄만 안다니까요. ‘이뭐꼬?’가 최고인 줄만 알아. ‘이뭐꼬?’를 어떻게 하는지 선학(禪學) 강의를 못합니다. 일급 조실도 선학 강의를 못합니다. 이래가지고 어떻게 선(禪)이 발전합니까? 참선하는 조계종 참 불행하지요. 


    앞으로 도인도 안 나와요. 도인이 안 나오면 그게 뭡니까? 뻔하지요. 그러나 우리 영산불교는 앞으로 만 년이어요. 100년 200년 가면 세계를 먹어버려요. 이 정도 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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