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에 대하여
신불기 16년
불기 2557년 계사년 음력 5.8 약사재일
(2013.6.16.일) 큰스님 고성 약사궁 법문
v-9, 211회
우리나라 최북단, 이곳 화진포까지 와주신 여러분들, 특히 오늘 처음 오신 분들 환영합니다.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봐주세요. 처음 오신 분!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박수~)
오늘은 ‘깨달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깨달음.’
‣이 ‘깨달음’은 선불교(禪佛敎)에서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하고 수행의 목표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선불교의 ‘깨달음’, 이것을 주제로 해서 법문을 해야겠다~ 하고 진작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선불교의 역사가 1000년도 넘지요. 1000년도 넘게 우리
한국불교를 좌지우지라고 할까? 한국불교의 주류입니다. 그래서 이 ‘깨달음’에 대해서 일찍이 법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선불교의 핵심사상이라고 할까, 가장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 깨달으면 곧 부처라고 봐버리니까. 대~자유인이요, 근심걱정이 없고, 곧 부처라고 보는 그런 선불교의 생각에 대해 이제는 현지사 스님으로서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기 남방불교, 위빠사나를 하는 남방불교, 태국이라든지 스리랑카라든지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여기에서 수행하는 수행법은 여러분 아시죠? 지관선, 위빠사나입니다. 위빠사나선입니다. 그쪽에서는 깨달음이라는 용어를 많이 쓰지 않습니다. 쓰지 않고, 목표를 ‘열반에 이른다’는 말을 많이 씁니다.
‣또 티베트불교, 밀교에서는 ‘즉신성불’에다가 목표를 둡니다.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삼계를 탈출한다’고 합니다.
‘깨달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지요. 그것을 아십시오.
자, 1200년~1300년 된 선불교, 인도불교의 사상하고 중국의 도가사상이 접합되어서 생겨난 이 선불교, 선불교의 핵심인 깨달음에 대해서 법문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상당한 소신이 있고 자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합니다. 지금까지 1000여 년 동안 감히 누가 선불교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습니까? 전부 무조건 따르고 받들었지요. 지금의 조계종입니다, 조계종.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불교학을 전공한 대학자 석학들, 그들의 강의에서 들을 수 없는 보다 심층적인 심오한 면까지 들어간, 보살과를 이루고 불과(佛果)를 이루지 않으면 말 못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잘 들어보십시오. 불교에서는 금생도 잘살고 다음생도 보다 더 잘살기를 바라지요. 그래서 윤회를 벗어나기를 바라지요. 이러기 위해서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요구합니다. 깨달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 말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자, 여러분 지난 법회 때 사성제(四聖諦)에 대해서 말씀을 좀 했습니다. 총론 정도로만 했는데, ‘앞으로 각론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했는데, 그것을 접고 잠깐 뒤로 미루고 오늘은 ‘깨달음’을 주제로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중요한 법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은 고해(苦海)라고 했지요? 이 세상은 고해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이 사는 이 세상은 고해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고, 그리고 여러분 한 생을 사셨으니까 아마 스님이 부연하지 않아도 잘 아실 거예요. 인생은 고달프다 그거라. 살기가 괴롭다 그거라. ‘고해다’ 그러거든요.
병도 얼마나 많은 못된 병이 있습니까? 온갖 나쁜 병이 있지요. 눈이 있어도 못 보는 사람이 있지요. 귀가 있어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고요.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사람
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입도 말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을 삼중고(三重苦)라고 해요. 삼중고를 받아 태어난 사람이 있어요. 이 세상은 그래요. 어떤 사람은 몸까지 못 움직여요. 그것을 사중고(四重苦)라고 합니다. 사중고의 그 고통을 당하면서 사는 사람이 있어요. 인생은 고달픈 거예요.
또 어쩝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습니까? 슬프지요. 한~없이 슬프지요. 10년 20년 공부를 했는데, 소망하는 저 사법고시를 보면 떨어지는 그 사람들, 정~말
괴롭습니다. 이것을 구부득고(求不得苦)라고 합니다. 또 그 사람만 보면 구역질 날 정도로 너무너무 싫은 사람하고 한 방에서 같이 살아라고 하면, 살겠습니까? 미운사람하고는 못 사는 거예요. 이 세상은 고(苦)로 충만 되어 있어요.
자, 여기서 불교가 할 일이 있어요. 괴로워하고 고통스럽게 사는 이 중생들을 건져야 되는 거예요. 건진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가능한 한 그 고통을 받지 않도록, 또 금생은 어쩔 수 없다 치고 다음생만은 건강한 몸으로 이 세상에 나와서 복을 많이 받아가지고
나올 수 있도록 인도해줘야 할 그 의무가 불교인한테 있어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길이 있으면 그 길로 인도해줘야 됩니다. 그런데 그 길이 있거든요. 그래서 선종(禪宗)에서도 온갖 근심걱정 이 고통 이 삶에서 어떻게 벗어나가지고 항상 즐거움을 누리는, ‘하! 행복하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수행법,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해서 옛날 그 큰스님들이 그렇게~수행을 무섭게 했던 거예요. 그 세계로 그 길로 갈려고요.
그래서 깨쳤습니다. 깨쳤어요. 깨치고 보니까 햐!~좋아요. 정말 좋아요. 웬만한
근심걱정은 다 극복되어요. 정말로 잘 깨치고 깨친 이후 공부를 더~정진하면 더 정진하면 설사 삼중고 사중고를 받았다 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부터 부처님들께서 큰스님들께서 수행하기를 바랐던 거예요. 수행하기를 바랐어요. 금생이 다가 아니고 다음생 있고 다음생 있으니까 금생도 잘살고 다음생도 잘살고 그 다음생도 잘살고 가능한 한 윤회를 벗어나기를 바라고, 자기가 깨쳐서 알았고, 자기가 그것을 보장할 수 있으니까 큰스님들이 그렇게 해서 수행하기를 바랐어요.
큰스님들은 사람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선가(禪家)에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좋아요. 그 고통, 온갖 고통, 여러분 온갖 고통 다 있어요. 한두 가지는 끌어안고 살아요. 한두 가지 더 되지요. 끌어안고 살아요. 이 고통은 어디서 왔느냐 그거라. 어디서 왔느냐? 사유를 해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지요. 태어남에서 왔다 그거라.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저런 고통을 받는다 그거예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늙고 병들고 죽을 리 없지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태어나지 않는 법, 이러한 모~든 근원적인 답을 얻으신 분이 부처님인데 태어나지 않는 법이 있어요. 태어나지 않는 법이 있어요 여러분. 태어나지 않으려면 업을 짓지 않아야 되요. 업을 짓지 않아야 돼. 불교 교학을 한 분들은 이해합니다. 여러분, 많~이 사유한 분들은 압니다. 태어나지 않으려면 업을 짓지 않아야 되요. 사람으로 올 업을 지으면 사람으로 오고요, 지옥에 태어날 업을 지으면 지옥에 가서 태어나는 거예요. 짐승 몸을 받아 태어날 업을 지으면 반드시 짐승 몸을 받아 태어나는 거예요.
여러분. 하늘세계에 날 정도 되려면 하늘세계에 가서 태어날 착한 일을 해야 되는 거예요. 나고 죽고 나고 죽고 지옥에 가서 살다가 그~무서운 벌을 받고 다시 짐승세계로 가고, 또 아귀세계로 가고 사람으로 태어나고, 또 계~속 여섯 하늘을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 중생이어요. 이것을 윤회라고 해. 윤회. 육도윤회(六道輪廻)라고 그래요. 그런데 아예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 있어요. 벗어나는 길이 있어요. 벗어난다는 것은요, 모~든 고(苦)에서 벗어난다 그 말이어요. 벗어나는 길이 있고, 벗어난 사람을 아라한이라고
해요. 아라한이 있는 세계가 있어요. 윤회를 벗어난 세계가 있어요. 자, 이것을 알았어요. 부처님께서 진작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있어가지고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니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있어가지고 창조한 것이 아니어요. 내가 스스로 업을 지어가지고 내가 받는 거예요. 이게 불교예요. 자, 태어나지 않으면 된다 그거라. 태어나지 않으면 된다 그거라. 그러려면 업을 짓지 않아야 된다 그거라.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면 된다 그거예요. 어떻게 하면 나쁜 업을 짓지 않을 수 있나? 어떻게 하면?
자, 선가(禪家-선불교)의 대답입니다.
모든 중생은 ‘가짜 나’를 진짜 나라고 생각하고, ‘거짓 나’를 진짜 나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집착을 너무 해요. 그것을 아집(我執)이라고 그래요. 가짜 나한테 집착을 한단 말이에요. 잘 살아야 되겠고 잘 먹어야 되겠고 따뜻한 옷을 입어야 되겠고, 저 친구는 저렇게 큰 다이아를 했는데 나는 더 큰 놈을 해야 되겠고... 가짜 나(我)라는 몸에 집착하게 되면 온갖 욕심 탐욕심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업을 짓는 거예요. 가짜 나. 그렇기
때문에 이 가아(假我), 아집(我執) 요놈, 이것을 두루 두루 해서 무명이라고 해요. 미망(迷妄)이라고 해요. 이놈을 박살내버리면 되는 거예요. 이것을 박살내버리면 ‘진짜 나(我)’가 있을 것 아니냐 그거라. 진짜 나. 진짜 나를 찾으면 된다 그거예요.
여기까지는 맞습니다. 여기까지 옳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선불교에 대해서만 이야기 합니다. 저 위빠사나는 다르게 진단하고 있어요. 오늘은 선불교만 가지고 이야기할 거예요. 스님이 선불교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어요. 아니라는 것이 아니어요.
아닌 것은 아니고 맞는 것은 맞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금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자, 방법은 깨달아야 된다 그거라. 깨달아가지고 ‘참나(眞我)’를 찾아야 된다 그거요. 우리는 참나를 모르고 잃어버리고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참나를 찾아야 된다. 그러려면 깨달아야 된다. 그러려면 두 가지의 방법이 있어요.
‣화두 참구하는 방법이 있고
‣그냥 참나가 무엇인가 하는 것만 생각을 하고 화두 없이 묵조 하는 묵조선(黙照禪)이 있어요.
자, 그런데 우리나라는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 참선하는 불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느 절에 '불목한이’가 있었어요. 불목한을 아십니까? 물 길러주고 나무하고 불 때고 짐 나르고, 주지가 시키는 대로 절 일을 해주고 사는 처사. 이런 사람을 불목한이(‘불목한’이라고도 하고 부목(負木)이라고도 한다)라고 해요. 어느 때 불목한이가 있었습니다. 거기가 선방(禪房)인데, 선방은 참선하는 스님들이 한 철씩 와서 사는 그런 절이어요.
선방 아시죠? 선방이 있는 절. 불목한이는 천성이 아주~착했습니다. 천성이 너무너무도 착하고 부지런하고 고지식하고 배운 것은 없고 가진 것은 없지만 성품은 그렇게 아름다웠어요. 그 불목한이가 날마다 보는 것은, 자~ 나도 사람이고 저 스님도 사람인데 세상 하는 일 없이 선방에서 이렇게 졸고만 앉아 있단 말이어. 모두 졸고만 앉아 있어. 자기는 죽~도록 일을 해야 삼시 세 끼를 때우는데 저 사람들은 어째 저렇게 우대받을까? 하면서 그렇게 잘 사니까 부러워 보인단 말이어요. 그래서 주지한테 물었어요.
(불목한) : 도대체 저 스님들은 무엇을 합니까? 앉아서 무얼 합니까?
(주지) : 야! 이놈아! 네가 몇 년을 있었는데 그것도 모르느냐? 참선을 해 이놈아! 참선!
(불목한) : 참선이 뭡니까?
(주지) : 화두! 화두를 가지고 참구한단 말이어.
그 주지가 아주 박식하고 말을 잘하고 하면 자상하게 이야기하겠지만, 자기는 별로 모르니까 그저 조금 어려운 용어를 섞어 가면서 말하니까 이 사람은 모르지. 사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불목한) : 그러면 나도 화두 하나 주시오! 나도 하나 주시오! 화두 하나주시오!
그랬단 말이어.
(주지) : 그래? 못 줄 것 없지!
화두를 내립니다. 무슨 화두를 내렸나?
(주지) : ‘즉심시불’이라고 해라!
그랬단 말이어. 즉심시불(卽心是佛)은 ‘마음이 곧 부처다’ 그 말이어요. 그런데 주지가 그 해석을 못했어.
(주지) : 즉심시불이라고만 해!
그러고 쫓아버렸단 말이어.
(불목한) : 즉심시불...즉심... 즉심... 짚신이 부처다고?
이제 이렇게 생각했어요.
(불목한) : 짚신이 부처다 그 말이냐? 짚신이 부처? 짚신이 부처?
이것만 가지고 이제 자나 깨나 나무하러 가나 물을 길러 올 때에나 짐을 나를 때에나
밥을 먹을 때에나 잠을 잘 때에나 생각합니다. 너무나 고지식하니까. 화두타파하려면 사람은 고지식해야 됩니다. 생각이 많으면 안 되어요. 하나 하면 그냥 하나예요. 이 사람은 그저 ‘짚신시불...어째서 우리 주지스님이 짚신이 부처라고 했느냐’ 그거요. 이거 환장하겠다 그거라. 이것을 깨치면 부처가 된다 그거예요. 나도 부처가 되어야 되겠다 그거라. 나도 이렇게 살 것 아니다 그거야. 이거 깨치면 큰스님으로 우대 받는다 그거요. ‘야! 나도 이거 깨쳐야 된다’ 해가지고 이제 ‘짚신시불?’, ‘짚신시불?’...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의심이 쌓여요. 의단이라고 해. 의단. 화두타파를 하려면 의심이 축적됩니다. 너무도 착하게 공부하니까 의심이 죽~죽 쌓여가요.
화두타파하려면요, 암탉이 알을 까듯 다른 생각이 없어야 되요. 고양이가 쥐구멍으로 들어간 쥐를 잡으려고 꼼짝않고 나오기를 바라듯, 아셨습니까? 활궁사가 과녁을 맞추려고 조준하듯 그렇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안 되어요. 100년을 해도 안 되는 거예요. 이 불목한이는 천성이 단순해요. 하나하면 하나밖에 몰라요. 그러니까
그냥 짚신시불이어. 짚신시불만 생각하는 거요. 그러니까 점점 의단이 형성되니까 이제 답답해요. 이제 화두타파하려고 하면 답답해갑니다. 이제 답답해 죽겠어. 이거 이거 큰~뭐 하나가 들어앉았는데, 이 의심을 깨지 않으면 나는 죽겠어. 이 단계에 갑니다. 그러니까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갈 때 산에 가서 그냥 ‘짚신시불~ 짚신시불~... 우리 주지가 짚신이 부처라고 하는데 이거 왜~~이거 부처냐??’고 그냥 목이 터져라 악을 쓰는 거예요. 그 경계에 가야 됩니다. 이 사람은 너무도 성품이 단순하고 착하니까
의심이라는 것이 없어. 그냥 믿고 짚신이 부처라는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맞는 것이어. 그렇게 하는 거란 말이어. 이거 이거 이거 나는 의심이 나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환장해 죽겠다 그거라. 자나~깨나 꿈속에서도 짚신시불이야. 그렇게 가면 여러분! 화두타파가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아셨어요?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러분한테 말씀하는 거예요. 나도 선방에서 많이 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내 책을 보면 나오지요.
하루는 나뭇가지를 많이 해서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내려옵니다. 산길을 내려오다가
돌부리에 걸려서 타~악 엎어져버렸단 말이어. 꼬꾸라져버렸단 말이어. 그러면서도 짚신시불인데 꼬꾸라지면서 보니까 자기 짚신 하나가 저리 나뒹굴어져 저기에 떨어졌단 말이어. 그것을 탁 보는 순간에 타~악~깨쳤어요. 생각이라는 것이 없고 시간이 몇 시간을 흘러간 줄 몰라요. 거기에서 그냥 뭘 봤나?
이게 중요합니다. 이제 참나(眞我)를 본 것입니다. 뭘 봤나?
경계가 뒤집히는데 나무도 없고 산도 없고 나도 없고 짚신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
허공같이 텅~비어버렸단 말이어요. 자, 여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허공같이 텅~비었어. 다만 빛이, 이것을 스님이 가끔 이야기하는 본체라고 그래. 그게 우주의 본체라고 해. 그게 이 허공의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단 말이어요. 그것이 우주를 가득 싸고 있어요. 그것이 이 땅덩어리 별 덩어리 이 모든 것을 전~부 품고 있는 거요. 이게,우주가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이 인간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거기에서 나온 거예요. 그 본체를 봐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우주의 본체를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깨달음
그런데 우주의 본체를 선가에서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제 마음의 진자리(-참된 자리)를 봐버린 거예요. 그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본성이라고 해. 본성을 봐버린 거예요.
이제 여기는 좋습니다. 내가 하나 하나 시비(是非)를 말해줍니다.
오직 텅~빈 것만 의식한 것뿐이어. 의식이어 의식. 의식 없는 것이 아니어요. 텅~비어버린 것만 의식한단 말이어. 알아차림. 순수한 알아차림. 그 의식, 순수한 알아차림, 이게 나 주인공의 씨의 종자란 말이에요. 씨란 말이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무아(無我)’라고 하네. 그러면서도 깨친 사람들이 소위 선사들이 그렇게~ 보림을 하고, 지금 수백 명 수천 명이 나왔는데 무아라고 합니다. 무아라는 것은 나, 거짓 몸, 거짓 나가 없다 뜻으로는 좋아. 거짓 나, 나가 아닌 것.
여러분, 이 몸뚱이는 나가 아니어요. 이 몸뚱이는 내 것이 아니어요. 가아(假我)입니다. 가짜입니다. 이것은 거짓 나입니다. 이 본체의 그림자예요. 안 그렇습니까? ‘이것이 없다. 이것은 나가 아니다.’ 이건 좋아요. 이것을 깨야 되는 거예요. 이것을 깨야 업을
짓지 않아요. 나쁜 짓 안 해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나쁜 짓 하는 이유는 거짓 나에 대한 집착이 있어서 나쁜 짓 하는 거예요. 생각해봐요. 이거 숙제예요 여러분. 스님이 이렇게 말해주면 여러분! 적어도 많이 법문을 들으셨으니까 집에 가서 알아야 되요.
이제 거짓 나를 봐버린 거예요. 나라고 알고 있던 것이 거짓 나라는 것을 알았어요. 거짓 나가 없어져버렸어요. 오직 텅~빈, 빛뿐. 그것을 의식한 것. 알아차린 거예요. 그것밖에 없어요. 이게 중요해요. 알아차린 것. 알아차린 이것이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한 나(我) 주인공이어요. 이것이 ‘진짜 나’예요.
그러니까 ‘알아차림 + 텅빈 본체․우주본체’, ‘나의 당체 +우주본체’, 이것이 나(我) 주인공입니다. 여러분 이거 알아야 됩니다. 선불교에서는 우주본체, 본성을 진아(眞我)다 그러거든요. 그거 아닙니다. 그게 진아가 아니어요. 이것을 알아야 내 책을 이해합니다. 이거 알아야 되요. 이것을 부처님 열반한 지 2600년 이후로 부처님밖에 모르셨어요. 위빠사나에서도 지금 모두 나(我)가 없다고 하네. 자아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하네. 여러분, 나 주인공이 없으면요, 눈이 있어도 못 봐요. 귀가 있어도 안 들려요. 입이
있어도 말 못하는 거예요. 나 주인공이 빠져나가버리면 그렇습니다. 나 주인공이 없으면 아예 오온(五蘊)-이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생길 수도 없어요. 형성할 수도 없어요. 이것을 좀 어려운 말로 하면 ‘의식적인 동인’이라고 그래요. 의식, 의식적인 동인. 나는 ‘제1원리’라고 그래요. 이것이 없으면 생각도 못해요. 생각할 수 없는 거요. 본체는 의식이 없어요. 비인격이어요. 그렇잖습니까? 이거 알아두세요. 굉장히 중요합니다.
자, 그 '불목한이'가 깨쳐버렸네. 깨쳤어. 깨친다는 것은 대단한 거예요. 일단 나는 그것을 긍정해줘요. 전생에 선근이 없으면 깨칠 수 없는 거예요. 이제부터 중요한 거예요. 이제부터 중요해요.
여러분! 내가 선불교한테 지금 하는 말이어요. 이제부터 중요한 거예요. 이제부터는 진짜로 공부해야 되요. 그래서 내가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라는 거요. 깨달은 것을 견성(見性)이라고 그래요. 견성. 이제부터 진짜 공부해라 그거라. 어떻게?
‣부처님의 청정계율을 목숨처럼 지켜라. 그러면서
‣두타행으로 들어가거라. 두타행으로 들어가라.
왜 이런 말을 하느냐?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이 있잖아요. 업장, 업의 힘, 세력이 있잖아요. 이것을 닦지 못하면 안 됩니다. 깨달았지만 이것을 닦아야 되는 거예요. 이제 이것을 없애야 되는 거예요. 닦아야 되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익힌 습 ․ 기, 이것을 닦아야 되요. 이것을 닦지 않으면 안 되어요. 그러면 그럴수록 아라한으로 접근해 가는데 법열(法悅)이 배로 와요. 기쁨이 배가 온다고요.
그러지 않고 터~억 깨달아가지고 춤을 추면서 ‘나는 이제 부처다!~’ 하니까 주지가 법상을 차려놓고 ‘법문해주십시오. 법륜을 굴러서 우리 중생을 건져주세요!’ 하잖아요. 이제 그 경계가, 그 경계가 전부인 줄 알고 ‘부처 없고 보살 없고 극락 없고 지옥 없고, 윤회는 다 우리 인간이 만든 이미지요 허상이다. 환영이다!’ 하고 법문하잖아요. 이건 이제 큰일 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깨쳤으면 진짜 공부를 해야 된다. 진짜 공부를 하는데 계율부터 지켜야 된다. 제일 무서운 계율이 음행이다. 음행죄(淫行罪).
큰스님이라며 여불대접(如佛待接)을 하니까 그~많은 신도들, 예쁘고 젊은 신도들이 그냥 따르고 그냥 좋아하니까 이것을 지키지 못하고 ...
깨침 ․ 견성, 그때는 신경이 더 예민합니다. 예민해요. 그러니까 유혹을 하면 따라갈 수 있어요. 따라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적당하게 범한단 말이에요. 이렇게 해버리면 큰일 난다 그거예요. 그래서 스님이 ‘청정수 한 바가지에 똥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마시겠느냐?’ 그거예요. 부처님 말씀이어요. 그때는 이제 큰일 나는 거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또 구업을 짓잖아요. ‘내가 부처’라는 거요. 자기가 부처라는 거요, 부처. ‘불보살이 어디에 있어?, 어디 관세음보살이 있어?, 관세음보살을 봤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봤다고 하는데, 그건 외도 중에 상 외도다’ 이런 말도 하고, 막 한단 말이에요. 부처님을 보는 경계는 부처가 되어야 되요. 아라한으로 들어가 가지고는 안 됩니다. 더~깊이 들어가야 되요. 보살이 되어가지고도 안 됩니다.
또 저기(-선불교)는 천마(天魔)라고 하거든. 우리가 부처님이 있다, 부처님을 봤다
하면 천마라고 하거든. 무아라고 하면서 또 천마를 이야기하네. 천마는 하늘마(魔)예요. 하늘마(魔)가 있습니다. 주로 파순이가 사는 파순이 졸개들입니다. 그건 1하늘 저쪽에 있어요. 거기서 많이 떨어져 있는 데가 있어요. 그 파순이 졸개들이 많아요. 그들이 천마의 왕초들이라고. 그리고 6하늘 5하늘 4하늘에도 천마가 있어요. 기독교 하늘이라든지, 이슬람교 하늘의 외도하늘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 외도하늘 사람, 천인(天人)으로 간 경우가 변칙으로 해서 가는 경우가 있어요. 변칙. 내가 한번 이야기했을 거예요.
그것들이 천마로 행세합니다. 그 천마는 하늘사람 중에서도 참 망나니입니다. 갖추지 않았잖아요. 복을 짓지 않았고, 마음을 닦지 않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망나니거든요. 그 망나니는 달라요. 몸에 빛도 없어요. 불보살은 빛이, 부처님은 완전히 무량광 덩어리입니다. 그러면서 32상을 갖추고 있잖아요. 보살만 해도 빛이 대단합니다. 현란합니다. 우리 현지사에서 보살과 받은 사람들이 저기 극락 가면 그래요. 성중 아라한도 밝은 빛이 나요. 은빛이 은은하게 납니다. 하늘사람은 안 나와요. 더더구나 천마가
냅니까? 나겠습니까? 눈은 위로 올라갈수록 대단히 맑고 자비한 거예요. 자비스러워요. 천마는 그렇지 않습니다. 살기등등합니다. 그러니까 천마에 대해서는 영산불교에서 너무 잘 알아요. 저 선불교에서 몰라요. 모르면서 그저 하는 말이 ‘천마를 가지고 불보살이라고 한다. 마경(魔境)에 빠졌다’고 하잖아요.
자, 깨쳤으면 이제 진짜 공부를 해야 된다. 해가지고 착을 떼어버려야 된다.
삼독심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된다 그거요. 그래야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삼독심의
뿌리가 뽑아지면 어쩌냐? 탐심의 경계를 당해도 무덤덤하단 말이에요. 조금 더 쉽게 말씀해드릴까요?
‣아주 잘 생기고 건강하고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지고 있는 남자가 유혹을 해도 안 넘어가요. 여자가 그렇게~예쁘고, 그렇게 말도 잘하고 참 나무랄 데 하나 없고, 하는 말 거동 거동이 그저 한없이 정이가고 하는 사람이 아무리 나체로 유혹을 해도 안 흔들려요. 그게 탐심의 경계에 안 흔들린다 그거요.
‣또 진심(瞋心)의 경계. 진심(瞋心), 화내는 것이어요. 여러분! 그렇잖아도 저놈이 미운데, 미운 사람인데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갖다가 없는 사실 있는 사실을 고자질 해가지고 ‘그 사람은 아주~못된 사람이다. 이러이러한 사람이고 이러이러한 사람이니까 가지마라. 상대하지 마라’고. 이렇게 나를 흉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쩝니까 여러분? 화가 나지요? 화나지 않을 사람이 있나? 이런 데서도 화나지 않은 사람이 깨친 사람이라니까요. 진심의 뿌리가 빠져버린 사람은 괜찮다니까요. 어렵지요?
‣그 다음에, 중생은 요놈이 진짜 자기인 줄 알고 이 몸뚱이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강하다고 했지요. 생의 애착은 대단합니다 여러분. 생의 애착은 대~단한 거예요. 산적이 목에다가 칼을 겨누고 돈을 내놔라고 한단 말이어. ‘너! 돈 없으면 네 목을 바치라’ 그거라. 그러면 보통사람은 벌벌 떠는 거예요. 떨지 않을 사람이 없어요. 그렇잖습니까? 이러한 공포의 경계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아라한이어요 여러분. 대단하지요?
자력으로 수행해 가서 결국은 탐진치를 뽑아버린 경계가 아라한입니다. 아라한.
이렇게 가야 되요. 그렇게 깊이 가면 갈수록 열반의 세계에 들어가기 때문에 법열의 기쁨은 배가가 되요 여러분. 그 기쁨으로 모든 근심 걱정거리를 다 누르는 거예요. 여러분 속에서도 깨달은 사람이 있을 거예요. 저기 참선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요. 공부 많이 해서 깨달은 사람도 가끔 있을 거예요.
나는요, 내가 득력(得力)한 후에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여기서 그 절하고 그 스님 이름은 내가 거명 않겠습니다. 자기의 깨친 경계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진짜 깨쳤더라고
요. 행자였습니다. 행자인데, 곧 옷을 벗을 때예요. 그런데 대단하더라고요.
쭈~욱 물어보니까 행자 때 공양주 노릇을 했단 말이에요. 공양주 노릇을 하는데 옛날 같으면 돌을 가려내기 위해 쌀을 일잖아요. 지금은 안 그러지요. 옛날에는 도정기(搗精機)가 좀 부실해가지고 누라든지 돌이 있었어요. 쌀을 물속에서 조리로 흔들면서 입니다. 일잖아요. 그러면서도 불목한이처럼 ‘뭣꼬?, 뭣꼬?’ 그랬대요. ‘뭣꼬? 뭣꼬?, 아니 이렇게 나를 움직이는 요놈이 뭣꼬? 뭣꼬?’ 이렇게 했대요. 이게 시심마(是甚麽) 화두
예요. 내가 그것을 했습니다. 탁! 깨쳤다 그거라. 말을 들어보니까 깨쳤어요. 깨쳤어.
그런데 남자들끼리니까 하루 이틀 같이 다녔지. 다~이야기를 해. 이 애가 그때 한 30세도 채 못 되었더라고요. 그런데 여자를 너무 좋아하더구먼. 여자를 좋아해. 아니 어떻게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이 깨쳤냐 그거야. 내 생각이, 안 그럽니까? 아! 그러면, 깨쳤으면 여자를 안 봐야 되잖습니까? 저기 절에 놀러온 처녀들, 저녁에 방 하나 주면 절 방에서 좋아라고 3명이 잠잡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들어가서 다 버려놓더구먼. 아! 그래
서 내가 생각하기를 ‘햐!~ 이거 이거 선불교가 문제가 있다. 이거 문제가 있다!’ 했지요. 안 그럽니까? 참 심각한 문제이지요.
아! 그리고 또 저 선불교의 역사를 보면 백정이 있어요. 소 잡는 백정. 소 잡는 사람을 백정이라고 해요. 도한(屠漢)이라고 하지요. 도한이가 깨친 실례가 있어요. 아, 망치로 소의 머리를 내리치는데 소가 비명을 지르면서 나가떨어집니다. 그 소리를 듣고 깨쳤다는 거예요.
자, 여러분! 생각할 점이 많아요. 내가 선불교를 ‘이건 아니다!’ 하고 그냥 염불로 돌아온 이유 중에 그런 것도 있습니다. 자, 깨쳤다고 합시다. 깨쳤다고 합시다. 깨친 이후가 중요하다 그거요. 이제는 소를 잡지 않아야지. 이제는 여자 생각 하지 않아야지. 계율을 지키면서 더욱 정진해야지, 안 그렇습니까?
진짜로 깨치면 그렇게 않는 거예요. 그래서 ‘깨침도 바른 깨침이 있고, 삿된 깨침이 있다. 선정도 바른 선정이 있고, 삿된 선정이 있다’는 부처님 말씀을 나는 믿어요. 안 그럽니까?
오늘 우리 신도분들이 처음 오신 분도 있고, 스님 법문이 좀 어렵다고 하니까 쉽게 해야 되기도 하고, 오늘 사성제 각론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나는 이 사성제를 대학교수들이 강의한 것을 보면, 그 책을 보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 그거지. 물론 학자들이니까 그렇게 하겠지.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법문을 통해서 이렇게 해줘야 되겠구나’ 생각한 것이 있어요.
이 고(苦)의 근원이, 고(苦)가 오는 원인, 집성제죠. 고(苦)가 오는 근원이 앞에서
선불교에서 진단한 것은 맞아요. 위빠사나에서 진단한 것은 맞아요. 갈애(渴愛)라든지 무명(無明)이 맞는 거예요. 그래서 수행법이 있잖습니까? 도성제 말입니다. 멸성제는 열반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도성제에서 그 방법으로 팔정도를 이야기하잖아요.
부처님께서 처음에 팔정도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나중에 37조도품이 나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이 칠각지예요. 칠각지(七覺支 -염각지, 택법각지, 정진각지, 희각지, 경안각지, 정각지, 사각지). 사념처(四念處-신념처, 수념처, 심념처, 법념처)라든지 아주 중요해요. 그러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오개(五蓋-탐욕개, 진에개, 수면개, 도회개, 의개)입니다.
다섯 가지 덮개, 장애. 오개(五蓋)를 알아야 되요. 그렇게 해서 수행을 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어쨌든 그것은 각론에 가서 이야기할 것인데, 좀 어려우니까 말하기가 싫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이 주제를 가지고 하는데, 어렵지 않지요 여러분! (예~).
잘 들어주세요. 이제 선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계속 공부를, 정진을 하지 않으면 그럴 수밖에 없지요. 계~속 정진을 해서 아라한과를
이루어도 사후세계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 책에 써졌지요. 사후세계 안 보여요. 지옥 안 보여요. 극락 안 보여요. 불 보살 안 보여요. 더~들어가서 보살과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나한테 붙은 빙의된 것 안 보여요. 여러분 알아야 되요.
또 모~든 사람들이 전부 조상신이 왔다 갔다 해요. 왔다 갔다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왔다 갔다 하잖아요. 자기 자손들 집에 와 있잖아요. 그러면서 먹을 때에는 들어가잖아요. 안 보여요. 보살과를 이루어도 잘 안 보이거든요. 이렇기 때문에 불교가
왜곡 되어버렸어요. 없다고. 무아. 제법무아라고 하는 이것을 정~말 잘 알아야 되는데,《금강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이 무아법을 통달하면 진짜 보살이어요. 그런데 이것을 몰라요. ‣‘무아’ 그러니까 모든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요. 나도 없고 너도 없다고 해버린다니까요. 자아도 없고 영혼도 없다고 해버린다니까요. 그래서 학자들이 지금 불교를 갖다가 이상하게 소개하고 있어요. 2600년 동안 그랬어요. 영혼, 자아 없다는 거요. 그러면 여러분!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면 생각해봐요. 뭣 때문에 살아? 약 먹고 죽어
버려야지. 뭣 때문에 살아? 그 고생고생하고 고민고민하니까 내가 너를 죽여주는 것이 오히려 착한 일이지. 그게 뭐가 죄 돼?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나도 없고 너도 없으면 무슨 원결 따위가 있어? 그렇잖습니까? 무슨 원결 따위가 있겠느냐고? 불교가 자아도 없고 영혼도 없다네. 하!~ 이렇게 되었어요. 남방불교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게 큰~흠점입니다. 큰~흠점인 거요.
‣견성을 했단 말이야. 탁!~깨쳐보니까 그 텅~빈 빛, 잘 본 거예요. 그건 좋다 그거라.
그것을 의식하는 것, 그것을 왜 무시하느냐 그거라. 그것이 나(我) 주인공인데. 보는 놈. 요놈(-몸뚱이)이 보는 것, 그것하고 달라. 이놈이 보는 것, 그것의 근본주체야. 당체야. 이 당체, 이놈을 없다고 해버리면 되느냐 그거라. 나도 없고 너도 없다면 되냐 그거라. 그건 유물론자이지. 챠르바카(carvaka-유물론자)라고 해.
이렇게 불교를 지금 포교하고 있으니 이게 이게 망할 짓이라. 그래서 불교가 인도에서 쫓겨난 거예요. 힌두교는 안 그래요. 아트만(atman)이 탁 나오잖아요. 아트만(atman).
그런데 사실은 아트만(atman)의 그 힌두교 설명가지고 윤회를 설명 못합니다. 안 되어요. 우리 1.2.3.4번 영체를 탁 말한 것이 정확히 윤회가 되는 거예요. 4번 영체가 없으면 인간이 안 됩니다. 인간 구실 못해요.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진화론, 이건 영혼체를 전혀 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어제 내가 여기 자연사박물관에 들어가 가지고 주~욱 구경하다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는데, 자~ 지금의 불교가 그렇게 되었다고요. 정말 영산불교의 이 바른 가르침이 너무 절실해요.
깨치는 것은 좋습니다. 깨치는 것 좋지요. 대단하지요. 그건 바람직하지요. 그런데 깨치는 경우가 여러 경우에서 옵니다. 경전을 읽다가도 깨치고, 혜능 스님처럼 경전 읽는 소리를 듣다가도 깨치고, 참선 중에 깨치기도 하고, 법문-간단한 법문, 큰스님의 법문 끝에 깨치는 사람도 있고 그래요. 여러 케이스가 있어요. 어쨌든 깨치는 것만은 대단히 소중해요. 그런데 깨치는 것도 강약이 있어요. 강~하게 깨치는 사람이 있고요. 그 정도가 그렇고 그런 정도, 나는 이것을 수다원 정도라고 그러지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보림을 10년을 하고 죽을 때까지 했어도, 그 많은 100명 1,000명의 도인이 선종에서 쏟아졌다고 하거든요. 안 그럽니까? 공안만 해도 1,700공안이 있는데요. 그렇게 많은 도인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어록(語錄)을 아무리 봐도 저세상을 몰라요. 사후세계가 없다 그래요. 윤회를 부인해버려요. 불보살 몰라요. 절대로 알 턱이 없지요. 상적광세계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안 그럽니까? 붓다만이 들어가는 거요.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야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이건 우리《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이해 못해요. 이해할 수가 없지. 물론 많이 공부하고 공부한 사람들, 그 중에서도 선근이 깊고 특출한 사람이 아라한과 정도 증하게 되지요. 증했어도 자기한테 빙의된 것을 모릅니다. 이제 붓다의 경계로 가야 그 사람의 업장도 봅니다. 그건 붓다의 경계입니다.영혼체도 상품보살의 경계입니다. 자기의 영혼체가 안 보여요. 안 보이니까 부처님의 무아법을 그렇게 해석하지. 나름대로 해석하지.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법화경》이라든지《화엄경》을 갖다가 어떻게 압니까? 다보불탑이 솟아난 것, 보탑이 솟아난
것을 어떻게 압니까? 본화보살을 어떻게 압니까? 기껏 해봤자 아라한인데요. 전혀 모르지. 그러니까 이건 방편설이라고 하는 거예요.《법화경》을 방편설이라고 하는 거요.《화엄경》을 소설이라고 하는 거요.《법화경》《화엄경》은 정말인데, 그렇게 바뀌면 안 되지. 그리고 탁 깨쳐놓으면 나나 붓다나 예수나 딱 동일한 반열에 놓고 봐버려요.
내가 전번에도 이야기했지. 저기 대전에서 소참법문 때 이야기했구먼. 내가 어느 큰스님한테 물어봤지. ‘돌아가시면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스님은 극락도
부인하고 아무것도 없다는데 돌아가시면 어디로 가요? 자, 어디로 간다고 말하는 줄 압니까? 본래면목으로. 그 자리로. 그러니까 이제 그 불교신문에는 그런 것을 ‘적멸에 계합했다’고 표현하지요. 참~ 웃기는 이야기지요. 우리 교수님들은 다 이해하시겠구먼. 이거 모른다고요. 본래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그거라. 환지본처(還至本處)했다 그거라. 말은 참 재미있지요. 그러면 우리 큰스님은 그런다 치고, 이 죄업 중생은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지옥도 없고 저승도 없고 귀신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면?
그러면 어디서 귀신이 나고 귀신이 어떻게 어떻게 하고 하는, 저 무당들이 한 말 100%가 다 아니라고 하기가 그렇거든요. 무당들의 말을 들어보세요. 귀신, 아! 귀신이라는 것도 있는가 보다. 이 감이 오는 것이지, 그 거짓말 안 해요. 그러니까 어느 면에서는 그 무당들이 더 낫다니까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지금 선불교를 100점 만점에 몇 점 주시는지 아십니까? 난 말을 안 합니다. 그런데 무당은 20점을 줘요. 무당은 저 세상이 있고, 귀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거라. 그래서 10점 더 줘요. 우리 영산불교는 정말 90점~100점이어요.
‣선불교에서는 계율을 안 지킵니다. 계율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깨치라 그러지요. 계율을 말하지 않습니다.
‣백정한테도 화두 줘요. 매춘부한테도 화두 줘요. 깨치기만 해라 그거라. 깨치기만 하면, 참나를 찾으면 태어나지 않으니까! 그것 참 웃기는 말이지요. 삼독도 다 뿌리 뽑지 못했는데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은 어떻게 하고요? 습 ․ 기는 어떻게 하고요? 원결은 어떻게 하고요? 이것 때문에 몸 받는데요. 원결과 사랑하는 사람,
이런 업연 어떻게 하고요? 공부인한테는 모두 나쁜 인연이지요. 애인, 사랑하는 사람도 공부인들한테 나쁜 인연이지요. 그것을 몰라요. 모른다 그거라. 무조건 깨치면 된다 그거라. 깨달음지상주의지. 분명히 말합니다. 무조건 깨달으면 된다? 아닙니다. 깨달으면 다다, 이는 사마외도의 견해올시다.
공부인한테는 정견도 매우 중요하지요. 팔정도의 처음이 정견이잖아요. 또 중생들은 업장이 태산같습니다. 다겁생 동안의 습 ․ 기도 끈질기게 따라붙습니다. 깨달았다 해도
계율을 지키면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합니다. 업장과 업연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고, 깨달으면 된다 깨달으면 다다 이런 깨달음지상주의, 이거 아닙니다.
‣그리고 선불교에서는 무조건 화두를 터~억 줄 것이 아니라 예비 수행단계가 있어야 되요. 내가 조계종에 있을 때에도 그런 말을 한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사람한테 선방에 턱 들어오면 화두를 터~억 던지고, 앞의 불목한이처럼 설명도 안 해. 그런데 그 불목한이는 하나 하면 하나밖에 모를 정도로 너무도 성격이 단순했습니다. 그랬으니까
깨치는 것이지. 보통사람들은요, 이거 지금 세상에 화두가 맞지를 않아요. 화두마다 의심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런데 하루 정도는 의심을 해요. 하! 이거 참 어째서 그럴까? 이틀 한 달... 1년 가버리면 매너리즘(mannerism, 타성)에 빠져가지고 이거 의심이 나지 않아. 그저 앉아서 조는 거예요. 100년을 졸아봤자 안 되어요. 깨칠 수 없는 거예요. 설사 깨친다 하더라도 이제 진짜 공부로 들어가라 그거라. 이 스님의 충고입니다. 계율 지켜라 그거라. 계율 지켜라.
그리고 다겁생래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을 닦아라 그거라. 그런데 내가 보니까 사중죄(四重罪)에 해당하는 것은 못 닦아요. 사중죄 이상의 것은 못 닦아요 여러분. 불안으로 보면 사중죄로 지은 업장이 철판으로 둘러 씌어 있는데요. 어느 장사가 그것을 쪼개 없앱니까? 소멸시켜 줍니까? 부처님밖에 못하는 거예요. 영산불교 이야기입니다.
‣지금 공부인들 중에 바른 선정에 들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선정, 부지런히 쭈~욱 공부한 사람은 들어갈 수가 있는데, 업연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키고 업장이 많고
외마들의 장애가 굉장합니다. 여러분은 모르지요. 화두로 선정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대부분 못 들어가요. 깨쳐가지고 또 삼매 못 들어가요. 더더구나 아라한도 보살삼매에는 못 들어가요.
‣참선으로 들어가게 되면 삼명육통이 없어요. 신통 없어요. 나올 수가 없어요. 이런 점.
그런데 깨쳐놓고 자기가 부처라고? 부처는 삼신을 갖춰야 되요. 절대계에 자기불신(自己佛身)이 있어야 부처인 거예요. 이건 정~말 깊은 이야기입니다.
‣‘무아’ 얘기를 했으니까 조금 더 말하고 넘어갑니다. 문제가 되는《아함경》의 성구(聖句)인데, 소위 성구가 있습니다. ‘유업보 무작자(有業報 無作者)’입니다. 이건 인과법에 어긋납니다. 이것을 갖다가 부처님 말씀을 엉글려고 이 학자들이 타~악 끼워 넣어가지고 경을 망쳐놓은 거예요. 무아론자들이 이것을 가지고 끈질기게 이론적인 근거로 삼는 거예요. 안 그럽니까? 이거 이거 말도 아닌 거예요. 업(-원인)과 보(-결과)는 있는데 짓고 받는 자가 없데요. 내가 지어서 내가 받는 거예요. 오늘의 결과는 원인이 없으면
안 되어요. 원인이 있어가지고 받는 거예요. 내가 지어서 다음생에 내가 받는 거예요. 내가 사람을 죽였으면 그 업에 대해서, 그 책임에 대해서 다음생에 내가 받는 거예요. 아! 그런데 업보는 있고 짓는 자가 없다네?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라고 콰~악 끼워 놔버리니까 무아론자들이 ‘옳다! 됐다!’는 거지. 그래서 이 불교가 이렇게 왜소화 되어버린 거예요. 인도에서 망해버린 거예요. 쫓겨나버린 거예요. 아쇼카 대왕, 카니쉬카 대왕이 전 인도를 불교화 시켰는데 쫓겨나버린 거예요. 힌두교 학자들한테 계속 공격을
당하니까. 무아(無我)인데, 주체가 없는데 어떻게 윤회하느냐 그거라.
그러니까 온갖 말도 아닌 그 식이론(識理論)이라든지 찰나설, 상속이론 등이 나와가지고 말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가? 됩디까?
‣그리고 선불교에서 주장하는 용수의 공(空)이 참나인가? 윤회의 주체가 되는가? 공(空)이? 그건 어디까지나 비인격이어. 윤회의 주체가 되려면 내가 지은 업이 달라붙을 체(體)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그 체는 비아(非我)가 되어버리지. 나의
당체에 업장이 막 덜렁덜렁 붙어 있으니까. 그거 이제 비아(非我)여. 그러니까 업장을 닦고닦고 씻고씻고 해서 원래의 내 당체가 드러나는 것이 아라한이어. 거기가 아라한이어. 아라한은 영체부터 색깔이 달라요. 하얗고 좋아요. 이 세상 사람들은 거무튀튀해요. 다~악도로 갈 사람들이라. 그 업장을 씻어야 돼. 우리 여기 법회에서는요, 우리 영산불교 붓다 회상은 겁에 하나 있어요 여러분. 이 법회 때 부처님이 업장을 씻어줘요. 오늘 오신 분 많이 씻어 주셔요. 씻어 주셨어요. 그렇게 아셔요. 이 법회에 빠지면 안 되어요.
‣선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어마어마한 가피력을 모릅니다. 가피력의 핵심은 업장소멸이거든요. 중생들이 다겁생을 살아오면서 지은 업장, 그 업장은 부처님 아니면 소멸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 업장 씻어야 돼, 소멸해야 됩니다. 공부인들이 부지런히 공부해서 화두들고 깊은 선정에 들면 업장이 일부 정화가 되기는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 위신력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어요.
또 우리 영산불교 천도재(薦度齋)를 어떻게 압니까? 역사에도 없는 천도재인데요.
저 사람들은 이해 못하는 거예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조상영가가 천도 된다고 하면 못 믿지. 자기한테 붙은 조상신도 모르는데. 안 보이는데요. 빙의된 원결영가는 더더욱 안 보여요. 그리고 보살급도 붓다 만들 때 그~ 부처님이나 오여래나 여러 문수 보현 관음 지장 등 큰 부처님들이 와서 그 부처님의 빛으로 업장을 씻어주는데요. 카발라, 유대교의 카발라, 그 신이한 것들은 정말 차원이 달라요. 카발라에서도 그 신이 자기의 애제자를 빛으로 씻겨줍니다. 그러나 우리 부처님하고는 천지현격이어요.
지금 내가 불과를 인가받은 지가 10년이 넘어요. 13년 째 되는데 지금도 씻어줘요. 그러니까 보살이나 아라한 정도는 그 땟국물이, 쉽게 말하면 1.2.3.4번 영체에 끼어들어가 있는 땟국물이 도랑을 이루어요. 빠져나가는 거예요. 도랑을 이루어요. 그래야 이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것을 몰라요. 선불교에서 하나도 몰라요. 이러한 불교는 21세기 인류를 향도할 수 없다 그거라. 21세기 인류를 인도할 수가 없어요. 영산불교밖에요.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되었나?
깨달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습니다. 했는데, 이제 이러한 내용을 누가 이야기 못합니다. 불과를 이루지 않으면 못합니다.
이 깨친다는 말은 진리나 이치를 궁리해서 아는 것. 알게 되는 것. 사전적인 뜻이 그래요. 그런데 선불교에서의 깨달음은 본성을 말해요. 본성을 알게 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선불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도가(道家)에서나 유가(儒家)에서도 깨닫는다는 말을 해요. 성리학이 나왔잖아요. 그들은 이치(理致)를 깨닫는다 그래요.
이치를 깨닫는다고 하지 마음을 깨닫는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 근본불교에서는 진리를 깨닫는다고 하지요. 이것도 알아 두십시오.
선불교에서 내가 긍정한 것이 있잖아요.
자, 가아(假我)를, 가아에 집착하면 업을 짓는다는 것은 맞아요. 이 가아, 거짓 나, 거짓 나한테 속지 말라 그거지. 거짓 나한테 너무 집착하지 마라 그거요. 여러분, 이 말에 대해서 집에 가서 많이 생각해 보세요. 거짓 나, 거짓 나에 집착해서는 안 되어요.
대답은 하시는데 정말 알아야 되요. 알아야 되요. 배가 고프면, 아!~그냥 저 사람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가서 맛있는 것만 먹는 것, 그것부터 이 거짓 나한테 노예가 되어 있는 거예요. 예의도 알고 염치도 알아야지요. 먹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 이 거짓 나에 집착이 되어 있어요. 중생들은 완전히 꽈~악 올가미가 씌워져 있다고요. 거짓 나, 이것 때문에 업을 지어요. 탐진치가 이것 때문에 나와요. 그래서 몸을 몸뚱이를 받는 거예요. 그러니까 몸뚱이를 안 받으려면 아예 육도, 그러니까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세계까지도 몸을 안 받아 버리려면 거기에 태어날 업을 안 지어버려야 되요. 그래야 되겠지요? 윤회에서 벗어날 그런 공부를 해야 되요. 그러면 윤회에서 벗어나요. 그런데 자력으로는 어렵습니다. 너무너무도 어려워요. 마침 부처님의 두 제자가 와서 이 현지사에 부처님들이 많이 와 계셔요. 겁에 하나 있어요 지금. 이때는 막~타력으로 그 업장을 씻어준다고요. 공덕을 지으면 어마어마하게 씻어주고. 심지어 자원봉사 하는 분들한테도 씻어주고. 법문 듣는 사람한테도 씻어주고. 그러니까 우리 신도분들
지금 한 10년 가까이 되는데, 씻어놓고 보니까 내가 볼 때 지옥 아귀 축생에 안 떨어지겠더라고요. 지금 우리 영산불교 말고 한국의 스님들, 여러분! 오계를 잘 지키고 음계를 잘 지키는 분이 거의 없어요. 열에 하나 둘 셋도 안 되어요. 그래야 이 사람들은 하늘가요. 오계 안 지키면 안 되어요.
여러분은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지만 영산불교 만난 덕으로 막~씻어주니까 어떨 때에는 빙의된 것도 떨어져 나갑니다. 마구 씻어주니까 여러분의 영혼체가 지금 회색빛이 대부분인데 거무튀튀하지는 않습니다. 회색빛. 거기는 6하늘 갈 정도라. 거기서 더하면
5하늘 가잖아요. 영혼체가 밝은 하얀 색깔. 아라한 정도 되어서 윤회를 벗어날 사람도 있어요. 보면요 그 사람들은 달빛처럼 아주 은은하게 나갑니다. 청정합니다. 그런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깨달았다는 사람, 옛날 사람, 다 보면 아니예요. 안 그래요. 안 그렇다는 것은 옳게 공부를 못했다 그거요. 진짜로 두타행을 하고 지계 청정해가지고 가야 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니까요. 깨달음에서 만족해버렸다니까요. 그래가지고 선서(禪書)를 읽어가지고 거기만 빠져가지고 격외(格外)는 또 잘하지. 선문답, 아~무리
선문답을 잘하고 잘한다고 해도 아라한 아니어요 여러분. 그건 말의 기교예요. 깨치면 할 수 있어요. 선서를 딱 보면, ‘아! 맞지! 아! 이렇게 해야지.’ 다 아는 거예요. 그런데 더 잘하려면 선서를 많이 보면 이제 박사가 되지. 그걸 보고 ‘야!~ 저 사람은 대체 희한한 질문을 하는데, 또 대답은 희한하게 하네. 아! 도인인가 봐.’ 그런데 그건 아니어요. 아무것도 아니어요 여러분. 깨치면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깨친 이후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깨친 이후는 정말로 계율을 잘 지켜야 됩니다. 함부로 대망어를 하면 극무간지옥
에 가가지고 고통을 받다가 혹시 사람으로 오더라도 삼중고 사중고 받으니까요. 죽으면 또 극무간지옥에 갑니다. 이거 슬픈 일이어요. 그래서 차라리 화두 참선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안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 부처님 작업하신 것 보면 그래요. 견성하면, 잘못하면 큰 죄를 지어요. 그러니까 차라리 그럴 바에는 안 하는 게 나아요.
위빠사나는 좋아요. 이 다음 시간에 언제 위빠사나의 몸을 받지 않는 그 원리, 갈애와 무명을 뿌리 뽑는 길이 있어요. 그건 사념처(四念處) 수행, 그거 잘 본 거예요.
알아차림. 그것에다가 집중하면 탐진치의 뿌리가 뽑혀지고 그 근본이 본체가 드러나는 거예요. 아주 좋은 거예요. 그래도 거기에서도 더 가야 되요. 세상이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다는 것을 철저히 했어도, 더 공부해야 되요. 그렇잖으면 안 되어요. 그렇잖으면 또 거기도 자아라든지 영혼이 없다고 해버리면 큰일 나요. 그건 잘못 말한 거예요. 어쨌든 오늘 여러분, 스님 말씀을 어느 정도 이해를 하십니까? 이해하십니까? (예~)
다행입니다. 천년의 선불교, 천년을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국불교의 주류예요. 그걸 오늘 주물렀는데, 이 법문 테이프를 듣는 선사들 선객들도 내 말을 수용해야지요. 전번에 한국의 최고라고 하는 어느 선사가 법문한 테이프를 내가 들어보니까, 하이구! 열 군데도 더 지옥 갈 말을 해요.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내가 법문하려고 했습니다만 이것이 또 소문이 나면... 안 그럽니까? 그래서 그걸 접었지요.
자, 오늘 이만합니다.
부처님을 찾는 팔정도 칭명염불 하겠습니다. 우리 부처님을 찾는 염불, 이거 정~말 공덕이 대단합니다.《법화경》을 보면《법화경》말씀이 맞는 거예요.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대단한 거예요.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스님이 두 가지 공지사항을 말씀드립니다. 한 달 후에 대전에서 법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 수계를 해줍니다. 일정을 바꿉니다. 한 달 후입니다. 이 수계, 계율 받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들, 부처님 앞에서의 다짐입니다. 붓다가 수계하는 것은 열시왕에게까지 입력이 됩니다 여러분.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꼭~ 수계는 해주십시오. 지금 한 100명 정도 신청이 된 것 같습니다. 여러분! 꼭 수계해 주십시오. 그래야 현지사 신도가 되고 부처님 정법문중에 귀의한 것이 됩니다 여러분! (예~).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다음, 무슨 다단계 건강식품 사업을 하시는 분이 있는 것 같은데, 조금 깊이 생각하십시오. 우리 신도들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안 되니까 깊이 생각하십시오. 이것만 말씀드립니다.
이제 마칩니다. (박수~)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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