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 일요일

(2013.10.6.일) 큰스님 춘천 법문

 영산불교는 우주적 메타종교


신불기 16년

불기 2557년 계사년 음력 9.2.

(2013.10.6.일) 큰스님 춘천 법문

VI-5, 220회


오늘 처음 오신 분 손 들어 봐주세요.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전번에 대전분원 불상 점안 때 나오시고 오늘 또 나오신 분? 지난 법회 때 나오시고 오늘 나오신 분? 스님이 법상에 올라와서 여러분들에게 하는 말씀은 진실만을 말합니다. 지난번 법회 때 나오시고, 또 나오시고 ‘앞으로도 현지사 신도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큰~ 복둥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손드신 분들은 꼭 나오십시오. 나오십시오.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은 스님의 설법 수준이 다른 절의 설법 수준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그것을 스님이 알기 때문에 쉽게 쉽게 하려고 하니까 그렇게 아시고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산불교 신불교는 부처님의 정법 문중 정법 교단입니다. 우주적인 진리를 지닌 불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적 메타종교라고 합니다. 우리 신불교는 영산불교는 우주적인 메타종교입니다. 이것을 아셔야 됩니다. 오늘 이 사실을, 진실을 선언합니다. 메타(meta)라는 것은 ‘뛰어넘어서’라는 말입니다. 모든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바운다리(-경계)를 훨~씬 뛰어넘어서 우주적인 진리의 불교이다 그거예요. 진짜 불교이다 그거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현지사 부처님 정법에 귀의해야 됩니다. 귀의하시는 분은 복둥이라고 했습니다. 복둥이라는 말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남은 생도 잘 살 것이고, 다음 생도 보장되고, ‘결국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삼계를 탈출해서 극락왕생까지 할 수 있다 그 말입니다. 여기 영산불교에서만 가능합니다. 어제는 한 400명~500명의 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상대로 해서 한국의 불교 선불교(禪佛敎)의 실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시간이 모자라서 충분하게 해부를 못 했지만 나름대로 중요 부분을 짚고 진단을 해봤습니다.


오늘은 스님이 이런 내용의 법문을 한두 번 한 것 같아요. 했지만, 왜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가 우주적인 메타종교인지 그 이유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세상에는 종교가 많습니다. 2000년~3000년 전으로 소급해서 상당히 주목할 만한 종교들이 조로아스터교를 시작으로 여러분이 잘 아시는 유대교라든지 기독교라든지 이슬람교라든지 자이나교라든지 불교라든지 유교라든지 도교라든지 그~ 굵직굵직한 세계적인 종교가 생겨났습니다. 그 종교에 소속된 종파까지 합하면 기독교만 해도 종파 수가 2만여 개가 된다고 합니다. 많은 종파 ‧ 종교가 지금 세계에 널려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붙잡아야 할 종교는 불교랍니다. 불교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불교는 글자로 말하면 ‘반자불교(半字佛敎)’라고 합니다. 온전한 글자가 아니고 반쪽 글자라고 합니다.《열반경》에서는 반자(半字)라고 합니다. 반자(半字).


그래서 지금까지의 기존 불교, 어떤 경전을 소의(所依)로 해서 지금 그 교세가 크게 신장되어가고 있는 불교 종파도 있고 혹은 또 사양길에 들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저기 남방 쪽의 테라바다(-상좌부 불교), 이쪽 대승권에서는 소승불교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아함경》을 소의경전으로, 위빠사나를 수행법으로 하는 정통 불교입니다. 그건 내가 평가합니다. 그러나 아라한이 끝입니다. 그래서 좀 안타깝지요. 부처님께서는 출세 당시에 그 정도로만 말씀하는 것이 좋겠다 해서 그 정도로 말씀한 것입니다.

 

‣다음에 티베트 밀교(密敎)가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그 힘을 잃고 인도에서 밀교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주류가 티베트로 흘러가가지고 티베트 밀교를 이루었습니다. ‘달라이 라마’를 여러분 아시죠? 그분이 바로 그쪽 사람인데 지금까지 ‘달라이 라마’가 세계적으로 끼친 영향이 대단합니다. 그런 밀교가 있습니다.

‣선불교(禪佛敎)가 있습니다. 어제도 내가 이야기했는데 미안하지만, 정통 불교는 아닙니다. 인도 불교 유식(唯識)과 여래장(如來藏)사상과 중국의 도교가 손잡아서 태어난 것인데, 말하자면 사생아지요. 그런 선불교가 있습니다.

자, 그 종파 불교, 기존의 불교,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반자(半字)불교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런데 선불교는 그냥 반개로 뛰쳐나갔습니다.


7년밖에 되지 않은 우리 영산불교, 여러분! 현지사가 지니고 있는 사상은 앞으로 10년 100년 가게 되면 반드시 세계화가 됩니다. 반드시 세계화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적인 종교이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 영산불교 신불교는 우주적인 종교예요. 우주적인 종교예요. 왜?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되요. 무엇 때문에? 힌두교가 우주적인 종교라고 우쭐댔습니다. 그런데 영산불교 사상에서 볼 때에는 아닙니다. 힌두교는 아닙니다. 내가 언젠가 힌두교를 주제로 해서 말씀드릴 것입니다. 다음 약사궁 법회 때에는 기독교를 주제로 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에는 그 허점을 단편적으로만 간단하게 짚고 넘어갔는데 어제 선불교와 같이 그 실체를 드러내어서 여러분들에게 소개를 해드릴까 합니다. 그 다음 적당한 때 여러분에게 힌두교를 주제로 해서 법문하기는 해야 되겠는데 법문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 불교대학생을 상대로 해서 들려줘야 되는데, 그런 기회가 올 것입니다.

 

이렇게 훑어보면 동서고금의 모든 철학, 적어도 우주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저기 그리스철학이라든지 인간의 주체에 대해서 대단히 깊이 사유한 실존철학이라든지, 이쪽 동양에서의 도교라든지 성리학(性理學) 이학(理學), 또 왕양명의 심학(心學:심즉리설-마음과 천리(天理)가 하나라는 말, 지행합일설-지식과 행위는 본래 하나이므로 알고 행하지 아니하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 등은 참 훑어볼 만합니다. 그리고 힌두교의 육파철학, 이러한 것은 영산불교 사상과 비교해서 볼 때에 그 모든 사상은 반자(半字)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기존의 불교를 포함해서 반쪽 글자예요. 반쪽 글자입니다. 왜? 왜 그러느냐? 한마디로 그들은 사후세계에 대해서 자신이 없습니다. 그 정도의 깊이 가지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된다?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젊은 사람들한테는 중요하지 않아요. 피가 끓는데 뭐 저세상 따위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꼬부랑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내일모레 죽을 날 받아 놓은 사람들은 대단히 심각해요. 저세상이 있나 없나? 그렇잖습니까? 심각합니다. 그런데 전생에 수행도 하고 선근이 있는 사람들은 젊어서부터 그것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20대에 출가를 했지요. 그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어요. 안타깝지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그 많은 과학자들 철학자들, 또 종교를 개창한 소위 이 세상에서는 성자(聖者)라고 하는 수장들 교주들, 그 사람들은 그렇게 깊이 들어가지 못했어요. 들어갈 수가 없어요. 인간의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사후세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이야기를 못 했다고요. 우리 부처님처럼 사후세계를 이야기한 분이 없어요. 공자(孔子)는 생(生)만 이야기했잖습니까? 사(死)는 못 봤으니까 이야기를 못 한 거예요. 못 본 거예요. 우주의 궁극적인 실체를 깨쳤다 하더라도 사(死)에 대해서는 어둡습니다. 아직은 모릅니다.

 

여러분 그거 알아야 됩니다. 내가 알기 때문에 경험했기 때문에 스님이 ‘깨달음은 시작이다.’고 한 거예요. 거기서 더~ 들어가야 되거든요. 더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래서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소위 탐심-탐욕ㆍ욕심, 진심-성내는 것ㆍ화내는 것ㆍ욱~ 하는 성질, 그리고 공포에 대한 경계에 자유로워야 되는데 자유롭지 못합니다. 깨달아가지고는 아직 안 됩니다. 그래서 두타행으로 해서 그 정도 가게 되면 아라한이라고 해요.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그 이상은 이 인간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은 못 되어요.

우리 부처님같이 그렇게 수승한 우주적인 분은 없어요. 부처님은 혼자 선정에 들고 삼매에 들고 해서 거리낌 없이 개척해갔지만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 있습니까? 없어요. 저 세계적인 종교의 교주를 봅시다. 예수ㆍ마호메트ㆍ힌두교의 여러 성자들ㆍ노자ㆍ공자 등 이런 사람들을 봅시다. 그분들은 이 정법 문중의 보살이 아니어요. 정토세계의 아기 해탈신을 갖지 않아요. 그렇지만 그 인품이나 신통의 힘 등을 볼 때 우리 정법 문중의 보살급으로 봐주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끝이 있어요. 결코 저렇게 영원히 하늘 왕으로 있을 수가 없어요. 거기는 끝날 날이 있어요. 그런데 정법 문중의 보살과를 증했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아기 해탈신이 있으니까 불퇴전(不退轉)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 기존의 불교를 위시해서 모든 철학 종교에서는 사후세계에 어두웠어요. 잘 몰라요. 전혀 몰라요.

 

이 지구를 위시해서 항하사 수같이 많은 천체가 있어요. 그 중에 지구만 보더라도 해와 달이 있잖아요. 바다가 있고 육지가 있고 식물이 있고 동물이 있고 천둥을 치고 신기루가 있고 남자가 있고 여자가 있고… 참 기묘해요. 그런데 기독교에서 그랬잖아요. 지구가 둥글다고 생각지 않고 평평하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리고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잖아요. 기독교는 모든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기독교가 믿었던 이 천동설(天動說)이 깨져버린 것이 몇 백 년 안 됩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에 의해서 깨져버린 것이 얼마 안 되어요. 이제 기독교 이야기는 나중으로 밀어버리고요.

어쨌든 이 우주가 어떻게 해서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이것은 사후세계를 알 정도 되면 알아요. 생과 사에 대한 생사관이 탁 터져버린 사람은 알아요.

여러분 이 지구가 무게로 따지면 천문학적이어요. 천문학적이지요? 이 지구가 허공에 있어요. 허공에. 누가 받들어 주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 허공에 있어요. 갠지스 강 모래 수와 같이 많은 천체들이 다 허공에 있다고요. 한번 생각해 봐요. 무엇이든지 받혀주는 것이 없으면 됩니까?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 공을 던져 봐요. 받혀주는 것이 없으면 떨어져 버려요. 허공에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천체들이 별들이 다~ 움직인다고요. 돈다고요. 천체 모두가 자전 공전을 한다고요. 이거 기막힐 일이어요. 이거 불가사의하잖아요. 무슨 힘으로 그러느냐 그거예요. 무슨 힘으로?

또 기독교를 오늘 말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이 육중한 지구와 같은 천체가 갠지스 강 모래 수같이 많은데, 그 많은 것을 다 들고 있나? 혼자…허 참. 또 움직인다? 돌린다? 이거… 이거 말이 안 되거든요.

이것은 자연의 법칙으로 그래요. 법칙이 있어요. 법칙. 어떤 법칙이냐? 끌어당기는 힘을 중력(重力)이라고 하지요. 중력, 당기는 힘을 인력(引力)이라고도 하지요. 또 밀치는 힘이 있어요. 이런 것으로 해서 조화가 되어 있어요. 상호견제를 해서 조화를 이루어요. 조화가 있어요. 참~ 기막힌 일이어요. 이것을 현대물리학에서는 ‘하드론 부트스트랩’(hadron bootstrap-하드론hadron은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 중성자 등을 말한다. 부트스트랩bootstrap이론은 핵자(양성자 중성자)간의 강한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양자역학 이론)이라고 합니다.

 

과학을 보면 이 허공에 있는 것들이 서로 견제하는 그 힘으로 조화를 이루고 평행을 이루고 하는 거예요. 전부 서로서로 상의상자(相依相資)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만 없어져 버려도 그 그물이 망쳐버리듯이 큰일 나버리는 거예요. 대단히 정교하게 되어 있거든요. 이거 기가 막힐 일이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만들었다고요? 하나님 혼자, 유일신이? 하나님이 머리가 천(千)이 있다고 하거든요. 우리 부처님의 화신은 천도 더 되어요. 백천만억이 문제가 아니어요.《법화경》을 보면 팔천만 나유타 아승지의 화신을(-분신불을) 둘 수 있어요. 맞는 거예요.

그래도 수많은 천체가 상호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 우리 부처님의 힘으로 그런 것 아니어요. 자연법칙으로 그렇게 되어 있어요. 이게 공(空)의 성품입니다. 공(空), 본체(本體). 본체 안에 법칙성이 있어요. 조화의 법칙ㆍ자연의 법칙이요, 우리 인간세상은 또 인연의 법칙ㆍ인과의 법칙ㆍ상의상자의 법칙 등 이런 우주의 법칙 자연의 법칙으로 딱~ 돌아가는 것이지 어떤 유일신이 어떻게 자존자(自存者) 이전에 있어가지고 이 우주를 만든답니까? 공(空)ㆍ우주의 본체는 자존자입니다. 그 이전에 유일신이 어떻게 있어가지고… 눈 달리고 코 달리고 입 달린 하나님이 있었다는 거예요. 눈 달리고 코 달린 하나님이 있으면 그 아버지가 있어야 되고 어머니가 있어야 되요.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면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어야 되요. 이게 참~ 어려운 난문제인데요.

이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공인을 받을 때까지는 많은 고비를 겪었지만, 교학을 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많이 원용(援用)한 거예요. 그래가지고 교부철학(敎父哲學, patristic philosophy)ㆍ스콜라철학(scholasticism)에서 1000년도 넘게 자기네 교리와 사상을 집대성한 것인데, 다 분(粉)칠한 것이라. 그 실체를 보면 초등학생 수준도 아닙니다. 초등학생들에게나, 호랑이 담배 먹던 시대에는 그게 통했지.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본론입니다.

자, 우주적인 메타종교. 왜 현지사 불교를 우주적인 메타종교라고 하느냐? 왜 만자불교(滿字佛敎)라고 하느냐? 이제 가득할 만(滿)자예요. 반자(半字)가 아니고 온전한 글자인 거예요. 이것은《열반경》이라든지《증일아함경》이라든지《화엄경》에 예언이 되어있어요. 오늘날 우리 교단을 다 이야기해 놓은 거예요. 저 김00교수님 보셨어요? 우리 전00교수님 다 알지요? 참 기막힐 일이에요. 모두 자기 종교에서 메시아가 나올 줄 알거든요. 증산도에서는 그 증산, 옥황상제가 재림할 것으로 알거든요. 언제? 격암유록이나 많은 선지자가 예언해 놓은 비서(秘書, 秘訣)가 있어요. 그것은 공통으로 메시아(messiah-구세주)가 나올 해를 1980년대~1990년대 사이로 봅니다.

그런데 상제(上帝)는 지금 오지 않았잖아요. 안 왔잖아요. 그때 누가 태어났나? 그때가 광명불님이 불과(佛果)를 증한 때예요. 정말로 붓다가 메시아인 거예요 여러분. 붓다 이상의 성자는 없습니다. 그것을 알아둬야 됩니다. 자, 그건 그렇게 놔두고.


왜 우주적인 종교냐? 우리 교주가 불세존이죠. 부처님이죠? 부처님에게는, 모든 붓다에게는 대단히 불가사의한 삼밀(三密)이 있습니다. 세 가지 비밀스러운 면이 있어요. 신밀(身密)ㆍ구밀(口密)ㆍ의밀(意密)이 있다고 해요. 삼밀이라고 합니다. 이건 놔두고,

신밀(身密)을 봅시다. 몸의 불가사의한 면이어요. 그 성질, 유형에 따라서 법신ㆍ보신ㆍ화신의 세 가지 몸을 나툴 수 있어요. 부처님은 세 가지의 몸을 두어요. 여러분 상상할 수 없어요. 상상할 수 없어. 여기서의 법신, 부처님의 법신 이름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해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은 대광명지체(大光明智體)․광명ㆍ빛ㆍ빛덩어리 몸으로, 비로자나를 광명변조(光明遍照)로 번역하는데 바로 무량광덩어리예요. 무량광이라고 하는 빛을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처음 소개해놨잖아요.

무량광, 불과를 증하려면 무량광이라고 하는 그 관문을 통과해야 되요. 이 빛은 자연의 햇빛과 다르고, 수행자들이 견성하면 자성광(自性光)이 드러나게 되는데 그 자성광과도 다릅니다. 이 무량광은요. 이 무량광은 몇 십 차원 위입니다. 무량광 빛은 너무너무도 밝아서 눈이 시린 것이 아니라 실명(失明)할 정도로 밝아요. 한여름의 햇속 보다 백천만 배가 아니라, 전번에 포항의 방사광가속기(放射光加速器)에서 빛을 빼낸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그 어떤 빛, 최종적으로 발견한 빛이 있잖아요. 그것이 햇빛보다 수천만억 배가 밝다고 하거든요. 무량광 빛은 그것보다 더 밝다 그거예요. 이게 무량광이어요. 이게 부처님의 비밀이어요.

 

그런데 이 빛의 색깔이 백 가지도 더 되고 일곱 가지가 아니어요. 백 가지도 더 되고 천 가지도 더 되고,《화엄경》을 보면 나유타 색깔ㆍ아승지 색깔ㆍ천만억 빛깔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그것의 조합체예요. 이거 이거 신비로운 빛이거든요. 그런 빛으로 부처님의 몸뚱이가 이루어져 있어요. 무량광 빛으로 부처님의 몸뚱이가 이루어졌다 그거예요. 그러한 빛으로 몸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부처가 되면 법신(法身)을 두게 됩니다. 보신(報身)을 두게 되고요. 법신은 보신의 근본이어요. 이 보신에서 화신(化身)을 나투어요. 수백천억의 화신을 나툽니다. 모든 붓다들이 다 그럽니다.

자, 그런데 힌두교에서는 크~게 잘못 본 것이 이것을 못 봤어요. 그래서 화신이 범(梵)에서 나온 줄 알아요. 그렇잖습니까? 지금 화신이 아홉 분 나왔지요? 저것들은 아홉 번째가 우리 석가모니부처님이라고 하지. 여덟 번째 크리슈나 다음에 화신으로 나왔다고 해요. 그것이 범(梵)에서 나온 것으로 알거든요. 여기에서 나오지 못합니다. 범(梵)을 기반으로 한 보신, 이 보신 본체가 되는 거예요. 이것 없이 화신이 나올 수가 없어요. 보신에서 나온 화신은 보신과 닮아야 되요. 보신은 눈이 있고 코가 있고 다 있단 말이에요. 보신과 화신은 닮아 있거든요. 법신에서 화신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만 알아도 ‘힌두교가 아니다.’ 하는 것이 나와요. 여러분!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부처님은 우주적인 몸뚱이, 그것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고 해요. 모든 붓다는 우주적인 몸뚱이를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안에다가 가지고 있습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해서 보신이 나온다고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형체화 된 몸이 보신이어요. 이것이 형체화 된 몸. 모든 능력을 이것 보신이 가지고 있게 되어요. 이것을 보신(報身)이라고 해요. 원만보신(圓滿報身)이라고 합니다.

청정법신부처님은 비로자나불이라고 하는 대지의 광명체를 지니고 있어요. 이것은 우주적인 몸이어요. 왜 우주적인 몸이냐? 왜 우주적인 몸이라고 하느냐? 우주적이어요. 삼천대천세계가 아니라 수많은 삼천대천세계를 포괄한 것이 우주 아닙니까?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 우주적인 몸이라고요. 왜? 왜 그런지 압니까? 이거 알아야 되요. 이 억종광명ㆍ무량광명으로 이루어진 이 빛은 땅 속도 비추어요. 해는 땅 속을 못 비추잖아요.

 

이 무량광 빛은 여러분 몸도 촤~악 볼 수 있어요. 이 무량광덩어리가 된 부처님은 여러분의 마음 씀씀이를 다 알아요. 드러난 것처럼 알아요. 그리고 이 빛은 광도(光度)와 강도(强度)가 얼마나 강하던지 이 지구는 물론 삼천대천세계를 뚫어버린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은 우주 자체가 되어가지고 항상 삼계(三界)를 삼천대천세계를 비추고 있다고요. 우주를 비추고 있다니까요. 그 빛 자체 몸 신(身)자를 붙여서 법신(法身)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청정법신이 우주본체, 우주를 낳은 그 본체, 허공, 텅~ 빈 밝고 밝고 청정하고 그~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ㆍ성품을 지니고 있는 그놈을 다 먹어버린 거예요. 너무나 밝으니까요.

여러분 저녁에 전기를 탁 켜보세요. 전기 불빛이 어둠을 다 먹어버리잖아요. 그와 같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의 빛이 삽시간에 우주 전부를 그냥 안아버린다고요. 꿰뚫고 있다고. 항상 비추고 있는데 그 빛이 끝도 갓도 없어요. 끝도 갓도 없이 나온다고요. 그래서 무량(無量)이어요. 무량광이라. 이 불가사의한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어요. 이 무량광을 모르면 불교를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 이후로 지금까지 무량광을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까? 없었어요. 불교의 정법, 진짜 불교를 알려면 무량광을 알아야 됩니다. 진짜 불교를 알려면, 그러니까 온~ 우주의 이치를 꿰뚫으려면, 생사를 꿰뚫으려면 부처가 어떤 분인 줄 알아야 되요. 부처님이 어떤 분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기존의 불교는 어떠합니까? 2600년 전의 싯다르타, 그분만 부처예요. 그분이 돌아가셔서 어디로 갔는지 몰라요. 모릅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셨나 그거예요. 돌아가셨는데, 우리 그~ 위대한 부처님이 어디로 가셨을까 그거야. 이 부파불교, 그러니까 부처님 가신지 100년~200년 후에 우리 근본불교가 20여 개로 많이 분파되었는데, 그 모든 부파의 그 학승들이 큰스님들이 그것을 연구한 거라. 그렇지만 답을 못 받았거든요. 도대체 부처님은 어디로 갔느냐 그거예요. 그 위대한 우리 부처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디로 갔느냐 그거야. 절대 다수의 많은 불교학자들이나 불교신자들이나 성직자들은 공(空)으로 회귀(回歸)해버렸다. 공으로 돌아갔다 그래요. 공(空), 텅 비어버린 것, 무(無)로 돌아갔다 그거라. 이게 말이 됩니까?

그렇게만 알고 있었는데 무아(無我) 무아하니까 이제 또 공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맞다 해가지고 그렇게 하는데, 알고 보니까 당신한테로 갔다 그거라. 당신한테로, 자신의 보신부처님한테로 갔다 그거라.

불과를 증하게 되면 절대계에 32상을 지닌 무량광으로 이루어진 자기불신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무량광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영원히 멸도할 수 없어요. 부처님이 반열반 하시면서 자기의 영혼체가 그 자기 붓다한테 간 것을 우리 태사부님이 알았어요. 기막힐 일이지요. 자, 그 보신부처님의 위력은 어머 어마한데, 그건 놔두고.

 

법신,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은 앞에서 우주적이라고 했잖아요. 공(空)은 우주를 낳고 발전시키고, 진화하고, 또 파괴되어 없어지고, 다시 또 태어나게끔 합니다. 그리고 우주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그 천체들이 하나도 오차 없이 제자리에서 자전하면서 자기 궤도를 돕니다. 이거 이거 기가 막힐 일이에요. 그런데 부처님은 기막힌 우주이법 자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거예요. 부처님은요. 이법(理法)을 깨달으면서 이 우주이법 자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거예요. 더 나아가서 우주와 동체(同體)가 되어버린 거요. 우주와 빛으로 하나가 되어버린 거예요. 하나가 되어버린 거예요. 부처님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은 우주 자체인 대지의 광명체 그럽니다.

그러면 도대체 청정법신은 어떻게 생기느냐? 여러분 붓다의 삼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주 밀장(密藏)입니다. 그러나 스님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수행자의 여여(如如)의 지(智)가 여여의 이(理)와 계합한 우주적인 몸을 청정법신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너무 어렵지. 다시 풀어서 말하면 대적정삼매에 들어서 나(我)라고 하는 당체ㆍ성품 -그 성품은 붓다가 되려니까 많~은 지혜와 복덕을 닦아서 성취한 그 지(智)ㆍ복덕ㆍ사랑ㆍ자비의 성품, 나라고 하는 성품, 즉 나의 무량광 본성이 우주 자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거예요. 이것을 법신이라고 합니다.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불교도 법신불이 뭔지도 몰라요. 공(空)을 법신불이라고 해요. 그렇지만 우리가 이야기하는 법신불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그~ 청정을 넘어서 무아, 0.00001%라도 자기 생각이 있으면 무아가 아니어요. 완전히 무아가 되어가지고, 그 법신불의 성품 자체는 지(智)와 사랑과 자비와 복덕과 능력이 다~ 그것 자체이거든요. 그 나가 우주 본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 법신불이어요. 그래서 이것을 비인격(非人格)이라고 하지만 밀교에서는 이불(理佛)이라고 해버려요. 인격불(人格佛)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나는 반인격(半人格)이라고 하고 있단 말이어요. 그렇잖습니까? 본체야 비인격이지만 법신불은 반인격이라고 해야 돼. 왜? 눈․코가 없어요. 생각이 없어요. 행위 할 수 없어요. 그러면서도 지(智)와 사랑과 복덕과 능력을 완전히 갖춘 분이기(-빛이기) 때문에 이것은 반인격이라고 하면 좋겠다 하는 것이지.

그래서 이제 보신이 생기잖습니까? 보신이 생기는 이유가 있어요. 이것은 말 못해요. 극비(極秘)입니다. 불과를 이루게 되면 절대계에 자기 불신이 생기게 되요. 무량광세계인 상적광세계에요. 그것이 보신이거든요. 그 보신이 진짜 중심이어요. 이 보신이 진짜예요. 고기 같으면 가운데 토막이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이 보신은 법신에 근거해서 나온 거예요.

 

자, 보신은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어요. 부처님들은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어요. 각각의 부처님들은요. 그건 아시잖아요. 어마어마한 능력이 있어요. 교가에서는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이라고 하지요. 십력(十力)ㆍ사무소외(四無所畏)… 등등 해서 십팔불공법이라고 하는데, 어쨌든 우리 부처님의 진불인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은 우주 자체예요. 그분을 우리가 교주로 모시고 있어요. 부처님 중에서도 우리 중생을 건지시기 위해 업장을 씻어주고 탐진을 멸해주고 삼매에 이끌어주고 하는 분은 보신불의 몫이어요. 이 보신불이 하신다고요. 이 보신부처님, 그~ 전지하시고 만능자재하신 거예요. 법신부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예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무소부재, 진짜 우리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무소부재예요. 빛을 항상 삼천대천세계에 비추니까, 그 빛으로 충만 되어 있으니까 아니 계신 곳 없지. 법신부처님 개념으로는 부처님이 아니 계신 곳 없어요. 보신부처님의 개념으로는 우리 현지사에서만 계신다 하는 거예요.

 

이 법신,《금강경》에 그랬잖아요.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고 거래(去來)가 없어요. 머묾도 없어요. 이 법신불의 성격이 그렇다고요. 그러면서도 일체지를 다 지니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사유할 수가 없어요. 행위 할 수가 없어요. 법계를 그대로 비추고 있다고요. 이분을 움직이려면 보신불이 들어가야 되요. 인격불인 자기가 이 법신불 속으로 들어가야 된다고요. 그래서 초하루가 되면 삼계의 붓다님들이 전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들어간다고요. 그러면 그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형상화 해가지고 뜬단 말이에요. 떠가지고 우주적인 작업을 해요. 지구적인 작업도 하고, 우리 한국의 국가적인 차원의 작업도 하고, 우리 여기 현지사 바운다리 작업도 하고 그럽니다. 이거 기막힐 일입니다. 그 능력이 어마어마하다고요. 이번에 지신재(地神齋)를 음력 9월 15일에 하지요? 우리 부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영혼체 작업을 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그 무슨 소원을 들어주는 것에 앞서서 업장을 씻어줘야 되니까 거기에 보너스로 나가는 거예요.

 

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우주 그 자체입니다. 우주에 변만(遍滿)해 있는 대지의 광명체, 우주 생명의 주인이지요. 우리 부처님의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그래요. 그런 분을 우리가 교주로 모시고 있어요. 그 일체종지를 지니시고 대자대비하시며 우주적인 구원력을 지니고 계신 부처님을 우리가 교주로 모시고 있어요. 부처님은 정법 문중 최고의 지존(至尊)이셔요.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를 우주적인 메타종교라고 합니다.

힌두교는 안 되어요. 이런 것을 기준으로 힌두교를 보십시오. 그 힌두교가 우주적인 종교입니까? 그것은 아닌 거요. 아예 범(梵)을 인격으로 봤는데요. 그리고 아트만(atman)이 어떻게, 그 범에서 분화된 아트만이 윤회의 주체가 됩니까? 윤회의 주체가 되려면 1ㆍ2ㆍ3ㆍ4번 영체의 주인공이 윤회의 주체인 거예요. 아트만은 윤회의 주체라 할 수가 없어요. 많~은 허점이 있어요. 내가 지침을 주니까 우리 교수님들이 연구해서 파헤쳐야 된다고. 힌두교가 우리 영산불교 때문에 그냥 망쳐버린 거예요. 그런데 철학이 대단한 종교입니다. 힌두교는 정말로 공부해볼 만한 종교예요.


불법의 깊은 뜻은 대승불교의 법신부처님에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법신부처님이어요. 대승불교 경전을 보면 법신이 많이 나와요.《능가경》을 위시해서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읽어보면 모를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몰라요. 그리고 이 보신 이야기를 이렇게 설명한 적은 부처님 이후로 처음이어요. 무착ㆍ세친 대에 삼신불 사상이 정립되지만, 당신들이 불과를 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석이 어색해요. 아니어요. 불안정하고 충분하지 못해요. 안 그렇습디까? 충분하지 못해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어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참뜻은 대승불교의 법신부처님이다. 법신부처님을 몰라가지고는 불교를 설할 수가 없어요. 불교를 설법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설법해서는 안 되어요. 궁극을 알아야지요. 끝까지 알아가지고 법을 설해야 되는 것인데 눈 먼 중생을 상대로 법상에 올라가서 법 아닌 말을 하면 큰일 나는 거예요. 큰 과보를 받는 거예요. 사후세계가 없다든지, 윤회를 말이 안 된다고 설한다든지, 불ㆍ보살이 없다고 한다든지 하면 안 되어요. 그 사람들은 알 수가 없지요. 깨달은 분상에 가가지고 모르는데, 깨닫지도 못한 학승들이 올라가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막 이야기한다고요. 큰일 날 일이지요.

 

부처님의 삼밀(三密), 신밀(身密)도 모르면서, 부처님의 신밀, 즉 법신ㆍ보신ㆍ화신, 이 몸의 신비로운 소식을 모르면서 어떻게 법문을 합니까? 큰일 나는 거예요. 다음 생에 나오더라도, 무간지옥에서 사람으로 몸 받아 오더라도 삼중고(三重苦)ㆍ사중고(四重苦) 받아 나온다. 이게 맞습니다. 부처님 말씀이어요. 그래서 이렇게 정법 문중에서 말하는 만자(滿字)의 경지에 가지 않고서는 함부로 법문하면 안 됩니다. TV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말 잘하는 스님들이 있어요. 나가서 말하는 것을 보면 큰일 날 말을 한다고요. 1시간 하면 큰일 날 말이 몇 개나 잡힌다고요. 그래서 전번에도 이야기했잖습니까? 이 수행승의 깨달음과 부처님의 깨달음, 깨달음이 똑같은 줄 알고 부처님을 각자(覺者)로 해석해서 깨달은 사람들이 ‘자기나 나나’ 그런다고요. 오히려 조사(祖師)를 부처님 위에다가 놓는다니까요. 어제도 말했지만, 그건 아니어요. 큰일 납니다.

자, 깨달음이 뭔지 압니까? 이 본체, 우주의 본체, 혹은 선(禪)에서 말하자면 마음이지요. 본체하고 마음은 좀 다르지만, 지금 선에서는 그것을 몰라요. 마음은 본체 플러스(+) 나 당체(當體)예요. 이것이 마음이어요. 불성이어요. 그런데 이 본체를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깨달음이라고 해요. 여기에서 나왔으니까, 모든 것이 이 본체에서 나왔으니까. 이것을 보는 것은 대단해요.

그런데 그 깨달음의 경계가 확~ 뒤집혀가지고 온통 세상이 허공과 같이 되어버리거든요. 깨달을 때의 경계가 그렇습니다. 환~한데 허공과 같아요. 청정하고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있는데 이 수행자의 마음은 그렇게 즐겁단 말이어요. 그러니까 부처가 다 된 줄 알지요. 거기가 끝인 줄 알지요. 이 깨달음은 그렇습니다. 수행자의 깨달음은 그럽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깨달음은 여기서 백천만리나 더 올라가요. 부처님의 깨달음은 《화엄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스님 말씀을 듣고《화엄경》을 보면 아주 쉽습니다. 깨달으면 어떻게 되느냐? 부처님이 깨달으면서 당신의 진불이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과 일체가 되어버려요.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얼마나 어마어마한 줄 압니까? 여기는 본체를 보는 정도가 아니어. 본체를 보는 것이 아니고, 부처님과 본체하고 나유타겁 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합된 합일된 인격체, 자기 법신과 하나가 되어버린다니까요. 하나가 되면서 절대계에 있는, 상적광세계에 있는 보신(-자기 보신)과 셋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화엄경》에서는 둘이 하나가 된다고 했는데, 셋이 하나가 됩니다.《화엄경》에서는 둘이 하나가 된 것으로 되어있지요? 자, 보신(-자기 보신)도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보리수(菩提樹) 아래에 있는 이 몸하고 절대계에 나유타겁 전에 불과를 이루어서 생긴 저 불신(-보신불)하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하나가 되어버린다니까요.

 

그러면서 깊~은 삼매에 들어가 버립니다. 해인삼매 적정삼매에 들어가 버리는 거예요. 그러자 하늘에서는 만다라화 만수화의 꽃비가 내리는 거예요. 부처님께서 좌정하고 계신 보리수 그 근방의 바운다리에다가 1미터 정도의 두께로 그~ 아름다운 너무너무도 아름답고 깨끗하고 청정한 꽃들이 막 뿌려진다고요. 축하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삼천대천세계가 육종진동을 한다고요. 어마어마하잖아요. 그러면서 딱 선정에서 나와서 삼매에 나와서 삼천대천세계를 무량광 빛으로 비춰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보리수를 중심으로 해서 그 세계는 정유리세계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정유리세계가 되어버린다니까요.《화엄경》〈세주묘엄품〉을 보세요. 내 법문을 듣고 봐요. 그렇게 쉬우니까요. 정리정돈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되요. 그런 사람이 없으면 교학도 절대 앞으로 못 나갑니다. 눈이 탁 터져야 폭 나가요. 그래 지금 우리 교수님들 수준이 대단한 거예요. 나무에서도 꽃에서도 방광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삼천대천세계의 세주(世主)들이 모두 달려온단 말이어요. 불‧보살님들 성중들 천인들이 와서 찬탄하느라 그 숫자가 수천 만억을 헤아려요. 경배드리고 찬탄하는 거예요. 부처님의 정각(正覺)과 수행자의 깨달음이 어떻게 됩니까? 비교하겠습니까? 지금은 저 사람들이 몰라요. 깨달음을 수행자의 깨달음이나 부처님의 깨달음이나 똑같은 것으로 알지요? 내가 오늘 이야기한 것은 정말로 최초 법문인 거예요.


그 부처님께서 이곳에 와계신다 그거예요. 보신부처님께서. 기라성같은 부처님들이 따라서 현지사에 와계신단 말이어요. 무슨 일로 와 계신 줄 압니까? 보통의 일로 와 계신 줄 압니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보통 일이 아니어.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그럴 것입니다. 저 법문은 처음 듣는데, 다른 절에서 법문을 많으면 한 10년 20년 들었다고 합시다. 이런 법문을 처음 듣는 법문이라는 거라. 부처님 계신다는 법문인데 기막히고 이해도 못 하겠고, 또 이거 뭐 대우주를 이야기하고 삼천대천세계를 이야기하는데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요.

어디 유교를 보세요. 도교를 보세요. 어디 삼천대천세계입니까? 불교는 우주 자체에 서서 이야기하니까 그 바운다리가 어마어마합니다. 그렇잖습니까? 시간도 나유타 아승지… 이렇게 나가요. 그러니까 다른 종교는 뭐 발붙일 수 없는 거예요. 겨우 힌두교가 우리를 따라온다고 따라오는 거라.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가 태어나서 차버리니까 산 아래로 떨어져 버린 거예요.


부처님은 우주적인 구원력이 있어요. 이거 이거 참 복음(福音)이어요.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는 감로(甘露)의 복음이어요. 업장소멸이라고 하면, 업장이라고 하면 탐‧진‧치까지 습까지 다 포함해서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의 업장을 소멸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이것은 부처님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살려면 부처님 회상을 만나야 되요 여러분. 지옥에 가서 극고(極苦)를 받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까무러쳐 죽는 그런 극고를 받는 지옥에서 한없는 세월을 보내고 나오면 아귀나 짐승세계에 태어나는데, 짐승세계에 태어나더라도 가령 소로 20생 구렁이로 50생… 그 업이 쌓입니다. 그럴 사람을 그렇게 될 중생이 공부하고 선근공덕을 지으면 씻어주신다고요. 업장을 소멸해 주신다고요. 그런 분은 부처님밖에 없어요.

 

있지도 않은 하나님이 구원한다고 하거든. 말도 아니지요. 모든 것은 업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사람을 구원하려면 업장을 씻어주고 소멸해줘야 되는데 하나님이 말로? 그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니까 다음 시간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진리라는 것은 상식에 맞아야 되는 것입니다. 합리적이고 이치에 맞아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칸트가 말했나요? 전번에도 이야기했었습니다. 보편타당성과 플러스 사유필연성, 이것이 진리라는 거예요. 상당히 맞는 말이어요. 기독교를 보세요. 다른 종교의 이야기를 보세요. 그게 진리에 맞는 말인가? 하나님이 있어라 해가지고 있어버렸다 그거라. 하루아침에 하루 동안에 그냥 온 천체를 다 만들어버렸거든. 엿새만에 만들어가지고 피곤해서 하루를 쉬었다고 하거든. 스님이 다른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아야 되는데, 이 불교가 너무 위대하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니까 비교를 해줘야 된단 말이어요. 해주는데 있어서 의도적으로 흠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객관의 입장에서 시(是)와 비(非)를 말해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눈뜨기를 바라는 그런 자비심에서 하는 이야기라고요.

 

어제도 선불교(禪佛敎)를 이야기했는데, 절대로 선불교를 매도(罵倒)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어요. 선불교, 1000년~1500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고 또 스스로의 자긍심은 대단하지요. 동양 정신문화의 정화(精華)라고 하니까요. 그런 선불교를 갖다가 1시간 동안 해부했는데, 의식적으로 매도하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니어요. 아니어. 그 선불교의 소위 대종사(大宗師)라고 하는 분들이, 조사(祖師)라고 하는 분들이 부처님을 아주 비하(卑下)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잡기 위해 말씀드렸습니다. 어제도 이야기했지요? 부처님을 똥치는 막대기식으로 알고, 그 악담을 합니다. 이건 아니거든요. 그러면 안 되거든요. 아! 후학들이 따라서 할 것 아닙니까? 따라 합니다. 합니다. 법상에 올라가서 한다고요. 왜 그런 무서운 망어(妄語)를 짓습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요.

 

우주 자체인 거룩하시고 희유하시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우리 부처님을 갖다가 그렇게 모독하고 능멸하니까 스님이 부득이 말씀해주는 거예요. 진실을 이야기해 주는 거예요. 이 진실을 이야기해줘야 되요. 그래야 그 사람들이 소문 소문 입소문을 통해서 좀 자성(自省)하지요. 지옥에 갈 죄를 짓지 않지요.

‘업장소멸을 해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부처님뿐이다!’ 하는 것을 아십시오. 그래서 팔정도 칭명염불이 나온 거예요 여러분. 참회하면서 발원하면서 참사람 되어가지고 착한 사람 되어가지고 열~심히 반가부좌해서 합장하고서 일심으로 부처님을 부르는 거예요. ‘제가 어리석어서 지금까지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업장을 씻어주옵소서~’ 하는 발원으로 부처님을 염(念)하시라고요. 염불하시라고요. 그러려면 부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잖습니까? 그래야 신심이 더 돈독해집니다. 불교가 이렇게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야 되요.

 

어느 불교 종파에서 ‘불교는 우주적인 종교다. 왜냐?’라고 말을 한 종파가 있습니까? 부처님을 몰랐는데요. 지금까지 부처님의 위대함을 몰랐는데요. 부처님이 어디에 계신 줄 몰랐는데요. 지금까지의 불교가.

모든 종교는 해탈까지는 어렴풋이 봤어요. 저 플라톤 같은 분도 이데아계를 생각하고 주장했잖습니까? 그 이상은 못 갔다고요. 그 이상 못 갔단 말이에요. 상락아정의 니르바나세계는 전혀 몰랐단 말이에요. 더더구나 그 위의 절대세계 상적광세계는 꿈에도 몰랐다고요. 부처님을 몰랐다고요.

오늘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에 아쉽습니다. 자, 외도는요, 사마외도는 미래가 없어요. 이 말을 여러분에게 강조해줍니다. 이 말에 대해서는 이 다음에 이야기해요. 사마외도는 미래가 없어요. 왜? 그 이유는 이다음에 이야기할 것입니다. 사후세계뿐만 아니라 육도윤회라든지 육도윤회를 벗어난 저기 적멸의 세계 ‧ 상락아정의 니르바나세계 ‧ 상적광세계를 아는 분이 지금까지 없었다 그 말이어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 회상에서의 불공(佛供)이라든지 천도재라든지 이건… 이건 역사에도 없고 세상에도 없는 거예요. 그리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 도대체 어디서 나와서 어떻게 되고, 이러한 것을 확철히 아는 교단은 우리 교단이어요. 정말 아직 몰라요. 꿈속이거든요.


내가 라디오를 가끔 들어보면 세상사 돌아가는 것이 재미있어요. 그래서 가끔 틀어보는데 보니까 여러분한테 꼭 들려드릴 이야기 거리도 나오더군요. 우리가 남은 생을 잘 살아야 되잖습니까? 잘 살아야 되지요. 다음 생은 물론이고 잘 살아야 되요. 스님은 여러분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거예요. 영원히 잘 사는 길을 여러분한테 지금 말씀해드리는 거예요.

‣정주영씨를 알지요? 이미 작고한 정주영씨가 대단히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잖아요. 서울에 와가지고 돈이 없으니까 품팔이를 하면서 삼류 오류의 그 하숙방에서 잠을 자잖아요. 그때만 해도 빈대가 드글 드글했습니다. 정주영씨가 생각하는 것이 보통사람이 아니거든요. 지혜가 보통 아닙니다. 지혜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려고 그러는 거예요.

 

저녁에 빈대한테 뜯기고 보니까 못살겠거든. 낮에는 죽도록 일했는데 저녁에 푹 자야지. 이 빈대를 어떻게 처치해서 빈대한테 공양을 안 해야 되겠는데 이거 어쩌나? 그때 허름한 침대 위에서 자는데, 침대 발이 네 개 잖아요. 어떻게 했는지 압니까? 다 망가진 세숫대 4개를 구했다고요. 물을 가득 채워가지고 어떻게 한 줄 압니까? 침대 발이 4개지요. 세숫대에 물을 담아 그 침대 발 4개에다가 각 1개씩 담갔습니다. ‘빈대 너희들은 침대 기둥을 타고 나한테 왔는데 이제는 물에 빠져서 못 와. 너희들 이제는 안 된다’ 하고 잠을 잤습니다. 저녁 늦게 한~참 곤하게 자는데 뭐가 막 물어가지고 불을 켜서 보니까 빈대들이 몸에 붙었단 말이에요. 도대체 이 빈대가 어디서 왔나 하고 보니까, 그 빈대가 침대 발을 타고 오지 않았어요. 요놈들이 죽을 길로 안 가. 알고 보니까 못 가는 줄 알았단 말이어. 벽을 타고 천정으로 가가지고 다이빙을 했단 말이어. 다이빙을 했어요. 이게 웃을 일이 아니어요 여러분. 그래서 정주영씨가 깨친 거예요. ‘하!~ 미물도 살 궁리를 하면 나오는구나. 하물며 나는 만물의 영장(靈長)인 사람인데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문제는 지혜다’라고 생각했어요. 불교에서 지혜를 가장 소중히 여기잖습니까? 지혜다 그거라. 그분이 보통 머리입니까? 거기에다가 골똘히 사유하다가 보니까 하는 일마다 되는 거예요. 안 될 일이 없는 거요 여러분. 단, 복이 있어야 되요. 정주영씨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거든요. 복이 없으면 지혜가 있어도 손 덴 것은 다 망해요. 그렇잖습니까? 복을 지어야 됩니다 여러분. 복을 지어야 돼. 그래서 지혜와 복덕을 지어야 되는 거예요. 불교는 그래요. 지혜와 복덕(-방편)이라고 해요. 지혜와 방편을 같이 지어가야 돼.

그런데 선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시해버린다고. 오직 공부 공부 화두타파 화두타파 해가서 화두타파 하면 삼매도 소용없어. 견성만 하면 다 해탈인 줄 알지. 아니어. 견성해가지고 안 돼. 일상으로 돌아와 버리면 이제 먹통이어.

여러분 재미있지요?

 

‣그 다음, 전번에 어떤 라디오를 들으니까 어느 처녀에 관한 일화인데 참 대단해. 뭐가 대단하냐? 처음에는 자기 집이 잘살았다 그거예요. 잘살았다 그래. 어느 날 아버지가 사업하다가 하루아침에 망해버렸단 말이어요. 그래가지고 고등학교를 나올 즈음 이제는 어떻게 하나?~ ‘이제는 내가 벌어서 학교를 가야 되고, 내가 가장이 되고 내가 벌어서 저 불쌍한 아버지 어머니를 봉양해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계획을 세웠데요. 장기 계획, 중기 계획, 단기 계획, 날마다 계획을 세웠어요. 그래가지고 날마다 계획을 다~ 실천해서 다 이룬 거예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좋은 아파트에 살았는데 망해버리니까 빚쟁이들이 다 가져가 버렸거든. ‘이제 우리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서 내가 저 정도의 아파트는 기어이 내가 사주고 죽으리~’ 그것이 소원이어요. 그래서 따~악 계산해보니까 10년을 벌면 되겠더래요. 10년을 모으면 되겠더래요. 그때 이 처녀가 스튜어디스를 합격했거든. 10년을 모으면 되겠다. 내 이 스튜어디스 봉급 가지고 아껴서 쓰고 나머지는 최대한 저축해서 10년을 원리금으로 딱 계산해보니까 아파트 사겠더라 그거라. 그러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한테 아파트 하나를 사 드릴 수 있겠더라 그거라. 그래서 장기 계획 중기 계획 단기 계획 날마다의 계획을 타~악 세워가지고 나가는데 다~ 이루더라고요. 10년이 못 되어서 아파트를 사줬데요. 그게 플러스 알파(+∂-얼마를 더하는 것)가 있더래요. 딱 사드렸다 그거라.

 

방송통신대학이라고 있잖아요. 스튜어디스로 있으면서 방송통신대학을 할 수 있잖아요. 그 방송통신대학 4년을 졸업했어요. 딱 해놓고, 이제 4년제 야간대학 석사학위 코스를 나왔어요. 석사가 되었어요. 박사학위도 또 넣었어요. 그래가지고 박사학위까지 받았네. 스튜어디스를 16년 했어요. 이제 박사학위를 받아가지고 항공서비스학과 교수로 픽업(pickup-여럿 가운데서 뽑힘)되었어요. 아! 이런 여자가 있더라고요. 이런 알차고 당찬 여자가 있더라고요.

우리 인생을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여러분. 목표 없이 살면 안 되어요. 목표 없이 살면 안 돼. 목표를 딱 설정하라고. 설정했으면 앞뒤 가리지 말고 앞만 보고 가야 되는 거예요. 앞만 보고 처~억 하는 거예요. 성실하게 사는 거예요. 그렇잖습니까? 사실은 목표 달성보다도 과정이 중요한 거예요.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이렇게 하면 날마다 성실하게 사는 거예요. 날마다 성실하게 살아야 되요. 그러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거든요.

그 여자는 지금 30대 중반이 넘었으면서도 아직 결혼을 못 했더구먼. 못 했지만 자기는 당초의 꿈을 넘어서 박사가 되고 교수까지 되었으니까… 그리고 말도 아주 조리 있게 잘하더라고요. 그 말소리도 꼭 여자다운 아주~ 선량한 여자더구먼.


우리 신도분들한테, 선남자 선여인들한테 이런 말까지 해드립니다. 여러분 자녀를 기를 때 꼭 유념해야 되요. 자식 교육이 여러분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요. 컴퓨터에 빠지면 큰일 나요. 미칩니다. 그러니까 이 아가씨처럼 그렇게 살도록 교육해야 되요. 정주영 씨처럼 지혜를 개발하는 그런 정신을, 또 도전하고 개척하는 불굴의 정신을 넣어줘야 되요. 그러면 되요. 되는데 복을 짓도록 해야 되요. 지혜만 있으면 안 되거든요. 복을 지어야 되요. 여러분 어떤 것이 복인지 알지요?

지난 시간에 복 짓는 말을 했습니다. 아주~ 대단한 법문을 했는데 복 짓는 것이 많아요. 부처님 교단에다가 선근공덕을 짓는 것이 최고의 복이어요. 최~고의 복이어요. 그리고 불쌍한 이웃을 배려하는 것. 불쌍한 이웃, 그러니까 가난하고 병들고 늙은 이 불쌍한 사람을 지나치지 말라고요. 여러분 복을 좀 지어야 되요. 염라대왕이 물어볼 거예요. 무슨 복을 지었느냐? 정말이어요. 무슨 복을 지었느냐 그거요. ‘나는 복 지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면 큰일 나지.

자,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는 부처님이 와계신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정법문중이다. 여러분은 부처님 정법문중의 신도이고 선남자 선여인입니다. 귀의를 잘~한 거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 귀의해야 됩니다. 귀의(歸依)라는 것은 부처님을 믿고, 부처님 계심을 믿고, 능력을 믿고, 부처님의 말씀을 따르는 거고, 그렇게 참회하고 발원하면서 염불하고 그러면서 선근공덕도 짓고 그러시라고요. 꼭 그렇게 해야 됩니다. 어쨌든 부처님 회상에 오시기를 정말 잘했어요. 오늘 이곳으로 발을 잘 돌렸어요. 앞으로도 계속 나오시라고요.

자, 부처님을 칭명하는 염(念)하는 시간입니다. 1분 정도 석가모니부처님을 칭명하겠습니다. 지금 재래식 염불과 좀 달라요. 재래의 염불은 극락정토에 가는 데는 아미타부처님을 많이 염하라고 하는데요, 그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그 부처님의 소의 경전을 읽고, 그 부처님의 다라니를 하고, 그런 후에 그 부처님의 성호(聖號)를 불러야 되는 거예요.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여러분! 염불삼매 아시죠? 성지 스님! 틀어보세요.


아침마다 금강경 읽고 다라니하며

염불삼매 반야지혜 번뇌가 소멸

희망에 찬 염불삼매 부처님 만나

희망에 찬 염불삼매 정토에 간다


저녁마다 염불공부 업장이 소멸

반야지혜 밝은 빛은 정토에 나고

해인삼매 깊은 위력 보살행 하며

적정삼매 무량광명 붓다가 되네


자, 이상입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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