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0일(음9.12) 지신대재 자재만현 큰스님 법문 제348회>
여러분, 아주 반갑습니다. 대단히 반갑습니다. 오늘 지신대재를 맞이해서 약 천백 명 내지 천이백 명 정도가 왔습니다. 이제 정상으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대단히 반갑습니다. (박수)
오늘 여기 나와 주신 우리 신도분들, 그 바람, 태풍에도 아랑곳없이 부처님에 대한 거룩한 신심 흔들리지 않고 이렇게 마음 다잡고 오셔서 그렇게 반갑고 고맙고 예쁩니다. 여러분은 붓다의 회상을 숙세의 서원을 따라서 만난 겁니다. 확실합니다.
우린 붓다의 교단입니다. 겁에 한 번쯤 있습니다. 복이 없는 사람들은 이 대열에서 낙오하지요. 슬픈 일입니다. 붓다 회상을 만나지 않고는 그리도 바라는 윤회에서의 해탈은 없습니다. 붓다 회상을 만나면 보살도 나옵니다. 그러나 이번 이 사태로 해서 많은 보살이, 일곱 여덟 명 희생이 됐습니다. 통곡할 일입니다. 통곡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도 무서운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도 정법훼손의 죄가 무섭다는 것을 법문했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스럽고 화 잘 내고, 자존심 상하면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들, 또 의심 많고, 시기 질투심 많고, 그래서 어리석은 짓 하는 사람들은 다 이 붓다 회상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같습니다.
우리 영산불교는 신불교입니다. 그리고 경전에서 이야기하는 만자(滿字) 불교입니다. 부처님은 우주의 주(主)이시지요. 영계에서는 만능자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없지만은 진짜 하나님이올시다. 하나님의 하나님이지요.
이번에 나온 ≪염불삼매≫는 ≪21세기 붓다의 메시지≫1, 2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화엄경≫, 법화·반야·대승경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살아계신다는 거지요. 부처님은 살아계신다. 부처님은, 모든 붓다는 우주적인 몸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주와 하나 된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우주와 하나 된 몸을 법신(法身)이라 합니다. 법신불이라고 합니다. 모든 붓다들은 법신불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법신불의 구체화 된 몸, 이것을 지복의 몸, 보신불(報身佛) 그러지요. 우리 중생에 알맞게 나투어 오시는 구체적인 몸, 보신불. 보신부처님.
부처님을 위시해서 많은 붓다님들의 보신부처님들이 오셔서 붓다 될 애제자를 ≪염불삼매≫에서 보듯이 그렇게 지도하고 불신(佛身)을 만들고 그 사람의 본체인 영혼체를 무량광 덩이로 만들어서, 붓다 만들어서 빛의 나라로 데려가는 거예요.
여러분, 부처님은 불격을 갖춘 최상수 보살이 이 세상에 왔을 때, 그가 무아행 보살행을 완성했을 때, 이제 마지막으로 붓다 만들어서 데려가기 위해서 오시는 겁니다. 그 작업이 부처님들의 영체작업이 이번에 ≪염불삼매≫에 쭈욱 나와있지요. 그렇게 합니다. 이것은 천고(千古)의 비밀인 것 입니다.
이건 세상에 안 알려진, 역사 이후로 처음이죠. 그래서 이 책을 낼까 말까도 했습니다. 요건 사실상 밀장(密藏)이지요. 나도 그런 법문 잘 안 했습니다. 막판에 가서 좀 했지요, 이번에 나온 것은 일부입니다. 극히 일부입니다. 2탄, 3탄이 언제 나올는지는 몰라도 아주 깊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까지는 알 필요 없습니다.
다만 이 ≪염불삼매≫를 가지고 여러 번 정독하시고 여러분도 그렇게 염불하십시오. 염불을 염불답게 해야 합니다. 무아의 염불을 해야 합니다. 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 없는 염불해야 되는 거예요. 탐진치만의(貪瞋痴慢疑) 사견(邪見) 모든 번뇌·망상 다 던져버리고 아집(我執), 나라는 생각까지도 버려버리고 다만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염불하는 겁니다.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러한 염불한 공덕은 ≪금강경≫에서 말씀하셨듯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七寶)로 중생을 위해서 보시한 공덕과 비교가 안 됩니다. 우리 현지사에서는, 부처님 교단에서는 여러분들이 염불을 하도록, 염불도 진짜 염불하도록,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염불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책이 나옴으로 해서 여러분에게 어떻게 염불하는가에 대해서, 앞으로 법문을 통해 자세히 말씀을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두 눈을 한 점 응시해서, 한 점을 응시해서 뚫고 나가라, 밝은 세상을 향해서, 밝음을 향해서 뚫고 나가라.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게 어렵지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법문을 들어야 됩니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그런 진짜 공부에 대해서는 법문을 별로 안 했습니다. 앞으로 할 겁니다.
이 ≪염불삼매≫나 ≪21세기 붓다의 메시지≫ 1, 2권은요, 부처님 이후로, 어쩌면 역사 이후로 모든 종교의 성서(聖書)들, 그러고 인류가 남긴 고전(古典), 고전들을 다 합쳐도, 정말 다 합쳐도 이 두 책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합니다. 알아야 되요.
아마 지금 80대, 90대 되는 분들은 아실 거예요, <자본론>이라는 책을 알 거예요. 칼 맑스(Karl Marx, 1818~1883)가 쓴 책인데요. 나중에 그 사람의 동지인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그걸 책자로 냈는데, 그 <자본론> 1, 2, 3, 4권, <자본론>이 이 세상을 뒤집은 거예요.
서구라파, 20세기 역사를 뒤바꾼 거예요. 이 책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낳은 거예요. 책의 위력은 그렇게 무섭습니다. <자본론>, 그 영향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그 책이 나옴으로 해서 수많은 수백만 천만 명의 인류가 피를 흘렸습니다. 무고한 인류를 죽였습니다. 소련, 스탈린 독재, 중국, 이북. 책의 위력은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투쟁을 이야기한 거예요. 노동자들한테 투쟁을 선동한 거예요, 프롤리타리아(노동자)들은 자본가, 부루주아를 향해서 투쟁해야 사니까 투쟁을 선동한 거예요. 투쟁을 선동하기 때문에 혁명이 일어난 거예요. 많은 사람이 죽은 거예요.
그러나 우리의 ≪염불삼매≫라든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는 투쟁을 선동 안 합니다. 반대로 화합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이야기하지요. 모든 사람들을 사는 길로 인도하지요.
해탈 · 열반의 길로 이끕니다.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적멸의 극락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성서>나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와도 견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법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고통이 얼마나 싫습디까? 고통, 근심, 걱정. 온갖 괴로움이 싫지요.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르쳐주는 게 ≪염불삼매≫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위대합니까? 악도(惡道)로 떨어질 중생을 악도에 떨어지지 못하도록 가르쳐주고 있어요.
그 윤회의 생사고(生死苦)가 정말 무섭습니다. 우리는 천만억겁을 윤회생사하고 지금 온 거예요. 저 부처님이 그러셨어요. 우리가 슬퍼서 흘린 눈물, 남에게 맞아서 특히 짐승의 몸을 받아 태어났을 때 몽둥이로 맞고 칼을 맞아서 흘린 피, 그걸 다 합쳐도 인도의 저 갠지스강의 물, 쉽게 말하면 저기 금강 물, 낙동강 물보다 더 많다 그거라. 모르니까 그러지. 우리들 개개인이 모두 윤회생사하고 오늘까지 이르면서 흘린 피와 눈물이 알고보면 그렇다 그거요.
앞으로 우리가 이 윤회생사를 계속할 겁니까? 윤회생사에서 벗어나야지요. 정말 이 윤회생사에서 벗어나야지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하늘세계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해탈열반에 들어야 되는 거예요. 해탈열반도 아라한이 문제가 아니라, 보살이 되어야 된다 그거예요. 보살이 되면 안심이어요, 보살이 되면 안심인 거예요. 그 보살 하나 난다는 것은 하늘 별따기인 거예요. 부처님이 와 계시는 이 붓다 회상 아니면 될 수가 없는 거예요.
왜? 정토에 아기 해탈신을 누가 만들어 줍니까? 또 겹겹이 거미줄처럼 쳐 있는 저 마장(魔障)을 어느 누가 이를 헤치고 공부를 한답디까? 안 됩니다. 천마 용신 사신 이매망량 원결 등 마장이 장애가 되 도저히 인간 자력으로는 거기에서 해탈 못하는 거예요.
겨우 아라한과를 증할 수는 있지요. 한 세대 한두 사람이나 아라한과를 증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성과를 증한다 해도 안심은 안 돼요. 보살과를 이루어야 되는 거예요. 보살이 되어야 되요. 우선 인가 받고, 잘 해서 수업을 마치면 증하게 되요, 보살을 증(證), 보살과를 증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불퇴전인 거예요.
그러므로 한 사람의 보살은, 한 사람의 보살의 가치는 000 대통령 백천 번 한 것보다 나은 거예요. 절대 나은 거예요. 그 사람들은 윤회생사에 빠지는 거예요. 업을 또 많이 지어요. 그러나 우리 정법문중의 부처님 제자들은 그런 길을 가는 게 아니어요. 윤회생사고에서 벗어나는 공부를 하고 있어요. 참 가상하지요. 그래서 부처님 회상 만나는 우리 제자들의 복은 한없이 많은 거예요.
그런데 그 어려운 보살과를 얻어가지고 왜 의심을 하고 자존심 상해가지고 꼻아가지고 삐져가지고 나가서 부처님 회상을 죽이려고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악랄하게 나오느냐 말이에요. 이 죄가 그렇게 무섭다는 걸 스님이 많이도 말을 했어요. 오역죄(五逆罪)를 말하고 정법 훼손하는 그 죄의 과보를 여러 번 말했어요. 일곱 여덟 명의 보살이 희생이 됐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요. 정말로 슬픈 일입니다.
우리 교단, ≪염불삼매≫와 ≪21세기 붓다의 메시지≫를 낸 이 교단은요, 정말로 정말로 귀하고 만나기 어렵고요, 그런 소중한 교단입니다. 이 교단이 다하면 되겠습니까? 망하면 되겠습니까?
앞으로 이 신불교 교단은 천년 만년을 이어가야 합니다. 수많은 불쌍한 눈먼 중생을 건질 수 있는 이 정법교단, 결코 그 생명이 끊기면 안됩니다. 갈수록 우리의 교세가 신장돼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야 수많은 인류가 악도에 떨어지지 않고 인간·천상에 나고 윤회를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정법교단이 아니면 절대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을 알지도 못하고 이끌지도 못하고, 그런 선지식도 올 수도 없는 거예요.
모든 종교의 한계는 하늘입니다. 욕계하늘인 거예요. 그거 알아야 되요. 우리 너무도 어리석은 70명 가까운 신도분들, 너무너무 어리석지요. 그 달콤한 말에, 꼬심말에 빠져가지고 우리를 죽인다고 달려들었는데, 우리가 무당입니까? 여러분? 책을 보니까, 무당입니까? 사이비입니까?
사이비라는 것은요, 부녀자들 가만 안 둬요. 닥치는 대로 사음해요, 간음해요. 그 가진 재물을 착취해요. 자기 비밀이 샐까 염려스러우면 몰래 측근을 시켜서 죽여요. 이걸 다반사로 하는 거예요.
그 사이비 교주들은 우주 이치는 까마득히 꿈에도 모르고 그저 탐욕심에 눈이 어두워서 사음, 음욕에 눈이 빠져가지고 일을 저지르는 거예요. 천마(天魔)가 섭해서 용신 등이 섭해 가지고 신통이 벌어지니까 자기가 도인인 줄 알아요. 자기가 상제고 부처인 줄 알아요.
불교 수다원 성자만 해도 음욕심이 끊어져 버린 거예요. 수다원 이상 아나함, 아라한. 아라한은 탐진치(貪瞋癡)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벗어난 분들이어요.
보살, 붓다야 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런 분들을 사이비로, 무당으로, 아니 그 이하로 사기꾼 취급을 해왔어요. 그럼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정법이기 때문에 부처님 정법교단이기 때문에 인욕을 하고 정말 그렇게 인욕으로 대응해 왔습니다.
태사부님이 능력이 없는 줄 압니까? 내가 얼마나 많이 법문했습니까? 350회 정도의 법문, 거짓말 아닙니다. 진솔하게 법문한 거예요. 어느 절에 가서도 들을 수 없는 법문이어요. 신불교 · 만자불교의 법문이니까요.
오늘 처음 나오신 분들이 많이 계신다고 하는데 아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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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고맙습니다. 사후세계가 있고 중생은 윤회생사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주는 교단이 우리 현지사입니다. 육도윤회에서, 그 고통의 고해(苦海)에서, 생사의 바다에서 나올 수 있는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길을 일러주는 교단이 우리 교단이어요. 또 능력도 있어요. 보살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붓다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신 부처님이 와 계셔요. 그동안에 부처님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저 사람들을 보고계신 줄 압니까?
아라한이나 보살이나 붓다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알고 있어요. 우리 교단에서 우리 부처님에 대한 신심, 가피만이 윤회에서 벗어나고 보살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어요. 부처님이 살아계시는데 어떤 분을 부처라고 하는가? 자세히도 이야기하고 있어요.
부처는요, 빛의 존재예요. ≪염불삼매≫에 나오지요? 빛의 나라, 부처님나라 그 말이어요. ‘부처님 나라로 가고 싶다. 빛의 나라로 가고 싶다.’ 그 말은 부처되고 싶다 그 말이어요. 부처가 되면 불신이 생겨요.
빛덩어리어요, 그러면서도 인격체여요.
또 이 몸의 주인공, 인간의 본체가 되는 영체도 부처님 가피로 빛 덩어리가 되는 거예요. 무량광 덩어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둘이 죽어서 합치면, 계합이 되면 완전히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러기 전에도 불신(佛身)이 이루어지고 불신의 나이가 30대, 40대가 되면 완전 붓다가 되는 거예요. 1·2·3번 영체가 그리 가는 거니까요.
그리고 모든 붓다들은 그 진신, 법신이 있는 거예요. 그런 존재들이어요. 지혜와 자비가, 복덕이 갖추어진 존재예요. 못할 일이 없어요. 이러한 불신관·삼신설에 대해서 정말로 밝게 이야기한 것이 우리 현지사예요.
그 다음에 우리 현지사에서 인간 본체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여러분 주인공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바로 주인공, 영체예요. 저기 지금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본래면목(本來面目)하고는 달라요. 그 본래면목은 우리 자신의 본체, 주인공이 아니어요. 그것은 비인격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본체요 주인공은 반드시 인격체라야 되는 거예요.
영적 인격 실체, 영체라야 이 주인공 자격이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불교가 이걸 몰랐어요. 그래서 무아(無我)를 이야기하고 무아를 그렇게 생각하고 해석하고 해가지고 인도불교가 망했다는 것을 이야기했어요. 지금까지의 불교는 아무 희망이 없었어요. 인간의 본체를 알지 못하는 한 불교의 장래는 없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 알았어요.
이 영체설 하나만 가지고도, 현지사에서 밝힌 내놓은 이 영체설만 가지고도 어느 불교 학자가 그래요. ‘불교사가 문제가 아니다.’는 거라. 맞는 말인 거예요. 이것은 어마어마한 발견인 거예요. 2천여 년간 무아와 윤회 주체간의 모순 논쟁이 벌어진 거예요. 지금까지도 해요. 이 영체, 본체 인간의 본체를 모르면, 하세월이어요. 영원히 그 논쟁은 이어져가요. 인간의 본체, 영체, 주인공을 알아낸 교단이 우리 현지사예요.
어마어마한 발견이어요.
또 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는 수행법이 팔정도 칭명염불이어요. 팔정도 칭명염불을 하되 무아로 해야 해요. 무아의 염불을 해야 되요. 이건 ≪금강경≫에서 이 공덕을 딱 밝히고 있어요. ≪금강경≫ 책 한 권이 전부 그 이야기여요.
그래서 팔정도 칭명염불을 제창한 곳도 우리 현지사고, 따라서 우리 현지사만이 인간의 생사관이 정확하고 완벽해요. 이렇게 완벽한 곳이 없어요. 생사관이 완벽하기 때문에 사생관(死生觀)이 분명해요.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 어디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이렇게 현상되었느냐? 생기게 됐느냐? 요것은 어떤 과정을 밟아가지고 어떻게 되가지고 다시 공이 되고, 또다시 또 이걸 반복하느냐에 대해서 분명히 아는 곳이 현지사예요. 하나하나가 엄청난 발견인 거예요. 그리고 우리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 아주 밝은 대답을 해줄 수 있는 곳이
현지사예요.
이러한 말은 불과를 증하지 않고는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거예요. 부처님 가신 지 2500년 동안 많은 큰스님이 나왔어요. 용수 마명 무착 세친 호법 많지요. 중국으로 와서도 많은 거장들이 나왔어요. 한국도 원효 의상 서산 어마어마한 걸승(傑僧)들이 나왔어요. 전
부 몰라요. 내가 지금 짚은 여섯 가지 문제는 전혀 몰라요. 몰랐어요.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도 어마어마한 교단인 거예요. 이것만 가지고도 붓다 회상 되고도 남는 거예요.
자기들이 뭘 안다고, 전부를 무시하고 하나도 믿지 않고 말도 아니라고 하고, 이렇게 나가니 얼마나 무식한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아무리 눈이 어둡고 마구니에 홀렸다고 그렇게 하는 법이 아니에요. 그건 도저히 도저히 우주법계에서도 용서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늘 여러분, 이 많은 천백여 명 내지 천이백 명 오신 여러분들, 정말로 고맙고 참 이분들 복이 많다. 그 바람에도, 그 태풍에도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니 대단히 고마운 분들이어요. 여기 어떤 분들은 어쩌면 이 대열에서 낙오할 분들도 더러 있었어. 하마터면 낙오했지.
이 세상은요, 늪 지대 같은 거예요. 세상은 늪 지대 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 남섬부주라는 곳이 나를 상하기 아주 쉬운 곳이어요.
나를 망치기 아주 쉬운 곳이어요. 그러니까 삿된 마음이 일어나면, 곧 여자 생각, 돈 재물 생각, 그리고 권력 명예 생각, 자기가 잘났다는 자존심이 상하면 도저히 배겨낼 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참을 수 없는, 자기 자존심 건들어 놓으면 참지를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모두 나갔는데, 그런 삿된 마음이 일어나면 그런 못된 생각이 일어나면 스스로 경계해가지고 따라가지 않아야 되요. 자, 이거 무서운 일이어요.
어려워요, 어려워. 화 잘 내고 성 잘 내고 남을 미워하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 어리석은 짓을 범해요. 큰일 나지요. 한 생각 잘못 해가지고 지옥 갈 업 짓는 거예요.≪염불삼매≫ 읽어보시면 ‘아!’ 그럴 거예요.
오늘 지신대재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이 지신(地神)도 있는 거예요. 스님이 이야기하지만, 지신 있어요. 산에 가면 산신(山神) 있고요. 바다에 가면 용신(龍神) 있고요. 있는 거예요. 다 있는 거예요. 저 별나라에도 성군(星君) 있고, 다 있어요. 마치 국가를 보면 대통령도 있고 내무부도 있고 외무부도 있고 국방부도 있고 해양수산부도 있고 농림부도 있고 다 직책 소임 맡은 사람들이 있지요. 다 그와 같이 있어요.
남섬부주가 대단히 중요한 곳이거든요. 그래서 온갖 직편 하는 일 잘 풀리고 싶지요? 그 최소한의 욕심, 그건 마다 않습니다. 그건 나도 인정하는 거예요. 잘 살아야 되죠. 빚에 부대끼지 않고 애들 잘책을 맡은 신들이 와 있어요. 그걸 지금까지의 불교는 잘 몰랐어요. 그것을 힌두교에서 많이 알았어. 도교에서도 많이 알았어요.
여러분들 이 세상 그래도 최소한의 돈도 있고, 자손들 잘 되고 남 크고 공부 잘 하고 성공하고 남편 하는 일 잘 풀리고, 또 건강하고 그리고 화합하고, 이러고 싶죠? 자, 지신(地神)이 상당한 역할을 합니다. 여러분 집안, 또 공장을 신설했다든지 할 때 그 번지를 관장하는 지신들한테요, 정중하게 공양을 하고서 조금 부탁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현지사에서 하는 지신대재는, 또 산신대재는 내용면에서 다른 절 공양과 본질적으로 다르지요. 불보살님이 내려오셔요. 불보살님이 내려오시고 성중들이 내려오셔서 증명하는 가운데 그 지신들이 전부 불려와 가지고 한 턱을 먹거든요. 이 세상 같으면 이거 뻐길만한 거예요. 목에다 힘줄 정도 되는 거예요. 그렇게 정중하게 공양을 이렇게 일 년에 한 번씩 올려놓으면요, 이 집안에 여러 가지로 좋은 일 많이 일어나요.
지금 절에서는 그걸 몰라요. 지신? 없다고 하지요. 불보살님도 없다는데, 지옥 극락도 없다는데, 귀신도 없다는데 이런 대공양·대재, 생각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눈이 안 벌어져가지고 공부를 많이 못해서
그런 거에요.
그래서 스님이 옛날에 총무원에 있을 때 어느 신도가 크게 공장을 하나 지었다고 이 공장이 무탈하게 잘 되도록 와서 불공(佛供) 좀 해달라고 하면 ‘무슨 불공을?’ 하거든요. 우리끼리 앉아서 ‘저기 가서 무슨 불공을 하냐? 어떻게 해줘야 되냐?’ 하면, ‘염불하는 스님들이 가서 뚜드려 주면 돼’, 그렇게 가서 뚜드려 주는 게 안택(安宅)이라. 그래 안택을 하면서도 도대체 어떤 분이 왔는지, 어떤 분을 위해서 하는지도 모르면서 적당히 염불해 준다고요.
그런데 우린 분명해요. 지신총수가 있어요. 불격을 갖춘 최상수보살님, 성취보살님이 계셔 다 있어요. 여러분 신청을 모두 했지요? 집안, 공장, 주소 관장하는 지신님들이 부르면 전부 오시거든요. 그럼 여법하게 공양을 배풀어줍니다.
그러면 그분들한테 여러분이 정성을 다한 저 공양물을 드리는데 저 거룩한 불보살님들이 임석한 가운데서 한 턱을 먹었단 말이에요. 그러니 신이 나지요. 저 지신들은 신이 나는 거예요.
오늘 해외를 갔다든지 무슨 사정이 있어서 대재에 동참만 하고 못 오신 분들은 거기까지도 우리 성중이 가서 축복해 줄 겁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불보살님들이 여러분 업장도 씻어줘요, 여러분을 상대로 해서 업장을 씻어준다고요.
우리 절에서 일 년에 네 번 대재를 하잖아요. 지금 산신이라든지 또 보명부처님쪽 용왕대신, 그리고 또 칠원성군쪽 여기까지 세 군데, 주로 세 군데에서 인간의 길흉사를 관장하는데, 그 외로 하는 데가 있어요. 이렇게 지신이라든지요. 화엄성중이라든지, 이거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보명부처님한테도 하고 싶은데, 사양을 했어요. 지신대재도 하고 화엄성중도 하는데, ‘나에게는 안 해줘도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하면서 사양하고 있잖아요.
그렇게 아시고, 여러분 참 고맙습니다. 나는 오늘 이렇게 천 명이 넘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천백 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단히 고무적이고 좋습니다. 내일이 법회지마는 내일은 할 수 없고 해서 오늘 시간을 조금 할애 했습니다. 다음 달 산신대재가 있는데 그때 뵙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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