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2일 토요일

위대한 영산불교 사상과 왜곡된 무아설[2012.5.20.일.현지궁 현지사 자재만현큰스님 정기법회 춘천 본원]








자재 만현 큰스님 정기법문


현지궁 현지사 춘천 본원


위대한 영산불교 사상과 왜곡된 무아설
 
신불기15불기2556년 임진년 음력 윤3.30(2012. 5. 20.

 
이달 들어서 지금 큰 법회가 세 번째이고 초파일까지 하면 네 번째입니다. 내일 초하루(음력4.1) 재일도 수계법회가 예정되어 있고, 또 서울 대구분원 등에서 큰 법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부처님의 정법을 듣기 위해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마음이 아주 든든하고 즐겁습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 처음 오신 분! ~ 많은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 오신 분, 여기가 대단히 멀지요? 여기가 춘천에서도 30분 거리, 38선 이북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있는 법회이지만 저기 먼 제주도에서도 오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또 연등도 우리는 한번 만들어서 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소각합니다. 3년째 12만등을 돌파했습니다. 갈수록 더 많은 불자들이 동참할 것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 그 이유를 아셔야 됩니다. 왜 그럴까? 이유를 아셔야 됩니.
 
대부분 사찰의 신도분들은 스님의 법문이 다분히 가정이 편안하고, 즉 자식이 말을 듣지 않고, 남편이 속을 썩이고... 하는 등의 근심걱정을 덜어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절을 찾아옵니다. 그러한 신도분들은 절에 가서 큰스님 말씀을 들으면 어떤 해결점이 없을까해서 많이 와서 법문을 듣고 그러지요. 그런데 우리 현지사 법문은 물론 그런 생활법문 인과법문을 포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르침 길을 말씀드리면서도 거기에다가 저 세상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립니다. 저 세상이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이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대단히 적습니다. 사실 종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사후(死後)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옥 아귀 짐승세계로 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악도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현지사 신도분에게는 매우 높은 수준의 가르침을 줍니다.

그리고 지옥으로 떨어지면 영원히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거기에 있다고 하지요. 그건 아닙니다. 거기에서 업보를 다하면 아귀나 짐승세계로 오거든요. 또 지옥에서 하늘로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은 착한 일도 하고, 물론 악업을 짓기도 하거든요. 무거운 쪽으로 먼저 가게 되요

그래서 보통 지옥을 먼저 갑니다. 지옥을 가지만, 하늘 갈만한 복을 지었으면 곧 지옥의 벌을 받고 하늘을 갑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신도분들이 삼악도(三惡道,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세계에 가고, 혹은 좋은 국토로 곧 사람 몸을 받아오고, 가능한 한 아예 윤회를 벗어나버리는 그 좋은 묘한 즐거움이 있는 그런 성중하늘에 가서 나고, 더욱 더 불심이 강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영~원히 퇴전하지 아니하는 극락세계가 있거든요. 그 극락세계에 가서 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까지 길을 안내 해줍니다.

그래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사람 되어가지고 착한 일 많이 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닙니다. 이제는 마음, 이 마음이 문제이니까 마음을 닦는 것, 이 마음 닦는 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이 마음, 이것을 어떻게 닦느냐?

이 몸뚱이의 때는 목욕탕에 가서 물로 비누로 닦을 수 있지만 이 마음, 보이지 않는 것 붙잡을 수 없는 것 냄새도 없고 모양도 없는 것. 이 마음을 어떻게 닦느냐? 이게 있어요.
지난 시간에 그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지만, 이것은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부처님의 대자대비 하심을 믿고 그 위대한 능력을 믿고, 그리고 참회하면서 부처님께 귀의하고 간절히 발원하면서 팔정도칭명염불 하면 되는 거예요. 이것은 대단히 수승한 공부법이어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이 가르침을 펴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가 나한테 전화하기를 여러 가지 대단히 근원적인 문제를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이 시간을 빌어서 쉽게 말씀을 해주고 싶습니다. 영산불교가 이 세상에 교단 창교를 선언한 지가 6,7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 현지사의 역사가 얼마 안 되지요. 그런데도 우리 영산불교 현지사의 가르침을 담은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의 책자 2권이 나가있습니다. 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Ⅱ》권은 지금부터 각각 5, 8년 전에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뵙고 부처님 법문을 많이 듣고 해서 한 5, 8년 후에 쓴 것인데, 거기에서 스님이 정말로 무턱대고 영산불교 현지궁 현지사의 사상이 위대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분한 근거가 있어요

첫째, 지금 21세기 아닙니까? 21세기이지요. 지구에 우리 인간이 문명생활을 한지가 한 20세기(2000), 물론 우리나라 역사를 반만년이라 해서 5000년 정도로 잡기도 하지요. 어쨌든 서력기원으로 따지면 약 2000여년, 불기로 따지면 2600년이 되고 힌두교 쪽으로는 3000, 유대 쪽으로 가면 5000,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 동안에 우리의 의식이 있는 지성이 있는 개명된 학자들이나 사람들이 굉장히 알고 싶어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인간영혼의 실체입니다. 인간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 굉~장히 알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기 미국이나 유럽의 이 부문에 대해서 알고자하는 대단한 학자들이 인간영혼의 실체에 대해서 대단히 알고자 합니다.

인간영혼의 실체,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힌두교 자이나교 유교 도교...등 세계적인 종교 성전을(경전을) 아무리 뒤져도 인간영혼의 실체를 속 시원하게 이야기한 종교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없습니다. 없어요. 불교도 마찬가지 예요. 이 왜소화(矮小化)된 불교, 인간영혼의 실체에 대해서 극명하게 세상에 내어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내어놓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영산불교에서 인간영혼의 실체를 자신 있게 내놨습니다. 그래서 영산불교가 위대하다는 거예요.
 
둘째, 어떤 종교도, 그 어떤 종교도 지금까지 생사관이 정립된 종교는 없습니다. 이 말은 좀 설명을 해야 되나요?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인가? 아닌가? 여기서부터 규명을 하는 거예요. ()과 사()에 대해서 완벽히 봐버렸다 그거예요. 완벽히 관해보니까 중생은 태어남으로 해서-생을 보니까 이게 처음 태어난 것이 아니어요. ()는 완전히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어요. 또 어디에 가서 한 생을 살더라 그거야. 지옥을 가든지 하늘을 가든지 아귀세계에 가든지 몸뚱이 없는 세계가 있더라 그거예요. 거기에서도 생을 마치는 때가 있더라 그거예요. 그래서 또 그것이 사람으로도 오고 짐승으로도 오고, 이것을 무한~히도 무한히도 반복을 해. 우리는 무시이래로 살아왔어. 무시이래라고 하면 여러분, 무슨 말인 줄 압니까?

비롯함이 없는 옛적부터라는 말이어요. 시작이 없는 그~옛적부터라는 말입니다. 옛적이라는 말은 겁(), 백천만겁 나유타 아승지겁이어요. 그러니까 비롯함이 없이 우리는 살아왔더라 그거예요. 윤회하면서 살아왔더라 그거야. 윤회하면서 살아왔더라. 그래서 오늘까지 이렇게 왔더라 그거야. 앞으로도 영~원히 죽지 않고. 우리 영혼의 실체는 죽지 않습니다. 영혼의 실체는 죽지 않습니다

여러분, 내 책을 봤으면 이 영혼체의 실체에 대해서 자세히 규명한 것을 알 것입니다. 자세히 규명해 놓았지요? 1234번의 영체를 이야기했습니다. 영산불교에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영혼의 실체를 규명한 것은 세계종교사에 처음이라니까요. 1234번의 영체가 어떻게 어떻게 어떻게 뭉쳐가지고 윤회를 하는가, 윤회를 벗어나는 세계에 대해서 밝혀놓은 데가 영산불교입니다

생사관이라는 것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모든 세계에 대해서도 윤회를 벗어난 해탈세계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생사관을 꿰뚫었다 그래.
 
힌두교? 스님이 이 힌두교를 대단히 위대하다고 했지요. 위대하다고 한 이유가 있습니다. 힌두교에는 아주~본질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모든 종교보다도 철학사상이 훨씬 희유하다는 가치가 있어요. 그건 윤회예요. 윤회를 발견한 거예요. 힌두교가 육도윤회를 발견한 종교입니다. 또 이 세상이 어떻게 해서 벌어져 나왔는가? 이것을 밝혀 놓은 종교예요. 힌두교에서는 모든 만물의 근원을 범(브라흐만, Brhman)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모든 만물이 이 현상세계의 모든 것이 벌어져 나왔다는 거예요. 힌두교 철학의 최고봉에서는 신을 인정을 안합니다. 만물을 창조한 하나님 같은 것은 없다고 해요. 그런데 나중에 인격화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예요.

어떤 이법(理法)에서, 그걸 범()이라고 해요. ()이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서 모든 만물을 창조했다고 보는 거예요. 조금 어려운 말로는 전변설(轉變說)이라고 합니다. 전변설(轉變說), 만물을 만든 후에 자기가 각 개체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 참 재미있는 비유를 합니다.

어쨌든 어떤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그런 깊은 이야기를 힌두교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힌두교에서는 윤회를 알았어요. 윤회 하는 것을 알았다고요. 왜 윤회를 하느냐? 업을 짓기 때문에 윤회한다. 이것까지 알았어. 이것을 카르마(Karma)법칙이라고 합니다. 우주의 이법입니다. 그래서 힌두교의 철학은 대단히 위대한 사상이올시다.

이제 이야기 하는데, 영산불교는 거기에 비하면 훨~씬 더 위대합니다.
힌두교에서는 범(), ()의 세계, 범천(梵天), 그 범()과 인간 실체인 아트만(Atman)이 본질적으로 같다 그거라. 그래서 범아일여(梵我一如)가 되면, 이것을 깨달으면 범천(梵天)에 간다. 영원히 사는 범천에 간다. 이 범천은 윤회를 벗어난 세계입니다. 이렇게 해서 윤회를 벗어난 세계를 알았어요.

그러나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윤회를 벗어난 세계 열반의 세계를 본체계 혹은 적멸계로 부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아라한과 무루대아라한의 세계가 있고, 더 위에 보살이 가는 극락세계가 있고, 극락세계 위에 더 위의 세계가 있다 해가지고 이 상락아정(常樂我淨)의 적멸의 세계(니르바나 세계)를 자세히도 나누어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정점에 가서 정상에 가서는 붓다의 세계 상적광세계까지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건 우리 영산불교밖에 없어요, 여러분.
 
그 다음에, 여러분이 이 무아(無我)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무아, 이 무아라는 말 때문에 우리 불교가 인도에서 망했는데, 무아가 뭐냐? 무아라는 말이 뭐냐? 무아를 잘못 해석해가지고 불교가 망했다고 하니까 이해가 안 가지요. 그래서 어떤 학자도 무아를 어떻게 잘못 해석했는지 질문해왔는데 오늘 오셨는지 모르겠네요.

무아(無我)라고 하면 범어로 안아트만(anatman) 그럽니다. 안아트만. 아트만(atman)이라는 것은 자아(自我) ()를 말하는데, 이제 철학에 가서는 학자들이 굉장히 많이 해석을 하지만 어쨌든 우리 불교에서는 자아(自我)로 표현합니다. 자아(自我)가 뭐냐? ()라는 말이어요. 보통 나라고 하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나(), 그 나()는 에고(ego)로서의 나입니다. 욕심, 본능적으로 욕심을 지니고 있는 나입니다. 그런데 아트만으로서의 자아는 에고 이전의 나, 비에고(ego)로서의 나, 보통 나라고 하는 그런 정도 이전의 원초에 ()라고 하는 종자가 있어요. ()라고 하는 종자가요. 이것은 본체인 공()과 함께 출발합니다.

그런데 저 힌두교에서는 ()이 만물을 만들어가지고 개물(個物)속으로 쏙 들어가버렸다고 이렇게 재미있게 비유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참 재미있는 비유인데 출발은 같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알아야 됩니다.

, 무아(無我)을 안아트만이라고 했습니다. (an), 이것은 부정하는 말이어. 부정접두사예요. 안아트만(anatman), 자아를 부정한 거예요. ()라는 것을 부정한 거예요. 무아(無我), 없을 무() 나 아().

이 무아(無我), 불교의 삼법인(三法印) 사법인(四法印), 법인(法印)이라고까지 붙여서 이야기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현상계의 진리로서는 무상(無常) () 무아(無我)예요. 또 저쪽 본체계 적멸계의 진리로서는 이를 적멸(寂滅) 적정(寂靜), 열반적정(涅槃寂靜)이라고 그래. 열반적정. 이 열반을 다르게 말하면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고 말해. 상락아정을 열반4덕이라고 그래.
그러면 이 무아(無我)가 무슨 뜻이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말이어. ()라는 것이 없다는 말은 고정 불변하는 실체, 즉 사물이나 사람이나 변하지 않고 딱 정해져버린, 변하지 않고 또 죽지도 않고 하는 그런 실체는 없다 하는 말이어. 무아란 것이요. 그러니까 이 세상의 모든 물질 물체를 분석해 들어가 보면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예요. ()이라 그거야. 실체는 없더라 그거라. 이게 무아예요.

사람도 그래요. 이 몸뚱이를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을 분석해서 들어가 보면 색수상행식이 일시 인연 따라서 모아진 것이지, 그 속에 변하지 않고 죽지 않는 실체는 없다는 말이어요. 이게 무아(無我)예요. 이거 맞는 거예요. 이거 맞아요. 이걸 제법무아(諸法無我)라고 그래요. 제법무아(諸法無我). 그런데 이제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힌두교하고 싸움을 한 거예요.
 
여러분 힌두교, 지금 인도 국민 수가 10억이 넘습니다. 13억 정도 된단 말이어요. 80%가 힌두교 신자입니다. 우리 불교가 아주 왕성했을 때에는 힌두교를 제압했습니다. 제압을 했는데, 이 무아 때문에 자꾸 밀려가는 거예요. 이 무아(無我)는 뭐냐? 무슨 말이냐?
불교는 이렇게 말해요. 사람이든 무엇이든 나()라는 것이 없다. 무아를 이렇게 보잖아요?. 보는데, 현상세계와 앞에서 말한 본체세계 적멸세계로 나누어 보는 거예요. 현상세계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저쪽 세계를 형이상적 세계 본체의 적멸계 그래요

그런데 이 무아(無我)를 저~기 본체계까지, 그냥 저~적멸세계까지 가서 해석을 해버려. 이때까지의 우리 불교가 그랬어요. 불교학자들이요. 그러니까 힌두교에서는 아트만을 이야기하거든요. 윤회를 하는 데는 본체(本體)가 있어야 된다 그거라. 기체(基體)가 있어야 윤회하는 것이지 기체(基體)가 없이 윤회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하는 거예요. 불교한테 그렇게 공격을 했어요.

우리 불교에서의 제법무아(諸法無我),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우리 부처님의 핵심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무아는 성역(聖域)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힌두교하고 맞대결을 하려니까 많은 학자 학승들이 깊이 들어가서 연구를 해가지고 이론을 개발한 거예요. 무아로서도 충분히 윤회가 된다 하는 것을 주장하려니까 많은 이론을 개발했어요. 개발 했는데도 힌두교의 학자들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아니다 그거라. 아무리 심식(心識)류를 내놓고 심상속(心相續) 이론을 내놓고 아뢰야식(alaya)이론을 내놔도 이건 아니어요. 이건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하는 이 말은 상당히 깊은 이야기이어서 사실은 대중법문에서 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얘기를 해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불교 서적에서나 쓰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신도분들 수준이 굉장히 올라가 있기 때문에 스님이 이런 말을 하지만 오늘 처음 오신 분한테는 무리예요. 무리인데, 질문이 꼭 들어왔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을 수도 없고, 이에 대해서 대답은 해야 되겠고...

그런데 지금 말하는 이 무아(無我)가 아주 중요하다고요. 이 무아사상이 너무도 중요하단 말이어요. 우리 스님들은 이 무아를 반드시 알아야 돼.
 
무아(無我)의 뜻은 이렇습니다. 무아에 대해 다시 말합니다. 이 세상 물질적인 것, 정신적인 것, 이것을 법()이라고 그래요. 이 세상 만유제법(萬有諸法)은 무아가 맞아요. 실체가 없어요. 실체 없어. 그러니 부처님께서는 무아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몸뚱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실체도 없어. 실체가 없어. 이 세상만사가 다 그래. 만법이 만사가 다 그래. 집착하지 마. 상대에 대해서, 이 몸뚱이에 대해서 집착하지 마. 이 몸뚱이는 나()가 아니니까

내 것이 아닌데 왜 이것의 종이 되어가지고 그러느냐 그거야. 사람들이 이 몸뚱이의 종이 되어가지고 사는 것이거든요. 이것을 이제 막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이 몸뚱이가 가짜예요 가짜. 진짜 나()는 아니어요. 확실히 그래요. 이건 실체가 없어요. 그렇지요

아무리 봐도 실체가 없어요. 따지고 들어가도 실체가 없어요. 이제 거기까지만 그렇게 아시고. 사실은 형이상적인 실체가 있어요. 그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지요. 저쪽 본체계에 저쪽 영적인 실체가 있어요. 이 본체, 이 영적인 실체 이것이 없으면 윤회를 못하는 거예요. 힌두교의 그 말이 맞는 거예요. 윤회하려면 기체(基體) 본체(本體)가 있어야 되는 거예요. 본체 없이는 윤회 못하는 거예요

하루살이는 본체가 없어요. 그러니까 태어났다가 죽어버리면 끝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사람은 안 그러거든요. 죽으면 또 태어나고, 태어나면 또 죽고...이것을 한없이 반복합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했느냐? 나유타 아승지겁을 두고 우리는 내려왔다 그거라. ()을 받아왔다 그거라. 앞으로 미래제가 다하도록 우리의 이 영체는 죽을 수가 없어요. 이게 주인공이라고요. 이게 주인공이라고. 그런데 이 영체를 보려면 붓다의 경지에 가서 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붓다의 경지에 가면 저분의 영체는 어떻게 생겼는데 1번 영체는 어떻고, 2번 영체는 어떻고, 3번 영체는 어떻고, 4번 영체는 어떻게 생기고 하는 것을 소상히 안단 말이어요.
그런데 그 동안에 불과(佛果)를 증한 분이 세상에 출세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무아(無我)의 부처님 말씀을 왜곡해가지고 해석을 해버렸다 그거라

왜곡해가지고 말이오. 그래서 무아로도 윤회를 할 수 있다고 온갖 이론을 내놨지만 힌두교 학자들한테는 먹혀들지가 않는다 그거라. 이 실체는 죽을 수 없어야 되요. 찰나생 찰나멸 하는 심식류 갖고는 안 되는 거예요 그것은. 이건 좀 깊은 이야기인데 내 책에는 이번에 이것을 좀 많이 다룹니다. 많이 다루고 있는데, 기왕에 이렇게 질문을 해왔고 이 무아(無我)가 너무도 묘()한 사상이고 말하기가 참 어려운 사상이어서 그저 대충 이야기를 했습니다.
 
,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본래 뜻은 거짓 몸뚱이나 세상만사가 다 허망한 것이니 그것들에 집착하지 마라. 집착에서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있어서 탐진치가 생기고 온갖 번뇌가 생기고 해서 업을 지으니까 아주 싹을 자르기 위해서, 이 몸뚱이는 가짜이니까 나()가 아니니까 업을 짓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집착에서 병이 생기니까 집착하지 말라는 거예요. 집착에서 업을 짓는 거예요.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해서 화두타파를 하고 위빠사나 공부를 많~이 해서 무아(無我)의 경지까지 간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이 볼 때 이 우주는 실체가 없는 거요. 없는 데까지 공부해 들어간 사람이 있어. 이것을 견성(見性)이라고 해요.

견성한 사람, ! 아무것도 없어요. 허공과 같이 확~터져 가지고 아무것도 없어요. 빛밖에 없어요. 이것을 자성광(自性光)이라고 합니다. 자성광(自性光). 아무것도 없어요. 무아예요. 여기서 조금 전에 내가 말한 아라한이 되고 무루대아라한이 되고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려면 무아공부를 해야 되요. ()라는 생각을 비워버려야 되요. ()라는 생각을 없애버려야 돼. 집착을 놔버려야 돼. 욕심을 비워버려야 돼. ()라는 생각을 없애야 돼. 그래야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될 수 있어요 여러분. 그런 가르침, 그런 교훈을 주고, 그렇게 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불교는 무아(無我)’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해석을 하고, 또한 그렇게 본 거예요. 따라서 부처님도 없고 보살도 없고, 내 영적인 실체(영혼체)도 없고, 극락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귀신도 없고 윤회도 없고, 지금의 불교가 이렇게 내려와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힌두교 쪽에서나 다른 쪽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밀려나게 되고... 앞으로 이 불교가 이대로 가면 반드시 망하는 길로 갑니다. 우주의 진실을 모르거든요. 우주적 진실을 외면하거든요. 그러면 우주의 진실을 아는 종교에 의해서 제압당하지요.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다 있다 그거라. 사람이 죽으면 실체, 영적인 실체, 이것이 있어서 이것이 나가더라 그거라. 이것이 생명의 주체라 그거라. 생각하고 행위하고 하는 생명의 본체란 말이어요. 본체(本體). 이것이 진짜 주인공이란 말이어요. 이것이 나가버리니까 이 몸뚱이는 송장이 되어버리더라 그거라

이것이 나간 것을 죽음으로 보고, 또 이것이 들어온 것을 태어남으로 보는 거예요. 임신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들어와 수정이 되어야 임신이 되는 거예요. 이 생명의 본체가 들어와야 임신이 되는 거예요. 이것을 수정이라고 그래. 임신이라고 그래요. 이걸 없다고 하면 말이 안 되지. 이걸 없다고 하면 말이 안 돼.

2000년도 넘게 2600년 동안 그 큰스님들이 출세를 했지만 이것을 보지 못했어. 이건 붓다의 경계이기 때문에 보지를 못했어. 그래가지고 온갖 비유라든지,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심식류 심상속 혹은 아뢰야식 이론 등을 가지고 대적을 했지만 되나?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데 여러분.
 
()이라는 것은 육근과 육진, 근과 진이 화합해서 식()이 생기는 거예요. 근이 무너져버리면 식()이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식은 윤회의 주체가 아닌 거예요. 식이 들어있는 몸뚱이, 영혼체, 이것이 윤회의 주체가 되는 거예요. 식가지고는 안 되는 거예요. ()은 사람이 죽어버리면 존립할 수가 없는 거예요. 식이라는 것은 의지할 데가 있어야 되요. 이 근과 대상이 없으면 식()이 생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이 식()이 죽지 않고 몸뚱이를 떠나서 어떻게 있단 말입니까? ()이 들어있는 영체가 있어야지요. 영체가. 그 영체를 보지를 못했어요. 발견하지 못했어요. 역사이후 그랬습니다. 힌두교 쪽에서도 못 봤습니다. 다만 아트만이라는 것까지는 알았어요.

아트만은 우리 현지사에서 이야기하는 1번 영체와 가까워요. 그렇지만 아트만은 1번 영체가 아니어요. 거기의 아트만은 범()과 이퀄(equal)을 지을 수 있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행위 할 수도 없는 것이어요. 순수한 것이어요. 순수한 것 가지고는 윤회를 못합니다. 영혼체에 더덕더덕 업장이 붙어야 육도에 윤회를 하는 거예요. 영혼체에 지옥 갈 업이 더덕더덕 붙어야 지옥을 가는 거예요. 영체가 깨끗한데 어떻게 윤회 합니까? 그래서 아트만 갖고는 윤회 못하는 거예요.

우주본체의 공()과 나()라고 하는 종자가 합해져 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에 자의식이 생기면 이것이 1번 영체예요. 1번 영체의 씨종자, 이 종자 속에는 234번 영체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어요. 그래서 성겁(成劫)에 들어가게 되면, 우주가 성겁이 되면 1번 영체가 나오면서 23번 영체가 딱 생기게 되는 거예요

 123번 영체는 항상 붙어 다녀요. 뭉쳐 다녀요. 이건 영원히 죽지 않아요. 이것이 진짜 영혼의 실체예요. 이것이 진짜 윤회의 주체라고요. 그러니까 힌두교보다도 훨씬 우리 영산불교가 영혼의 실체 윤회의 주체에 대해서 더 밝게 본 거예요.

이것이 진실인데도 그 동안의 여러 세계적인 종교, 여러 나라 불교의 큰스님들이 이것을 모르고 망언을 한 거예요. 망언을 한 거요.

불 보살 없다. 지옥 극락 없다.법화경》《엄경? 방편설이다라고 정~말로 무서운 구업을 지은 거예요. 이것은 전번에 확실히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이건 중생의 안목을 흐리게 하는 거예요. 이건 오도(誤導)하는 거예요. 이것은 지옥으로 끌고 가는 이야기예요.

자기만 지옥가면 되었지 다른 사람까지 신도들까지 전부 지옥으로 몰고 간다고. 이건 사마외설인 거요.
 
()가 없다니요? 그러면 나()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 거요?
여러분! 여러분이 없고 나도 없다면 어떻게 되는 거요? 뭣 때문에 살아? 한번 태어났다가 죽어버리면 끝나 버릴 인생이라면 뭣 때문에 중이 되느냐 그 말이어요. 왜 성직자가 돼? 영혼의 실체가 없다고 하면 뭣 때문에 천도재(薦度齋)를 지내느냐 그거요.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천도재냐 그거야

우리 영산불교에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안잖아요. 우리가 묻는 부분에 대해서 그들은 대답 못하지요. 아예 영혼의 실체를 보지도 못한 사람들인데 대답을 어떻게 합니까? 대답한다고 하면 그건 억지로 지어 만든 대답이지요.
중생을 오도하는 그 설법은 그 죄악이 너무 크다고 그래요. 청법 대중을 갖다가 눈을 흐리게 하거든요. 지옥으로 인도하는 이야기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법문을 한 사람은 극무간지옥을 간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 법문을 듣는 사람은 ! 지옥도 없고 천상도 없고.법화경》《화엄경도 방편설이고. 이건 뭐 하!~ 그러면 뭐 적당히 살아야 되겠네. 주색잡기 하면서...’
이번에 도박한 사람 있지요? 그들이 지옥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런 도박했겠습니까? 그런데 아니거든요. 우리 영산불교, 얼마나 계율이 엄정한줄 압니까? 그런 업을 지으면 불효오역죄 보다도 더 무섭기 때문입니다

절돈, 사찰로 들어온 우리 신도분들의 정재(淨財), 이것을 상주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상주물(常住物)을 함부로 쓰면 지옥 간다는 거예요. 이것은지장보살본원경에 있어요 여러분. 딱 박혀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으로부터 상주물을 아껴쓰라고 너무도 많이 듣고 있어요. 엄정해요. 무섭다고요. 그런데 그것도 100만원도 아니고 1억도 아니고 10억 가지고 가서...이것은 이건 ... 참 죄송합니다. 나도 스님인데 죄송합니다. 주색잡기(酒色雜技)는 인간 망나니가 하는 거예요

성직자가 어디에 그럴 수 있습니까? 왜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이런 진실을 몰랐기 때문에 그래요. 이런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그래요. 적당히 산다는 거요 적당히. 여자도 적당히 보는 거요. 이렇게 무서운 못된 짓을 하면서 계율을 파합니다.

그래서 내가 7년 전에 쓴 책에도 너무도 우리 스님들이 계율을 제대로 지키는 스님이 없다. 계율을 안 지킨다 그거예요. 탄식한 거예요. 한탄한 거예요. 부처님 세계에서는 한탄이 문제가 아니라 이거 큰 일이라는 거예요. 지옥을 모르거든. 극무간지옥이 어떤 곳인지 모르거든. 앞으로 중생을 오도하는 그런 법문을 하면 그 스님이 어떻게 된 줄 보세요. 성중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붓다회상이 이렇게 엄연히 섰는데 놔두겠습니까? 보십시오.

그런 법문을 들으면 여러분도 지옥 가니까 정말 안 들어야 됩니다. 흔들립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도 그렇게 한단 말이어요.

우리 큰스님 말 들으면 큰스님 말이 옳고, 거기에 가서 들으면 또 그 말도 옳다 그거라. 이거 큰일 났다는 거예요. 그런다고요. 왜 사람의 이성을 흐리멍텅하게 하느냐 그거예요.
지옥 있습니다. 우리는요 함부로 살면 안 되어요. ~부로 살면 안 되어요. 우리가 지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은요 화()를 불러와요. 내가 한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거예요. 그것이 이법이에요. 저 사회법이요. 사회법 그러니까 형사법 민법 등은 다~그 우주 진리를 갖다가 사유해서 만들어 내는 거예요.

여러분! 대통령을 지낸 분이나 장관을 지낸 분이나 한번 비리가 들통났다하면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거예요. 검찰은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거예요. 그냥 놔둔다면 그건 직무유기인 거예요. 세계가 그래요. 저 세상의 법은 더 산계소작(算計所作)이어요. 열시왕은 참말로 산계소작이어요 여러분.
아무도 안 봤다고 해서 슬쩍했다...나밖에 모른다고? 하늘도 보고 땅도 보고 부처님은 다 알아요. 영산불교의 위대한 점은 바로 이런 점과,
 
그 다음, 부처님이 계시다는 것을 2600년 만에 강하게 주장한 사람은 한사람도 없어요. 못 봤기 때문에요. 그 부처님을 보려면 깊은 선정이 아니라 너무너무도 깊은 삼매에 들어가야 되거든요. 그 삼매에 들어간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하나도 없어요 여러분. 인도의 그~큰스님...여기서 거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국의 그~큰스님들, 한국에도 큰스님들이 많이 나왔어요. 모두 거기의 문에도 못 들어갔어요. 지금 현재 선정에 들어간 사람도 이 세상에는 없어요. 선정을 넘어서 삼매에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아라한이 되고, ~깊은 삼매에 들어가야 보살이 되는 거예요. 더 깊은 삼매에 들어가야 부처님을 본다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가 이렇게 망해버린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부처님은 계시더라 그거지. 부처님은 계시더라 그거지. 절대계 상적광세계에 계시더라. 지혜에 만능자재(萬能自在)하신 부처님이 계시더라 그거예요.법화경화엄경에 그렇게 부처님을 그려놨지요. 이교(異敎)들의 학자들이 그것을 보고 놀란 거예요. 그러면서 이건 가짜다 그거라. 이건 만들어낸 픽션(虛構)이다 그거라.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 위안 하지요. 그런데 아니어. 법화경》《화엄경보다도 더~위대하고 만능자재하신 부처님이 계신다 그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의 불교가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면 외도라고 한단 말이어. 마음이 부처이지, 마음밖에 부처가 있다? 외도라고 해.
염불? 근기가 낮은 저 하근기들 저 늙은 할망구나 하는 공부라고 해. 참선은 상근기, 참선하는 선객들 저거들은 상근기라고 자처하거든. 염불? 그건 하근기, 하근기도 저기 자 뒷자리도 모르는 할망구나 하는 공부라고 하거든. 이렇게 무서운 말을 하거든요. 그러면 어떻게 되는 줄 압니까? 이 다음 세상에는 물론 업의 경중에 따라 벙어리로 나올 것이고, 또 지중하면 금생에 그렇게 되어가지요. 또 법이 아닌 말을 하게 되면 삼중고(三重苦)로 나옵니다. 삼중고로 나와.
어쨌든 여러분이 꼭 유념하시고, 이 스님의 말씀을 많이 새겨주시고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방금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영산불교는 모든 종교, 지금의 불교를 압도할 만한 심오한 철학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깊은 철학사상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들이, 그리고 지금까지의 불교, 또 지금의 여러 나라 불교 종파들이 우리 쪽으로 기어이 귀의할 것입니다. 살아남으려면 그래야지요.
 
이 불교가 인도에서 망한 주된 원인이 왜곡된 무아(無我)인데, 사람들은 그러지요. 그것이 아니고 그 아프가니스탄의 터키계 이교도(異敎徒,이슬람교도, 마호메트교도)들이 지금부터 약 1000년 전에 북인도를 열일곱 번에 걸쳐서 침략해가지고 북인도가 쑥대밭이 된 역사적인 사실을 원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불교라든지, 힌두교의 사원이나 성지가 쑥대밭이 되어버렸단 말이어. 승려의 학살이, 승려들의 학살이 세계역사상 그 유례가 드물 정도로 철~저 하게 승려들을 학살했습니다

지금의 저기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교도들이요. 그 후 약 200년 후에는 또 그놈들이 북인도의 불교 대사원을 완전히 파괴해가지고 전멸시켜버렸습니다. 그 유명한 큰~사찰 비크라마실라라고 하는 사찰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망한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하는 학자들이 있어요. 대부분의 학자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 물론 그 이슬람교도들의 철저한 그 파괴와 살인, 우리 불교를 말살한 그러한 역사적인 그 사실이 물론 크게 작용을 했지요. 그러나 사실은 무아(無我)라고 하는 그 왜곡된 무아설(無我說) 때문에 망한 것이다. 부처님의 참된 의도을 모르고 무아를 왜곡되게 해석함으로써 진리로부터 멀어진데다가 힌두교의 집요한 공격을 받다보니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던 거지요.

그러나 우리 현재 신불교 영산불교와 같은 고유한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 이러한 종교는 멸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절대 멸망할 수 없는 거예요. 이건 멸망할 수 없어요.

마치 큰 나무의 줄기를 잘랐다고 합시다. 뿌리가 있으니까 다음에 싹이 나오는 거예요. 뿌리가 건재하니까 반드시 나오는 거예요. 이건 일시적인 거예요. 보십시오. 이슬람의 공격으로 힌두교도 망하지 않았습니까? 힌두교도 불교 이상으로 처참하게 그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짓밟혔거든요. 자이나교도 그랬고요. 그런데 왜 우리 불교만 망해버렸습니까? 우리 불교가 망한 것이 지금같이 이렇게 방송 녹음 등 이 문화적 이기(利器)들이 없었기 때문에?...

요즘은 오늘 말한 것이 이렇게 세계로 퍼져나갈 수가 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요. 옛날에는 안 그랬어. 그래서 불법이 널리 퍼지지 않아서 망했다?

우리 부처님께서 2600년 전에 오셔가지고 하신 말씀이 몇 백 년을 두~고 두고 이제 퍼져나갑니다. 슬로우(slow) 슬로우(slow)로 퍼져 나가. 그러다가 도중에 한 1000년 정도 되었을 때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 힌두교의 학자들이 불교의 실체를 알게 된 거예요. ‘! 불교는 무아(無我)를 주장한다그거라. 무아(無我). 이 무아(無我)를 주장한다 그거예요. 아트만 설을 배격한다 그거라. 아트만을 인정 않는다 그거라. 아트만을 인정 않고 실체가 없이 본체가 없이 어떻게 윤회를 하느냐 그거예요. 이건 모순이다, 이건 사기(詐欺)다 그거예요. 자기들이 볼 때는외도다 그거라

그래서 그 학자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이론적으로 약하니까 부족하니까요. 무아(無我) 가지고는 안 되거든. 아무리 무아(無我)의 이론을 이리저리 끼워맞추어 봐도 이거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불교도들이 하나씩 둘씩 힌두교에 흡수되어 버린 거예요. 흡수되어 가다가 힌두교에 밀교가 생기면서 불교에도 밀교가 흥성하는데 그~기가 막힌 외력(外力) 때문에 그냥 막 휩쓸려갑니다

그러다가 이슬람교도의 침략이 결정타가 되었지요. 그래서 망한 거예요. 망했는데, 그러나 이 위대한 불교 본래의 깊은 철학이라면 앞으로 제 아~무리 어떤 박해가 있고, 어떤 무서운 공격이 있다고 하더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우리 신불교는 기어이 세계화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스님이 모두(冒頭)에서 말씀했지요. 가정이 편안해야 하는 것인데. 자식이나 남편이나 속을 썩이고, 자기가 병고에 신음하고, 그러면 그것이 화두가 되지요. 그럴수록 여기에 와서 법문 들으시고 스님의 가르침대로 사십시오. 오늘 법문의 요지가 뭔가?

부처님의 이 깊은 가르침을 들으시고 꼭 염불해라 그거요. 칭명염불해라 그거야. 영산불교에서 가르쳐 주는 칭명염불해라 그거예요. 이것이 전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테니까. 이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영산불교 현지사를 사랑해라 그거라.

우리 절에는 부처님이 와계신다고 했지요? 부처님이 와계신다고 했지요? (신도 : ~)
그런데 부처님이 사바세계에 오시는 경우가 꼭 한번 있어요. 그때가 언제라고 했지요? (신도...) 몇 사람은 알고 계시네. 애제자가 불과를 증할 때 오셔요. 애제자가 불과를 증하려고 사람 몸을 받아왔다 그거라. 그때부터 부처님이나 많은 부처님이 관심을 갖고 항~상 보살펴 줘요. 그래서 그 애제자가 수행의 길로 들어왔다? 그럴 때 딱 오시는 거예요. 왜 오십니까?

여러분! 사실은 견성(見性)도 어려워요. 견성도 어려운 거예요. 마장이 많아요. 견성해가지고 아라한까지 가려면 어마어마한 마장이 와요. 아라한이 보살 되려면 자력으로 못 됩니다. 자력으로는 마장 때문에 안 되요. 용신, 또 뭐라고 했지요? 그리고 자력으로는 안 되는 것이 변녀성남(變女成男)이 있고, 정토에 내 분신(화신)이 있어야 되는데 그것을 내가 만들 수 있습니까? 안 돼. 또 정토극락에 가려면 사중죄(四重罪)를 소멸해야 돼. 그거 안 돼. 그건 문수보살님의 권한이어.

또 정토 정도에 가려면 피가 맑아야 돼. 그러니까 영혼체가 아주 청정해야 된다는 얘기여. 그건 필수여. 그러니까 저기 약사정토에서 와서 피를 교체해줘야 돼. 이런 것은 자력으로 안 되는 것이거든요. 안 돼요. 안 됩니다.

이 마장(魔障)만 해도 도저히 뚫고 갈 수가 없어요. 보살이 될 수가 없어요. 될 수가 없지만, 부처님이 와계실 때 되는 거예요. 이 때 되는 거예요. 부처님이 오신 이유는,

첫째, 애제자의 무서운 마()를 떼어내고
더 이상의 마()가 붙지 못하도록 도와주시고 막아주시고
삼매로 이끌어 주시고
그 영혼체를 갖다가 빛으로, 이 몸뚱이를 빛으로 만들어 주시고
절대계에 불신(佛身)을 만들어 주시고.

이런 자력으로 할 수 없는,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많은 일 때문에 오셔요. 그래서 그 교단에 많은 제자들이 들어오지 않습니까? 이 교단으로 들어온 제자들은 이제 덤으로 보살이 되는 거예요. 덤으로요.
 
여러 신도분들! 오늘과 같은 이런 법문, 불과(佛果)를 증한 큰스님의 법문은 부처님이 꼭 오시게 되어 있어요. 저기 지금 우리 태사부님이신 광명 만덕 큰스님이 공부를 해도요 나는 자재한테 가야된다하고 오셔요. 그래서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줘요. 여러분의 업장을 씻어준다고요. 부처님이 와 계실 때만이 업장이 씻어집니다. 이건열반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못 봐서 그러지요.

그러면 업장을 씻어준다는 말이 얼마나 복을 받는 일인 줄 압니까 여러분? 업장을 씻어준다? 여러분들이 다겁생으로 내려오면서 지은 업이 있잖아요? 이 영혼체가 과보를 받아야할 업을 지니고 있단 말이어요. 그것을 씻어 줘버리면 여러분들이 과거에 지은 그 못된 짓에 대한 책임이 면해진다 그 말이어요. 알았어요? (신도: ~)
이거요, 정말 대단한 사건이올시다. 자력으로는 오계십선을 지켜야 하늘을 가요. 여러분, 오계십선 못 지켜요. 오계십선(五戒十善), 오계만 두고 봅시다.

첫째, 생명체를 함부로 죽이면 살생죄예요. 이거 큰 죄예요. 영체가 들어가는 12띠를 죽여 버리면 사실은 사람 죽인 것과 같은 거예요. 저 영계에서는요. 안 죽인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둘째, 남이 주지 않는 재물을 취하는 것은 안 되어요. 이거 절도라고 그래요. 훔치는 것, 절도라고 하지요. 강제로 남의 재물을 빼앗는 것을 뭐라고 하지요? 강도라고 하지요. 속여서 훔치는 것? 사기라고 해요. 어째든 남이 주지 않는 재물을 내 것으로 하는 것은 이거 안 되는 거예요. 이거 안 되어요. 도박 하는 것? 따먹으려고 하잖아요. 이거 훔치는 거예요.

세번째, 사음(邪淫)입니다. 자기가 정식으로 결혼한 아내나 남편 이외의 사람과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건 도덕적으로도 용납이 안되는 것이지만 부처님 계율상으로도 도저히 안됩니다. 특히 출가수행승들한테 정말로 무서운 죄가 여자와 관계하는 음행입니다. 이건 청정수 한 바가지에 똥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청정수 한 바가지에 똥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마실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부처님께서 이것으로 비유하신단 말이에요. 이거 처~음 내가 한 말이어요. 마실 수 없어요. 승려들이 이런 짓하면 지옥 가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게 지금 큰일입니다. 여러분 몰라서 그러지. 이렇게 조계종이 망해버렸어요. 조계종이 이렇게 망해버렸기 때문에, 종갓집이 이렇게 망해버렸기 때문에 내가 뛰쳐나와 버린 거예요.

그 다음에 거짓말, 이간질, 악담 , 기어. 기어는 아첨과 같은 꾸미는 말, 과장되게 부풀려서 하는 말, 쓸데없는 음담패설 등을 말하는데, 우리 부처님은 이런 구업(口業) 외에다가 우리한테 주는 입에 대한 무서운 계율이 있어요.

한번 뱉은 말은 책임져라고 하셔요. 한번 내뱉은 말은 책임져라 그거라. 죽어도 책임져라 그거라. 그러니까 말을 하려면 세 번 네 번 생각하고 해라 그거예요. 우주의 이치로 봐서는 책임져야 된답니다.

여러분!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지키지도 못할 약속 척척 하거든. 안 지켜버려. 그건 큰일 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술 담배 마약 같은 나쁜 것들을 먹는 것입니다.
이게 오계(五戒)예요. 이 오계를 지키는 사람이 많습디까? 재가불자들은 그렇다고 칩시다. 성직자들인 스님들을 한번 눈여겨 살펴보라고요. 한번...여러분들이 스님들의 생활 내용들은 속속들이 모르지. 오계를 제대로 지키는 스님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내가 언젠가 이야기했지요. 30년 전엔가 어느 큰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는 스님이었습니다. ‘우리 조계종 큰일났다. 오계 지키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봐라. 얼마 없을 것이다그거라. 그래가지고 그 스님이 혼났지만 그건 맞는 거예요. 오계십선을 못 지키면 하늘을 못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은 하늘간다 그거라.
? 법회에만 나오면 많이도 많이도 씻어주니까. 매번 씻어주니까.

우리 스님들, 개별적으로 보십시오. , 용수라든지 마명이라든지 원효, 이분들은 보살이거든요. 우리 스님들은 대부분 보살과를 인가받은 사람들이에요. 기가 막힌 거예요. 붓다회상 만나니까 자기 힘이 아니더라도 덤으로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제 125천등을 계속 단 이유도 아셨을 것입니다.

이렇게 멀고 먼 오지를 전국 각지에서 법회 때마다 1,000명씩 온다는 것은 없어요. 서울의 큰 사찰도 그렇지 않아요. 여기는 한 달에 두 번씩 하는데. 그런 절 없어요. 앞으로 우리는 1,500~2,000명 될 것입니다. 입소문으로 소문이 소문으로 영산불교의 그 깊은 철학이 전해지거든요. 그러면 대학교수 불교학 박사급 정도 약 5명 정도는 나에게 전화를 해와서 탄복한 거예요. 내 책을 보고요. 우리가 된다 그거라. 그런데 이 조계종이라고 하는 큰~종단, 우리의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세력이 있어요. ‘염불은 외도다. 부처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외도다. 마음이 부처이지 부처님은 없다그거라. 이거 지금 그~정말로 문제덩어리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극복할 거예요. 진리는 이기는 거예요.
 
이제 여드레 있으면 사월 초파일인데, 또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늪에 빠진 악도로 달려가는 지옥으로 가는 저 중생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지려면 꼭 모시고 오십시오. 모시고 오십시오. 여기 붓다의 법문은요 삼생을 두고 공덕을 짓는 그 공덕보다도 더 크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꼭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BTN(불교tv)이나 BBS의 불교방송, 그 큰스님들의 법문은 그런 무서운 함정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가지고 BTN 관계자한테서 전화가 온 거예요. 이런 법문을 하니 죽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거예요. “법을 설할 때 수 만 명 앞에서, 백만 명 천만 명 앞에서 잘못 설하면 큰일난다하는 것입니다. 큰일 난다는 거예요. 부처님을 능멸하고 모독하는 말이다 그거라. 부처님은 엄연히 계시는데 없다고 하거든요. 있다고 믿는 사람한테 너 돈 사람 아니냐!” 이렇게 말하니 이거 어두운 말 아닙니까?
, 부처님 염합시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스님이 법문 끝에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요? (신도들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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