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5일 화요일

사성제(四聖諦)/부처님의 정법문중 붓다교단과 광명만덕님 법의 위상 (Ⅲ)


 

신불기17년

 

불기2558년 갑오년 음력 6.24.

 

(2014. 7. 20.일) 큰스님 부산 법문

 

VI-30, 245회



 

오늘 처음 오신 분 손들어 봐주세요.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박수~) 오늘도 청정법신부처님 앞 금강좌에 올라서 부처님 말씀을 전해드리는 자재 만현입니다. 짧은 시간동안 설법을 해드리는데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실한 법문임을 전제해 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꼭 마음에 새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관음재일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님에 대해서 말씀해드려야 되는데 지난 법문 시간에 말씀해드렸습니다. 지금 스님이 법문하는 횟수가 이마 250회 정도 될 것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관세음보살님은 헤아릴 수 없는 무수겁 이전에 불과를 이루어 붓다가 되셨고, 그러면서 사바세계나 윤회 안의 중생들을 살피시며,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열심히 뛰고 계시는 보살입니다.

  ‘시방제국토(十方諸國土) 무찰불현신(無札不現身)’

 

그럽니다. 이 우주 안에 수많은 중생국토가 있는데 당신을 간절히 부르면 어디든지 어디든지 가서 그 사람 앞에 나타나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살피고 그 사람의 소망을 들어주신다. 그런 원력을 지니신 정말 대자대비하신, 못 할 일 없으신 그런 붓다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불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은 관세음보살님보다도 훨씬 이전에, 나유타 겁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를 이루셨습니다. 


《법화경》에서 비유로 말씀해주신 바 있지요? 그 후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많이도 이 사바세상을 찾으셨습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과 같은 그 큰 어른들을 우리 불세존께서는 “관음아!~ 지장아!~” 그러십니다. 


우리 불세존은 그렇게 위대하시고 전지하시고 만능자재합니다. 모든 붓다들의 붓다이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을 우리 부처님과 비교해서 말씀드렸는데 관세음보살님은 이쯤 말씀해드립니다. 여러분 발원하시고 관세음보살님을 많이많이 칭명하면 대단히 좋습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보리수라고 하는 나무 밑에서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하신 후, 옛날에 함께 수도했던 다섯 비구를 향해서 하신 최초 법문이 사성제(四聖諦)입니다. 사제(四諦)라고도 합니다. 이 사성제 법문을 중심으로 말씀드립니다.


스님이 많이도 법문했지만, 이 사성제 법문이 불교의 가장 중심이 되고 핵심이 되는 법문입니다. 그 많은 불교의 사상, 팔정도(八正道) 중도(中道) 삼법인(三法印) 십이연기(十二緣起) 등 모든 불교가 사성제 법설 안에 들어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사성제 법문을 해줘야 되겠다. 이쯤 되어서 사성제 법문을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스님이 대학교수도 아니고 포교사도 아니고 법사도 아닙니다. 그래서 법문 내용이 교수들하고 구사하는 용어와 좀 다릅니다. 교학적으로 법문을 하게 되면 법문이 딱딱해집니다. 스님은 수행승이고 법왕자입니다. 법왕자의 입장에서 항상 법문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양해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부처님께서는 나유타겁하고도 아승지겁 전에 불과를 이루신 분이어요. 그것은 사실이어요. 2600년 전에 처음 불과를 이루셨다고 믿는 학자들이나 큰스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잘못 본 것입니다. 불교가 뭔지 모르는,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의 말입니다. 이 자리에서 자재 만현이 말씀드린 한마디 한마디가 진실하다고 했습니다. 스님의 말씀을 잘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불세존께서 깨달으신 정황을 말씀드립니다. 보리수 하에서 대각(大覺)하신 후, 무상정진도(無上正眞道)를 깨치신 후 삼매에 듭니다. 깊은 삼매에 듭니다. 《화엄경》에 잘 나와 있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은 수행승들의 깨달음과 천지차이입니다. 


가끔 스님이 말씀드리지요? 천지차이입니다. 선불교나 위빠사나, 밀교의 깨달음의 용어와 아주 다릅니다. 굉장히 다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화엄경》〈세주묘엄품〉을 비롯해서 전(全)품에 잘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으시면서 곧 깊~은 대적정삼매에 드십니다. 대적정삼매는 그 누구도 못 듭니다. 어떤 보살도 들 수 없습니다. 


붓다만이 들 수 있는 삼매가 대적정삼매입니다. 대적정삼매에 들어서 우주자체인 당신이 진불인 청정법신비로자나불과 한 몸이 되어버립니다. 수행승들의 깨달음은 화두타파라고 선불교에서는 그럽니다. 그때 우주의 본성, 본체가 확~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우주의 본체가 확~ 드러나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깨달음은 그것이 아니어요. 당신의 진불이신 청정법신비로자나불과 하나가 되어버려요. 그 뿐도 아니어요. 지금 《화엄경》에 그 부분은 말이 빠져있는데 당신의 절대계에 계시는 불신과 보리수하에서 수행하는 응화불(응신)과 청정법신 셋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셋이 하나가 되어버려요. 


그래서 2·7일 혹은 3·7일, 2·7은 14일이지요. 3·7은 21일이고요. 그 동안 깊~은 대적정삼매에 계셨는데, 부처님께서 깊~은 삼매에 들면 꽃비가 내리게 되어 있어요. 그 대성자가 삼매에 들어가심을 찬탄하고 환영하는 꽃비가 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꽃비를 담당하는 하늘이 있습니다. 꽃비가 내려요. 만다라화 만수사, 여러 하늘 꽃이 내립니다.


그다음에 세계는 육종으로 진동하는 것입니다. 육종진동 하는 거예요. 이 천체, 지구를 비롯해서 시방국토가 육종으로(여섯 가지로) 진동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방광합니다. 삼매에 나오셔서 방광하시는 거예요. 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 그리고 원만보신 노사나부처님, 그리고 석가모니부처님의 응신, 셋이 하나가 된다고 했잖아요. 셋이 하나가 된다고 했잖아요. 


셋이 하나가 되면서 빛을 발해요. 촤~악~ 빛을 발해요. 그러면 보리수하는 물론이고 그 근방이 모두 불국토가 되어버립니다. 《화엄경》을 보면 잘 나옵니다.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제 법문을 하시는 거예요. 불과(佛果)를 이룬 분들은 장면이 약간씩 다릅니다.


자재 만현의 법문에는 처음 불과를 이루었기 때문에 절대계에 있는 자재통왕불이 이 몸으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불세존께서 방광해주시려고 정수리에 좌정하십니다. 불과를 막 이루었기 때문에 아직은 몸에서 자유자재로 부처님처럼 그렇게 방광하지 못합니다. 스님 말씀이 아주 솔직합니다. 


이다음에 사람 몸 받아 올 때에는 방광하지요. 방광합니다. 그래서 이 청법대중이 부처님의 빛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 법문에 꼭 나오시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빛으로 여러분 업장을 씻어 줘요. 업장이 씻겨나가요. 여러분! 부처님의 빛을 받으면 업장이 씻겨나가요.

 

우리가 삼악도를 벗어나고 하늘에 가고 윤회를 벗어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부처님의 빛을 많이많이 받아야 됩니다. 업장을 씻어주는 빛도 있고 또 지혜를 넣어주는 빛도 있고 복을 넣어주는 빛 등, 여러 종류의 빛이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에게는 주로 업장을 씻어주는 빛을 방광해 주십니다. 그러니까 이런 법회에는 정말 빠짐없이 나와야 됩니다. 복이 없으면 못 옵니다. 결코 올 수가 없습니다. 이 업장을 씻어야, 쉽게 말하자면 지은 죄를 씻어버리면 그 죄의 과보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업장이 씻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업장을 씻어야 되요. 법회에 많이많이 나와서 업장을 씻고 씻고 한 사람은 결코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질 수가 없어요.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질 사람은 영혼체가 거무튀튀해요. 숯검정처럼 되어 있어요. 그 정도면 극무간지옥에 갈 사람이어요. 


그런데 업장을 씻어주면 그 거무튀튀한 영혼체가 씻겨 나가는 거예요. 씻겨나가요. 그래서 많이도 많이도 업장이 씻겨 지면 거무튀튀한 것이 회색빛으로 되요. 


회색빛이 제6하늘입니다. 6하늘 천인들의 몸 색깔입니다. 더더욱 업장을 씻으면 아주 하얗고 맑고 거울처럼 유리처럼 청정하게 되어요. 이것은 5하늘부터 그렇습니다. 5하늘 천인들은 그렇습니다. 이 정도로 이야기해 두겠습니다.


오늘 법문할 내용은 『사성제』입니다. 다섯 비구를 향해서 부처님께서 법문해주는 거예요. 당신은 다시 크~게 깨쳐서 내려와 보니까 다섯 비구들은 아직도 깨치지를 못했어요. 다섯 비구들이 깨친다고 해야 거기는 아라한이지요. 거기는 아라한입니다. 


아직 못 깨쳤어요. 그래서 법문해주시는 거예요. 법문해주시는데 위신력을 놓으면서 하거든요. 부처님들은 가피를 주면서 해요. 업장을 씻어주고 저 비구 몸속에 빙의된 것을 떼어 주시기도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법문을 해주시거든요. 수행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수준에 맞추어서 법문을 하십니다. 


그래서 잘도 알아듣고 ‘정말 진짜 법문이구나!’ 해서 그 법문 끝에 깨치기도 해요. 많이 깨쳤어요. 많이 깨칩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설법을 한 끝에 대부분 사람들은 복이 많아서 많이도 깨쳤어요. 곧 아라한과도 증하게 되었어요. 이것은 부처님의 위신력이어요.

 

어떤 법문을 하셨느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요. 부처님은 다시 불과를 이루어서 인생과 우주의 모든 것을 꿰뚫어 봤어요. 꿰뚫어보니까 업이 지중한 사람은 지옥을 가고, 지옥에서 사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짐승으로 나오고 아귀의 몸을 받는 것을 보니까 너무도 불쌍해요. 


지옥은 너무너무도 무서워요. 짐승세계도 너무너무도 그 환경이 열악해요. 그렇지요? 그러니까 제도하지 말라고 해도 그 자비심으로 제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제도 안 할 수가 없어요. 너무도 불쌍하니까 제도하고 싶은 생각이 난단 말이어요. 놔두면 지옥 이귀 축생으로 갈 사람들이거든요. 그러니까 붙들고 붙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진 이유를 부처님 지혜로 뚫어보니까 탐‧진‧치어요. 탐‧진‧치 때문에 지옥 아귀 축생으로 떨어지더라 그거예요. 어리석은 짓을 많이 했으면 반드시 축생 보를 받습니다. 탐욕심이 많아서 인색하면 반드시 아귀 몸을 받거든요. 


또 진심(瞋心, 성내는 마음) 분노(憤怒) 화를 시도 때도 없이 분출하고 아주 악한 짓을 하게 되면 지옥에 가거든요. 탐‧진‧치 업을 지어서 지옥 아귀 축생에 가 나더라 그거예요.

‣ 그래서 이 법문을 다섯 비구를 향해서 이렇게 설법하십니다.

 

“너희들이 사람으로 살았으니까 알겠지만, 이 인간세상은 고해(苦海)다. 고통 아님이 없단다.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 이거 너무 고통스러워. 인간은 고해야. 지옥 아귀 축생의 중생은 말할 것도 없어. 사람의 10배 100배 1000배라네. 하늘 중생도 잘 산다고 하지만 복이 다하면 떨어진다네. 지옥으로도 떨어지고 인간으로도 온다네.”


이 고통에 대해서 괴로움에 대해서 이야기해줍니다. 여러분 전번 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고통 근심 걱정 등 이런 것 없으면 살겠지요? 그러나 고통 없이 사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괴로움 없이 괴로움 당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거예요. 오복(五福)을 갖추었다고 해도 아니지요. 자식이 남편이 부모가 아파서 마음고생을 하면 괴로워요. 이 고통,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정말 우리가 바라는 것이어요.

 

그러니까 우리 부처님께서 생로병사, 이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나는 길이 없느냐 해서 출가하셨던 거예요.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에게 법을 설해서 많은 사람을 구제하리.’ 이런 소망으로 출가해서 수도한 거예요. 그래서 깨달으신 후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한 거예요. 이것을 고성제(苦聖諦)라고 합니다. 


사성제 중에서 고성제라고 그래요. ‘괴로울 고’자, 제(諦)자는 ‘말씀 언言’변에 ‘임금 제’자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아주 거짓 없고 진실하다.’ 그 말이어요. 고라는 말은 ‘인간은 고다. 생존이 곧 고다. 생즉고(生卽苦)다. 생(生), 사는 것이 곧 고(苦)다.’ 이것이 진리라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한 때에는 그저 기쁘고 행복해서 ‘하하 히히’ 하고 그러지만, 이것은 노래에 있듯이 눈물의 고통, 눈물의 씨앗이라고 하는 거예요. 맞는 거예요. 그래서 중생이 사는 것은 고다. 인간세계는 고해(苦海)이다. 이것을 고성제라고 해요. 이것은 진리라는 거예요.

이 말은 진리라는 거예요.

 

‣ 그다음, 내가 그렇게 수행을 많이 하고 삼계를 뚫어버리고 모든 것을 통찰해보니까 하나님은 없더라 그거예요. 절대자는 없더라 그거요. 우주만물을 창조한 절대자는 없더라. 그러면 이 고통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디서 왔느냐? 


사유를 거듭해서 내가 불과를 이루어보니까 고통이라는 것이 어디에서 오느냐? 탐진 번뇌에서 오더라 그거요. 고통이라는 것은 업(業)에서 오는데 업은 어디서 오느냐? 탐진 번뇌에서 업을 짓거든요. 탐진 번뇌에서 오더라.


탐진은 어디에서 오느냐? 삼독 탐진은 어디서 오느냐? 12연기에서 보면 갈애(渴愛)그래요. 애(愛), 그것을 갈애라는 거요. 애에서 온다. 갈애에서 온다. 갈(渴)자는 여름에 운동을 많이 하다가보면 갈증이 난다는 말이어요. 갈증이 나요. 


갈증이 나면 먹어도 먹어도 먹고 싶어요. 그 갈(渴)자입니다. 애자는 ‘사랑 애’자예요. 정애, ‘사랑 애’자. 이것은 사실 그 근본이 애욕(愛慾)이어요. 여러분, 애욕 알지요? 남녀 간의 사랑, 애욕, 이것의 근본은 무엇이냐? 무명(無明)이라고 그래요. 


이 무명에서 애욕과 갈애가 나오고, 갈애에서 집착하게 되고, 집착에서 업을 짓고, 업을 지어서 고통이 온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고통의 근본, 윤회고(輪廻苦)의 근본, 우리가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통의 근본은 어디서 오느냐? 탐진 삼독 번뇌에서 오는데 더 뚫어보면 갈애에서 온다. 갈애와 집착, 이놈을 끊어버려야 육신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된다 그거예요. 


그렇더라 그거예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반드시 갈애와 집착을 끊어야 된다. 이 갈애와 집착을 집(集)이라고 합니다. 집제(集諦)라고도 하는데 집이라고 그래요. 앞의 고제(苦諦), 그 다음에 집제, 집성제(集聖諦) 그럽니다. 이 집(集)자가 ‘새 추’밑에 ‘나무 목’을 한 자예요. 


‘새 추’밑에 ‘나무 목’을 한 자인데 무슨 뜻이냐 하면 한문학자들이, 중국의 불교학자들이 산스크리트어의 삼우다야samudaya, 결합해서 상승한다, 삼우다야samudaya를 집으로 번역한 거예요. 고통의 원인, 고통을 가지고 오는 원인을 집이라고 해요. 고통이 오는 원인 ‧ 고통을 가져다주는 원인, 집이라고 그래요. 번뇌라고도 해요. 


이 번뇌가 고통의 원인이 되더라 그거예요. 하나님이 아니고 우리가 스스로 탐‧진‧치 번뇌를 일으켜 업을 짓는데, 이 때문에 고통이 오더라 그거예요. 왜 그러느냐? 이 몸뚱이에는 사실 갈애와 애욕이라는 것이 깔려있습니다. 녹아있습니다. 이 몸뚱이가 그래요. 사실은 이 몸뚱이가 있어서 그래요.

 

‣ 그래서 이 갈애와 집착을 뿌리 뽑아버리면 고통이 오지 않는데, 그 뿌리를 뽑아버리는 방법이 뭐냐? 팔정도(八正道)라고 해요. 팔정도가 뿌리를 뽑는 방법이어요. 이것을 도성제(道聖諦)라고 그래요. 도제(道諦)라고도 합니다.

‣ 뿌리를 뽑아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멸성제(滅聖諦) ‧ 멸제(滅諦), ‘해탈 열반에 이른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사성제라고 하면 고성제고제 ‧ 집성제집제 ‧ 멸성제멸제 ‧ 도성제도제 그럽니다. 이것이 진리다 그거에요. 우리 부처님께서는 평생 이것을 의식하셔서 법문하신 거예요. 사성제를 기반으로 해서 법문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불교의 모든 교설이 사성제로 다 어우러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사성제 법문을 맨 처음 하신 것입니다. 다섯 비구를 상대로 해서 말씀하신 것이거든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깨달았다고 하면 뭘 깨달았지요?

⁃ 사람이 어떻게 탄생하고

⁃ 우주만물이 어떻게 해서 생겨나고

⁃ 생겨나서 어떻게 어떻게 진화하고

⁃ 그러다가 그 후에는 어떻게 파괴되지요.

⁃ 또 그 후에는 어떻게 없어지지요.


⁃ 그 후에는 이것을 반복하지요. 이것을 보신 거예요. 깊이 통찰하신 거예요.

인간과 우주만물이 어떻게 해서 생겼느냐? 보니까 우주본체에서 모든 씨종자가 나왔는데, 그것이 연기법(緣起法)으로 전부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더라 그거예요. 


인연 따라서 이루어지는데 중생들이 지은 업과 이 우주본체의 힘이 인간의 탄생과 우주만물을 생성 가능하게 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을 가능하게 하더라. 그래서 모든 것은 인연으로 된다 그거예요. 인연으로 된다.

 

내가 과거 생에 어떤 사람이 보기 싫어서 칼로 찔러 죽였단 말이에요. 무서운 살인을 했단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나와 그 사람 간에는 인연이 맺어진단 말이에요. 나쁜 인연인 악연(惡緣)이 맺어져요. 원결이 맺어진단 말이에요. 


그러면 그것이 돌고 돌아요. 나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원한을 가지고 나를 죽이려고 호시탐탐(虎視耽耽) 기회를 노린단 말이어요. 기어이 죽이려고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내가 그 사람한테 죽어요. 죽으면 또 내가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전생을 모르니까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그러니까 죽고 죽이고 죽고 죽이고 하더라 그거예요. 계속 그러더라 그거예요.

 

또 내가 어떤 사람한테 크게 은혜를 입었으면 사람이니까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단 말이에요. 그러면 할 수 있는 한 내가 그 은혜를 갚으려고 하잖아요. 은혜가 지중하고 많으면 반드시 갚게 되어 있습니다.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오면 좋은 것으로 주고, 나쁜 것으로 받으면 나쁜 것으로 갚아요. 


이것을 인과(因果)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연기법(緣起法)이라고 합니다. 인과의 법칙, 인연의 법칙을 모두 연기법이라고 해요. 부처님께서는 연기법을 깨친 것이어요. 연기법을 깨쳤는데 왜 연기법과 십이인연을 설하지 않고 먼저 사성제를 설했느냐?

 

사성제가 최초 법문입니다. 그래서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해요. 사성제 중에서 앞에서 말씀드린 팔정도를 도성제라고 하는데 이 고통을 가져오는 원인인 갈애와 집착 무명 등을 뿌리 채 뽑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리 사유해도 팔정도가 최고예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도제(道諦) 팔정도(八正道)를 성스러운 진리로 알고 있어요. 


팔정도로 깨닫는 거예요. 팔정도로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설하십니다. 팔정도로 탐진 삼독의 뿌리를 뽑아버리면 멸제(滅諦)라고 그래요. 멸제‧멸성제라고 하는데 그것을 해탈 열반이라고 그래요. 


그때는 해탈 열반까지만 이야기하고 우리 현지사에서 이야기하는 상락아정 니르바나세계라든지 부처님의 저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 당시 다섯 비구를 향해서 그저 윤회생사에서 벗어나는, 생노병사에서 벗어나는 길만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것이 사성제 법문이어요. 그래서 다섯 비구가 아라한과를 얻게 됩니다.


아무래도 교학 문구를 쓸 수밖에 없으니까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참 어려울 거예요. 하나하나 설명해야 되는데 좀 미안합니다. 그러나 다른 절에서 법문을 많이 들으셨으면 좀 이해하실 거예요. 사성제 법문이 대단한 법문입니다. 


대~단한 법문입니다. 팔정도 법문이 대단한 법문입니다. 이것을 초전법륜이라고 해요. 연기법을 설하지 않고 부처님께서 맨 처음 사성제 법문을 하신 거예요. 


사성제 법문에는 고(苦)를 벗어나는 방법이 있고 고를 벗어나면 가는 해탈 열반의 세계가 있기 때문에 이 법문을 먼저 하신 거예요. 모든 부처님의 법문은 사성제 법문으로 다 집약되어요. 사성제 법문이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 법문이어요.

 

의사는 환자가 오면 어디가 아픈가를 살피잖아요. 진찰해 봅니다. 아파서 왔잖습니까? 따지면 그것이 고성제예요. 환자가 아파서 왔단 말이어요. 아픈 것은 고(苦)란 말이어요. 고성제란 말입니다. 진찰합니다. 여러 가지 사진을 찍습니다. 


피검사도 한단 말이어요. 원인을 찾아야지요. 그래서 원인을 찾았어요. 그것이 집성제예요. 고통이 오는 원인이 집성제예요. 원인을 알았으면 해결방법이 있잖아요. 주사를 놓거나 약을 처방하거나 수술하는 것, 이것을 팔정도라고 해요. 또 도성제라고 해요. 치료를 하면 어떻게 됩니까? 병이 낫지요. 정상인이 되지요. 본래 건강을 찾지요. 이것을 멸성제라고 그래요.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스님이 30분 40분을 법문하다 보니까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할 말이 많은 데요. 자, 조금 더 합시다. 이번에 라디오를 들어보니까 저 우크라이나 상공을 운항 중이던 295명의 승객이 탑승한 말레이시아 소속 민간 항공기를 미사일을 쏴서 승객 모두가 죽었습니다. 내가 신문을 안 보니까 어디서 쐈는지 모르겠어요.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쐈는지 친러시아 반군이 쐈는지 모르겠는데, 또 왜 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지금 거기서만 죽습니까? 저 중동의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하고 이스라엘이 전쟁 중이지요. 양국은 철천지원수이면서 앙숙이지요. 지금도 날마다 몇 십 명씩 죽어요. 거기서만 그럽니까? 이라크가 그러지요.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상대를 죽이고 죽고 그럽니다.

 

그런데 사람을 죽인 죄는 정말 용서받지 못합니다. 국가건 개인이건 사람을 죽인 죄는 무서운 과보가 옵니다. 개인적으로 죽이게 되면 원결이 맺어지지요. 또 그 사람을 죽인 업이 있지요? 그 업으로 지옥에 가는 거예요. 


사람이 되어 온다고 하더라도 원결로 인해서 기어이 그 사람한테 죽는 거예요. 이런 원결을 한번 지으면 많은 생을 복수하며 복수극으로 끝납니다. 시작해서 복수극으로 끝나는 거예요. 사람을 죽이는 법이 아니거든요. 어떤 경우든 사람을 죽일 수 없어요.

 

자, 그런데 이것만 죄인가? 입으로 짓는 죄가 사람을 죽인 죄 못지않게 무섭다고 합니다. ‘부처님 불‧보살님이 마음이지 인격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곧 부처님이 없다. 불 ‧ 보살이 없다.’ 이러한 법문을 큰스님이 한다든지, ‘《화엄경》이나 《법화경》이나 《지장경》이 다 무슨 진짜 말이냐? 


그건 다 방편이지. 방편설이지.’라고 할 경우, 그리고 《법화경》을 공부해서 신통을 했다는 어떤 사람에게 물어봐요. ‘다보불탑을 봤느냐? 다보부처님을 봤느냐? 본화보살을 봤느냐?’ 하고 물어봐요. 


그것을 못 봤으면 외도예요. 사마외도예요. 또 극락과 지옥이 없다고 한다든지, 극락과 지옥이 마음속이라고 한다든지, 사실은 육도윤회를 하는 것인데 실제로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로 말하는 것, 이러한 법문을 하게 되면 사람 죽인 것 이상으로 무서운 과보를 받습니다.


내가 불교신문을 가끔 보는데 모르는 사람은 혹하게 빠질 것 같아요. 혹하게 빠질 부분이 많아요. 여러분 둘리면 안 됩니다. 혹하면 안 됩니다. 그 스님이 말도 잘하고 잘 생겼고 학벌도 좋고 책도 많이 쓰고 수행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부모님에 대한 효를 강조하지 않고 나라에 대한 충성을 이야기하지 않고 스승을 공경하라는 말을 뒤로 돌리고, 죽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고, 경전을 소홀히 생각하고 염불을 외도 시 하는 법문을 한다면 정말 불쌍합니다. 정말 불쌍합니다.


내가 평소에 존경했던 분이 있었습니다. 지난 날 몇 십 년 동안 도반 하나가 정말로 보배였습니다. 조계종에서는 보배예요. 공부도 많이 했고 변재이고 깨끗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법문할 때 몇 마디 큰 실수가 있었어요. 큰 실수가 있었어요. 《지장경》을 해설 강의할 때, ‘《지장경》이 무슨 경전이냐?’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과보가 너무도 크더라고요. 너무도 무섭더라고요. 그리고 소위 한 소식했다는 분들, 선지식이라는 분들, 죽어서 어디로 갔나하고 확실히 추적을 해보면 정말로 무서운 곳으로 가 있어요. 정말로 무서운 지옥에 가 있더라 그거예요.


이런 업을 지으면 안 됩니다. 자기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인과법문에 충실하고 생활법문에 충실해야지 견성해도 모르는 그 경지를, 보살이 되어도 모르는 경지를, 불과를 이루어야 알 수 있는 경지를 함부로 자기가 이러쿵 저러쿵 단언해서 말한다는 것은 눈먼 중생을 오도(誤導)하기 때문에 그 과보가 아주 무섭습니다. 


너무도 무섭습니다.

또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안 되지요. 스님으로서 계율이 청정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과보가 무섭습니다. 이것을 말씀해드립니다.


이제 칠석이 돌아오는데 우리 보살님들, 우리 부처님회상이라는 곳은 여러분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면이 있어요. 칠석날 저기 치성광여래 부처님께서 여러분들의 아픈 곳을 아셔서 여러분들한테 좋은 감로수를 내리시겠다고 합니다. 


아시지요? 우리가 몇 번 했지요?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동참하신 분들은 불‧보살님들이 내려오셔서 업장도 많이 씻어주실 거예요. 그것을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부처님은 빛의 존재예요. 무량억종광의 존재예요. 몸이 무량억종광으로 이루어져있어요. 그 빛의 힘이 불가사의합니다. 역사 이후로 그 빛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영산당시 부처님 이후로 그 빛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 빛을 보아야 불신(佛身)을 얻는데, 대적정삼매에 들어야 그 빛을 보는데 2600년 이후로 그 빛을 본 사람이 없어요. 오직 현지사에 불과를 이루신 두 분 큰스님이 보신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부처님은 깊~은 삼매에 들어야 봅니다. 깊~은 삼매에 들지 못하면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을 볼 수가 없어요. 대적정삼매에 들어가야 봅니다. 그래서 2600년 이후로 어떤 스님도 부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부처님이 없다고 그래요. 부처님이 있다고 하는 현지사를 우습게 알아요. 비웃어요. 그런데 그 업은 너무너무도 크거든요. 부처님 교단을 비웃는다? 폄훼한다? 이건 큰 업입니다.


붓다가 되었다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시죠? 스님이 아주 강조를 하니까요. 불신이 있어야 붓다라고 하는 거예요. 불신이 있어야 부처인 거요. 저기 11차원 저 위 상적광세계 절대계에 그 사람의 불신이 있어야 부처예요. 불신이 없으면 부처가 아니어요. 그 불신은 억종광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능력이 무한합니다. 


지혜와 복이 한이 없어요. 복력이 한이 없어요. 붓다는 복력이 한이 없습니다. 불과를 증한 사람은 복력이 너무너무도 많아요. 관세음보살님은 중생들의 온갖 소망을 다 들어주시잖아요. 복력이 없으면 못해요. 이 사바세계를 살만한 복력이 있는 거예요.

 

우리 광명만덕 태사부님 아시죠? 우리 부처님께서 태사부님한테 그러셔요. “너 돈을 써라. 얼마든지 써라. 원 없이 써라.” 그러십니다. 마치 옹달샘에 물이 퐁퐁 나오지요. 아무리 퍼 써도 나오잖아요. 그처럼 ‘돈을 얼마든지 써라.’ 그러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껏 불사를 하는 거예요.


다음은 전번에 ‘광명만덕님이 왜 붓다인가’를 이야기 하다가 다 말씀드리지 못해서 조금 보완해 드릴게요. 앞으로 광명만덕님에 대해서 여러분 불공 한번 해봐요. 소원 못 이루는가. 아셨지요?


‣ 붓다는 천백억 화신을 낼 수 있어요. 여러분이 상상을 못합니다. 보살은 안 됩니다. 불격을 갖춘 최상수 보살까지도 안 되어요. 천백억 화신을 낼 수 없어요. 천백억 화신이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 내 몸을 천으로 억으로 백억으로 나눌 수 있다 그거예요. 천백억 곳에서 나를 부르면 내가 천백억 사람 앞에 간다 그거에요. 그러려면 이 몸을 천백억으로 만들어야 되잖아요. 천백억으로 만들 수 있다 그거에요. 그런 힘이 붓다에게 있어요.여러분 희유하지요?

  

‣ 붓다는 32상 80종호를 갖추고 있어요. 보살도 그렇게 못해요. 붓다의 그 장엄한 모습이 그래요. 한없이 아름다워요. 한없이 예뻐요. 손가락 하나만 봐도 얼마나 얼마나 예쁘던지 수행승이 삼매에 들어가 버린 거예요.


‣ 부처님의 깨달음의 목소리는 너무너무도 아름다워요. 상상을 못해요.

‣ 지혜가 끝이 없고 자비가 한이 없습니다.


‣ 부처님은 해탈상이어요. 탐‧진‧치에서 완전히 벗어나버렸거든요. 생로병사 근심걱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거든요. 완전히 벗어난 분들을 해탈상이라고 해요. 해탈신이라고 그래요. 부처님은 해탈상이어요.


‣ 좋은 일 있으면 부처님들 끼리 춤도 추고, 곡차도 한잔씩 마십니다. 그런데 그 춤추는 모습은 완전히 해탈한 분들의 모습이어요. 여러분, 얼마만큼 해탈의 모습으로 춤을 추느냐? 그것이 점수잖아요. 


저기 춤 잘 추는 사람을 선발하는데 심사위원들이 그것을 보는 거예요. 완전히 해탈상이어요. 그거 아십시오. 천마가 어찌 그럽니까? 하늘사람이 하늘의 마구니가 어떻게 해탈상입니까? 거기는 눈부터 탐욕이 가득 차 있는데요.


‣ 8만4천 신통이 문제가 아니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지요?

시방제국토十方諸國土    무찰불현신無刹不現身

시방十方의 모든 국토에, 몸을 나타내지 않는 세계가 없도다.


관세음보살의 능력이 그래요. 모든 붓다의 능력이 그래요. 빛으로 500억 광년 가는 저 국토에서 자기를 부르는데 순간에 간다 그 말이어요. 그런 능력이 있어요.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래요. 억종광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래요. 그런 능력이 나오는 거예요.


‣ 한~없이 방광을 해도 빛이 끝없이 나와요. 그 빛은 보통 빛이 아니어요. 자성광도 아니고 보살의 극락국토의 자금광도 아니어요.


‣ 삼악도 중생을 건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모든 붓다는 삼악도 중생을 건질 수 있는 힘이 있어요.


‣ 붓다는 수행자를 아라한까지 삼매에 끌 수 있어요.

‣ 부처님은 대적정삼매까지 끌 수 있어요. 이런 힘이 있어요.


‣ 110위 화엄성중을 부리고 보고 받아요. 우리 광명만덕님이 그래요. 110위 화엄성중을 부린다 그 말이어요. 과제를 주고 언제까지 결과보고 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 붓다에게는 적수가 없어요. 붓다는 청정법신을 자기 진불로 해서 우주자체예요. 상대가 있다고 합시다. 무서운 적수가 있다고 합시다. 신으로 추앙받는 상대 교주를 징벌할 때, 징벌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몹쓸 짓을 하여 책임을 묻고 징벌을 해야 될 때, 자기의 권속들이 몹쓸 일을 해서 책임을 물을 때를 정말로 봤습니다. 


신이라는 분에게 책임을 물어요. 그 권속 수 십 명을 순간에 극무간지옥으로 쳐넣더라 그거예요. 부처님은 이런 분이어요. 무량억종광의 빛을 순간에 내어서 그 사람들을 포위시켜 버려요. 그리고 도수를 올려요. 


천 도(℃) 만 도(℃) 억 도(℃)로 올려버리면 타서 죽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서 조여요.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빌지 않을 수 없지요. 그게 무슨 신이어요? 진짜 신은 진짜 하나님은 부처님이어요.


이 부처님이 우리 회상에 와계셔요. 또 자재 만현이 법문할 때 정수리에 좌정하셔서 지금까지도 계셔요. 업장을 씻어 주셔요. 업장을 씻어주신다고요. 복이 많은 사람은 그 무서운 바람에, 불가사의한 그 빛의 힘에 빙의된 것도 나가요. 그러니까 현지사 법회 때에 꼭 나오시면 여러분들이 사는 길인데 아무리 말해도 나오지 않아요.

 

저기 조계종 총무원에서는 현지사가면 큰일 나니까 죽어도 가지 말라고 한데요. 무엇이 큰일 나? 그 이유는 못 댑니다. 그냥 외도래요. 무엇이 외도야? 부처님 계시는 것이 외도입니까? 부처님을 믿으라고 하고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고 부처님의 능력이 무한한 것을 발견한 절이 우리 현지사예요.


 2600년 전 영산당시 이후 그 어떤 스님도 이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을 뵙지 못했어요. 그 당시 가섭과 아난이 와서 불과를 이룬 거예요. 그래서 본 거예요. 본 것을 지금 전하는 거예요. 전하는데 믿어주지 않아요. 안 믿어줘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안 믿어줘요. 서문은 우리 부처님이 불러주는 것을 우리가 쓴 거예요. 그런데 안 믿어줘요. 안 믿어줘요. 마음이 부처이지 부처님이 어디에 있느냐 그거요. 밀장이기 때문에 내가 법문을 다 못합니다. 


그 밀장 부분을 건드릴 수 없어요. 말할 수가 없어요. 내가 여러분한테 250여회 법문한 것은 아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⅓이나 했을까?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 승려들이 내 법문도 듣지 않고 내 책도 안 봤는데 뭘 압니까? 그저 선불교에 빠져서 거기의 말이 전부 진리인 줄 알고 우리를 거기의 잣대로 재는 거예요.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했지요.

 

붓다의 교단, 부처님 회상을 폄훼하면 큰 죄입니다. 큰 죄입니다. 입으로 짓는 정말 무서운 죄입니다. 부처님과 부모님을 상대로 한 죄처럼 무섭습니다. 우주의 진리를 왜곡한다든지 잘못 전한다든지 몰래 사음한다든지, 이런 것은 큰 죄입니다. 


그러지 말라 그거요. 그런 죄를 짓지 말라. 정법을 듣고 고맙게 받아들여야지요. 우리를 알려면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보고 우리 법문을 듣고 말해야지, 무조건 외도라고 한다 그거예요.


또 ‘여자가 어떻게 부처냐?’ 그런다고 해요.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최초의 불과는 여자 몸을 받아와야 되요. 왜? 부처님께 여쭤보니까 삼계의 모든 붓다님들께 공양을 올려야 되요. 이 공덕을 짓지 않으면 안 되어요. 그런데 남자 몸을 받아오면 그 부분에서 조금 약해요. 그렇지요? 소홀할 수 있지요? 그런데 나는 덤으로 따라왔거든요.

 

‣ 붓다는 대적정삼매에 들어요. 화엄삼매 해인삼매가 문제가 아니라 대적정삼매에 들어요. 삼매에 아주 요달했다고 하는 파탄잘리있지요? 그 사람은 대적정삼매에 못 들어요. 대적정삼매는 들 수가 없어요. 그런데 붓다는 대적정삼매에 들어요.


‣ 저기 광명 만덕님의 불신은 항상 대적정삼매에 들어 있어요. 그래서 광명만덕님은 정말 붓다예요. 자재 만현이 법상에 올라와서 청정법신비로자나부처님 앞에서 오직 진실만을 말씀드린다고 했지요? 광명 만덕님은 붓다예요. 붓다 중에서도 불세존의 법을 상속한 아들이어요. 대단합니다.


‣ 지금 광명 만덕님의 영혼체 1‧2‧3번은 절대계에 가 있어요. 그 불신과 계합했어요. 자재 만현의 영혼체 1‧2‧3번도 거기에 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몸뚱이가 좀 다릅니다.


이 정도로 말을 해드리겠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입니다. 이 사성제(四聖諦)에 대해서, 사제 삼전십이행(三轉十二行)상이라든지 사제관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 이야기할 말이 있는데 이건 전문적입니다. 그래서 이다음에 시간을 봐서 더 보충해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정도로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화엄경》을 보면 부처님의 방광하는 모습,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면서 법문을 하시는 모습, 아주 정말 불가사의한 장면이 많아요. 많은데 게송 두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세존좌도량(世尊坐道場)하시니

청정대광명(淸淨大光明)이

비여천일출(譬如千日出)하야

보조허공계(普照虛空界)로다


우리 부처님은 그래요.

세존좌도량(世尊坐道場)하시니-불세존께서 도량에 앉아계시니, 보리수 하에서 정각을 이루시고 도량에 앉으셨단 말이어요. 보리수하에 앉아

계시잖아요.


청정대광명(淸淨大光明)이-청정한 무량억종광명이, 부처님의 몸을 이루고 있는 청정한 무량억종광명이. 불과를 이루셨고 또 당신의 불신보신과 당신의 청정법신이 하나로 되어버렸기 때문에 빛을 내는데


비여천일출(譬如千日出)하야-마치 천 개의 태양이 뜬 것처럼, 천 개가 문제가 아니지요. 만 개 억 개의 태양이 뜬 것처럼 환하다 그거예요. 비유하자면 백 개도 천 개도 만 개도 더 되는 해가 불쑥 솟아 나오듯 광명이 그렇게 휘황찬란하더라 그거예요.

 

보조허공계(普照虛空界)로다-그 빛이 허공법계을 두루 비추도다.

현지사 법문을 듣지 못하면, 법신 보신 화신의 법문을 듣지 못하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들은 《화엄경》이 방편설이라고 그래요.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


불신충만어법계(佛身充滿於法界)-불신이, 부처님 몸이 법계에 가득하다 그거예요. 우주에 가득하더라 그거예요. 우주 자체이니까. 부처님께서는 법계에 충만하시다. 이것은 우주자체가 되어버린 몸뚱이인 법신불 이야기를 한 거예요. 붓다가 되면 우주자체가 된 몸뚱이를 하나 지니고 있어요. 우주아(宇宙我)가 된 몸뚱이가 있어요.


보현일체중생전(普現一切衆生前)-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을 부르면 부처님이 앞으로 다 가시더라 그거예요. 기가 막힐 일이지요. 널리 모든 중생들 앞에 나타나니 기가 막힌 신통이지요. 천만억 중생이 아니라 몇 조(兆)의 중생이라도 부처님을 부르면 그 중생들 앞에 가십니다. 그런 힘이 있습니다. 오직 붓다만이 그렇습니다.

 

수연부감미부주(隨緣赴感靡不周)-중생의 근기에 따라 어디에나 나아가지만 연(緣)을 따라 두루하지 않음이 없으시며,

이항처차보리좌(而恒處此菩提座)-항상 이 보리좌 아래에 계시도다.


여러분 이해하시겠어요? 희유하지요. 이것은 법신 보신 화신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연출한 경전인 《화엄경》입니다. 그래서 삼신에 대해서 모르면 이 《화엄경》을 읽을 수 없고 《법화경》을 읽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도 안 되니까 ‘이것은 전부 비유한 것 아니냐? 방편설 아니냐?’ 그래요.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불교를 오도(誤導)한 것이지요. 잘못 해석하고 잘못 이야기한 것이지요. 이것은 큰 업이 됩니다. 이것은 업이 되지요. 머리가 좋고 또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불교 대학자가 되었는데 이런 법상에 앉혀 놓으면 그런 못된 말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극무간지옥에 가고, 무간지옥에 가서 벌을 받고 나오면 부처님께서 “무엇이 되었는지 봐라.” 해서 보면 “돼지로 천 번 나올 것이다. 혹은 또 구렁이로 몇 번 나올 것이다.” 하는 것을 딱 보여준단 말이어요. 그래서 현지사 법문을 들어야 됩니다.

이 스님들이 들어야 됩니다.


나는 어제 어느 스님한테 이야기했지만, ‘나는 한이 있다. 무슨 한이냐? 내가 BTN(불교방송국) 같은 것을 인수하고 싶다. BTN 국내 시청자가 1,000만 명, 해외동포가 700만 명이라고 하니까 그 BTN을 인수해서 한 달에 두 번씩 2년~3년만 해주면 귀를 못 뚫을 일이 없다.’ 그 말이어요. 


그러니 불교신도 수가 몇 억 명이 될 수 있지요. 돈이 있으면 또 영어로 자막을 내고요. 그러면 불교를 살릴 텐데, 지금 불교가 다 죽었거든요. 큰스님들이 삼악도로 떨어질 판인데요. 그건 입으로 업을 지으니까 그런단 말이어요. 입으로 업을 지으니까요.

 

입으로 왜 업을 짓습니까? 사성제에 입각해서 이야기합시다. 왜 업을 짓지요? 탐‧진‧치가 있어요. 욕심이, 아주 깊은데 들어가면 그 밑에는 갈애 애욕이 깔려 있습니다. 갈애와 애욕은 생의 애착보다 더 무서워요. 이 육신에 대한 애착보다도 뿌리가 더 깊습니다. 그것이 뿌리박고 있어요. 


그 밑에 무명(無明)이 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부술 수 있는 것은 팔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팔정도를 넘어서서 칭명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팔정도로 하게 되면 아라한밖에 못갑니다. 아라한도 스승을 만나야 되요. 팔정도를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야 되요. 빙의된 것을 떼어 줄 수 있어야 되고요. 마장을 막아줘야 되요. 그런데 이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도인이 있느냐 그거예요.


칭명염불을 권하고 있습니다. 칭명염불은 부처님에 대한 신심만 있으면 되요. 신심 하나로 보살이 된다고요. 아라한이 자력으로는 결코 보살이 될 수 없습니다. 아라한이 백천만겁을 태어나서 자력으로 한다고 해도 보살이 못됩니다. 부처님 회상을 만나서 칭명염불을 해서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보살이 되는 거예요.


또 우리 부처님께서는 중도(中道)를 말씀했어요. 중도라는 것은 양극단을 버리는 거예요. 양극단을 가지 않는 거예요. 수행을 해보니까 고행(苦行)도 안 되더라 그거예요. 고행도 도(道)를 이루기에는 벅차더라. 고행으로는 삼매에 들어가지도 못해요. 그런가 하면 할 짓 다하고 오욕락을 즐기면서는 더더욱 안 되더라 그거예요. 도가 이루어집니까? 그래서 양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말씀하신 거예요. 중도행이 팔정도예요.


여러분 종단이 다르면 법문이 각각 다르잖아요. 각 종단 스님 법문이 다 다르잖아요. 우리 현지사 법문이 자기들 법문과 다르다고 그런데요. 다르지요. 위빠사나하는 저 남방불교 포교사 법문 다르고, 밀교의 밀교 행자들 포교사 법문 다르고, 또 선불교 선종의 법문이 다릅니다. 


우리 현지사 법문은 훨씬 위에 있습니다. 훨씬 위에서 모든 종단의 교리를 알고 과학과 철학, 모든 종교의 교학 교리를 알고서 법문하니까, 또 불과를 증한 법왕자의 법문이기 때문에 다르지요. 다르지만 진짜입니다.

오늘 이만 하겠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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