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7일 목요일

미타부처님 공부법/ 선불교의 흠점 [2012.8.22.현지사 자재만현 큰스님 미타재일 큰스님 대전 법문]

미타부처님 공부법/ 선불교의 흠점
신불기15년
불기2556년 임진년 음력7.5
(2012.8.22.수)미타재일 큰스님 대전 법문
-180회-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정법을 만나고 부처님 교단을 만나가지고 무아 속 절대계에 계시는 그 부처님들이 오셔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 주시는데, 여기 이렇게 부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다음 붓다회상, 다음 세상 붓다회상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큰 축복이 아니거든요. 여러분, 2600년 만에 처음 이렇게 부처님들이 오셔서 업장을 씻어주십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선택된 사람들이다. 그렇게 말하지요. 그렇게 아십시오.

오늘은 사실 이렇게 소참법문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태사부님이,  저분의 붓다가, 저분의 부처님 광명불, 저기 절대계에 계시는 광명불님이 오셨고, 또 많은 부처님들이 오셔서 많이 씻어주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지만, 그래도 오늘 새로 오신 신도분들도 조금 있고 기존의 신도분들도 이렇게 많이 오셨으니까 스님이 또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세계불교는 네 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티베트 밀교 하고, 위빠사나를 하는

태국이나 미얀마 쪽 소위 소승불교라고 하지요. 이쪽 북방으로 와가지고 참선을 하는 선불교 하고, 그리고 염불을 하는 염불종입니다. 지금 우리는 염불을 하고 있거든요. 염불을 하고 있습니다. 염불을 하고 있는데, 오늘은 아미타부처님 염불을 했지요. 했는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교주가 불세존이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이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은 모든 부처님의 부처님이시기 때문에 석가모니부처님의 공부를 기본적으로 해야 되요. 그러려면 반가부좌를 하시고《금강경》을 읽고, 부처님 다라니를

하고, 그리고 석가모니불을 하지요 여러분. 오늘은 미타재일이기 때문에 아미타부처님은 우리 부처님께서 너무 사랑하는 제자입니다. 저기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이룩하신 어마어마한 부처님이올시다 미타부처님은요. 그래서 오늘이 아미타부처님을 공부하고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고 아미타부처님한테 발원하고 하는 날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이 여기에 상주하시기 때문에 서방정토 극락세계하고 링크가 되어 있어요. 그래서 오늘《미타경》을 읽고... 다른 염불종은《미타경》을 읽지 않습니다. 그냥 아미타불만

하지요. 아미타부처님 공부는《미타경》을 읽고, 아미타불무량겁멸죄진언을 하고, 그리고 나무아미타불을 하는 거예요. 자, 오늘은 그 정도로 말씀을 드리고.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말씀은 선불교(禪佛敎), 참선하는 종파, 선종(禪宗), 선불교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조금 알아야 되요. 여러분은 염불을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한국의 불교가 선불교예요. 선종입니다. 조계종이 선종입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염불에 대해서 여러분은 잘 알지. 그런데 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돼.

선불교의 수행법이 어떻다는 것, 그리고 그건 어떻다는 것을 알아야 돼. 모르면 안 됩니다. 알고 있어야 돼. 그래서 10분~20분 간단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정말 1시간이 아니라 몇 시간을 해줘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자연히 남의 교파의 흠점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님이 이 부분에 대해서 법문을 별로 하지 못했고 꼬집고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 식구들이고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자, 조계종이 참선을 하는 선불교입니다.

참선(參禪)이란 뭐냐 하면, 알아둬야 되요. 화두를 들어요. 화두를 드는 참선이 있고, 화두를 들지 않는 참선이 있습니다. 이것을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하고, 묵조선(黙照禪)이라고 합니다. 한국불교는 간화선입니다.
자, 간화선-화두를 드는 공부, 참선공부. 이 선불교가 1300년을 내려왔어요. 한국불교의 줄입니다. 종가입니다. 종갓집이올시다. 그래서 염불종이 맥을 못 춥니다. 더구나 아미타불은 부르지 않고 석가모니불을 부른다고 하니까 더더구나 저 애들은 우리를 

뭘쳐다보듯이 본다고요. 그래서 이 선종에 대해서 스님이 이야기를 간단히 하겠습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종은 한마디로 수 십 가지의 모순이 있습니다. 나는 공부를 했기 때문에 잘 압니다. 선학(禪學)을 강의할 정도이기 때문에 잘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들한테 우리 신도분들한테 적나라하게 선불교의 실체를 이야기하기는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조금씩만 이야기했습니다.

선불교에서는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여러분 알아야 돼. ‘마음이 부처’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찾는 공부만 합니다. 마음을 찾는 공부. 어떻게 하느냐?
여러분 선방(禪房)아시죠? 큰 절에 가면 선방이 있습니다. tv에도 가끔 소개를 하더군요. 선방에 가서 벽을 보고 딱 앉잖아요. 앉아가지고 공부를 한단 말이에요. 무슨 공부를 하느냐? 염불을 안 해요. 그 사람들은 염불을 하지 않습니다. 화두를 든다 그 말이에요. 화두를 들어.

그러면 화두란 무슨 말이냐? 화두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 무려 1700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들어요. 그런데 한국의 우리 스님들이 드는 화두는 5개~10개 정도가 됩니다. 1700가지 가운데서 유명한 화두 5개에서 10개입니다. 혹은 다섯 정도 밖에 안 됩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드는 화두가 ‘무(無)자’ 화두입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중국 어느 절에 큰스님이 계셨어. 120살까지 잡수신 ‘조주’라는 스님입니다. 아주 부처가 다 되었다고 하는, 고불(古佛)이라고 하는 칭송을 듣는 그런 스님인데, 그 스님이

주석하는 곳에 신참납자가 찾아왔습니다. 신참납자, 그러니까 이제 참선을 하려고 마음먹은 새내기 스님이지요. 그래서 조주스님한테 와가지고 법문을 좀 들으려고 왔단 말이어요. 그러자 개 한 마리가 지나가거든요. 자, 조주스님하고 그 신참납자 구도승 스님의 앞으로 개가 한 마리 딱 지나간단 말이어요. 그러니까 조주스님을 찾아온 그 스님이 조주스님한테 묻기를 ‘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단 말이어요. 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여러분 또 불성이 뭔가를 알아야 되는데, 쉽게 말해서 마음이라고 합시다. 약간 틀리지만 ‘마음이 있습니까’ 그 말이어.
‘저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조주스님 대답이 ‘무~’ 그랬다고. ‘없느니라~’ 그 말이어. 없을 무(無)자야. ‘없느니라~’ 그랬다고. 그러니까 이 스님이 의심이 난단 말이어요. 아! 부처님 다 되었다고 하는 큰스님, 저 개가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는데...이 중은 알고 물었어. 어느 정도 교학을 한 중이었다고. 경전에는 ‘준동함령(蠢動

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고 그래. 준동함령-꼬물꼬물하는 동물, 그런 생명체. 그런 생명체는 모두 다 불성이 있다고 그렇게 되어 있어. 아! 그런데 조주스님이 왜 ‘무~’ 그랬을까 그 말이어. 왜 없다고 했을까 그 말이어.
의심이 나지요? 조주스님이 모를 리가 없어. 그런데 왜 ‘무~’ 했냐 말이야. 이게 화두가 됩니다. 이걸 ‘무자 화두’라고 합니다. 무자(無字). 무자 화두라 그래요. 이것을 가지고 선방에서 평생을 싸우는 거예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자 ․ 시심마 ․ 만법귀일 일귀하처 ․ 외도문불 ․ 이겁어언 ‧ 정전백수자 등... 많습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무자를 많이 들어요. 무자 화두를 많이 들어요. 그 다음에 시심마(是甚麽)를 많이 들어요. 시심마, 이 뭐꼬 그 말이어. 시(是)-한문으로 이, 심(甚)-뭐꼬, 마(麽)-어조사지. 시심마(是甚麽), 이 뭐꼬 그 말이어. 이 중들이 이 두 화두를 거의 듭니다. 그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게 아시라고.
그러니까 스님들끼리 만나면, 스님! 무슨 화두 드시지요? 예, 무자 지요. 예, 이뭐꼬.

입니다. 시심마요 그 말입니다. 시심마 화두 든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로 아시고.
자, 무~ 무~ 합니다. 벽을 향해서 눈을 반쯤 뜨고 그것만 의심하라는 거예요. 다른 의심을 하면 죽비로 맞아. 딴 생각하면 맞아. 딴 생각하면 100년이 가도 1000년이 가도 화두타파 못 한다 그거예요. 그러니까 ‘무~’만 해. 그런데 ‘무~’ 하면서 뭘 생각하느냐? 조주스님이 왜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셨을까? 그 말이어. ‘무~’ ‘무~’ 한단 말이어. 속으로 ‘무~’ ‘무~’ 하고 있단 말이어. 안 들리지. 소리를 내면 또 큰일 나. ‘무~’ ‘무~’ 한단 말이어.

또 시심마 화두를 든 사람, 시심마는 우리말로 ‘이 뭐꼬’ 그 말이어. 이뭐꼬. 경상도 말로 뭐냐를 뭐꼬 그래. ‘이 뭐꼬’화두 든 사람도 또 ‘뭐꼬’ 그런단 말이어. 그 말은 또 뭔 말이냐? ‘뭐꼬’ 화두는 그 말이 뭔 말이냐?
이 몸 속에 들어와서 말하고 듣고 보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요놈 주인공, 이 몸뚱이의 주인공이 뭐냐 그 말이어요. 요놈이 뭐냐 그 말이어요. 아셨죠? 그것은 이 몸뚱이를~ 한평생~운전하고 다니는 요놈, 요놈을 선(禪)에서는 주인공이라고 그래요. 주인공.

주인이요 주인. 주인공. 주인공이 뭐냐 그 말이어. 그런데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주인공하고, 선불교에서 알고 있는 주인공하고는 다릅니다. 지금 저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스님이 전문적으로 불교대학 특강을 하든지, 언제 어느 기회에 이것을 말씀드리는데 우리 교수님들은 알 것입니다. 틀립니다.
첫째, 선불교에서의 이 뭐꼬 주인공은 우주본체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주본체는 결코 나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선불교에서 지금 잘못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하나 지적하고 싶고.
둘째, 마음이 부처다? 결코 마음은 부처가 아닙니다. 마음은 인격이 아니고 비인격이라고 스님이 누누이 말씀했을 거예요. 우주본체, 혹은 공(空)이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비인격이다. 비인격이라는 말은 뭔 말이냐? 눈 귀 코 입 몸뚱이 생각하는 것이 달려 있어야 되는데 없다 그 말이어. 사람은 그렇잖아요. 죽은 영가도 다 있습니다. 영적인 몸뚱이가 다 있단 말이어요. 여러분은 육체적인 몸뚱이가 있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하는 거예요. 눈이 없고 이것이 없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움직이지를 못합니다. 생각하고 행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육근이 없으면요. 이걸 모릅니다. 이걸 몰라요. 그런데 이 본체는 텅~비어 있어요. 허공과 같이 텅~비어있어요. 이건 화두타파한 사람은 알아요. 터~엉 비어있어요. 전부가 뒤집혀져가지고는 나도 없고 너도 없고 뭣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본체가 드러날 때 그렇다 그거예요.  이것을 마음자리라고도 해요.

이것이 드러날 때에는 허공과 같이 아~무것도 없어요. 우주본체를 본 거예요. 마음의 실상을 본 거예요. 그것이 마음이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는데 청정무구해요. 청정무구하다고요. 이것이 마음이어요. 눈 코 입 몸뚱이가 없어요. 그러니까 태초에 태태초에는 이것만 있어요. 이 마음, 이것이 본체예요. 여기서 우주만물, 인간이 와요. 여기서 나오는 거예요. 이것을 인격이라고 하면 큰~잘못인 거예요. 이걸 인격이라고 한 것이 기독교예요. 힌두교예요. 힌두교는 조금 다르지만 이걸 인격으로 봤어요.

이걸 인격으로 봐가지고 만물을 창조하고 여러분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이걸 하나님이라고 하지. 그런 하나님은 없더라 그거예요. 결코 없더라 그거요.
무수 겁 이전에 불과를 증한 부처님들, 한결같이 인격적인 하나님은 없다 그거요. 없다. 없다 그거요. 견성한 사람은 아직 그 말을 분명히 말할 실력은 못 되요. 텅 비어 있거든요. 그것을 봤어. 봤는데, 하!~이것이 본체인 줄도 모르고... 이제 화두타파한 사람들은, 이제 견성한 사람들은 본체인 줄도 모르고 어쨌든 기분은 참 좋습니다. 마치

감옥소에서 석방되어가지고 나온 사람처럼 기분이 좋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지금 우리는 몸뚱이라고 하는 감옥 안에서 살고 있다고. 몸뚱이라는 감옥 속에서 살고 있거든요. 이 몸뚱이에서 마음대로 빠져나오고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 줄 아세요? 감옥이 필요 없어요. 가두어둘 그 무엇이 없어요. 나를 갖다가 감옥이라고 하는 몸뚱이라고 하는 그 속에다가 가둘 수가 없어요. 내가 힘이 있기 때문에. 나가고 들어올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줄 압니까? 자유로운 줄 압니까? 

대단히기뻐요. 그 견성했을 때의 기분은요. 너무 기뻐요. 여러분들 중에서 감옥살이를 하다가 나온 사람, 정~말 좋을 걸요. 감옥 문을 나온 때부터는 너무너무 좋아요. 자유를 만끽해요. 뭘 먹지 않고도 산다고 할 거예요. 좋은 거예요. 좋으면서도 법열(法悅)이 있어요. 아주~행복감을 만끽해요. 법열이라고 해요. 법열. 그렇다고요. 그런데 거기서 끝나버리면 안 된다고. 그 경계가 오래가지 않는다고. 내 책《21세기 붓다의 메시지》에서 한식경이라고 했어요. 한식경을 넘어가지 않는다. 물론 그 여운은 한 달 정도

가요. 가지마는 다 메꿔져 버린다고. 그러니까 이 본체인 마음과 내가 하나가 되어버려야 되는데 하나가 못 되고 그저 잠깐 봤을 뿐이어. 그게 견성이라고요. 일단 마음은 부처가 아니다. 마음은 인격이 아니다. 이건 비인격이다. 이걸 아십시오. 아십시오. 저쪽 선불교에서는 마음을 부처로 압니다. 마음을 인격으로 봅니다. 크~게 잘못이지요. 아니지요. 그리고 견성 한 번 해가지고 어떻게 내가 그 청정무구한 본체 마음과 하나가 됩니까? 하나가 안 되어요. 절대로 안 되어요. 이유는

첫째,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있어서 하나로 합일이 계합이 안 되어요. 나는 업장을 지니고 있거든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태산만한 업장을 지니고 있거든요. 그래서 하나가 안 되어요. 그리고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업을 지은 그 이유로 해서 악과 습의 기가 정말 태산같이 큽니다. 기가, 습기가, 탁한 기가. 이것 때문에 안 되고.
둘째, 탐진치 삼독 때문에 안 되어요.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이 탐진치 삼독의 뿌리가

어마어마하다고. 요놈 때문에, 이런 이유 때문에 이러한 나로서는 저 청정무구한 본체인 공과 하나가 안 되는 거예요.
되려면, 이제 공(空)을 봤으니까 무아 행으로 나아가야 되요. 나 없는 행으로 나가야 되요. 공(空)을 봤는데 절대 나라는 것도 없고 아무 실체도 없어요. 그렇다는 것은 너! 무아 행을 해라. 무아 행을 해라. 무아 행을 하다가 보면 계합이 되어요. 마음과 하나로 계합이 되어요. 붓다의 경지에서 계합이 되어 버려요. 불과를 증하면서 계합이 되어 버려요.

불과를 증한다는 것은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장이 녹아버리고 탐진치가 녹아버리고 악과 습의 탁한 기가 다 녹아버려요. 그렇기 때문에 내 자신이 청정무구해요. 1번 2번 3번 4번 영체로 된 내 주인공이 청정무구하기 때문에, 또 무량광을 얻어가지고 무량광 빛으로 내 몸이 이루어져버리기 때문에 이 자성광, 이 마음의 빛을 먹어버려요. 완전히 하나가 되어버려요. 저것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 몸뚱이를 법신불이라고 그래요. 법신불이라고 하고, 그 법신불, 우주와 하나가 된 ․ 공(空)과

하나가 된 ․ 마음과 하나가 된 그 법신불의 능력이 고스란히 형체화한 구체화한 인격화한 것이 보신불이어요. 절대계의 보신불이어요. 그 보신불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과 얼굴 눈 코 입이 다 달렸지만 그렇게 그렇게 잘 생겼어요. 32상80종호를 다 갖춰 있어요. 그리고 빛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너무너무도 현란하고 아름다워요. 그건 뭐 도저히 상상할 수 없어요. 부처님의 아름다움이. 그걸 보신불이라고 해요. 이분이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우주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이 법신불을 인격화한

것이어요. 법신불이 인격화 되었거든요. 그러니까 붓다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요. 이제 만현이 열반해서 이 네 개의 영체가 자재통왕불과 하나가 되어버리면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니게 되는 거예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 부처님은 무량겁 전에 진묵겁 전에 붓다를 이루시고 또 와서 붓다를 이루시고 또 와서 붓다를 이루시고... 우리 문수보살님만 해도 일곱 번을 이루셨거든요. 부처님은 무수히 많이 오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처님의 능력은 상상할 수가 없어요.

이건 영산불교에서 이야기한 것이고 영산불교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영산불교에서는 왜 참선을 아니라고 하느냐 하면, 견성을 했다고 하면 신도들이나 스님들이 여불대접을 한다고요. 법상에 앉혀놓고 법문을 하라고 하지요. 법문을 하는데, 법문을 하기 전에 법문을 준비하려고 옛날 견성 했던 사람들의 어록(語錄)을 살펴봅니다. 큰스님들이 써놓은 어록을 보니까 자기하고 맞거든요.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깨에다가 힘을 줘요. 하! 내가 이제 부처 다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요.

그래가지고 주장자를 내리치면서 게송을 읊어요. 어떤 시구(詩句)를 읊는다고. 과거에 그 견성했던 큰스님들이 했던 오도송을 읊으면서 ‘이것을 아는 사람은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해탈할 수가 있다. 대 자유인이 될 수가 있다’ ‘대답해봐라~’ 한단 말이에요. ‘이 도리를 아느냐~’ 한다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우스꽝스럽다고요. 그게 아니다 그거요. 견성해서 읊은 게송인데 그것을 알아들음으로서, 그 정도 견처 가지고 윤회를 벗어난다?

절~대 아니지. 그 정도 갖고는 윤회 못 벗어나요. 어떻게 해야지요? 무아(無我)의 행을 해야 돼. 나 없는 행을 해야 된다고. 그러면 두타 행이 최고예요. 두타행을 해야 된다. 두타행을 해 가다가 해 가다가 보면 이 몸에 대한 착(着)이 떨어져.  완전히 착이 떨어지려면 선정에 들어가야 돼. 깊은 선정에 들어가야 돼. 선정에 들어가면 이 몸뚱이에서 나오고 들어가고 나오고 들어가고 하는 자유가 있다고요. 이 선정에 못 들어가면 이 몸뚱이에서 나오고 들어가고를 못 한다고. 이 몸뚱이라는 감옥에서 마음대로 나오고

들어가고 하는 것도 부족해. 이 사바세계의 어떤 힘, 끄는 힘에서 마음대로 들어갔다 나왔다 할 수 있어야 돼. 또 우주, 삼천대천세계 이 우주의 그 잡아당기는 엄청난 힘에서 마음대로 들락날락 해야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거기가 아라한이어요.
그런데 내 경험상 화두타파 해가지고는 이 몸뚱이에서 마음대로 왔다갔다 못해요. 화두타파 할 때에는 다 없어졌지요. 그래서 즐겁지만, 이제 그 한식경이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버리면 이제 다 메꿔져 버려가지고 아니어요. 그래서 무아(無我)행을 해라.

두타행을 해라. 두타행을 해가지고 내 몸에 대한 착이 떨어져야 공포스런 경계에서, 탐욕의 경계에서, 전번에 말했던 성냄의 경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있어요. 자유로울 수가 있어요.
선(禪)은, 참선(參禪)은 선종에서는 자유를 부르짖지요? 화두타파 하면 자유인이 된다 그거야. 천만의 말씀입니다. 무아(無我)행을 해야 돼. 무아(無我)행을 하고 해서 해서 업장을 다 씻고 씻고 해가지고 스스로 이 몸뚱이에서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선정의 

힘이있어야 구렁이가 100마리 오든, 비행기가 지금 떨어지든 의연해요. 공포가 없어요. 견성한 사람들이 그 격외(格外), 선문답을 하잖아요. 아시는 분 있을 거예요. 보면 신기하단 말이어. 동문서답해. 여러분! 격외 선문답, 소위 도인들이 하는 격외 선문답을 많이 보셨지요. 그렇지요? 이상하지. 그건 아무것도 아니어. 견성이란 뭐냐? 본체가 뭐냐? 상대세계를 벗어난 세계예요. 상대세계를 벗어난 절대의 세계예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의 세계는 말 못해요. 밉다 곱다 춥다 덥다... 하는 상대가 없어요. 그 세계는

남녀 동서 미추의 상대가 없어요. 그러니까 절대의 용어로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절대의 용어로.
집착이 없는 공(空)의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을, 여러분이 있을 때에는 여러분이 상대세계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저 소리가 무슨 소리냐? 하!~저 사람 도인인가 보다. 기가막힌 도인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견성한 사람들이 어록을 보고, 절대세계의 그 맛을 보고 하는 이야기예요. 거기에 이제 무아(無我)행으로

들어가가지고 이 몸뚱이에 대한 착이 떨어져버리는 공부를 해야 돼. 이제 진짜 공부를 해야 돼. 그래서 내가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다!’ 한 거예요. 진짜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어. 그런데 견성 가지고, 화두타파 해가지고 공부가 다 된 양 해가지고 내가 도인인 양 으시대다가 예쁜 여자를 만나 인연이 있으면 범합니다. 문제가 아니어. 거기는 계율을 안 지킵니다. 계율을 안 지켜. 그 공(空)을, 마음을 봐버렸다 그거야. 깨쳐버렸다 그거야. 나는 부처 다 되어버렸다 그거야. 무슨 계율이 필요 있냐 그거야. 경전도 필요 없다

그거야. 경전도 읽지 않고, 계율도 지키지 않고... 이건 망나니가 되어버리지요. 이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집니다. 무간지옥으로 떨어집니다. 이렇게 되어요. 그래서 이 참선을 우리 부처님이나 나나 ‘이것은 아니다. 이건 아니다. 이건 외도다. 이것은 순~외도구나. 이건 안 해야 된다. 이 공부는 안 해야 된다’고 하십니다.
왜냐? 공부도 또 잘 안 됩니다. 첫날은 무~ 무~, 뭐꼬~ 뭐꼬~ 합니다. 첫날은 되어요. 이틀 삼일 되어버리면 이거 의심이 없어. 의심나올 것이 없어. 도저히 의심이라는 것이 생기지를 않아.

화두타파를 하려면 의단이 생겨야 돼. 의심뭉치가 생겨야 돼. 이게 조건이어. 이게 안 되더라고. 그러니까 지금 선방에서 헛수고 하는 거예요. 그 아까운 시간을 허송하는 거예요. 염불을 하면 기가 막힌 공덕을 짓는 거예요. 그렇게 앉아가지고 무~ 무~ 뭐꼬~ 뭐꼬~ 해가지고 이제 한 시간 죽비 딱 치면 ‘스님! 화두 얼마나 들립니까? 한 5초나 들립니까? 아이구! 5초가 어떻게 들려요? 2초나 될까?...’ 10년을 해도 5초를 못가. 왜 그러느냐? 이 생각이라는 것이요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여러분, 생각이 안 그럽디까? 

이생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화두타파, 무아(無我)행을 해가지고 이 집착이 떨어져버릴 때까지는 이게 그냥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이 생각이요. 젖 먹을 때까지의 생각이 다 난다고요. 온갖 생각이 다 난다고. 온갖 마슬 다 다니고 자기가 다녔던 곳을 다 다니고, 자기가 경험했던 것을 전부 다시 경험하고, 이런 짓만 하다가 끝나버린단 말이에요. 참선공부가 안 되는 거예요. 우리는 해봤으니까 여러분들한테 자신 있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우도 있어요. 어쩌다가 1,000명이나 10,000명 가운데 한 사람 화두타파 하잖아요. 딱 보면 아니어. 진짜 화두타파 안 했어. 천마 용신이 들어가서 된 거예요. 어쩌다 만 명에 하나나 백년에 하나가 나와. 그렇지만 법상에 앉혀 놓으면 ‘마음이 부처다. 불 보살 없지. 극락 지옥 없습니다. 진실로 말하건데 극락 지옥 없는 거요.’ 이렇게 말해버린단 말이에요. 아! 그러니까 10년 30년 공부를 잘 했다는 큰스님이라고 해서 가서 말을 들어보니까 그런 말을 하는데, 여러분! 정말 그게 맞나? 아이! 뭐 저 세상이

없다는데. 고기도 먹고 여자도 범하고. 적당하게 도박도 하고. 뭐 슬쩍슬쩍 적당하게 사는 것이 인생이야. 멋진 인생! 이렇게 하는 거예요.
사람들을 오도하는 거지. 중생을 오도하는 것이지.
거기서 더 나가가지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면 다~열려버린다고. 전부가 열려버려. 그래서 스님이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지만 ‘참선은 아닙니다. 참선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화두타파 가지고는

이제 시작인 거예요. 그런데 그 화두타파가 어렵다고. 왜 그 어려운 길을 가느냐 그거요. 어려운 길로 왜 가느냐 그거예요.
그리고 선방의 스님들이 요즘 배가 불러. 신도들이 모두 잘 살잖아요. 대중공양이라 해가지고 막 갖다 주니까 주지 총무들이 선방스님들을 갖다가 여불대접 한다고. 과일도 갖다 주고, 참도 갖다 주고, 뭣도 갖다 주고...하니까, 변소 가느라고... 너 몇 번 갔냐? 나 세 번 네 번... 화두는 없어. 화두가 들릴 수가 없는 거예요. 화두가 들리려면 신 ․ 분 ․
 의라고 해요. 신(信)-믿어야 되요. 이 믿음이 거기는 부처님 믿음이 아니어요. 화두를 선불교 사상을 믿어야 되요. 믿고, 의(疑)-그 다음에 의심이 나야 돼. 분(憤)-분심이 있어야 돼. 이 분심이 의심을 일으키게 해주는데, 이 분심이 뭐냐? 독한 마음이어. 독한 마음. 이 독한 마음이 의심을 지탱해줍니다. 더 나게끔 하고. 그런데 지금 이 분심이 안 나. 선방의 스님들이 분심이 있을 수 없어. 분심이라는 것은 자기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가 딱 죽었단 말이에요. 그러면 여러분, 어이쿠! 하고 생각이 어떻게 되지요? 긴장

하지요? 대~단히 긴장하고 인생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서 ‘하! 나도 언제 죽을 줄도 모르고, 나도 늙어서 어떤 병에 걸려서 죽을 줄도 모른다. 내 공부를 해야 되겠다. 내 공부를 해야 되겠다. 화두타파를 하면 다 해결 된다고 하니까 이 의심, 이것 가지고 나가자. 밀어보자.’ 독한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배도 부르고 등도 따습고... 저녁에 얼마나 좋은 데서 잡니까? 지금 생활이 옛날 1000년 전 하고 틀려요. 배가 고프고 등이 차야 보리심 ․ 도를 이루고자 하는 구도심이 생기는 거예요. 이것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이 화두 공부는 이미 묵은 옛날의 것이어요. 설사 화두타파를 했다 하더라도 중생들 앞에서, 청법대중 앞에서 ‘부처는 없다’ 그런다 그거요. ‘내가 견성해보니까 없다’ 그거요. 아! 거기는 없지. 거기는 철저히 공이지. 없지. 나와서 무아(無我)행을 해라. 두타 행을 해라.
이제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능력을 얻으려면 이제 공부를 해야 되는 거요. 몸소 진짜 공부를 해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무아(無我)행이라는 것은, 두타행이라는 것은 능력과

지혜를 얻는 공부예요. 그래서 진짜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면 엄청난 지혜와 능력을 갖는 거예요. 화두타파는 이제 시작인 거예요. 지금 같은 이 21세기 환경에서는 공부가 아닌 거예요. 설사 화두타파를 했다 하더라도 지옥 갈 짓을 하더라 그거요. 법문을 그런 법문을 한다니까요. 그런 법문을 해요.‘《법화경》,《화엄경》은 방편설이오!’ 합니다. 이거 큰일 날 소리인 거요. 백만 명, 천만 명이 보는 tv 앞에서 그런단 말이에요. 공부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말입니다.

오늘도 어떤 큰스님의 약력을 들여다보니까, 오래 전에 돌아가신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큰스님이예요. 박사학위가 100개 넘고, 책을 천 권이나 쓰고, 어쩌고 저쩌고... 했다는데, 들어보니까 기가 막히더구먼. 그 사람은 염불 1시간도 하지 않았어. 불보살 있다고 한 사람이 아니어. 선사상을 평생 제고한 고취한 정말로 흉악한 사마외도이더구먼. 그래서 거기 갔어. 거기가 어딘지는 내가 말 안 해. 여러분이 들어면 정말 깜짝 놀랄 거요.

여러분, 아셨지요?
우리 염불을 하는 우리 착한 불제자들을 저 쪽에서는 참말로 외도라고 합니다. 사마외도. 자기들만의 바운다리 안에서 봅니다. 큰일 날 말을 하기 때문에 선불교에 대해서 조금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알아둬야 됩니다. 저쪽을 알아야 돼 여러분.
40분이 다 되었습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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