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3일 일요일

(2013.7.7.일) 큰스님 부산 법문 V-10, 212회

 

 


 

부처님의 무상정각과 수행승들의 깨달음 차이

/관세음보살님에 대하여

신불기 16년

불기 2557년 계사년 음력 5.29

(2013.7.7.일) 큰스님 부산 법문

V-10, 212회


연일 30도(℃)를 웃돌고 비도 많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1,000여 명이 와서 기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 손들어 주세요.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박수~)

오늘 처음 오신 분! 어째서 이제 오셨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이 남은 생도 잘 살고, 이 몸을 버리고 죽을 때에는 잠자듯 편히 가고, 그리고 높은 하늘세계에 나고, 혹은 좋은 국토에 다시 사람 몸 받아 나오고, 그러되 부처님 회상 만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윤회를 벗어나야 됩니다. 윤회를요. 오늘 처음 오신 분은 아마 잘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모두 머리 속에는 집안 생각 자식 생각 남편 생각... 이런 것으로 꽉~차 있는데... 그렇지요? 그러니까 스님 법문 들을 때에는 머릿속을 비워버리세요.

영산불교 현지사 큰스님 법문은 좀 다르다고 하더라. 다른 점이 많이 있다더라. 그분은 불과(佛果)를 증했다더라. 그~ 법회장에 가서 법문을 들으면 업장도 씻어진다고 하더라.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님 법문이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감은 올 테니까 경청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 소문은 과장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잘 들어주세요.

 

오늘은 관세음보살님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관세음보살님 중에서도 다른 것은 다 제외하고, 32응신으로 나투어서 중생을 교화한다는 그 관세음보살님의 서원, 십사무외력(十四無畏力) ․ 사부사의덕(四不思議德). 이 정도를 가지고 1시간 할 수 있겠다 했습니다. 이 법문은 아마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법문을 ‘이렇게 하고 싶다’ 했는데, 전번에 깨달음에 대해서 말을 했지만 조금 미진한 것도 있고,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해서도 말을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해서는

 

 3000년 동안 그 누구도 못했습니다.《화엄경》에 잘 나와 있지만 그것을 모르니까 해석을 잘 못합니다. 이 중요한 법문을 먼저 하고, 남은 시간 관세음보살님의 그 보살행을 하는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한국불교-자, 절에 갑니다. 선방이 있는 절을 갑니다. 30명~50명이 큰 선방(禪房) 대중방에서 벽을 보고 앉아서 ‘이 뭣고~, 뭣~고?’ 하지요. 혹은 ‘무자(無字)’화두를 들면서 ‘무(無)~, 무~’하지요. 깨치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합니다. 깨달으면,

 

 

 깨치면 이제 자기의 모~든 소원은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을 하고 깨치기 위해서 화두를 들어요. 10년, 30년. 지금까지 이 세대에 몇 사람, 서너 사람 정도 인정받은 깨달은 선사(禪師)가 나왔습니다.

자, 그 깨달음의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그 깨달음이. 그 깨달음에 대해서 지난 시간에 조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수행승들의 깨달음과 부처님의 정각과의 차이’, 이것을 좀 말씀해 주고 싶습니다. 이거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모르고《화엄경》강의를

 

 한다든지《화엄경》을 해석 해설한다든지 하면 큰~업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쯤에서는 부처님의 정각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도 되겠다 싶습니다. 내가 한 10년 법문을 했는데, 이쯤에서는 이 스님의 법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겠구나 해서 오늘 말씀을 할 테니까 잘 들으십시오. 오늘 처음 오신 분은 이 법문 말씀이 너무나도 깊고 밝기 때문에 잘 이해를 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여기에 와서 법문 듣는 것만으로도 부처님의 그~지혜의 빛으로 업장이 씻겨나가고, 또 되도록 쉽게 쉽게 말씀드릴 테니까 들어 봐주세요.

 

선방에서 스님이 정진을 하다가 이제 깨달았다 그 말이어요. 깨달았다 그거요. 화두타파 했다 그거야. 이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해. 견성했다 그거야.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견성 경계를 이야기해. 그래서 큰~스님한테 가서 인가를 받는 거예요. 정확히 깨달았다, 바른 깨달음이다고 인가를 받는 거예요. 그러면 인가해준 사람의 법맥(法脈)을 잇습니다. 자, 깨달았다. 뭘?

전번에도 가끔 이야기했지만, 이 우주는 넓고도 넓고도 넓습니다. 이 우주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합니다. 우리가 사는 땅덩어리와 같은 별들이 항하사(恒河沙) 수 정도 됩니다. 그 보다도 더 돼. 그러니까 이 우주 안에는 별들이 인도 갠지스 강의 그 모래 수보다도 더 많다 그 말이어요. 그 안에는 나름대로의 생명체가 있습니다. 생명체가 있어요. 이 지구에는 사람이 살잖아요. 사람뿐만이 아니라 온갖 동식물이 있잖아요. 이 우주 안에는 지구와 같은 별들이 무~수히 있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이 우주가 그렇게도 넓습니다. 상상할 수 없어요. 지금 21세기의 첨단 천문학적인 이해를 가지고도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지금 천문학이 도달한 그 지평선 너머를 몰라요. 200억 광년이나 되는 지평선 저 너머를 모른다고요. 그래서 ‘이 우주가 정말로 광활하구나!’ 하는 것만 알지 온전한 것은 잘 모르고 있다고요. 자, 이 많은 땅덩어리들, 별들. 그 별들의 땅덩어리 그 위에는 많~은 동식물 광물들이 있단 말이어요. 이 모~두를 낸 것이 있어요. 낸 것이 있어. 거기서 나왔다 그거예요. 이것 때문에 나온 거예요. 이것 때문에 생겼어요. 이것을 우주 본체라고 합니다. 이것 때문에 생겼단 말이에요.

 

태어나서는 어쩌냐? 성주괴공(成住壞空)을 밟아요. 성주괴공을 해요. 사람들은 생로병사(生老病死)를 해요. 우리의 생각은 생주이멸(生住移滅)을 해요. 물질은 성주괴공을 해요. 이것을 반복해요. 그렇게 할 수 있는, 할 수 있도록 하는 그 힘이어요. 본체가 있어요. 이 본체가 없으면 안 되어요. 그 본체(本體)를 본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우주 만물을 내고 성주괴공 생로병사를 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유지하고 영원히 반복케 하는 큰~힘, 이것을 우주의 본체라고 해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이렇게 하면 조금 이해가 가겠습니까? 이것을 보는 것을 견성이라고 해요. 이것을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해요. 대단하지요.

그런데 보기는 봤지만, 봤다는 말에 좀 어폐가 있어요. 드러나 버린 거예요. 경계가 뒤집히면서 드러나 버린 거예요. 그럴 때 나(我)는 없어요. 너도 없고 상대도 없고 모~두가 허공같이 텅 비어 있는 거예요. 그것이 드러나요. 그것을 본 거예요. 봤다는 것도 어폐가 있다고 했지요. 나(我)도 없는데 누가 봐요? 그것을, 그 텅~빔을 ‘알아차림

 

’ 그래. 알아차림. 알아차린 거예요. 알아차린 것, 이게 견성입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런 견성을 하게 되면 너~무 너무도 편안하고 정말로 법열(法悅)이 솟아 나와요. 이거 묘해요. 그렇게~ 좋은 거예요. 이게 진짜 좋은 거요. 진짜 즐거움이어요. 이 상대세계의 즐거움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 즐거움이요. 그런데 그 즐거움은 상대적인 즐거움하고 질이 달라요. 정~말 좋아요. 이게 견성입니다. 이게 수행승들이 원하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자, 이것이 깨달음인데요, 이 깨달음에 대해서 더욱 부연해서 말하자면, 그 앞에서 말한 본체는 우주의 근원이거든요. 이것을 조금 어려운 말로 ‘궁극적 실재’라고도 해요. 이것을 체험했다 그거요. 이것을 봤다 그거요. 자, 견성이 그겁니다. 깨달음이 그겁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부처가 되고 하는 것이 아니어요. 이제부터 공부를 해야 되요. 그래서 스님이 그 견성 경계를 체험한 사람으로서 ‘하~! 견성이라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이제 시작이다. 이것을 끝으로 봐버리면 큰일 난다!’

 

지금 그렇게 알고 있어요.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어요.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어요. 깨달은 사람이 일상 의식으로 돌아오면, 그 깨달음의 경계가 오래가지 않아요. 오래가지 않습니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에, 돌아와서는 이제 공부를 해야 되요. ‘하~! 우주의 본체가 이것이구나!’ 이제 그건 알았어요. ‘우주의 본체가 이것이구나.’

그러니까 나는 이미 오랜 생 전에, 다겁생 전에-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것을 윤회생사라고 해요. 생사라고 그래요.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고통이잖아요. 윤회의 고통. 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꿈인데, 아!~ 유(有)와 무(無)의 상대를 초월한 저 본체를 봤으니, 내 저 본체와 같이, 저 본체와 합일이 되면, 계합이 되면 나는 영원히 산다 그거예요. 영원히 살 것 아니냐. 생사를 벗어날 것 아닌가. 생사에서 해탈할 것 아니냐! 해가지고 그건 뭐냐?

부처님의 경전을 보고 많~은 깨달은 성자들의 어록(語錄)을 보면, ‘그때부터는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고 두타행으로 나가라’, 그렇게 되어 있어요. 부처님은 그래요.

 

“철~저하게 계율을 지키고 두타행으로 나가라. 그런다면 죽음도 삶도 없는 경지에 이를 것이다. 생사를 초월한 정말 진정한 자유인이 될 것이다.” 그래요.

그래서 선(禪)에서는 깨달음 이후의 공부를 ‘보림’이라고 합니다. 보림이라고 해요. 그 경지에 가면, 장자(莊子)가 그 경지에 갔더라고요. 그 경지에 간 어른을 우리 불교에서는 아라한이라고 합니다. 아라한. 도인입니다. 진짜 도인이라. 그 정도 갔다 하더라도 내 경험으로는 천안(天眼)은 안 열리더라 그거요. 숙명이라든지 누진은 멀었더라

 

그거라. 그 정도 간 사람들이 지옥을 아무리 봐도 사유를 해도 안 보여요. 눈이 안 열렸기 때문에 안 보입니다. 사후세계가 없다고 해요. 없다 그럽니다. 그 도를 이룬 사람들의 어록을 아무리 뒤져도 사후세계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극락 ․ 지옥 없어요. 불 보살 없어요. 자, 이제 눈을 뜨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 더욱 정진을 해라 그거라. 더~욱 정진을 해라. 해가지고, 이 본체를 도교에서는 도(道)라고 하잖아요. 노장(老莊)에서는 도(道)라고 하지요. 도와 합일이 되어버려야 돼. 합일이 되어가지고 일체가 되어야

 

돼. 합일이 되어가지고 일체가 되어 버려야 돼. 일체가 되어야 되는데, 이 법위는 보살입니다. 여기는요 보살이어요. 정법 문중에서는 보살. 외도에서도 보살 정도로 가면 이제 눈이 벌어진단 말이에요. 그러기 전에는 안 보입니다. 모릅니다. 모르는 입장에서, 내가 가끔 라디오를 듣는데 우리 한국에서 지금 몇 사람,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한 다섯 손가락도 안 넘어가지요. 그런 사람들, 견성했다고 한 지가 50년이 넘은 사람들의 법문을 들어보면 너무 중생을 오도(誤導)하는 무서운 말을 해요. 중생들이 윤회하는

 

그 실상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부처님이 없다고 하고요, 지옥 없다고 해요. 사후세계 인정하지 않아요. 이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큰~구업입니다. 극무간지옥 갑니다. 극무간지옥을 가게 되면 그 지옥이 다~ 붕괴될 때까지, 파(破)해서 없어질 때까지 극무간지옥에 있는 거예요. 지옥의 수명은 대단히 오래가요. 거기를 간단 말이에요. 그런 줄 몰라요. 너무도 안타깝더라 그거예요. 이 깨달음에는 강약이 있습니다. 깨달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크~게 깨달은 사람이 있어요. 그것을 확철대오(確徹大悟)라고 해요.

 

그렇지 않고 언하에 깨달았다든지 한 사람, 약하게 깨달은 사람도 있어요.

자, 깨달음이라는 것은, 다시 반복합니다.

-참나(眞我), 공(空)의 자리, 실상의 자리, 이것이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드러나는데 법열(法悅)이 따른다. 법열이. 즐거움이. 기쁨이.

-그러니까 깨달을 때에는 누구나 궁둥이 춤을 춰요. 자~좋다!. 좋다고. 그러거든요.

-조금 어려운 말로 하면 의식하는 주체와 의식하는 대상의 경계가 사라져 버리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또, 생각이 끊어져버렸다고도 한다. 반연하는 생각, 거기는 이 생멸심이 끊어져버린 거예요. 깨달을 때 그 순간은 기쁨이 함께 하면서 지극히 고요하고 평온한 세계에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쓸데없는 생각들로 있지도 않은 문제들을 만들고, 또 그것들에 사로잡혀 가지고 괴로워했어요. 깨닫고 보니까 쓸데없는 생각들로 있지도 않은 문제들을 만들고, 또 그것들에 사로잡혀왔다 그거예요. 아집(我執)이라고 해요. 아집. 나(我)라는 이 몸뚱이, 오온(五蘊)-이 몸뚱이하고 이 생각이 나(我)라고 생각해왔어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 전부 그래요. 이 몸뚱이 이 생각을 나(我)의 몸, 나(我)라고 생각했다고요.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이건 내 몸이라고 생각했다고요. 이게 잘못되었다 그거라. 이게 잘못 되었더라. 이건 거짓 나(我)더라 그거요. 깨달으면 이제 그걸 압니다. 나는 ‘거짓 나(我)’한테 속았다 그거라. 거짓 나(我), 잘 먹이고 입히고 살려줬어. 요놈이(몸뚱이) 하자는 대로 했다고. 요놈이 하자는 대로 살아왔단 말이에요. 보니까 요놈의 노예로 살았더란 말이야. ‘하!~ 내가 잘못 살았구나! 나는 헛살았구나!’ 한단 말이어.

 

 ‘헛살았구나!’, 이것을 깨달으면 알아요. 상당한 성과지요.

이 우주만물 인간을 하나님이 만들었다고? ‘아니다~~!’ 그래요. 깨달은 사람은 이제 알아요. ‘아니오!’ 그럽니다. 자기가 봤거든요. 허공과 같은 저 본체, 텅~비어 버린데 오직 빛만이-아주~ 밝은 빛만이 이 우주에 변만(遍滿)해 있는 것을 알았단 말이에요. 모든 게 거기서 왔단 말이어. 이제 여기에는요, 지금까지 불교도 여기까지는 이야기해요. 여러 경을 봐도 다~그렇게 이야기해요.《능엄경》을 봐도 그렇고 다 그래요.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나(我) 주인공’을 놓쳐버렸더라고. 지금까지의 불교가 ‘나(我) 주인공’을 간과하고 있어요. 무아설(無我說)을 잘못 해석해버렸다고요. 크~게 잘못 해버렸어요. 무아설을 나(我)도 없고 너도 없는 것으로 봐버렸어요. 깨달은 사람도 그냥 어록(語錄)이나 그 경전을 보고 속는다고요. ‘하!~깨달아보니까 나도 없고 너도 없더라’ 그거라. 그렇지 않아요. 텅~빈 것을,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의식하는 것은 있잖아요. 알아차림은 있잖아요. 누가 알아차린 줄 알아요? 나(我) 본체 주인공이 알아차려요.

 

우리들의 참나, 본래면목, 이것은 우리들의 생명과 육체와 영혼의 근원이라는 것을 압니다. 깨달으면요. 그건 알아. 또 소위 영적인 지혜의 근원이 우리들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아요. 그것까지를 알아요.  우리의 내면에, 이 속에, 우리의 내면에 우리들 자신에 영원히 죽지 않는 주인공이 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요. 이건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간 저 힌두교 성자들의 깨달음 서적을 보면 있습니다. 이것까지 알았어요. 이제 영산불교에 가까워지지요. 주인공(主人空), 그 공(空)자는 빌 공(空)입니다. 선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공(空)자입니다. 힌두교가 훨씬 앞에 가 있어요. 파탄잘리가 쓴 것을 보면 그것이 있어요. 대단한 사람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노우(NO)!’ 그래요. 깨달으면 그거 알아요. 깨달아서 보림을 주~욱 해가면 이제 안다고요. 그런데 공체험(空體驗) 가지고는, 깨달아가지고는 여러분에게 만족할 만한 그런 것이 없어요. 안 와요. 말하자면, 이제 여러분들이 깨달아가지고 일상으로 돌아왔단 말이에요.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큰~ 고통스러운 현안은 극복이 안 되더라 그거예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 가령 ‘저 사람이 없으면 나는 못 살겠다~’ 할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돌연히 죽었다고 할 때 보통사람은 미치잖아요. 애인이 죽거나 아들이 죽으면. 그 애인의 상대방이 깨달았다고 합시다. 어머니가 깨달았다고 합시다. 깨달음 정도 갖고는 극복이 안 되더라 그거라. 안 되더라 그거예요. 이것까지 극복하려면 이제 아라한, 보살로 가야 되요. 깨달음 갖고는 안 되더라 그거예요.

‣ 그 다음, 많~은 빚이 있어가지고, 갚아야 할 빚이 있어가지고 채권자가 죽인다고

 

날마다 독촉을 합니다. 그런데 내가 깨달았단 말이에요. 그것 가지고 그 고통이 극복 안되더라 그거예요. 채권자의 그~ 악착같은 무서운 빚 독촉에는 안 되더라 그거예요.

‣ 평소 여자들은 유별나게도 뱀을 무서워하잖아요. 독사, 구렁이. 산중이니까 저녁에 수행하고 있는 방에 막 들어온단 말이에요. ‘비~수~수수~’ 하고 들어올 때 무서움, 공포 그거 극복 안 되더라 그거요.

그래서 내가 염불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이거 안 돼. 이 한계선까지 극복하지 못한다 그 말이어요.


자,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입니다. 선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자기들의 깨달음과 같은 반열에 놓고 봅니다. 이것은 큰~ 잘못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시각에서《화엄경》을 해석하고《화엄경》강의를 하면... 저기 어느 절에서는 매년 화엄산림을 하더군요. 큰~ 죄를 짓더라 그거라. 그래서 오늘 부처님의 깨달음, 정각의 그 법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고 관세음보살로 넘어가겠습니다.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마갈다국 적멸도량에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치셨잖아요. ‘깨달음을 열자 말자 부처님의 몸은 큰~ 광명을 발하면서《화엄경》의 교주이신 비로자나불과 일체가 되었다.’라고 쓰여 있어요. 이건 잘 된 거예요. 잘 되었다. 자, 이것까지만 합니다.

“큰~ 광명을 발하면서...”

부처님은 나유타겁 전에 붓다가 되었지요? 그거 아시죠?

붓다가 되면 상적광세계의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안에 자기 불신이 생깁니다.

 

이렇게 알지요? 그것을 보신(報身)이라고 하지요?

그 보신은 빛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아시잖아요? 그 빛은 무량광이라고 알지요? 혹은 무량억종광 ․ 백종오색광... 여러 가지의 표현을 합니다.《화엄경》이나《법화경》에서는 무슨 천만억 아승지 빛깔, 혹은 백천억의 묘한 빛깔 광명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하잖아요. 그 보신의 몸이 그것으로 이루어졌단 말이어요. 이것은 3000년 이후로

그~누구도 보지를 못했어요. 무량억종광을요. 그 빛으로 이루어졌단 말이에요.

 

그 빛이 발한단 말이에요. 왜 발하는 줄 압니까?

탁 깨치면 자기하고 하나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자, 삼신을 갖추니까, 자기의 청정법신과 원만보신과 이것(-응화신)이 하나가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하나가 됩니다. 그러니까 빛을 발한단 말이에요. 빛을 발하는데, 사실은 싯달타(-응화신) 하고 저 원만보신노사나불과 또 청정법신비로자나불이 함께 해버렸단 말이에요. 곧 우주와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 말이어요. 비로자나불은요, 앞에서

 

스님이 이야기했던 우주를 낳은 본체-이것을 공(空)이라고 합니다. 공(空). 이 공(空)과 하나가 되어버린 게 비로자나불이어요. 그 부처님의 진불(眞佛)이, 그 인격체가 이 공(空)과 하나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 비로자나불과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그 말은 우주가 되어버린 거예요. 이제 개인, 일개 개인 석가세존이 아니어요. 이제 전우주화(全宇宙化)가, 우주의 몸이 되어버렸단 말이에요. 여기에 부처님은 이제 대적광삼매에 들어갑니다. 깨치면서 대적광삼매에 들어간다고요.

 

대적광삼매는, 여러분 내 책을 보셔서 알겠지만, 해인삼매라고 하면 상품의 상품보살이 드는 삼매입니다. 이 외도의 교주들이 못 들어갑니다. 해인삼매가 뭔 줄 모릅니다. 전혀 모릅니다. 해인삼매 위에가 대적광삼매입니다. 그 대적광삼매에 들어간단 말이에요. 그렇게 되니까 그~빛이 나고 하니까 그 보리도량, 보리수하 그 세계는 어떻게 되어버리느냐 하면 청정해지고 갖가지 보화와 꽃으로 장식되고 아름다운 향기가 넘쳐흐르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 내 법문을 듣고《화엄경》을 보시라 그거예요.

 

이때 하늘에서는 만다라화라든지 만수사 꽃이 비처럼 한 없이 쏟아내어 보통 5자 7자 10자 뿌려주는 거예요. 그건 불과를 이룬 사람은 다 알아요. 하늘에서 만다라화 꽃, 만수사 꽃이- 하!~그 깨끗하고 청정하고 빛난 그 꽃이, 그 향기를 품고 있는 꽃이 한~없이 내린다니까요. 그래서 그 도량을 아주 그냥 1미터 10미터 정도로 쌓아 놔버린다니까요. 거기서 뿜는 향기가 진동을 한다고요. 세계는 육종으로 진동하고, 이 연화장세계라고 하면 모~든 부처님세계를 합해서 그렇게 부르는데, 그 세계는 육종으로

 

진동한단 말이에요. 여섯 가지로 진동을 하고, 부처님은 미간에서 혹은 정수리에서 혹은 눈에서 혹은 입에서, 입에서 나가는데《화엄경》에서는 이사이로 치아사이로 나간다고 되어 있지, 그리고 겨드랑이에서, 이 손바닥에서 발바닥에서 무릎에서 팔만사천 털구멍에서 나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무량억종광을 한 군데에서만 할 수도 있고, 열 군데에서 다~ 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광명 색깔이 한 가지가 아니다 그랬지. 백천 가지 천억 가지라고 했지요. 이게 이게 묘해요. 부처님의 빛이요.


깨달은 사람, 화두타파 탁~ 해서 확 드러나면서 쏟아지는 빛은 한 가지입니다. 훤~하고 하얀 것이어요. 그런데 벌써 부처님 깨달음에서의 빛은 천만억 가지 색깔의 빛이어요. 이게 다르다는 것. 그리고 광도가 달라요. 그 빛이요, 여러분 전번에 포항공대의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온 빛이 있다고 했지요? 그 빛이 어느 정도 밝으냐 했더니 신문에 햇빛보다 백천만 배 억 배라고 했던가? 이것은 비교가 안 된다고요. 이것과도 비교가 안 되는 엄청난 광도의 빛, 중생들이 보면 그 영체가 재가 되어버릴 빛, 그 빛이라고요. 희유하고 불가사의한 빛이어요.

 

그런데 또 안팎이 없어요.

여러분 안팎이 없다고 하는데, 얼마나 깨끗하면 안팎이 없는 줄 알아요? 물속을, 아주~깨끗한 물을 가보면 1미터 5미터 속이 들여다보이잖아요. 정말로 청정해버리면 겉과 안이 똑같아버려요. 그것을 안팎이 없다고 그래요. 이 빛이 그래요. 안팎이 없어요. 그리고 너~무 너무도 예뻐요. 빛이요. 저 만큼에서 오면 너무 너무도 예뻐요. 가지고 놀고 싶은 빛이어요. 그래서 이 빛을 영롱하다고 해요. 그런 빛을 낸다고요.

 

또 여기서(-몸에서)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서 용도에 따라서 자기 마음대로 내요. 색깔 하나하나가 용처가 있어요. 귀신을 잡을 때에는 어떤 빛을 내고요, 이런 철판을 부수어 업장을 소멸할 때에는 어떤 빛을 조합해서 내고 그럽니다. 지혜가 일체종지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자, 이때 무수한 불보살이, 그리고 성중이, 신중이 운집해서 공경 예배 찬탄합니다. 와서 부처님한테 축하드린다고요. 또 부처님의 어머니 아버지가 도솔천에서 오셔요. 와서 예배하고 찬탄하고 가요. 한~없이 몰려와요. 여러분,

 

이 우주 안에는 얼마나 많은 세계가 있는 줄 압니까? 거기의 주(主)들은 다 와요. 와서 오체투지하고 예배 찬탄 공경하고 가요. 이 장면이〈세주묘엄품〉에 나옵니다. 이건 맞습니다. 이건 맞는데, 이 경계를 경험하지 못하면 이것은 뭐... 겨우 견성 경계에서, 견성 경계를 많이 법문 듣고 읽은 사람들은 그 견성 정도의 입장에서《화엄경》을 쓰니까 어떻게 됩니까?《화엄경》을 버려버린 거예요.

스님이 지금 관세음보살님을 이야기해야 되는데, 전번에 깨달음에 대해서 말씀을

 

했기 때문에 오늘은 부처님의 그 깨달음에 대해서 말씀을 좀 드리는 거예요. 여러분, 화두타파를 해가지고 무량광을 보는 줄 압니까? 백천만리 가도 안 되어요.

부처님은요, 나유타겁 나유타겁 전에 부처가 되신 분이어요. 불과를 이룬 많은 분들도 나유타겁 전에 깨달음의 경계를 지나갔어요. 아셔요? 무량겁 전에 아라한 경계를 지나가고요, 무수겁 전에 보살과를 지나갔다고요.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생 전에 상품보살을 넘어가지고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을 넘어갔다고요. 이분들이 깨달은 것은 다릅니다.

 

소위 수행승들이 깨달은 것하고 질이 다릅니다.

이제 깨달아가지고 아라한 경계로 간 사람들은 뭐가 다르냐?  이제 착이 떨어져버렸다는 거예요. 자기 수행을 해가지고 아라한 경계에 간 사람, 아마 한 세대에 이 지구상에서 몇 안 나올 거예요. 몇 안 나옵니다. 모두 깨달음에서 멈춰버립니다. 멈춰버리거나 업을 지어가지고 대부분 나락으로 떨어져버려요.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거기서 계속 공부해가지고 아라한과를 증한 사람이 별로 없어요. 그런 줄 아세요.

 

단, 스승을 만나야 되요. 부처님같은 스승을 못 만나면 절대 안 됩니다. 그 이유는 마장(魔障)에 있어요. 여러분 아시죠? 마장-천마 용신 원결 사신 망량신 등 엄청난 마장이 들어와요. 그것들은 사생결단하고 막아요. 사생결단하고 아라한과를 증(證)하는 그 수도인을 막는다니까요. 장해(障害), 작해(作害)한다니까요. 저거들보다 더 높아지거든요. 저거들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나라도 더 무서운 도인이 나오면 저거들이 죽으니까요. 철저하게 막는다니까요. 한번 빙의되면 안 떨어져요. 절대 안 떨어져요.


여러분, 지금 수행승들한테는 많~은 천마 용신 사신 망량신이 빙의되어 있습니다. 깨달았다 하더라도요 잘못하면 막 들어갑니다. 틈을 주면 들어가는 거예요. 틈을 주면 들어가요. 파계(破戒)한다든지 못된 말을 한다든지 몰래 음행을 한다든지 업을 지으면 팍 들어가요. 천마 용신이 한번 들어가 버리면 나오지 않아요. 그 권속이 되어버려요.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아마 잘 모를 거예요. 용신이 들어가 버리면 큰 일이어요. 1000년 산 큰~구렁이가 신통을 얻어가지고 자기 몸에서 이탈해요. 유체이탈 해요.

 

그래가지고 그놈이 인격체가 되어가지고 사람이 되는데 애기도 되고 할아버지도 되고 마음대로 변화할 수 있어요. 사람 몸 속에 들어가 의지해서 살아요. 그 사람을 자기 권속 만들려고요. 그러면 그 사람은요, 오래되면 여기(-가슴)에 아주 직인이 찍혀져버려요. 그 사람은 내 권속이다 하고 직인이 찍혀져 버린다고요. 우리 회상에서 그걸 ‘캡박스(cap-box)’라고 그래요. 그 정도로 되어버리면 부처님 아니면 용신 집단에서

 도~저히 못 빼냅니다. 그 사람은 세세생생 죽어서 지옥가면 구렁이 지옥을 가고,

 

 축생이 되면 구렁이가 되고, 사람이 되면 용신이 들어오고 그래요. 무서운 일이어요. 이런 빙의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아라한 정도까지 가도 모릅니다. 여기 현지사밖에요. 아라한 정도 들어가야 이제 삼매에 들어가요. 진짜 삼매에 들어가요. 깨달아가지고는 다 선정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요. 이제 진짜 공부를 시작하면 색계 사선(四禪) 정려를 들어가요. 사선, 무색계의 사무색계정을 들어가요. 주~욱 아라한으로 들어갈 때에요. 그래서 아라한의 삼매, 아라한이 되어야 이제 비로소 삼매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라한 정도 되어야 이제 알아요.

‘아하! 하나님이 있어서 만물을 창조한 것이 아니구나. 내가 창조주로구나. 내가 내 몸뚱이와 내 운명과 내가 사는 이 환경과 모~두를 만들었구나. 내가 만들어서 내가 받구나!’ 이제 이거 알아요. 이제 연기법, 인연법을 안다고요.

여러분, 불교로 귀의한 것을 정말로 잘했다고 하는 것이고, 현지사 정법문중으로 귀의한 사람들은 정~말 좋은 점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라한 정도로 주~욱 가도

 

‘전~부가 나다’로 생각해버려요. 그런 정도예요. ‘이 우주만물은 나와 더불어서 하나구나’ 하는 것을 알아요. 계합한 줄 알지요. 아니어요. 계합하려면 붓다가 되어가지고 어떻게? 청정법신이 생겨야 완전히 나(我)지요. 우주의 모두가 나이고 나의 것이지요. 우주 주(主)이지요. 이제 주인(主人)이지요. 그런데 아라한 정도만 가도요 ‘우주가 전부 사실은 나구나!’ 그래요. 좀 과대한 말을 하지요. 아라한 경지예요. 심지어 말을 좀 허풍떠는 사람은 깨달아만 가지고도 ‘일체가 나다. 나와 더불어 하나구나!’ 이런 말도

 

하지요. 아라한으로 들어갈수록, 깨달아서 아라한 보살로 들어갈수록 소위 괴로움을 극복하는 힘이 생겨요. 배가 생겨요. 그리고 즐거움 법열(法悅)이 배가 되요. 여러분 아시죠. 즐거움이 배가 되요. 불과를 증한 사람의 그 즐거움을 힌두교에서 잘도 표현했더군요. 10의 지수를 얼마라고 했더라? 100을 해놨던가 500을 해놨던가. 범(梵)의 즐거움이 그렇데요. 붓다가 되면 그것을 능가하지요. 그리고 영원히 멸도 할 수 없어요.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고 32상으로 딱 갖추어져 있으니까 영원히 멸도 할 수 없고,

 

모든 붓다들과 한 몸을 이루고 있어요. 빛으로 다~연결되어 있어요. 그냥 한 몸이어요. 한 몸이어요. 그래서 이것을 ‘삼세여래일체동’ 그래요.

깨달아가지고 아라한으로 들어가 가지고 보살은 못 되지만, 보살은 부처님 가피로만 됩니다. 아라한으로 올라가게 되면 이런 생각이 확실히 들어요. ‘하! 세상은 어디로 갔나? 어제까지는 세상이 있었지. 세상은 어디로 갔나? 누가 세상을 이렇게 치워버렸지?’ 세상사 꿈같고 꼭두각시놀음 같아요.《금강경》의 마지막 사구게가 맞아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이 맞는 거예요. 동시에 끝없~는 법열로 살아요. 즐거워요.  산중에 혼자 무슨 재미로 사느냐 하지. 자기들의 백천만 배 즐거움, 진짜 즐거움으로 살아요. 그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지. 세상 사람들은 물질(-재산)과 여자(-이성)와 술로 사는데요. 이건 상대적인 거예요. 남자들은 여자 없으면 안 되어요. 반대로 여자들은 남자 없으면 안되지.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 없으면 죽어. 담배도 없으면

 

고통스럽지. 그런데 여기는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지하 1,000미터에 갖다 놔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앞에서의 그 무량억종광은 땅 속이든지 물 속이든지 사람 몸 속이든지 사람 마음 속을 다 비춥니다. 그 빛은 이상한 빛입니다. 그런 줄 아세요. 보살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수행해서 좀 깨달았다 해서 부처님의 깨달음과 같은 반열에 놓는다, 이것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이것은 이정도로만 하고.


이제 관세음보살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관세음보살님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야 되는데, 여기 부산분원이 관음성지가 되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 관음성지가 몇 군데 있잖아요. 거기에 계시지 않고 이제 여기에 와 계십니다. 여기하고 서울에 계셔요. 그런데 사바세계 어디엔가 관세음보살님의 영장(靈場)이 있습니다. 당신의 집이라고 할까 방이라고 할까. 당신의 힘으로 은밀하게 만들어 놓은 데가 있어요. 정토는 어쩌지요? 불보살이 만들잖아요. 만들어놨어. 정~말 거기는 폭포수가 있고 물이 한~없이

 

깨끗하고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거기서 목욕도 하시고 그래요. 아~주 안락한 곳이 있어요. 진짜 영장이 있어요. 눈뜬 사람은 알아요. 거기를 가보고 그래요. 초청도 하고 그래요. 그건 영장이고, 관세음보살님의 주처가 있다고요. 옛날에는 저기 강화 보문사지요. 낙산사 홍련암하고, 남해 보리암이라고 하지요. 그건 맞아요. 가끔 가시니까. 그러나 지금은 주로 현지사에 계시고, 여기 부산에 계시고, 서울에 계셔요. 본불은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부처님의 좌보처로 계십니다. 그러나 사바세계에 오실 때에는 주로

 

사바세계에서 중생구제 하시는데요, 변화불은 백의관음이올시다. 백의관음. 여성의 자모(慈母) 형상으로 옷을 입으시고 치마를 다 입으시고 그러신다고요. 그런 것은 여러분이 다 아실 것입니다. 인도에 가면 보타락가(補陀落迦)라고 해가지고 인도 남해섬 어느 산에 계신다고도 하고, 중국에 가면 절강성 남해쪽 하나의 섬을 보타락가라고 해. 한국은 양양 낙산사를 말합니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여러분이 이미 아시니까 이 정도 합니다.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천수천안’이라고도 하고 또 무슨 ‘팔만사천 삭가라 수(首), 팔만사천 모다라 비(臂), 팔만사천 청정 보목(寶目)...’ 막 하잖아요.

(‘⟪능엄경⟫권6’ 에서 관세음보살님을 묘사한 대목이다. 삭가라는 ‘cakra’로 금강윤보(金剛輪寶)를 말하고, 모다라는 ‘mudra’로 수인(手印), 보목은 부사의한 힘을 갖춘 불안(佛眼)을 말한다. ‘팔만사천의 금강머리, 팔, 청정한 보배눈을 가지시고’의 뜻이다. ‘팔만사천’이라는 수는 중생의 소원에 따라 자유자재로 나투시는 보살님의 무량한 위신력을 상징한다.)

 

그건 뭐냐? 이상야릇하게 그렇게 그려놓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천수천안(千手千眼)’ 하면 관세음보살님이 손이 천 개고 눈이 천 개인가? 그렇다면 관세음보살님이 기형아게요? 그렇잖아요. 무슨 손이 천이고 눈이 천이면 그 사람이 그게 뭡니까? 부처님은 그렇지 않아요. 한~없이 예쁘고 한 없이 거룩하시거든요. 그것은 부처님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상징한 거예요. 손이 천 개인가? 아닙니다. 부처님도 손이 2개예요. 그렇게 아십시오. 손이 천이고 눈이 천이 아니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 다음에 32응신. 여러분 32응신이 나오잖아요.《관음경》이나《능엄경》을 보면 32응신이 나옵니다. 자, 관세음보살님은요, 무량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거든요. 불명이 ‘정법명왕(正法明王)’이라고 하지요. 정법명왕불이어요. 그래서 당신 몸뚱이 보신(報身)은 앞에서 말씀드린 백종오색광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요. 그것 때문에 32응신도 하고 십사무외력(十四無畏力)이 나오고 사부사의덕(四不思義德)이 나오는 거예요. 모든 붓다는 그런 능력이 있어요. 있는데, 특별히 관세음보살님은 이 사바세계

 

중생들이 너무 불쌍하고, 그래도 구해 놓으면 정말로 재목이 되겠고 해서 주로 사바세상에서 뜁니다. 지장보살님 하고요, 문수 ․ 보현도요. 관세음보살님은 아주 자비하신 것도 사실이고, 소망을 다 들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부처님은 무슨 소원이든지 들어 줄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그래서 이 보살들 중에서도 서방정토 극락세계 보살들이 관세음보살을 많~이 염하고 소원을 여쭈면 들어준다고요. 그러면 저 정토의 보살님들의 소망은 뭔 줄 압니까? 얼른 약사정토 가는 것, 얼른 붓다 이루는 것이 소망이잖아요.

 

 그런 힘을 줘요. 그래서《관음경》이나《능엄경》을 보면 부처될 사람한테는 부처의 몸으로 나타나가지고, 현신해가지고 설법하고 그러잖아요. 독각(獨覺)이나 연각(緣覺)이 될 사람한테는 독각이나 연각으로, 성문이 될 사람한테는 성문으로, 그런데 이《능엄경》에서 해설하고 있는 독각, 연각, 벽지불은 같은 말이어요. 이 도인은 부처님 없는 세상에 와서 스승 없이 도를 이룬 분입니다. 그러니까 스승 없이 사성제 십이인연을 철저히 관해서 번뇌에서 벗어나버린 도인이 된 것을 독각이라고도 연각이라고도

 

그래요. 성문(聲聞)은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말씀을 듣고 수행을 해서 깨달아가지고 공부 더해서 아라한과를 이룬 분을 성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독각이나 성문들이나 모두 관세음보살님을 염하면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거예요. 그거 알아야 됩니다. 제석의 몸으로도 나투어서 법문하고, 자재천왕의 몸으로 나투어서, 대자재천왕의 몸으로, 하늘 대장군의 몸으로 나투어서... 쭈~욱 있잖아요. 그렇게 나투어요.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할 수 있다 그거예요.

 

그런데 천마(天魔)도 그럽니다. 천마도요. 관세음보살님은 불과를 증한 어른이기 때문에 그런다 치고, 이 하늘에 있는 외도 마구니들도 불보살의 모습으로 마구 변한다고요. 변한다고요. 그러니까 이 선불교에서는 그건 알아요. 그건 아는데,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면 ‘아! 저놈은 천마에 속았구나!’ 그래요. 아셨어요?

천마가 있습니다. 아주 못된 마구니예요. 하늘사람은 하늘사람인데 못된 마구니라고요. 남이 잘된 꼴을 못 본다고요. 이런 마구니가 있어요. 그런데 변화에 능한,

 

그런 변화술에 능하다고요. 우리 현지사 터에 그런 하늘신이 와서 진을 치고 있었다니까요. 내 책에 조복받는 일이 나올 거예요. 그것들은 하늘신이기 때문에, 하늘신 중에서도 저급한 하늘신입니다. 이거 정말로 지옥감인데 어떻게 지금 묘하게 끼어 있어요. 변화하기 때문에 다릅니다 여러분. 눈만 봐도 달라요. 수행승들의 눈은 맑잖아요. 자애스럽고 좋잖아요. 저 마구니들은 딱 변화해도 살기가 있어요. 저 하늘신만 그런 줄 압니까? 망량신(魍魎神-이매망량)도 얼마든지 신통해요. 구렁이 뱀 등 오래 산 놈이

 

비명에 죽으면 망량신이라고 해요. 망량신이 사람 몸 속에 빙의도 되잖습니까? 망량신이 여자의 몸으로 확 둔갑해가지고 아~주 요염한 자태로 수행승 앞으로 옵니다. 와가지고, ‘내가 당신한테 무엇을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니까요. 그러면 쫓아버려야 되요. 딱 보면 아니까요. 그것은 불보살님하고 다릅니다. 백천만배의 차이, 아니 하늘 땅 차이도 더 되요. 그냥 아는 거예요. 타~악 쫓아버리면 죽어라고 도망가 버리지요. 불보살이 그럽니까? 불보살이 도망갑니까?

 

 거지하고 왕의 차이보다 더 되요. 내 책에는 그것을 그렇게 구분하도록 써놨습니다. 그렇다고요. 사왕천의 몸으로, 그리고 소왕 장자 거사 재관 바라문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몸으로 나투어서 법문한다고 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소망을 간~절하게 소원을 품고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면 그 원을 들어준다 그거예요. 여기 인왕(人王)의 몸, 소왕이라고 했어요. 소왕의 몸으로 나투어 가지고 설법해서 그 원을 들어준다고 했어요. 대통령 될 사람, 국회의원 하고 싶은 사람 등은 관세음보살님을 염해야 되요. 들어줘요.

 

그런데 이 관세음보살님은 이렇게 방편을 써가지고 뭐하려고 그러는 줄 압니까? 정법문중으로 들어오게끔 하려는 거예요. 그 사람을 제도할려고 하는 거예요. 아미타국에 태어나도록, 왕생하도록 그러는 거예요. 얼마나 거룩합니까? 이 사람 소원을 들어주면 다음에 내 명을 거역 못하거든요. 그렇게 이끌어요. 소원을 들어주면서 그렇게 이끈다고요. 미타국으로 들어가도록, 왕생극락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고요. 지장이나 관음이나 목표는 거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르시죠?

 

무조건 소원을 다 들어주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있어요. 방편으로 소원을 들어주고 사람 좀 만들어가지고 왕생극락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요. 이끈다고요. 이게 관세음보살님의 32응이어요. 모든 부처님은 다 할 수 있어요. 극락보살도 할 수 있어요. 극락보살도 마음대로 몸을 나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세음보살님처럼 소원을 들어 줄 정도의 능력이라든지, 그런 지혜는 없어요. 거의 적어요. 붓다들은 있어요.

그 다음에 십사무외력(十四無畏力)입니다. 열네 가지 무외(無畏)의 힘이 있어요.

 

그러니까《관음경》을 보면 불 속에 들어가도 능히 태우지 못하게 하고, 물에 빠져도 죽지 않고, 귀신을 만나도 그 해함을 면할 수 있고... 막 나오잖아요. 또 도병(刀兵)이, 칼이 부서지고 병기가 부서지고, 귀신이 힘을 못 쓰고... 쭈~욱 보면 14가지일 거예요. 그것을 십사무외력이라고 합니다.

포탄이 떨어져도 그 포탄이 터지질 않고요,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염한 사람은요. 나는 그런 신도를 만났어요.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또 가쇄,

 

추계가쇄(械枷鎖 - 추는 손을 묶는 쇠수갑, 계는 발을 묶는 쇠고랑, 가는 목에 씌우는 칼, 쇄는 몸을 묶는 쇠사슬), 이것이 그냥 부서지고요. 죄수들의 목을 씌우고 그러잖아요. 쇠고랑이 풀어져버리고 부서져버리기도 하고. 도적을 만나도 그 해를 입지 않고. 음욕이 심한 사람은 관세음보살님을 일심으로 염하면 그 음욕을 없애주고. 진에(瞋恚), 성냄이라고 하지요, 성냄도 그러고 어리석음도 그러고.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으로 간~절히 하면 그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한다 그거예요.

 

또 여자분들이 아이를 임신하기 전에 남자아이를, 혹은 여자아이를 원하면서 관세음보살님을 지극히 찾으면 여자를 주든지 남자를 주든지 꼭 그렇게 주고. 그러되 지혜가 있고 덕이 있는 아이를 주잖습니까? 관세음보살님은 그런 힘도 있어요. 지금 우리의 ‘관음태교’가 이를 증명하잖아요. ‘62억 항하사 보살을 찾는 것보다 관세음보살 한 분을 찾는 것이 더 수승하다’, 이게《관음경》에 나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과를 증한 관세음보살님은 정토세계 62억의 보살들과 맞먹어버려요. 관세음보살님을 일시에

 

간~절히 염한 공덕이 62억의 보살들한테 평생토록 공양 음식을 주고 의복을 주고 와구 의약을 공급한 것과 같이 되어요. 이러한 십사무외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사부사의덕(四不思議德)입니다.

‣ 몸을 갖가지로 나타내어가지고 중생을 구한다든지,

‣ 중생에게 무외(無畏)를 베푼다든지, 무외라는 것은 두려움, 겁먹는 거를 없애주는 거예요. 겁먹는 것.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이 작용하면 겁이 없어져버려요.

 

‣ 중생들을 애민(哀愍)하게 여기는 것

‣ 중생의 온갖 소원을 다 들어주신다 하는 것, 중생들이 간탐 부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면 간탐심이 없어지고...

이게 네 가지 부사의덕이어요. 이렇게 아시고, 이런 관세음보살님을 많이 염(念)하시라 그거예요. 진짜로 계시니까요. 계셔요. 선불교에서는 ‘무슨 놈의 관세음보살이 있어! 그 사람의 마음 속 자비가 관세음이지.’ 이렇게도 말합니다. 또 관세음보살님을 친견했다고 하는 글을 보면 ‘이것은 화현이지. 변화신이지!’

 

자, 여러분! 근본 본체가 없으면 변화신이 나옵니까? 생각해 봐요. 근본 본체가 있어가지고 변화신이 나오는 거예요.

관세음보살님의 십사무외력 하고 사부사의덕은 부처님의 소위 십력 ․ 사무소외 ․ 삼념주 ․ 대자대비라고 하는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 하고는 다릅니다. 항상 관세음보살님을 잊지 않고 염하십시오. 특히 관세음보살님 기도를 부치신 분이나 관세음보살님 공부를 하는 분들은요.


오늘은 ‘부처님의 정각의 내용과 그 수행승들의 깨달음의 차이’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했습니다. 깨달아가지고 아라한이 되고 쭈~욱 올라갈수록 자비가 있습니다. 올라갈수록 이제 지혜 자비가 갖춰집니다. 이제 보살행이 나오는 거예요. 보살행. 그거 아주 대단히 중요합니다. 보살심이 있어야 됩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비, 복덕과 위신력, 이 무두를 다 갖추고 계십니다.

자, 그러한 엄청난 부처님이 현지사에 와계신다 그 말이어요.

 

지금 학자들이 부처님이나 깨달은 사람이나 모두를 묶어가지고 똑같은 반열에 놓고 보는데, 이것은 큰~업이라는 것. 부처님을 모독한 말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깨달은 성자들’ 해놓고는 그냥 예수도 부처님도 자기도 똑같은 반열에 놓더라고요. 수행승들의 깨달음 경지와 부처님의 정각의 내용은 하늘 땅차이도 더 납니다 여러분.

이 다음 대전 법회 때 계(戒)를 줄려고 합니다. 여러분! 계를 받아야 참된 불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정법문중으로 귀의하는 길입니다. 정법문중으로 귀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삽니다. 많이 수계(受戒) 신청을 해주십시오. 수계식을 합니다. 이 다음 대전 법회 때요. 그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우리 현지사 신도가 되어 주십시오 여러분. 그래야 삽니다 여러분. 십악(十惡)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십악-몸뚱이로 짓는 세 가지 업, 뜻으로 세 가지 업, 입으로 네 가지 업을 십악이라고 그래요. 십악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모두 지옥을 가는 거예요. 지옥 가는 거예요. 짐승 되고요.

 

그런 사람들 늦지 않았어요. 귀의하세요. 부처님의 그~ 무량억종광으로 자기가 과거생에 금생에 와서 지은 업장을 씻어줘야 됩니다. 씻어주면 됩니다. 그러면 씻겨나간 부분에 대한 소위 과보는 없어요. 엄청난 이야기예요. 오늘 처음 오신 분!!

부처님 칭명염불을 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스님은 이런 법문을요, 많은 사람들이 들어가지고 염불정법으로 들어오기를 굉장히 바라거든요. 꼭 900명~1,000명이고 이를 넘지를 않아. 한 사람씩 모셔오라고 해도... 여러분, 한 사람씩 지옥에 갈, 결코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십악 짓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스님들도 거의 없어요. 다~가는 거예요. 부처님의 정법문중으로 들어와서 업장을 씻고, 더 이상 악업을 짓지 않아야 해요. 그 길이 있는데 왜 안 들어오느냐고요. 세상이 워낙 무지에 쌓여 있고

혼탁하니 큰 기대는 접었습니다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불자들이 많잖아요. 보살행입니다, 여러분! 지옥갈 사람 하나 살려 주라고요 여러분. 부탁합니다! 

 (신도 : 예~)

 

(박수~)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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