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 일요일

(2013.6.13.목)큰스님 대전 소참법문

 

                                                      

 

 

 

 

 

 

아만(我慢)에 대하여

신불기16년

불기 2557년 계사년 음력 5.5 미타재일

(2013.6.13.목)큰스님 대전 소참법문

V-8, 210회


오늘은 대전분원 미타재일입니다. 미타재일. 항상 소참법문이 있는데 많이 왔으면 좋을 텐데... 한 500명 올 줄 알았는데... 우리 불교도들이 아주 수행이 적고 어리석어서 정법교단을 몰라보지요. 말법세상이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 중에서 지옥종자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지옥종자는 우리 정법문중을 알 수 없지요. 올 수도 없고 인연도 없습니다.

오늘 나와주신 우리 착한 단월님들은 분명히 과거생에 선근공덕이 많습니다.

 

선근공덕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은 생 잘살고 가정이 평안하고 근심걱정 없고, 앞에서 우리 스님이 축원을 한 바와 같이 자녀들은 부모님께 효도하고, 남편이나 아내 되신 분은 상대방의 속을 썩이지 않고 화목한 불자가정이 되어가지고 큰 어려움 없이 잘 살 것입니다. 우리 정법문중에 인연이 있는 분들은 죽어서 절대로 악도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부처님 가신 지가 2600년 되는데요, 사람들한테 저세상이 있다고

 

말하면 웃어버려요. 우리 불교신도도 그러합니다. 사후세계(死後世界)를 아는 곳은 영산불교밖에 없습니다. 이곳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깨달았다고 하는 분들이 나오지요. 그건 시작입니다. 그 입장에서 저세상 못 봅니다. 그런데 다~된 양, 부처가 다 된 양 법상에서 큰소리하지요. 큰~죄를 짓지요. 여러분들은 큰스님이 5년~10년 동안 법문을 해오고 있는데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얼굴이 다르잖아요. 모양새가 다 다르잖아요. 생각도 다 달라요. 부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이 있고,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병약한 사람이 있고, 지체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요, 예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기 싫은 추남추녀가 있습니다. 이 세상은 그렇습니다. 과거생에 지은 바가 다 다르니까 그래요. 여러분, 다음 생이 있어요. 남은 생도 잘살고, 다음 생도 좋은 국토에 나고, 지옥 아귀 축생에 안 떨어지려면 여러분! 길이 있어요.

 

그래서 오늘 소참법문이지만 내가 처음으로 칠판을 갖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법상에 앉으면 가령 한문자를 이야기하려고 해도 이 글자는 좀 어려운데... 이거 참 안 되겠다. 또 불교용어를 말할 때에도 꼭 칠판에 써주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새로 오신 분이나 학력이 짧은 분들은 참 어렵지요.

그래서 오늘 소참법문이지만 처음 칠판을 갖다 놓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아만(我慢)’에 대한 주제로 짧게 법문합니다.

 

 아만. 이렇게 하면 또 모른다고요. 그렇지요? 아시는 분은 아셔요. 아만.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아만. 자, 이 ‘만(慢)’자. 이게 굉장히 중요해요. 이 ‘만(慢)’자가 우리 불교에서는 굉장히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만(慢)’자. 교만하다는 만(慢)자인데 교(驕)자 하고 틀립니다. 이 교(驕)자가 있어요. 이것(만자)과 뜻이 좀 다른, 이게 교(驕)자입니다. 이 교(驕)자 하고 이것(만자)은 달라요. 우리가 삼악도를 윤회하고 사람으로 와도 고생고생하고 병약하고

 

뭘 하려고 해도 안 되고, 자식들은 말 안 듣고 남편은 속을 썩이고 하는 이유가 있어요.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다섯 가지 대단히 못된 뿌리깊은 근본번뇌가 있습니다. 다섯 가지 족쇄가 있어요. 이놈을 추방해버려야 되요. 이 마음을 뿌리 채 뽑아서 던져버려야 되거든요.

자, 다섯 가지 족쇄를 아시는 분?

이게 불교 교리의 기본이어요 여러분. 나는 지금까지 교학에 입각해서

 

법문 하지 않았어요. 매번 내 이야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조금씩 교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 다섯 가지 족쇄. 여러분, 삼독(三毒)은 알지요? 탐․진․치는 알지요? 거기에다가 둘만 보태주면 되요. 뭔 줄 알아요? 탐진치에다가 요놈(-慢)하고, 그 다음에 뭐지요? 의심(疑)이어요. 칠판에다 글씨를 쓴 지가 오래되다가 보니까... 이것이어요(-疑). 탐진치에다가 만(慢), 의(疑) 이 두가지거든요.

 

여러분 탐진치는 아시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이 ‘만(慢)’가지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만(慢)’은 잘 몰라요. 그렇지요? 뭐가 ‘만(慢)’인 줄 압니까? 이 뜻은요, 이것(교-驕)과 이것(만-慢)은 교만하다는 말로 새기면 나와요. 그래요. 그런데 이것(-교)하고 이것(-만)하고는 다릅니다. 이 교(驕)자는 학식이라든지 용모라든지 지위라든지 혈통이라든지 모든 것이 남보다 출중해서 스스로 자만하고 거만하고 오만해서 남을 업신여기는 것입니다. 교(驕)입니다. 아셨지요?

 

요놈(-慢)은 아니어요. 요놈(-慢)은 요것(-驕)보다도 아주 더 뿌리가 깊습니다. 근본번뇌, 다섯 가지의 근본번뇌 중에서 네 번째에 속한 거예요. 그렇지요? 탐진치만의(貪瞋痴慢疑)니까. 네 번째에 속해요.

요놈(-慢)은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느냐?

세상 사람들은, 중생들은 이 몸뚱이를 나(我)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교학에서는 이 몸뚱이를 색․수․상․행․식으로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오온(五蘊)이라고 그래요. 색․수․상․행․식, 이것을 오온이라고 해요. 이 몸뚱이 하고 마음 생각 정신 이것을 이야기한 거예요. 색, 물질적인 것, 이것은 지수화풍 사대로 이루어져 있지요. 이 생각은 정신은 수․상․행․식으로 기능이 이루어진다 그래요. 그래서 이 몸뚱이와 정신을 합한 것, 이게 오온이어요. 사람들은 이것(-몸뚱이)을 나(我)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요?

여러분! 은연중에 항상 이런 생각이 있어요. ‘나는 내일 어디를 가야 되는데...

 

나는 열흘 후에 누구한테 곗돈을 줘야 되는데... 내 아들 누구는 1년 있으면 대학입학시험을 보는데...’ 중생은 항상 ‘나라고 하는 생각’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요. 나라는 생각, 그 나라는 생각 속에는 은연중 교만심이 있어요. 뿌리가 깊어서 스스로도 깨닫기가 쉽지 않아요. 이게 만(慢), 아만(我慢)이에요.

그런데 그 나라는 생각은 사실 가아(假我)입니다. 가짜입니다 여러분. 가짜예요. 여러분은 지금 가짜에 그냥 족쇄가 채워져 가지고 살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공부를 해서 깨달아버리면 여기에서 해방이 되요. 해방이 되어버려요.

여러분 잠자면서 꿈을 꾸지요. 꿈을 꾼단 말이에요. 꿈속에서 온갖 일을 하신단 말이에요. 세상도 구경하고 누구하고 어디를 가기도 하고 이리저리 많~이 활동하잖아요. 그 꿈에서 깨버리면 어떻지요? 허망하지요? 그렇습니다. 깨치면 세상이 허망해요. 꼭두각시놀음같이 보여요. 허망해요. 나(我)라는 생각은 뚝 떨어져 나가버려요. 나라는 것은 뭔 줄 압니까? ‘나’하면 ‘너’가 있어요.

 

그래서 내 것 네 것 이렇게 챙기는 거예요. 나(我)가 나누는 거예요. 그것을 소아(小我)라고 해요. 소아(小我) 아시죠? 중생은 소아적이어요. 나밖에 몰라요. 사실은 거짓인데. 이 몸뚱이는 거짓이어요. 진짜 여러분으로, 나(我)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건 거짓이어요. 과거생에 내가 업을 지어서 그대로 내가 받은 거예요. 과거생에 내가 설계해서 모든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들이 모여진 거예요. 내가 업을 짓지 않았으면 안 그랬어요. 여러분들이

 

조금 더 좋은 일들을 많이 하시고 수도를 많이 했으면 여러분의 얼굴은 수도인 같이 보일 것이고 죽은 데가 없을 것이고, 사람들이 보면 거룩하게 보이고 그래요.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습니다. 이 몸뚱이도 나라는 생각도 거짓이어요. 나가 아니어요. 이것은 조그마~한, 하나의 조그마~한 굴레, 이 바운다리 안이어요. 깨치면 그것이 무너져버려요. 그 바운다리가 벽이 무너져버려요. 그래가지고 텅~비어버려요. 깨치면 한순간에 이 대상이 뒤집어져가지고

 

전~부가 없어요. 몸뚱이도 없어요. 그러나 꼭 남는 것이 있어요.

텅~빈 공간하고, 딱 의식하는 것 알아차린 것만 남아요. 그런데 그 알아차린 것도 나라는 것이 없어요. 나라는 생각, 그 알아차림이 아니어요. 그것만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나가 원래 그렇게 큰 거예요. 이 우주를 다 먹고 있는 거예요. 그게 진짜 나예요. 그런데 이 다음 음력 8일날(6월16일) 내가 깨달음을 주제로 해서 법문하겠는데 지금 간화선하는 사람, 참선하는 사람들의 깨달음

 

은요, 잘 모르고 있어요. 그런 경계가 벌어져요. 그러나 그러나 어떤 찌꺼기, 버려야 될 찌꺼기가 지금 있어요. 그래서 깨치더라도 두타행을 해가지고 더욱 정진해 들어가야 되요. 깨치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어요. 절대 끝나는 것이 아니어요. 거기서 더~더~정진해야 되요. 두타행으로 더 정진해야 되요. 그래야 아라한이 되어요. 아라한이 되어가지고도 저세상이 있는 것을 몰라요. 안 보여요. 그러니까 더~정진을 해야 되요. 그래서 이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어요. 붓다 정도 되면 이 세상이 모두~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요,《금강경》의 마지막 게송(-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이 맞는 거예요.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요. 탐․진․치 이 놀음이, 이것은 아주~나를 올가매는 족쇄인 것을 알게 되어요. 소아적인 것이 없어요. 우주아(宇宙我)적으로 살아요. 그러니까 탐진치의 뿌리가 뽑혀져버리니까 탐진치의 경계에 자유로워요. 별별스러운 탐욕의 경계가 나와도 괜찮아요.

 

마음이 안 흔들려요. 나는 온~우주를 머금고 있어요. 이게 깨달음이어요. 이게 아라한의 경계예요. 더 나아가면 많~은 억겁다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악업 업장이 다~무너지고, 탐진치가 다~ 뿌리 뽑혀져버리고, 억겁다생으로 내려오면서 나쁜 짓 했던 습과 기가 다~녹아버려요. 이렇게 되어야 이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래야 이제 보여요.

아!~저세상이 보이고요. 중음세계가 보이고요. 사람이 죽어서 중음세계를

 

 넘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무주고혼이요. 그 원인도 알고요.

지금 불교는 ‘무아!~’ 해서 ‘나가 없다!’ 해가지고요, 지금의 학자들이 무아 일변도로 해석을 해요. 완전히 내가 없는 것으로 이야기하거든요. 그거 아니어요. 지금의 위빠사나 수행도 그게 문제예요. 위빠사나도 참 훌륭한 수행법인데 문제예요.

자, 텅~ 빈, 텅 빔을 알아차린, 이게 나예요. 이게 진짜 나예요.

 

이게 나의 주체예요. 이게 없으면 어떻게 텅 빈 것을 봅니까? 이것을 지금 간과하고 있어요. 어쨌든 이 ‘만(慢)’, 이게 소아적입니다. 소아적이에요. 그것을 영어로 ‘에고(ego)’라고 해요. 에고 아시죠? 나만 생각하는 것. 내 욕심만 차리는 것. 이게 에고입니다. 이게 떨어져 나가버려야 돼. 이게 떨어져 나가버려야 돼. 요놈이 떨어져 나가버려야 돼. 나라고 하는 생각, 자의식(自意識)이라고 해. 자의식. 그것은 가짜 나를 갖다가 이게 나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오온, 이 오온이 거짓입니다. 또 잠자리에 들어서 잘 때 생각하기를 ‘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노? 나 어떻게 해야 되지?’ 바로 그 나는 거짓 나예요. 거짓 나예요. 그놈이 있는 한 업을 지어요. 그놈이 있는 한 업을 짓는다고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극락가려고 ‘아미타불 아미타불’ 하고 많이 염불합니다. 이 다섯 가지 족쇄를 풀어서 던져버려야 되요. 탐진치만의,

 

이 다섯 가지 근본번뇌를 뿌리 채 뽑아버려야 되요. 그래야 부처님께서 마정수기를 하시고 빛을 쏘아주시고 그럽니다 여러분.

그런데 여러분은 그렇지 않으시고 이 에고(ego)에 빠져가지고, 에고에 그냥 꽈~악 갇혀가지고 지금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에고에 갇혀서 사니까 업만 짓는 거예요. 남이 밥 먹는데, 남은 밥도 더 많고, 보니까 아주 돈도 많아서 온갖 맛있는 것을 시켜먹는단 말이어.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해. 화가 나.

 

이처럼 나라고 하는 생각에 갇혀있으면 남이 부러워 보이고 더 잘된 사람이 부러워 보이고, 그래서 못된 생각이 일어나고 온갖 수단방법을 강구해서 슬쩍 도심(盜心-도둑질하고 싶은 생각)이 생기고, 높은 자리에 앉았으면 갖다 주니까 슬쩍 받아먹는단 말이어요. 온갖 나쁜 짓을 한다 그거예요. 나라는 생각, 이 거짓 나예요. 여러분은 전~부 거짓 나에 묶여서 삽니다. 여러분 그거 알아야 되요.

 

그러니까 이 거짓 나를 알아가지고 당당하게 부처님제자로서 수행정진하려면 탐진치만의의 뿌리를 뽑을 생각을 해야 되요. 뿌리 뽑아야 되요. 그러면서 정진해나가면 공부가 빨라요. 또 깨달음도 그 앞에 가 있거든요. 금방 깨닫거든요. 깨달으면요, 1차는 고민이라든지 근심걱정이 없습니다. 세상이 아름답고 그렇게~평안해요. 보통 선근이 있어가지고 깨닫는 것이 아니어요. 거기가 다가 아닙니다. 절대로 다가 아닙니다. 지금 선불교(禪佛敎)

 

에서는 거기가 종점으로 알아요. 끝으로 알아버리거든요. 그래서 예수도 깨달았고 붓다도 깨달았고 나도 깨달았고, 이렇게 나간다고요. 불보살? 어디 절대계에 계신다? 이것을 생각 못해버려요. 자기가 지금 텅~비어버렸는데. 이것만이 있는데. 그래서 법상에 올라가가지고 큰~죄를 지어요. 지옥도 없지요, 극락도 없지요, 텅~비어 버렸는데 이 속에 무슨 극락 지옥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혜능스님한테 어떤 선남자가 가서 ‘극락세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극락왕생을 한다고 염불을 막 하는데 극락세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혜능스님을 부처같이 봐가지고 찾아가서 물은 거예요. 육조 혜능이라고. 선불교에서 최고로 추대받고, 선불교를 개창 개종한 불자입니다. 혜능스님이 어떻게 한 줄 아십니까? 텅~빈 것은 알았거든요. 봤거든요. 텅~빈 것은 봤어요. 이 세상이 전부 꿈속인 것을 알았어요.

 

그건 알아요. 알지만, 정말로 다겁생의 죄업장을 소멸하지 않았고 탐진치의 뿌리가 완전히 뽑혀지지 않았고 습이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는 대답이 엉터리인 거예요.

극락 지옥 없지요. 자기가 보는 한에는 없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보고 그래요.

혜능 : ‘내가 극락을 보여줄까? 보여주기를 바라나?’

선남자 : ‘하!~보면 내 신심이 어떻게 되어가지고 한없이 즐거울 텐데 보여주세요.’

 

혜능 : ‘그럼 보여주지. 극락이 있는가 없는가 봐라! 자, 봐라!’

하고 손을 쫘~악 펴줬어요. 손을 쫙 펴줬다고.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첫째, 지옥 극락이 있다는 것이 아니어. 그건 망상이어. 그 말이어요. ‘극락 지옥이 어디에 있어? 그런 망상피우지마!’ 그런 말도 있지요.

두 번째, 바로 네 마음을 이렇게 비워버리면 거기가 극락이어. 그 말도 되요. 내가 한 50년 전에 그 당시 조계종에서 한국의 제일 도인이라는

 

두 도인이 있었어요. 경봉스님, 전강스님. 아시죠? 경봉스님 문하에 내가 있었거든요. 그 분이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원고를 내가 다 정리하고 했습니다. 내가 이제 친하니까 스님께 여쭈었습니다.

‘스님! 저는 항상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저세상이 있다는데, 또 나쁘게 살고 못된 죄를 지으면 지옥도 가고 착하게 살면 하늘도 가고 극락도 간다는데, 저는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도대체 극락,

 

사후세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물었거든요.

나는 그 분을 붓다로 알았습니다. 지금도 그러지요. 그 분을 추종하는 불교학자들은 붓다시합니다. 그렇게 돌아가셨지만 부처님같이 여불대접을 하거든요. 내가 저 ‘산중대담’에도 이 말을 했었지요. 그랬더니 내 머리에 군밤을 탁 주면서 ‘야 이놈아! 망상피우지 마! 있기는 어디에 있어 이놈아!’ 이러거든요.

 

하이구! 이상하거든. 아니 극락 지옥이 없다면 뭣 하러 중이 돼?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내 생각이 맞을 거예요.

‘아니, 극락도 없고 불보살도 없으면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하니까 ‘가기는 어디로 가! 나한테 가지.’

이거 말하자면 텅~빈 자리로 돌아간다 그거라. 자기 고향으로 왔던 데로 간다 그거야. 요즘 신문에 그러잖아요. 큰스님 돌아가시면

 

 ‘적멸과 계합했다’ 이런 표현을 하잖아요. ‘공(空)과 계합했다’ 그 말이 그 말이어요. 그러면 ‘아니! 스님같은 사람이 돌아가시면 깨버렸으니까 깬 자리로 돌아간다 치고, 죄지은 중생들은 죽으면 어디로 갑니까?’ 허허! 이건 말 못하는 것이거든. ‘이놈아! 망상피우지 마!’ 하더라고요. 여러분! 이제 내가 보니까 거기는 아직 시작입니다. 시작이라는 말 알겠습니까? 깨달음을 견성(見性)이라고 해요. 견성을 깨달은 것이라고 해. 자, 견성. 성품

 

성(性)자예요. 성품을 봤다 그거예요. 성품 성(性)자, 이 성품은 뭐냐? 마음자리라고 그래. 그건 뭐냐? 우주를 낳은, 우주를 낸 본체를 말해요. 우주를 낸 자리여. 이 우주만물 인간이 어디에서 왔어요. 거기서부터 나왔다는 바로 그 자리. 그건 텅~비어 있어요 여러분. 견성해보면 알아요. 화두타파하면 그게 탁~ 나온다고. 이 대상이 뒤집혀져가지고 벌어진다고.

그 견성자리. 그 마음자리를 본 것을 견성이라고 그래. 깨달음이라고

 

하거든요. 깨달아가지고는 이제 시작이더라 그거라. 이제 시작이더라 그거라.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가 그렇게 딱 본 그것이 희미해져 버려요. 그러니까 안 그러려고 보림을 하는 거예요. 열심히 정진해야 되요. 온갖 계율을 잘 지키고, 정~말 무섭게 진짜로 정진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착이 떨어집니다. 이 몸, 나라고 하는 생각, 아집에서 떨어져 나가버려야-그것이 뿌리 뽑혀져야 집착이 떨어져 나가버립니다. 그래야 거기가 아라한

 

이어요. 이게 현지사 사상입니다 여러분. 어디까지나 깨달음은 시작입니다. 그런데 선방에서는 그 옛날 조사스님들이 깨달은 과정이라든지 그 어록(語錄)이 있어요. 조사어록(祖師語錄-그 스님의 깨달은 인연, 깨달은 후 수행자를 제접하면서 행한 문답을 기록한 글). 그것만 보고 있어요 지금. 깨달으면 다 된 줄 알아요. 여기서 한 발자국도 못나가고 있어요.

벌써 30분이 지나갔네!


그러니까 아만을 놓아버림으로서 집착이 떨어져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요. 아만을 비워버림으로서 우주본체와 직면해요. 대면해요. 우주본체가 드러난다고요. 그러면 그 우주본체를 그대~로 알아차려야 되거든요. 거기가 순수의식이예요. 거기는 그 순수의식만 있거든. 우주본체를 알아차리는 그 순수의식. 그 순수의식이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한 나(我)예요. 나 주인공이거든요. 나 주인공이 없으면 여러분! 뭣 하러 공부해요?

 

뭣 하러 공부해요? 수행을 하고, 그래서 깨닫고 했다는데 나(我)가 없으면 누가 깨달아요? 누가 깨달은 거요? 나가 없고 너도 없다고 해버리면, 선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도 없고 너도 없다면 사람 죽여도 죄가 아니지요. 죄가 안 되지요. 사람을 죽여도 죄가 안 되지요. 그 사람이 죽어서, 뭐 지옥도 사후세계도 없는데 어디로 가는 거요? 나가 없고 네가 없다면 무슨 원결이 있겠어요. 원래의 주체,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는 주체,

 

 이건 없다고 하면 안 되지요. 그러면 허무주의가 되어버리지요.

나(我)가 없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만(慢), 에고, 소아(小我), 오온(五蘊)을 나라고 생각하는 그 나’, 이것은 분명히 가짜 나예요. 이것은 없다는 말은 되요. 이건 없다고 생각해야 되요. 이건 나가 아니라고 생각해야 되요. 이건 비아(非我)라고 해요. 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되요 여러분. 그러나 진짜 나는 있는 거예요. 그 비본질적인 것을 다~씻어 내버리면 진짜

 

자기가 드러난다고요. 그래서 우리의 이 생명의 비밀을 아는 데가 영산불교예요자, 탐진치만의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되요. 뽑아버리려면 계율을 잘~지키고 부처님 법대로 정진을 하면 되는데, 이 나(我)라고 하는 이것이 가짜인 줄 아는 때가 와요. 그건 본체를 봐야 되요. 그러면 확실히 알아요. 알지만 거기에서 끝나면 안 되어요. 다시 정진해야 되요. 두타행으로 정진해가야 되요. 두타행으로 정진해가가지고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은 업장이 벗겨지고 탐진치의 뿌리가 뽑혀지고 해서 이 몸뚱이에 대한, 나에 대한 집착이 뚝 떨어져버릴 때까지 해야 되요. 거기가 아라한인 거예요. 아라한이어요. 아라한이 가는 세계가 있습니다. 아라한이 가는 세계가 있어요. 이제 아라한에서 보살은 절대 못가요. 자력으로는 못가요. 부처님의 가피로 가는 거예요.

영산불교에서는 2600년 이후 처음으로 부처님을 이야기하잖아요.

 

부처님은 계시는 거예요. 절대계에 상적광세계에 보신불로 계십니다. 어떻게 몸이 이루어진 까닭을 아는 거예요. 그 불신(佛身)은 무량억종광이라는 불가사의한 빛으로 이루어졌다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32상80종호의 적멸의 상으로 계셔요. 그러면서 지혜 자비 모~든 신통을 다 갖추고 있어요. 어마어마해요.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결국은 불과를 이루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하지 마세요.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이 최종 목표예요. 우리는 최종 목표가 붓다 이루는 거예요. 대승불교는 붓다 이루는 것이 최종 목표예요. 소승불교는 목표가 아라한이에요. 대승불교, 붓다 이루는 데다가 목표를 두고 여러분! 스님 법문대로 계율을 착~실히 지켜가면서, 여러분들은 재가신도니까 재가신도로서 지켜야 할 계율이 있어요. 재가신도로서 지켜야 할 계율은 지켜야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면서《금강경》

 

읽고 다라니(비로자니총귀진언)하고 염불하고 참회하고 발원하면서 이렇게 꾸준~히 나가는 거예요. 꾸준~히 정진해가면요 견성 단계를 밟아가는 거예요. 지나가는 거예요. 그러면 아라한이 되고, 또 부처님께서 씻어주고 하면 더 빠르지요. 여기는 정말 빨라요. 그래서 보살도 나오잖습니까? 여기는 40명 정도 나왔잖습니까. 사실 자력으로는 절~대 아라한도 되기 어려워요. 선불교에서는 지금 외마가 있는 것을 몰라요. 용신, 이매망량, 원결영가

 

모릅니다. 내가 선불교에 있었으니까 잘 압니다. 몰라요. 극락 있는 줄 모른다니까요. 지옥 있는 줄 몰라요. 육도 있는 줄 몰라요. 육도윤회 몰라요. 몰라요. 다만《아함경》이나 여러 경에 육도윤회를 이야기하니까... 육도윤회, 여섯 세계가 있어 자꾸 업을 지어서 이렇게 생을 받는 것을 모르고, 그것도 마음으로 해석해버려요. 육도윤회를 마음상태로 해석해버려요.

그래서 햐!~참 한국의 우리 선불교, 더 공부해야 된다 그거라.

 

 더 공부를 해야 된다 그거요. 왜 그 깨달음으로 끝나버렸냐 그거라. 더 공부해야 된다 그거라. 깨달음으로 끝나가지고 자기가 부처인 양 법문을 한단 말이에요. 지옥 없다 하고 극락 없다 하고 불보살 없다 하고,《법화경》《화엄경》의 그~부처님의 위대함을 이야기해 놓은 것을 다 상징적인 것으로 비유로 방편으로 이야기해버립니다. 이러면 부처님께서 그러신다고요. ‘사중죄 받는다!’ 그거라. 사람으로 와도 삼중고 사중고 받는다 그거라.

 

극무간지옥으로 가고. 그러면 안 되니까 나는 감히 말합니다. ‘그러지 마시오.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더 공부하시오. 깨달았거든 정말로 계율 지키고 두타행으로 나가시오.’ 선불교는 계율 없어요. 계율 주장 안 해요. 도한이도 소 잡다가 깨쳤다고 하는데요. 자, 언젠가 스님이 한번 이야기했지요? 도한이 알지요? 소 잡는 백정. 도한이가, 화두를 들었던 도한이어요. 망치로 소의 머리를 내리치니까 소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

 

딱 깨쳤단 말이어요. 자, 깨쳤단 말이어요. 이 깨친 것이 진짜 깨달음이겠습니까? 그게 정말 바른 깨달음입니까? 그 업은, 여러분 붓다의 경지에서는 업을 보는 거예요. 업 덩어리가 수미산만한데 그 사람이 극락 가겠어요? 나 자신의 본 고향으로 가겠느냐 그거야. 그 본체와 계합이 되겠어요? 본체와 계합하려면 붓다가 되어야 되요. 붓다가 본체와 계합한 것을 청정법신이라고 그래요. 법신이라고 해요. 원만보신은 상적광세계의 그 법신이 인격화 된

 

거예요. 이것을 아주~모른다고요. 이것을 모른다고요. 안타까워서 선불교에다가 고언(苦言)을 하는 거예요. 선불교를 치자는 것이 아니어요. 선불교한 사람은 내 법문을 들어야 되요. 자, 오늘 이 정도만 합니다.

만(慢), 아만. 아만을 버리십시오. 에고(ego)입니다. 자의식입니다. 에고에 가득 찬 자의식, 요놈의 만심(慢心) 아만(我慢), 요놈을 추방해야 돼. 탐․진․치․만․의(貪瞋痴慢疑)를 다 뿌리 뽑아버려야 돼.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

 

염불을 하셔야 돼. 무조건 염불한다고 다가 아니어요. 계율을 지키고 탐진치만의를 버려야 돼. 그래야 올라가니까. 법위가 더 앞으로 앞으로 가니까. 오늘 이만합니다. 

 

 (박수~)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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